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은<존재냐 소유냐>에서 두 종류의 인간을 구분한다.
하나는 존재지향의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소유지향의 인간이다.
존재지향의 사람들은 단지 '어떤 것이 있다' 는 사실만으로 놀라움, 기쁨, 행복을 느낀다.
그들은 길가에 피어난 한 송이 꽃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낀다.
그 꽃이 반드시 내 방 안에 꽃혀 있어야 한다거나 내 정원에 피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또 누군가를 사랑해서 그 혹은 그녀와 살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살아야 한다면 그런 조건을 받아 들인다.
그 혹은 그녀가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유지향적인 사람들은 단순히 '어떤 것이 있다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 것이라야 한다.
내가 소유하고 지배하고 군림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럴 수 없는 것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피어 있는 꽃이 아름다우냐 아름답지 않으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 꽃이 내 것이냐 네 것이냐만이 문제일 뿐이다.
누군가가 내 마음에 든다면 잠자리를 하거나 함께 지내거나 결혼을 하거나 어쨋든 내 것으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그래서 소유지향적인 사람들의 마음은 늘 소유와 지배의 욕망으로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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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피아노를 위해 땅을, 에이다를 위해 피아노를, 에이다의 행복을 위해 에이다를 포기한다.
그러나 여기서 베인스가 포기하는 것은 그것들에 대한 소유권뿐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것을 소유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
같은 하늘 아래 어딘가에 그것이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가슴 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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