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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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그 애를 낳았을 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 들어볼래요?
-그래, 말해 보렴
-아마 그 얘기를 들으면 지금 제 기분이 어떤지 아실 거에요. 매사에 왜 지금처럼 느끼는지 말이에요. 글쎄, 아이를 낳은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톰이 도대체 어디 있는지 알 수 가 없는 거에요.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전 완전히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간호사한테 바로 그 애가 아들인지 딸인지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간호사는 딸이라고 했고, 그래서 저는 고개를 돌리고 울었어요. '괜찮아. 딸이라서 좋아. 그리고 이 애가 커서 바보가 되었으면 좋겠어. 계집애라면 그러는 편이 제일 좋으니까. 아름답고 귀여운 바보 말이야.' 하고 혼자서 위로했지요. 제가 모든 걸 끔찍하게 생각한다는 거 아시겠지요.
그녀가 확신을 갖고 말을 이어나갔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는걸요. 가장 진보적인 사람들도 말이에요. 그리고 전 알아요. 안 가본 데가 없고 못 본 것이 없고 안 해본 일이 없거든요
그녀는 조금은 톰을 닮은 듯한 도전적인 태도로 눈을 반짝이며 주위를 둘러보고는 섬뜩한 경멸의 빛을 띠고 웃었다.
-닳고닳은 거에요. 하느님 맙소사. 전 아주 닳고닳은 여자라구요!-32쪽

머틀은 의자를 끌어당겨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느닷없이 더운 입김을 내뿜으며 톰과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기차를 타면 언제나 마지막까지 남는 자리가 있어요. 서로 마주 보는 자리인데, 거기에서 일이 벌어졌지요. 나는 동생과 함께 밤을 보낼 작정으로 뉴욕에 가는 길이었어요. 그이는 신사복을 입고 번쩍이는 에나멜가죽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그가 나를 쳐다볼 때마다 그의 머리 위쪽에 있는 광고를 보는 척했지요. 역에 도착했을 때 그가 바로 내 곁에 있었는데, 흰 와이셔츠 앞가슴으로 내 팔을 누르고 있었어요...그래서 나는 경찰관을 부르겠다고 협박했지만 거짓말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죠. 나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그와 함께 택시를 잡아타고도 지하철을 탄 게 아니란 걸 깨닫지도 못할 정도였어요. 그때 내가 머릿속으로 줄곧 생각한 것은 '그래 너는 영원히 살 수 없어, 너는 영원히 살 수 없어'라는 말이 었어요"-56쪽

"개츠비가 그 집을 산 것은, 데이지가 바로 그 만 건너편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
그렇다면 그 6월 밤에 그가 바라보던 것은 밤하늘의 별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호화롭기만 했던 장막이 걷히고 그의 모습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는 알고 싶어 해요" 조던이 다시 말을 이었다.
",,,,,언젠가 데이지를 집으로 초대하게 되면, 자기도 불러 줄 수 있는지 말이에요"
이토록 겸손한 요청을 듣자 나는 놀라서 몸이 다 떨릴 지경이었다.
그는 오 년을 기다려 저택을 산 다음 우연히 날아드는 나방들한테 별빛을 나눠주었던 것이다. 정작 자신은 언젠가 남의 집 정원에 건너갈 수 있기만을 바라며 말이다.-114쪽

이틀 뒤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 어쩐지 배반당한 것 같은, 그래서 숨이 가빴던 쪽은 개츠비였다. 그녀의 집 현관은 돈을 주고 산 별빛 같은 사치품들로 눈부셨다. 그녀가 그에게로 몸을 돌리고 그가 그녀의 진기하고 아름다운 입술에 키스를 하는 동안 고리버들로 만든 긴 의자가 멋지게 삐걱거렸다. 감기에 걸린 그녀는 전보다도 더 허스키한 목소리를 냈고 더욱 매력이 넘쳤다. 개츠비는 부가 가두어 보호하는 젊음과 신비, 그 많은 옷이 주는 신선함 속에서 그리고 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그녀가 은처럼 안전하고 자랑스럽게 빛을 발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이다.-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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