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 Philosophy + Film
이왕주 지음 / 효형출판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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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은<존재냐 소유냐>에서 두 종류의 인간을 구분한다.

하나는 존재지향의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소유지향의 인간이다.

존재지향의 사람들은 단지 '어떤 것이 있다' 는 사실만으로 놀라움, 기쁨, 행복을 느낀다.

그들은 길가에 피어난 한 송이 꽃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낀다.

그 꽃이 반드시 내 방 안에 꽃혀 있어야 한다거나 내 정원에 피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또 누군가를 사랑해서 그 혹은 그녀와 살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살아야 한다면 그런 조건을 받아 들인다.

그 혹은 그녀가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유지향적인 사람들은 단순히 '어떤 것이 있다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 것이라야 한다.
내가 소유하고 지배하고 군림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럴 수 없는 것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피어 있는 꽃이 아름다우냐 아름답지 않으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 꽃이 내 것이냐 네 것이냐만이 문제일 뿐이다.

누군가가 내 마음에 든다면 잠자리를 하거나 함께 지내거나 결혼을 하거나 어쨋든 내 것으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그래서 소유지향적인 사람들의 마음은 늘 소유와 지배의 욕망으로 시달린다.

(중략)



-1쪽

그는 피아노를 위해 땅을, 에이다를 위해 피아노를, 에이다의 행복을 위해 에이다를 포기한다.

그러나 여기서 베인스가 포기하는 것은 그것들에 대한 소유권뿐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것을 소유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

같은 하늘 아래 어딘가에 그것이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가슴 뛸 수 있는 것이다.





-2쪽

사랑은 궁극적 선택이다.

우리는 사랑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지만 무엇인가를 위해 사랑할 수 는 없다.

사랑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궁극적 목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이고 그에 따르는 희생과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랑한다고 믿으면서 선택 앞에서 망설이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소유 앞에 주저한다.

<피아노>의 주인공 에이다는 그런 어정쩡한 위선 속에서 머뭇거리는 우리를 피할 수 없는 물음 앞에 서도록 한다.

'사랑을 위해 당신은 가장 소중한 것조차 포기할 수 있는가?'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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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구판절판


엄마는 진분홍 실크 블라우스 위로 같은 감의 실크 스카프를 길게 늘어뜨리고 어깨를 가만히 흔들고 있었다. 그런 감상적인 기분 탓이었는지 엄마의 연주는 내가 그전에 그렇게 귀를 막고 싶어했을 정도로 형편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연주가 끝났을 때 나는 박수를 쳤다. 부엌에서 일하던 파출부 아주머니가 치는 박수소리도 들렸다. 엄마는 정말 무대 위의 피아니스트처럼 우아하게 보인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듯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다른 곡을 시작했다.
내가 엄마와 우리식구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이 돈이 많고 그들이 자신이 속물들임을 위장하기 위해 흔히 쓰는, 내게 돈만 있는 것은 아니란다, 하는 표정으로 문화예슐가를 자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실은 뼛속까지 외롭고 스스로 홀로 앉은 밤이면 가여운 것이 사실인데도, 그것을 위장할 기회와 도구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실은 스스로가 외롭고 가엾고 고립된 인간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기회를 늘 박탈당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생과 정면으로 마주칠 기회를 늘 잃고 있는 셈이었다.-118쪽

누구에게나 슬픔은 있다. 이것은 자신이 남에게 줄 수 없는 재산이다. 모든 것을 남에게 줄 수는 있지만 자신만은 남에게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이 소유한 비극은 있다. 그 비극은 영원히 자신이 소유해야 할 상흔이다. 눈물의 강, 슬픔의 강, 통곡의 강, 슬픔은 재산과는 달리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 분배되어 있다.
-김상중 스님-126쪽

"그 자식은 말을 되게 그럴듯하게 해. 그게 위선인지 어떻게 알아? 혹시라도 구명운동해서 살아날 방법이 있을까 하고...난 안 믿어. 너무 빨라. 그 할머니도 그렇고, 참 다들 단순도 하지. 용서하고 뉘우치고 용서하고 뉘우치고....난 그리스도교에서 그게 젤 싫어. 실컷 잘못해놓고 교회에 가서 잘못했습니다. 하면 그만인 거! 위선자들!"
고모는 눈을 감은 채로 잠시 말이 없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유정아...고모는 위선자들 싫어하지 않아"
뜻밖의 말이었다.
"목사나 신부나 수녀나 스님이나 선생이나 아무튼 우리가 훌류?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위선자들 참 ㅁ낳아 어쩌면 내가 그 대표적 인물일지도 모르지...위선을 행한다는 것은 적어도 선한 게 뭔지 감은 잡고 있는 거야. 깊은 내면에서 그들은 자기들이 보여지는 것만크 훌륭하지 못하다는 걸 알아. 의식하든 안 하든 말이야. 그래서 고모는 그런 사람들 안 싫어해. 죽는 날 까지 자기 자신 이외에 아무에게도 자기가 위선자라는 걸 들키지 않으면 그건 성공한 인생이라고도 생각해. 고모가 정말 싫어하는 사람은 위악을 떠는 사람들이야. 그들은 남에게 악한 짓을 하면서 실은 자기네들이 실은 어느 정도는 선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위악을 떠는 그 순간에도 남들이 실은 자기들의 속마음이 착하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래. 그 사람들은 실은 위선자들 보다 더 교만하고 더 가엾어..."
-158쪽

바보 같이, 지금 그거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야? 하고 나는 묻지는 않았다. 그런데 가슴 한구석, 내가 보여주기 싫어하는 내 속옷 깊은 곳의 흉터를 보여주는 것처럼 수치심이 몰려왔다. 나는 앞에 가는 승합차를 한 대 추월해버렸다. 차가 휘청하자 고모가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고모가 그것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아무 기준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남들은 남들이고 나는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물론 그럴 때도 많지만 한 가지만은 안 돼. 사람의 생명은 소중한 거라는 걸, 그걸 놓치면 우리모두 함께 죽어. 그리고 그게 뭐라도 죽음은 좋지 않은 거야....살고자 하는 건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에 새겨진 어쩔 수 없는 본능과 같은 건데, 죽고 싶다는 말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거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다시 거꾸로 뒤집으면 잘 살고 싶다는 거고....그러니까 우리는 죽고 싶다는 말 대신 잘 살고 싶다고 말해야 돼. 죽음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 하는 건, 생명이라는 말의 뜻이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기 때문이야"-159쪽

"착한 거, 그거 바보 같은 거 아니야. 가엾게 여기는 마음, 그거 무른 거 아니야. 남 때문에 우는 거, 자기가 잘못한 거 생각하면서 가슴 아픈 거, 그게 설사 감상이든 뭐든 그거 예쁘고 좋은 거야. 열심히 마음 주다가 상처 받는 거, 그거 창피한 거 아니야..정말로 진심을 다하는 사람은 상처도 많이 받지만 극복도 잘하는 법이야. 고모가 너보다 많이 살면서 정말 깨달은 거는 그거야."
나도 그정도는 알아, 안다구, 하고 나는 말할 뻔했다. 그건, 나를 치료하고자 했던 신경정신과 의사들 앞에서 언제나 하던 말이었다. 그래 유정아 너 아는 거 많지. 네가 나름대로 정신과에 관련된 서적 많이 읽은 것도 안다. 그런데 유정아, 아는 건 아무것도 아닌 거야. 아는 거는 그런 의미에서 모르는 것보다 더 나빠. 중요한 건 깨닫는 거야. 아는 것과 깨닫는 거에 차이가 있다면 깨다딕 위해서는 아픔이 필요하다는 거야, 라고 삼촌은 말했었다.-160쪽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다. 감옥에서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중심으로 천천히 회전할 뿐이라고.-194쪽

"강, 간을 당한 적이 있었어요. 큰집에 심부름을 갔다가였죠. 그때 그 사촌오빠는 이미 부인이 있었고 아이까지 둔 가장이었죠"
내 입으로 그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강간이라는 객관적인 용어를 쓴 것도 처음이었다. 그런데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야 한다면 살아서 보는 마지막 봄을 맞고 있을 그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모르겠다, 내가 그에게 느꼈던 동질감은 무수히 많았다. 실은 처음부터 그랬다. 그리고 그중 가장 중요했던 것은 우리가 인생의 어떤 시기부터 내내 죽음의 열차를, 쫓겨서 그랬던 자발적으로 그랬든, 타고 싶어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죽음의 열차라는 것을 타고 싶다고 생각하고 나면, 세상의 가치들이 모두 헤쳐 모여, 했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중요해지지 않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 중요해졌다. 죽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왜곡된 것도 많았지만 제대로 보이는 것 또한 많았다. 죽음은 이 세상의 가치 중에서 최고의 영예를 누리고 있는 모든 소유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돈,돈,돈,돈 하면서 돌아버린 이 세상에서 그것을 비웃을 수 있는 어쩌면 가장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고, 누구나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201쪽

나는 그들을 스케치하다 말고, 문득, 그들은 행복할까 생각했다. 예전 같으면 나는 어두운 뒷골목에서 불 켜진 창문을 바라보는 방랑자처럼 그들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저 창 안으로만 들어가면 행복은 식탁 위에 놓여진 은빛 수저처럼 얌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나 혼자만 벌판으로 쫓겨나 끝이 보이지 않는 밤길을 맨발로 걷는 것 같은 서러움으로 밤마다 뒤척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즈음 나는 어떤 사람도 행복의 나라나 불행의 나라 국경선 안 쪽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모두들 얼마간 행복하고 모두들 얼마간 불행했다. 아니, 이 말은 틀렸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면 얼마간 불행한 사람과 전적으로 불행산 사람 이렇게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종족들을 객관적으로는 도저히 구별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카뮈 식으로 말하자면 행복한 사람들이란 없고 다만, 행복에 관하여 마음이 더, 혹은 덜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뿐인 것이다.-217쪽

결국 그들이 사형수이든 작가이든 어린아이이든 판사이든, 인간에게는 누구나 공통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며 실은, 다정한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한다는 것, 그 이외의 것은 모두가 분노로 뒤틀린 소음에 불과하다는 것.그게 진짜라는 것을.............
-작가의 말-3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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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에 쉼표를 찍다
김정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도서관 정리서가에 있던 것을 우연히 집어들게 되었다.

일단 저자가 완전 미인이다. 책날개에 있는 저자사진, 30대 중반을 넘긴 나이이지만 학부생이라도 해도 될정도의 주름없는 하얀피부..심지어 김태희를 닮은 눈매까지 (서울대 의류학과에는 미인들만 모이는가)

사진 밑으로 달린 저자 설명- 자타가 공인하는 패션 전문가이자 국내 몇 안 되는 패션 칼럼니스트.라고...

쫘라락 ?어봤더니 컬러 도판들이 멋지길래 읽어봤다.  저자의 미모에 홀려서 책을 읽기는 또 처음이네..ㅋㅋㅋㅋ

그리고 별점 2개 만큼 실망했다. 국내 몇 안되는 패션 칼럼니스트가 만든 책이 이 정도인가..

일단 패션에 관한 서적의 한계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너무 깊게 파고들 수가 없다는 거. 패션의 역사에 대해서 줄줄 꿰고 있지 않아도 이쁜고 사고 싶은 옷은 매 시즌마다 백화점에 나오는데. 패션이라는 게 참 그렇다. 일반인들이 '지식'으로서 매력을 느끼기는 쉽지 않은 분야라는 점.. 몇 세기에 어떤 복식 스타일이 유행했고 어쩌구 하는 책에 흥미를 느끼기는 쉽지 않을 터. 패션에 관심이 있다면 차라리 화려한 화보가 가득한 보그나 바자를 집어드는게 더 자연스러울진대...이런 패션관련 서적의 한계를 알고 있고, 어느정도 감안하면서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수준은 형편없었다.라고 할까.  책값은 또 왜이리 비싼가 11000원. 이 얇은 두께에(+재미도 없는데)!! 

책 설명에 있는 저 무수히 많은 챕터들로 짐작할 수 있겠지만 한 주제장 원고량이 짧다. 아주 짧다. 글 간격 크게 띄우고 사진도 넣고 그렇게 해서 2-3페이지 정도의 분량이다. 깊이 들어갈 것도 없고..거기다가 책 표지에는 <교양으로 패션 읽기, 패션으로 영화 읽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 겉보기에는 한 번에 2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듯 번지르르 해보이지만 별 내용없는 책을 읽다보면 혹, 저자가 별로 쓸거리가 없어서 책을 교양과 영화 부분으로 나눈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좀 산만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책으로 만들기 보다는 그냥 신문 한켠에 매주 게재하고 끝냈으면 좋았을 정도의 칼럼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교양으로 영화 읽기> 장은 그닥 나쁘지 않았다. 메트로 섹슈얼이나 청바지의 탄생, 비키니의 탄생등에 관련된 이야기는 너무 잘 알려진 이야기라 별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자전거를 타기 위해 바지가 탄생했고 이가 여성해방운동에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는 꽤 흥미로웠으니 말이다.

문제인 뒷부분인 <패션으로 영화 일기> 부분에서는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책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가 없었다.

영화에 대한 짧막한 소개, 영화에 들어간 의상관련 비용 혹은 의상의 숫자..의상감독의 이름, 영화가 아카데미 의상상을 탔다..이런 '똑같은' 패턴이 이어지고 있다. 내용만 바꾸고 같은 이야기 같은 느낌이다. 화양연화가 나올 땐 내가 좋아하는 영화라 와..하고 기대를 했건만 역시 내가 얻을 수 있었던 건 영화에서 장만옥이 입은 치파오가 27벌이었다는 거, 치파오가 더무 타이트해서 앉은 다음에는 다시 풀로 붙여서 촬영했다는 거 이 정도? 다른 챕터도 마찬가지라서..어느 영화에서는 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용했다..영화 장화 .홍련에서 문근영은 레이스 달린 옷을 입었다 등등 누구라도 영화를 보기만 했다면 알 수 있을 '사실들'만 열거하고 있어서 무척이나 김 빠졌다. 패션.의상관련 학부생들에게 영화와 패션에 관한 레포트를 쓰라고 했더라도 이 정도보단 나았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재미는 있지 않을까) 저자는...너무 많은 걸 쓰고 싶었기에 한 챕터당 원고량을 줄인 걸까? 차라리 영화 하나를 다루더라도 더 알차게 다루는게 나았으리라는게 나의 생각이다. 아무리 '일반' 독자를 의식했다고 하더라도...

리뷰를 쓰면서 그간 패션에 관심을 많이 가졌고 이것 저것 주워들은게 있다보니 책이 더 재미없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상감독 조상경에 관한 부분이라던가 일부 영화의상에 대해서는 이미 이 책에서 말하는 것 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패션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이 보면 오히려 괜찮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양보한다고 해도 이 책의 깊이가 아주 얕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진짜 패션 컬럼을 읽고 싶으면 차라리 보그나 바자를 권하겠다.  번역투의 오버스러운 '보그체'가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김경의 글 정도를 패션 컬럼으로 이해했던 나에게 혹은 그렇게 기대하고 있을 독자들에게 이 책은 너무 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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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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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그 애를 낳았을 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 들어볼래요?
-그래, 말해 보렴
-아마 그 얘기를 들으면 지금 제 기분이 어떤지 아실 거에요. 매사에 왜 지금처럼 느끼는지 말이에요. 글쎄, 아이를 낳은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톰이 도대체 어디 있는지 알 수 가 없는 거에요.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전 완전히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간호사한테 바로 그 애가 아들인지 딸인지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간호사는 딸이라고 했고, 그래서 저는 고개를 돌리고 울었어요. '괜찮아. 딸이라서 좋아. 그리고 이 애가 커서 바보가 되었으면 좋겠어. 계집애라면 그러는 편이 제일 좋으니까. 아름답고 귀여운 바보 말이야.' 하고 혼자서 위로했지요. 제가 모든 걸 끔찍하게 생각한다는 거 아시겠지요.
그녀가 확신을 갖고 말을 이어나갔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는걸요. 가장 진보적인 사람들도 말이에요. 그리고 전 알아요. 안 가본 데가 없고 못 본 것이 없고 안 해본 일이 없거든요
그녀는 조금은 톰을 닮은 듯한 도전적인 태도로 눈을 반짝이며 주위를 둘러보고는 섬뜩한 경멸의 빛을 띠고 웃었다.
-닳고닳은 거에요. 하느님 맙소사. 전 아주 닳고닳은 여자라구요!-32쪽

머틀은 의자를 끌어당겨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느닷없이 더운 입김을 내뿜으며 톰과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기차를 타면 언제나 마지막까지 남는 자리가 있어요. 서로 마주 보는 자리인데, 거기에서 일이 벌어졌지요. 나는 동생과 함께 밤을 보낼 작정으로 뉴욕에 가는 길이었어요. 그이는 신사복을 입고 번쩍이는 에나멜가죽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그가 나를 쳐다볼 때마다 그의 머리 위쪽에 있는 광고를 보는 척했지요. 역에 도착했을 때 그가 바로 내 곁에 있었는데, 흰 와이셔츠 앞가슴으로 내 팔을 누르고 있었어요...그래서 나는 경찰관을 부르겠다고 협박했지만 거짓말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죠. 나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그와 함께 택시를 잡아타고도 지하철을 탄 게 아니란 걸 깨닫지도 못할 정도였어요. 그때 내가 머릿속으로 줄곧 생각한 것은 '그래 너는 영원히 살 수 없어, 너는 영원히 살 수 없어'라는 말이 었어요"-56쪽

"개츠비가 그 집을 산 것은, 데이지가 바로 그 만 건너편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
그렇다면 그 6월 밤에 그가 바라보던 것은 밤하늘의 별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호화롭기만 했던 장막이 걷히고 그의 모습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는 알고 싶어 해요" 조던이 다시 말을 이었다.
",,,,,언젠가 데이지를 집으로 초대하게 되면, 자기도 불러 줄 수 있는지 말이에요"
이토록 겸손한 요청을 듣자 나는 놀라서 몸이 다 떨릴 지경이었다.
그는 오 년을 기다려 저택을 산 다음 우연히 날아드는 나방들한테 별빛을 나눠주었던 것이다. 정작 자신은 언젠가 남의 집 정원에 건너갈 수 있기만을 바라며 말이다.-114쪽

이틀 뒤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 어쩐지 배반당한 것 같은, 그래서 숨이 가빴던 쪽은 개츠비였다. 그녀의 집 현관은 돈을 주고 산 별빛 같은 사치품들로 눈부셨다. 그녀가 그에게로 몸을 돌리고 그가 그녀의 진기하고 아름다운 입술에 키스를 하는 동안 고리버들로 만든 긴 의자가 멋지게 삐걱거렸다. 감기에 걸린 그녀는 전보다도 더 허스키한 목소리를 냈고 더욱 매력이 넘쳤다. 개츠비는 부가 가두어 보호하는 젊음과 신비, 그 많은 옷이 주는 신선함 속에서 그리고 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그녀가 은처럼 안전하고 자랑스럽게 빛을 발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이다.-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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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2 오늘의 일본문학 4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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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인터뷰는 열기가 대단해서 그 큰 목소리가 한참 떨어진 지로 일행의 귀에도 들어왔다
"그 자들이 우타키를 부순다면 나는 그 답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질러주지. 일이 그렇게 되면 죄다 케이티 책임이오. 그만큼 우타키는 우리야에야마 사람들의 정신적 뿌리 같은 것이야!"
무슨 끔찍한 소리를 하는 건가. 이러다가 또 다시 공아닝 들이닥치는 건 아닐가. 리포터 까지 곁에서 아버지를 슬슬 부채질하고 있었다
"우에하라 씨의 삶을 반권력적인'슬로 라이프'의 실천으로 생각해도 될까요?"
"흠. 그렇지 마침 좋은 말을 하시는군.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참된 슬로 라이프요"
분명 이것으로 세무서도 적으로 만들었다.
-204쪽

우익과는 요란하게 한바탕 벌렸다. 가두용 차량을 집 가까이 들이대고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지르겠다니 무슨 망언이냐!"라고 마이크로 꽥꽥거리는 얼룩덜룩한 군복 차림의 아저씨에게 양동이로 물을 퍼부은 것이다,
"대기업 건설사에 빌붙어서 먹고사는 이 우익 놈들! 너희는 야스쿠니를 놓고 떠들 자격이 없어!"
당장 몸으로 들이박는 싸움이 벌어져서 경찰이 달려와 필사적으로 떼어놓았다. 결국 폭력은 쓰지 않겠다는 규칙을 정한 끝에 메스컴이 지켜보는 앞에서 일대 설전을 펼치게 되었는데 무슨 영문인지 삼십여 분 뒤에는 서로 어깨를 두드려 주는 사이가 되었다.
"우에하라씨, 당신은 어떻든 단독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니까 참 대단해"
우익은 마지막에는 그런 말을 남기고 떠났다. 주의나 주장의 차이보다 '폭력적 성향의 연대감'이라는 공감대가 더 컸던 것 같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동질의 인종을 구분해내는구나, 라고 지로는 생각했다.-222쪽

아버지는 말 없이 공안을 쏘아보았다. 잠시 틈을 두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낙원을 추구해. 단지 그것뿐이야"
"허어 낙원이라. 멀쩡한 어른이 그런 걸 믿어?"
"추구하지 않는 놈에게는 어떤 말도 소용없지"-232쪽

"요코, 그런 얼굴 하지마라. 아버지와 엄마는 인간으로서 잘못된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어." 어머니가 배에서 부두로 내려와 누나 앞에 앉아 말했다. "남의 것은 훔치지 않는다, 속이지 않는다, 질투하지 않는다, 위세부리지 않는다, 악에 가담하지 않는다. 그런것들을 나름대로 지키며 살아왔어. 단 한가지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 있다면 그저 이 세상과 맞지 않았던 것뿐이잖니?"
"그게 가장 큰 문제 아냐?"
"아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주 작고 작아. 이 사회는 새로운 역사도 만들지 않고 사람을 구원해주지도 않아. 정의도 아니고 기준도 아니야. 사회란 건 싸우지 않는 사람들을 위안해줄 뿐이야"-287쪽

지로 전에도 말했지만 아버지를 따라하지마라. 아버지는 약간 극단적이거든. 하지만 비겁한 어른은 되지 마. 제 이익으로만 살아가는 그런 사람은 되지 말라고.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해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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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06-12-29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순한 말들인거 같은데 하나하나 다 좋아요.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와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