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 파도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품절


에미,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니 나도 마음이 아프네요. 정말이에요. 컴퓨터 통신이라는 거, 알고 보니 고도의 폭력이었어요. 그게 사람을 빠르게 연결해주는 만큼 빠르게 갈라놓기도 하죠. 우리의 감정 가지고는 그것에 대항할 힘이 없어요. 마음 아프게 해서 미안해요. 그리고 잘 자요. 내 사랑.-91쪽

우리 관계가 계속되어야 하냐고요? 물론이에요. 계속된다면 종착역은 어디냐고요? 그건 모르죠. 그냥 계속되기만 하면 돼요. 당신은 당신 삶을 살고, 나는 내 삶을 살아요. 그리고 나머지를 우리가 같이 살아요.


하지만 그럼 '우리'몫으로 남는 게 별로 없을 텐데요, 에미.


그건 당신에게 달려 있어요. 나는 남겨둔 게 아주 많아요. -114쪽

에미, 내 대답은 이래요. '파멜라랑 나는 잘 어울려요.' 왜냐하면 우리가 조화를 아주 잘 이룬다는 느낌이 드니까요. 우리 관계는 억지스럽지도 복잡하지도 않아요. 우리 둘 중 한 사람이 하고 싶은 걸 해도 그게 다른 한 사람이 원하지 않는 것인 경우는 없어요. 우린 성격이 비슷해요. 두 사람 다 차분하고 신중해요. 서로 마찰을 일으키지도 상대가 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것 이상을 요구하지도 않아요. 상대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죠. 우리는 같은 음악을 좋아하고, 같은 책, 같은 영화, 같은 음식, 같은 그림을 좋아해요. 생각도 같고, 유머 감각도, 아니 유머가 없는 것도 같아요. 간단히 말해 우리는 함게할 수 있고 함께하고 싶어해요. 내가 '잘 어울린다'고 한 건 이런 뜻이었어요. 굿나잇. 에미.-203쪽

그건 그렇고, 이만 나가봐야 해요. 필립이랑 만나서 저녁 먹기로 했거든요.필립이 누구냐구요? 웹디자이너예요. 젊고, 싱글이고, 위트 있고, 나를 흠모해요. 나는 딱히 필립이 내키지는 않지만 필립이 나에게 품은 연정에 끌려요. -228쪽

내 삶의 모토는 비난받아 마땅해요. "되도록 많은(흥미로운)여자들이 나를 마음에 품길!" 이게 내 삶의 모토거든요. (한 가지 얘기해도 될까요. 에미? 나는 흥미롭지 않은 여자도 받아들여요. '되도록 많이'가 중요하기 때문에.)-236쪽

에미, 우리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만남'에서 당신이 기대하는 게 뭐예요? 이 질문이 처음이 아니라는 거 나도 알아요. 하지만 만남을 앞두고 있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이 질문이 떠오르네요. 이번에는 유난히 그래요.


Re:
1) 안티파스티 디 페스체
2) 린기네 알 리모네
3) 하나 코타
4) 그 전과 그사이와 그 후와 그걸 먹는 동안에, 그리고 와인을 마실 때 곁에 있는 레오!
5) 내 맞은편에 시각적으로 존재하고 청각적으로 존재하고 손만 뻗으면 닿도록 가까이에, 무릎과 무릎이 거의 닿을 정도로 가까이에 있는 레오!
-3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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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4-28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는 안써요? 응?

아포지 2010-04-28 15:57   좋아요 0 | URL
아 나...오늘 하루 종일 락방님만 보면 왜 이렇게 웃긴거에요...하하하하... 그나저나 책 재미 있겠네요,

"내 삶의 모토는 비난받아 마땅해요. "되도록 많은(흥미로운)여자들이 나를 마음에 품길!"

대박인걸요? 읽어 보고 싶은데, 영어로 번역이 안되었나 봐요..

LAYLA 2010-04-28 20:51   좋아요 0 | URL
좋은 책 리뷰는 쓰기 힘들단거 아시잖아요^^

LAYLA 2010-04-28 20:52   좋아요 0 | URL
그나저나 다락방님과 apouge님의 댓글은 만담처럼 왜 이렇게 웃기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0-04-28 22:53   좋아요 0 | URL
아! 아직도 알라딘에 새벽 세시와 일곱번째 파도를 읽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니! 내 홍보가 그렇게나 부족했나!! orz
아 뭔가 apouge 님께 이 책을 비행기태워 보내드려야 할 것 같은 이 미친 의무감은...어디서 나오는걸까요 ㅠㅠ

독일 소설이구요, 아직 영어로는 번역되지 않았어요. 미국에 있는 친구가 그래서 참 재미있대요. 주인공은 보스턴으로 날아갔는데 정작 보스턴 사람들은 이 소설을 알 수가 없다면서 말이지요. 하핫.

근데 왜 제가 웃긴가요? 제가 뭘 웃긴말을 했나요? 제가 그러니까 좀 코믹캐릭턴가요? 하핫

LAYLA 2010-04-29 23:12   좋아요 0 | URL
영어로 번역되기 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니 충.격 입니다
그런 선견지명을 가진 에디터는 누구인가요?? 진짜 좋은의미의 충.격에 빠졌어요!!

아포지 2010-05-01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생각보다 그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비교는 못하겠지만, 일단 일본에서 나오는 책들은, 한국이 상당히 번역이 잘 되어 있는 편이죠. 이건 양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류, 가와바타 야스나리, 미시마 유키오, 등의 책들을 영어로 본적이 있는데, 한국어보다 더 번역을 잘 했다는 느낌은 거의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냥 좀 다른 정도죠.

운이 안좋은 경우엔 좀 뭐 거시가 합니다. 유키오의 우국은 아주 좋아하는 작품인데, 영어로 번역된 걸 읽어 보곤, 꽤 실망을 했던 것 같습니다. 문장이 너무 멋대가리가 없었거든요.

더불어 유럽에서 나오는 책들도, 일단 국내에 유행을 타기 시작하면, 신간들은 여기 보다도 더 빨리 나오는 것 같아요.

LAYLA 2010-05-02 20:37   좋아요 0 | URL
한국어랑 일본어는 비슷해서 (어순이나 단어라던지) 그렇지 않을까요? 한국의 하루키 책들 표지가 다 안습이지만 그래도 절대로 영문판을 사고싶진 않더라구요 ㅋㅋ

비로그인 2010-09-27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최근에 너무나 재미있게 본 책 두권이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와 일곱번째 파도에요...
너무 늦게야 이 책의 진가를 알아보고 여기저기 추천하고 빌려주고 있어요.
이성은 아니지만 중학교때 이민을 가서 한국에 없는 친구와 오래도록 편지와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 바고 있기 때문에 남의 일 같지 않은 뭔가 친근한 게 느껴져서 얼마전 친구에게 두 권을 새로 사서 보내주었어요.

그런데 친구가 읽은 후 한 가지 했던 말이... 두 사람이 정말 존대말을 썼을까? 였어요.
독일어에서 한국어로 번역하는 사이에 변화가 아닐까 싶기도 한대요.

전 읽으면서 거슬렸다거나 하지 않았는데요... 그런 말을 얼핏 하더라구요. 그래서 원작을 찾기 시작했는데 정녕 독일어판(원서) 밖에 없나요?

영문판은 없나요? 내친김에 독일어를 공부하고도 싶지만... 그건 능력 밖이라는 생각에 검색하다가 이곳에 들어왔어요. 혹시 정말로 영문판은 없는지 궁금해서요...

짤막짤막한 이메일을 주고 받는 내용이라서 영문판이 있으면 재미있겠다 싶었거든요.

영문판이 정말 없는지 답변 부탁드려요.
 
목요일이었던 남자 - 악몽 펭귄클래식 76
G. K. 체스터튼 지음, 김성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3월
품절


..."정말 그 정도로 현대의 지성과 범죄가 서로 연관이 있다는 말입니까?"
"선생께선 충분히 민주적이지 못하시군요. 우리가 가나한 범죄자들을 잔혹하게 다른다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경찰이 무식하고 비참한 사람들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괴롭혔는가를 보면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일은 아주 다른 겁니다. 우리는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 위험한 범죄인이라는 교만한 영국인의 편견을 거부합니다. 우리는 로마 황제들도, 독살에 능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왕자들도 기억하고 있어요. 위험한 범죄자들은 교육받은 자들이죠. 우리는 오늘날 가장 위험한 범죄자는 철저히 무법적인 현대 철학자라고 생각합니다.오히려 도둑이나 중혼자들이 근본적으로는 도덕적이에요. 그들은 동정의 여지가 있죠. 인간의 근본적인 이상은 수용하는데, 단지 잘못 추구할 뿐이니까요. 도둑들은 재산을 존중합니다. 그걸 너무 존중한 나머지 자기 손안에 넣고 싶어 할 뿐이죠. 하지만 철학자들은 재산을 증오해서 개인의 소유라는 생각 자체를 파괴하려고 해요. 중혼자들은 결혼을 존중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의식적이고 격식을 차리는 중혼의 형식을 따르지 않겠죠.-54쪽

하지만 철학자들은 결혼 자체를 경멸합니다. 또, 살인자들은 인간의 생명을 존중합니다. 단지 자신들보다 덜 중요해 보이는 생명을 희생시킴으로써 생명의 더 큰 충만함을 맛보려는 것뿐이죠. 그런데 철학자들은 생명 그 자체를 증오해서,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자기 생명까지도 증오합니다."
사임은 손뼉을 치며 외쳤다.
"그건 정말 옳은 말씀입니다! 나도 어려서부터 그걸 느꼈지만 그렇게 대립적으로 표현하진 못했어요. 보통 범죄자는 나쁜 사람이긴 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처한 조건을 고려하면 사실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떤 장애물만 제거된다면(돈 많은 삼촌이 있다든가) 이 세상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을 찬양할 사람이죠. 단지 변화를 원할 뿐이지 무정부주의자는 아니란 말입니다. 현 상태가 더 좋아지길 바랄 뿐이지 파괴하려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사악한 철학자는 바꾸려는 게 아니라 아예 없애 버리려 하니 문제일 수밖에요. 오늘날 경찰이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불쌍한 사람들을 감시하기도 해서 불쾌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국가를 배반하는 위험한 사람들이나 교회를 위협하는 이단 주동자들을 처벌하는 더 소중한 역할은 못 하고-55쪽

있죠. 요즘 사람들은 우리가 이단자들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은 처벌할 권리가 있는지 자체가 의문이에요."-56쪽

달도 사람이 존재할 때 비로소 시적일 수 있는 법이다.-60쪽

"그래서 당신은 마치 군중이나 노동자들이 문제인 것처럼 말하는군. 당신은 무정부주의가 발생하면 그게 가난한 사람들 때문이라는, 그 영락없이 바보 같은 생각을 품고 있소? 이유가 뭐요? 가난한 사람들이 반란자가 된 적은 있어도 부정부주의자가 된 적은 결코 없소. 그들은 어느 누구보다 올바른 정부의 통치에 관심이 많소. 가난한 사람들은 진심으로 나라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오. 부자는 그렇지 않지. 부자는 요트를 타고 뉴기니아도 서슴지 않고 갈 거요. 가난한 사람은 부당한 통치에 반대하지만, 부자는 통치받는 것 자체를 반대하오. 남작들의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귀족들이야말로 무정부주의자들이란 말이오."-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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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0-04-25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랄라님.
저는 이 책 서문만 읽고도 읽는게 아까워져서 참고 있어요-_-;

와, 전 스포땜에 밑줄긋기 잘 안읽는데 언제나 랄라님 밑줄긋기는 정독하고 있다능 ㅠㅠ

LAYLA 2010-04-28 02:3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뽀님이 불러주시는 '랄라'라는 호칭, 봄에 어울리게 살랑살랑거리네요 ^^

아포지 2010-04-26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자와 살인자에 대한 코멘트는 아주 동감합니다. 읽어 보고 싶은 소설이네요..

LAYLA 2010-04-28 02:31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선 명성에 비해 알려지지 않은 작가라고 하더군요. 저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어요. 갠적으로 영문판보다 국내판 표지가 더 이뻐요. 그치만 번역이 구리니까 apouge님은 원서로 보셔요..ㅋㅋ ^.^
 
행복의 조건 - 하버드대학교. 인간성장보고서, 그들은 어떻게 오래도록 행복했을까?
조지 E. 베일런트 지음, 이덕남 옮김, 이시형 감수 / 프런티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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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하버드 출신 집단, 천재 여성 집단, 하층계급 출신 집단을 대조군으로 선정하여 각 집단에 속하는 이들의 유년기부터 사망까지의 삶을 관찰.연구한 결과를 담고 있다. 처음에 책을 고를 때는 단순히 '하버드를 나온 사람들의 행복의 기준은 일반인의 행복의 기준과 다를까?'란 호기심에서 시작했지만 서문에서 소개되는 이 광대하고 방대하며 엄숙하기까지 한 연구의 구조와 스케일에 대한 개략적 설명을 접하자 그런 얄팍한 기대따윈 던져버리고 수십년의 연구결과인  이 책을  그 자체로서 소중히 여기고 아끼며 읽어야겠단 마음이 들었다. 좋은 시작이다.  

서술은 주로 케이스를 끌어다 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 행복의 열쇠 중 하나가 '건강'이라면 하버드를 졸업하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다가도 알콜중독에 빠져 비참하게 죽음을 맞은 경우와 어릴 적 부모의 폭력에 노출되어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근면한 태도로 자수성가하고 건강을 챙겨 행복한 노년에 다다른 하층계급출신의 경우를 대조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행복의 조건이라고 하는 것들이 하나씩 소개되긴 하는데 사실 이런 내용이 책의 대부분을 이루기는 하나 행복이라는게 어떤 절대적 공식에 의해 도출되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주관적 안녕'감'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에 여기서 연구의 결과로 제시되는 행복의 조건이란 것들은 '확률'적으로 행복을 가져다 줄 가능성이 높은 조건일뿐이란 소리이다. 당연한 소리이고, 그래서 개인적으로 그냥 흥미롭게 읽어갔을 뿐 행복하려면 이래야 하는거야 저래야 하는거야 얽매이는 마음은 없었다. 그렇게 독자를 압박하는 류의 글도 아니다. 이건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연구결과'니까. 

수십년의 연구결과를 정리해 학문적으로 여러 케이스를 대조하며 행복을 결정짓는 요인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은 비전공자에겐 약간 지루할 수도 있겠다. 예를 들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단 결과가 나온다면 이는 종교가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야 하는걸까? 아니면 행복한 사람들이 종교적 활동을 선호한다고 해석해야 하는걸까? 어마어마한 연구이니만큼(한 학자의 인생을 건 연구이니까) 이런 분석에도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며 이 사례 저 사례 다 끌어다 어떻게든 모든 결론을 담아낼 수 있는 포괄적이고 유연한 결론을 이끌어내려 노력하는데 나같이 비학문적인 독자는 그런 학문적 엄밀성엔 별 관심이 없었고 그런것 보단 노화를 성장의 과정으로서 접근하는 연구자의 태도와 그 증거로서 제시되는 실제로 존재했던 나이가 들수록 더 아름다워졌던 수많은 인생의 궤적들에 폭 빠져버렸다.  

이 책은 사람의 인생을 나무에 비유한다. 죽는 날까지 성장한다는 의미이다. 보통 스무살 정도를 성장의 마침표를 찍는 시기라 보고 그 이후의 인간은 죽음까지 노화해간다고 보는 경우가 많고- 나 역시 거기에 동의했었는데(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 변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스무살 이후의 성장에 대해 회의적이었음) 연구를 통해 인간의 생애를 관찰해보니 사람은 변하더란 말이다. 두터운 책을 읽으며 나에게 다가온 하나의 메세지는 학력, 가족, 흡연유무 등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 사람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거, 그래서 끊임없이 성장의 여지가 있다는 점 그 하나였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경험을 통해 사교적으로 변해가고 타인을 따뜻하게 대하는 방향으로 '성장'한다고 한다. 얼마나 멋진 연구결과인지!  

내 나이가 이 책을 감동적으로 읽는 데 영향을 준 한 요인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올해 한국 나이 스물 다섯인데, 촌스럽게도 아직까지 '이제 너 꺾이는구나'소리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그런 소리에 위축되는 사람은 아닌데 스물다섯이면 이제는 보다 성숙한 나이먹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나이는 되었다고 생각했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고 스물다섯쯤 되면 인생의 방향이 대략 눈앞에 펼쳐질 줄 알았는데 왜 아직도 이렇게 모든게 불분명한 걸까? 젊음이 가지는 아름다움과 에너지에 대해 과도하게 세뇌되어 있던 사고방식이 '이건 아닌거 같다'고 아우성을 쳤다. 정말 젊음이 그렇게 완벽한 것이라면 그 완벽함의 십년 뒤로 노화만을 위한 수십년의 세월은 왜 필요한 거지? 이 책은 우리가 이십대에 육체적으로 가장 근사한 시기를 맞이하고 그 뒤론 노화를 경험하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 노화란 특정 영역에 한정된 것일 뿐, 특정 영역에선 여전히 발달과 성장이 일어나며 때문에 노인이란 쓸모없는 '잉여'가 아니라 보석같은 삶의 지혜를 간직한, 젊은이들과 똑같이 존중받아 마땅한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닌 존재라며 내 물음에 답했다.

개인적으로 노화에 대해 접근하는 그런 새로운 시각이 참 좋았다. 학부생으로서 접하는 사람이 늘 젊은 사람들이다 보니 노화나 노인에 대해서는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할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상당부분 정리가 된 기분이다. 이전에는 추상적으로 '나이'란 아무것도 아니란 정도의 생각을 했었다. 어리지만 누구못지 않은 밝음과 성실함을 가진 스물 둘 어린친구들을 보며 또 나이 거꾸로 먹고 나이 들수록 얼굴만 두꺼워지는 사람들을 보며 나이가 중요한게 아니고 중요한건 인간의 본질이자 삶의 태도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에는 아직도 변함은 없지만 이런 생각은 든다. 성공은 젊을 적에 할 수 있지만 진정한 행복을 찾는 것은 세월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성공한 젊은이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던 많은 고민과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 사랑에 대한 갈구, 존재로서 필연적으로 직면해야만 하는 외로움 등등은 세월이 전제된 성숙에 의해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진정한 행복의 조건은 책에서 이야기하는 고학력, 비흡연 등등 보다도 가장 먼저 세월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세월이 흘러야 그만큼 성숙할 여지도 생기는 거니까. 나도 나이 먹는다고 징징대지 말고 좀 생산적으로 나이들수록 향기로워지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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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조건 - 하버드대학교. 인간성장보고서, 그들은 어떻게 오래도록 행복했을까?
조지 E. 베일런트 지음, 이덕남 옮김, 이시형 감수 / 프런티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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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노인 중에서도 나이가 아주 많은 노인들에게 그 길을 일러달라고 청할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는 50대와 60대의 말을 인용해 왔다. 브라우닝, 셰익스피어, 앞에 언급했던 소설가와 시인은 모두 중년의 나이에 그처럼 위엄있는 어조로 노년에 대해 기록했다. 그들이 무엇을 알았겠는가? 앤서니 피렐리도 겨우 70세였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57세에 노년이라는 에세이를 썼으며 알렉스 콤포트는 56세에 만족스러운 나이를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60세에 노년을 썼다. 그리고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작품으로 키케로가 62세에 쓴 노년에 관하여가 있다. 카울리는 그의 역작 여든에 바라본 세상에서 스스로 노년에 대해 전문가라고 불렀던 이들은 삶이 아니라 문학을 알았을 뿐이라고 지적했다.-52쪽

프랑켈-브룬스위크는 비록 노화를 비관적으로 바라보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관점과 상충되는 기록을 남겨놓았다. 그녀는 "중년을 넘기면서 배우는 연출자가 되고 운동선수는 감독이 되었다. 일반적인 사교활동은 줄어들지만, 이 시기에 봉사활동을 시작하는 이들이 많아진다"라고 기록했다. 개인의 '의무와 소망'에 대한 그녀의 연구 논문에는 "25세에는 소망하는 내용의 92퍼센트가 자기 개인과 관련된 것이지만, 60세의 소망은 자기 개인과 관련해서 29퍼센트, 가족들과 관련해서 32퍼센트, 인류 전체와 관련해서 21퍼센트가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86쪽

건강한 70대 노인들은 20대 젊은이들보다 성숙한 기제들을 자주 이용한다. 프로이트는 "젊어서 창녀가 늙어서 수녀가 된다."라고 말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성적 욕망이 넘치는 젊은 이탈리아 귀족은 나이가 들면서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처럼 이타적으로 바뀐다. 그러므로 짓궂은 장난으로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던 어린아이들의 수동 공격성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저차 다른 사람을 웃음 짓게 만드는 성숙한 유머로 발전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철없는 행동을 일삼는 사춘기 아이들도 모범적이고 성숙한 성인으로 자라날 수 있다. 그러나 성숙을 위해서는 정서의 발달과 수년에 걸친 경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필요하다. 또한 뇌가 생물학적으로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 뇌의 연결경로, 특히 욕망과 이성을 통합하는 연결경로는 40세 이후로도 계속해서 성숙한다.-110쪽

노년에 이르렀을 때 푸근한 유년의 기억이 우리의 친구가 된다- 콘래드-136쪽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개성이 점점 더 뚜렷해진다. 그 현상에 대해 저마다의 기질이 명확해져 가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점점 더 융통성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노년으로 갈수록 완고해지는 것은, 창의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자기에게 맞는 선택을 발전시켜 온 결과다. 소설가 메이 사튼은 70세에 "요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나다워졌다"고 했다. -208쪽

하버드 집단의 경우 자유주의자들은 새로운 사고를 훨씬 더 개방적으로 받아들였고, 젊은이들의 주장이나 취향도 수긍하는 편이었다. 그들은 창조성을 표현하거나, 방어기제로 승화를 이용하거나, 어머니의 교육 수준이 높거나, 본인이 대학원 과정까지 마쳤을 가능성이 높았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재산을 많이 모았거나 운동경기를 더 많이 하는 편이었으며, 실제 생활에서는 물론 필답검사에서도 새로운 것에 대해 훨씬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차이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230쪽

젊음은 아름답지만, 노년은 찬란하다. 젊은이는 불을 보지만, 나이 든 사람은 그 불길 속에서 빛을 본다. -빅토르 위고-255쪽

인생에 세월을 보태지 말고, 세월에 인생을 보태라. -1955년 미국 노년학회 모토-259쪽

물론 나이에 따라 창조적 능력이 조금씩 변해 가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반응속도나 기억력, 숫자감각, 정확성 등은 20세에서 30세 사이에 절정을 이루며, 70세 이후로 급속하게 떨어진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일컬어 '유동성 지능'이라고 하며, 이는 특히 수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편 '결정성 지능'은 비교 구분하고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능력과 어휘력 등을 말한다. 이 능력은 회상이나 기억보다는 사색과 인식 능력에 따라 좌우되며, 60세까지 꾸준히 발전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80세에 이른 사람이 30세와 똑같은 능력을 지닐 수 있다. -328쪽

75세에 이른 하버드 출신자들에게 노년과 지혜는 어떤 연관성이 있느냐고 묻자, 몇몇 사람은 젊은 시절보다 지금이 훨씬 더 지혜로워졌다고 대답하면서 지혜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
모순과 아이러니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과 참을성
감정과 이성의 조화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난 자기인식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능력
균형있는 시각, 삶에 대한 폭넓은 이해, 사물의 양면성에 대한 인식, 인내, 삶의 아이러니에 대한 깊은 이해
주변 사물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
세상과의 연관성 인식-342쪽

종교적 신념들은 대부분 도그마를 수반하지만 영적인 확신은 메타포를 내포한다. 그렇다면 도그마와 메타포의 차이는 무엇인가? 메타포는 자유로이 열려 있고 즐거우나 도그마는 융통서잉 없고 진지하다. 메타포는 비유와 직유로 의미를 전달하지만 도그마는 성경속에 적혀있는 내용 그대로를 전달한다. 메타포는 이론이나 시를 더 풍부하게 하지만 도그마는 토미즘이나 탈무드에 중압감만 더한다. 메타포는 개념화하지만 도그마는 있는 그대로 모셔둘 뿐이다. 메타포는 과학을 진보시키지만 도그마는 과학을 퇴보시킨다. ...다행히도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양한 종교적 전통을 따르는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배운다. 잘 늙어가는 데 필요한 것은 독백이 아니라 대화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76세에 이른 하버드 출신 목사에게 '외설, 노출, 혼전 성관계, 동성애, 포르노에 대한 금기들이 이미 사라졌거나 또는 사라지는 중인데, 이 현상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 질문에 "어느 쪽도 아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행동에 제약을 가해야 하기도 하고, 또 진정한 자아를 깨닫기 위해 무한한 자유가 필요하기도 하다. -354쪽

우리에게는 제약과 자유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 나는 이러한 제약과 자유, 그리고 그 사이의 균형이 문화를 변화시킨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는 자기만의 개인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기품있게 늙어가기 위해서는 모든 비본질적인 것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하며, 대부분의 종교적 차이들은 바로 그 비본질적인 것들에서 생겨난다. -356쪽

건강한 노년을 부르는 일곱가지 요소
1. 비흡연 또는 젊은 시절에 담배를 끊음
2. 적응적 방어기제(성숙한 방어기제): 소소하게 불쾌한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심각한 상황으로 몰아가는 일 없이 긍정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
3. 알코올 중독 경험 없음
4. 알맞은 체중
5. 안정적인 결혼생활
6. 운동
7. 교육년수

-289쪽

일곱가지 방어요소들도 4가지 개인적인 자질이 뒷받침되지 않았더라면 아무 소용이 없었을것이다. 첫 번째 자질은 미래 지향성, 즉 미래를 예견하고 계획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두 번째 자질은 감사와 관용, 즉 컵에 물이 반만 남았다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반이나 차 있다고 여길 줄 아는 능력이다. 세 번째 자질은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 즉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느긋한 태도로 다른 사람을 이해할 줄 아는 능력이다. 네 번째 자질은 세 번째와도 연관성이 깊은 것으로,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준다거나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무엇인가 해주기만 바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어우러져 함께 일을 해나가려고 노력하는 자세다. -4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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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망 너무 사양해 - 행복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꼬마 파리지앵의 마법 같은 한마디
이화열이 쓰고 현비와 함께 그리다 / 궁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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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비: 아빠, 우리 반 사무엘이 그러는데 지구 종말이 오면 자기네 유대인만 살아남는데
아빠: 그래서 뭐라고 했어?
현비: 유대인이 살아남는다면 어째서 그게 지구 종말이냐고 했지. 걔 정말이지 심각해-50쪽

바닷가에는 수많은 조개들이 있고(조개를 여러 개 그렸다)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있고(별을 아홉 개 그려놓았다)
하지만 세상에 엄마는 하나뿐(엄마와 여러개의 하트를 그렸다)-103쪽

단비가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중학생이 되어서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게 안쓰럽다.
"엄마가 뭘 해줄까? 뭘 해주면 단비 기분이 좋아질까?"
일주일째 신발 사 주는 걸 미룬 게 미안했다. 단비는 피곤한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응, 엄마. 그럼 오늘은 꼭 김치 담가"
새끼손가락을 단비 손가락에 걸면서 말했다.
"약속할게"
외국생활 15년이 되었건만 김치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더 강해진다. 다음 날 마르쉐에서 배추를 잔뜩 사다 놓고 남편에게 말했다.
"난 말이지, 김치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아"
남편은 내 말을 듣더니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도 김치 없이는 살 수 없어"
적어도 우리 집안에서는 그렇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포기김치를 담기가 귀찮아서, 그냥 썰어서 나박김치를 담가버릴까 해"
남편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맛은?"
"맛이야 뭐, 다 똑같은 김치 맛이지"
남편이 형사 같은 말투로 말했다.
"포기김치와 나박김치 맛이 다 똑같다면 누가 힘들게 포기김치를 담그겠어?"-128쪽

인간의 불행은 사람들이 집에서 혼자 편안히 있는 방법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 파스칼-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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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0 10: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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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0 23: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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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0 23: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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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0 23: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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