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구판절판


만일 우리들이 일반적 연구의 목적이라고 생각되는 것, 즉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 상태를 본질적으로 영구히 개선시키려고 하는 방법에 대해서 진실로 성의를 가졌다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생활 상태의 본질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어야 한다. 노동력의 공급을 제한하는 것만이 그 가격을 실제로 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그들 자신이 이러한 상품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오직 그들만이 이를 실행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만일 이렇게 한다면 시장에서 노동력이 오히려 부족해지는 사태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 이 대안의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어느 정도 노동력 부족 현상이 생기는 것은 틀림없겠지만, 한 나라의 부와 번영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우려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력 부족을 초래한다는 문제를 가장 불리한 관점에서 본다고 할지라도, 부자들이 언제나 입으로는 실현되기를 희망한다고 공언하던 것이 실제 이루어진다는데, 여기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사소한 불편을 참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 공언에 대해서 진정으로 충실한 태도를 취했다고 할 수 없다. -89쪽

그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자선은 철없는 어린애 같은 장난이 아니면 위선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 인구론 하 160쪽-89쪽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힘든 날들을 참고 견뎌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 되리니.

-푸시킨-93쪽

측은지심은 타인의 고통과 불행을 함께 느끼고 공감하는 능력이다. 맹자는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군주에게는 이것이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제 선왕은 도살장으로 글려가 제물이 될 소를 보고 불쌍하게 생각한 나머지 소를 살려주고 대신 양을 잡으라고 한 일이 있었다. 이 일 때문에 인색하다는 비난과 함께 소는 불쌍하고 양은 불쌍하지 않냐는 비웃음을 샀다. 그런데 맹자는 제 선왕이 눈에 보이는 소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보였기에 통일된 천하의 왕이 될 자질이 있다고 칭찬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백성을 어지 긍휼히 여기겠느냐는 것이다. -126쪽

귀하게 되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귀함을 지니고 있건만 생각하지 않아서 모를 뿐이다. 남이 귀하게 해준 것은 진정 귀한 것이 아니다. 조맹이 귀하게 해준 것은 조맹이 천하게 할 수 있다.

-맹자, 고자 상,17
-131쪽

천하라는 넓은 집인 인仁을 거처로 삼고, 천하의 바른 자리인 예禮에 서며, 천하의 대도인 의義를 실천하며, 뜻을 얻엇을 때는 백성과 함께 그 길을 가고, 그렇지 못하면 홀로 그 길을 간다. 부귀도 나를 흔들 수 없고, 빈천도 나를 바꿀 수 없으며, 위세와 무력도 나를 꺾을 수 없어야, 비로소 대장부라고 하는 것이다.

-맹자, 등문공 하, 12-133쪽

미개인 사회에서 몸이나 마음이 허약한 사람은 곧 제거된다. 그리고 생존하는 사람의 건강 상태는 일반적으로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명화한 우리들은 몸이나 마음이 허약한 사람이 제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대하느이 노력을 기울인다. 우리는 저능한 바보나 병든 사람을 위해 보호시설을 세우구 빈민구제법을 제정한다. 의료인은 모든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최후의 순간까지 최대한의 기술을 발휘한다. ...의지할 데 없는 사람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도움은 주로 본능적인 동정심의 부수적인 결과다... 확실한 이유가 있을 때에도, 우리 본성의 고결한 부분이 악화되지 않는 한 동정심은 저하되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약하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을 의도적으로 무시한다면 어느 정도의 이익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극도의 죄악도 함께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약한 사람들이 생존하고 자신과 똑같은 후손을 퍼뜨리는 것이 틀림없이 나쁜 효과를 미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작용이 계속해서 일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즉 약하고 열등한 사회구성원이 건강한 사람처럼 자유롭게 결혼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다윈-218쪽

유한계급에게는 가치가 가격을 규정하는 게 아니라 가격이 가치를 결정한다.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 목적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용을 얻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지출을 통해 부를 과시하는 것이다. 아름답고 품질은 좋지만 값이 싼 보석은 아무 효용도 주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값이 비싼 것이, 품질과 무관하게, 오로지 비싸다는 이유 때문에 그만큼 가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값이 비쌀수록 수요도 늘어난다. 이것이 소위 '명품의 경제학'이다. 곤란에 빠진 경제학자들은 베블런의 이론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하나의 드문 에외로 치부하여 논리적 파산을 모면했다. 베블런의 이론이 적용되는 상품에는 베블런재라는 이름이 붙었다. (Veblen-goods)-235쪽

문명이 발전하는 가운데 다수의 대중이 겪고 있는 빈곤은, 현인이 추구하고 철인이 찬양했던 혼란과 유혹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다. 의지할 곳 없는 절망적인 빈곤은 인간을 타락시키고 짐승 같은 노예로 만들며 고상한 천성을 얽어매고 섬세한 감성을 무디게 하며, 그 고통 때문에 짐승도 마다할 짓을 하게 만든다. 빈곤은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파괴하고 분쇄하며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함을 박탈하고 노동계급을 저항할 수 없는 무자비한 기계와 같은 힘으로 억누른다. 시간당 2센트를 주고 여자아이들을 고용하는 보스턴의 공장주는 그 아이들을 가련하게 여기겠지만 임금을 더 주지는 못한다. 아이들이 그런 것처럼 그도 경쟁의 법칙에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래가 감정의 지배를 받으면 사업을 제대로 꾸려나갈 수 없다. 그리하여 위로는 노동이 창출한 소득을 아무 대가도 주지 않고 지대로 수취하는 계층에 이르기까지, 중간의 모든 단계를 공급과 수요의 법칙이 지배함으로써, 하층계급을 궁핍의 노예로 억압하는 그 힘에 대해, 마치 바람이나 조수에 대해 그런 것처럼 누구도 대항하거나 항변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원인은 노예제도를 초래했-263쪽

고 또 초래할 수밖에 없는 바로 그것, 만인을 위해 베풀어진 자연의 일부인 토지 독점이다. ...토지 사유는 커다란 맷돌의 아랫돌이다. 물질적 진보는 맷돌의 윗돌이다. 노동 게층은 증가하는 압력을 받으면서 둘 사이에서 갈리고 있다.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264쪽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질은 과거 여러 세대의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자기의 잠재 능력을 발전시켜나가는 데 있다. 현대인도 5000년 전의 조상보다 더 큰 두뇌를 가진 것이 아니며 더뛰어난 선천적 사고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현대인은 여러 세대의 경험에서 배우고 그것을 자기의 경험과 결부시킴으로써 사고의 효율성을 몇 배로 확대하였다. 생물학자들이 부정하는 획득형질의 유전이야말로 사회 진보의 토대인것이다. 역사는 획득된 기술이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됨으로써 이루어지는 진보다.

-E.H.카, 역사란 무엇인가, 163-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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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라이어 -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
말콤 글래드웰 지음, 노정태 옮김, 최인철 감수 / 김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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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100년이 얼마나 미약하고 힘 없는 것인지. 훗날에 `왜`그렇게 살았냐고 온갖 이야기를 가져다 붙일 수 있겠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삶은 그저 운명으로 다가오는거 같다. 머리 굴리지 말고 재미있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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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2-01-26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 굴리지 말고 재미있게 살자"에 백만표~~.^^
 
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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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이데올로기 형성에 관한 역사사회학적 분석. 저널리즘 특유의 전개가 아쉽기는 하나 양적분석이 불가능한 영역에 대한 접근 자체의 한계라고도 볼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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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술꾼 - 임범 에세이
임범 지음 / 자음과모음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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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범의 첫번째 책인 술꾼의 품격을 괜찮게 본 기억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술꾼의 품격보다 이번 책이 더 좋았다. 사실 술 이야기는 술꾼의 품격이 더 각잡고 정식으로 풀어놓는데, 원래 술이 술이라서 마시는게 아니라 취하려고 마시는 거니까. 함께 취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이번 책이 더 술에 가까운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대략 서른명의 술 친구 이야길 담고 있는데, 한 꼭지 서너장 남짓한 글로  한 사람의 인생이며 술에 관한 에피소드를 곶감꿰듯 줄줄이 엮어내는 솜씨가 대단하다. 때론 이런 개인적인 이야길 적어도 되나? 하는 부분도 많이 나온다. 공지영이 첫 이혼하고 잠이 오지 않아 밤마다 술을 마시다 보니 매일 마시게 되었다거나, 김조광수 감독이 남자랑 함께 여관에 있다가 임검에 걸려 경찰들에게 '더러운 놈들' 소리 들은 일이라던가, 그외 지지리 안되는 사업만 하는 이런저런 먹물 친구들 이야기라던가.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전혀 궁상맞거나 지질해보이지 않고 하나하나가 다 단편소설처럼 근사하게 들린다. 그게 술과 세월의 힘인가보다. 이십대는 술마시고 찔러봤자 이놈이나 저놈이나 연애사밖에 나올게 없는데 오십까지 술을 마시면 이혼 ,부도, 실직, 우울증에 이상의 좌절까지 다들 제 나름의 인생소설을 쓰게 되니 말이다. 이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되 무심하게 툭툭 쓰는 임범의 글솜씨는 단연 최고이다.


술을 매개로 만난 사람들을 쓴 글이긴 한데, 만난 사람이 다 임범 또래이다 보니 종내는 술 이야기가 아니라 386이야기가 된 감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런데 그것도 그 나름대로 좋았다. 학교 다닐땐 운동하고, 1-2년 쯤은 감옥에서 살고, 아무 생각없이 졸업하고, 뭐 그래도 그런대로 하고 싶은거 하며 살았고 그런 전형적인 386이야기. 한 학기 휴학만 해도 어떤 스펙으로 그 공백을 메꾸어야 하나 벌벌떨고 감옥은 커녕 평생 공중도덕 위반 스티커 하나 떼여본적 없는 희멀건한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정말 필요한건 술꾼이야기보다 386들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386의 삶이 더 나았다는 게 아니라, 그런 다른 삶도 존재하고 가능했단걸 보여줌으로써 요즘 젊은이들의 창의력을 조금은 자극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인생이 결국엔 술잔 기울이는 일로 귀결된다는 염세론으로 빠지면 어떡하나 조금 걱정은 된다.)


책을 읽다보면 임범이 술이야기 쓰려고 신문사 때려친게 아니라, 영화프로듀서 하려고 때려친거란말이 나온다. 사실 자신도 자신의 인생으로 한편의 소설을 쓰고 있었던거다. 이 책을 보니 그의 영화가 기다려진다. 사람 사랑할 줄 알고 더러운 꼴 험한 꼴 다 본 후에도 냉소하지 않는 사람의 작품이 진짜라고 믿기 때문이다. 기자 그만두고 5년을 기다리고 있다는데 곧 영화로 그를 만날 수 있길 바란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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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1-17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알라딘 서재인들은 새벽같이 잠 못드는군요.
이제 자려는 차에 LAYLA님의 리뷰를 보니 그냥 잘 수가 있겠습니까!

음, 신간추천페이퍼를 쓸 때 이런책은 보지 못하였는데.
그나저나 술이라니, 보았다고 해도 저는 아마 선택하지 않았을 거여요 ㅎㅎ
언넝 주무셔요!
굳밤 :)

LAYLA 2012-01-17 02:48   좋아요 0 | URL
수정하는 사이에 추천이 달려 누군가 하였더니! ㅎㅎ 아직 안자고 머해요 내일 EBS보면서 졸려고! ㅎㅎ 책은 좋았어요. 고등학생인 소이진님한테도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ㅎㅎ 잘자요 굿밤^^

프레이야 2012-01-17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이라님 안녕하세요? ^^
저도 '술꾼의 품격'을 참 재미나게 읽고 임범을 검색해 봤었는데..
그의 영화가 나오면 꽤 근사할 것 같아요.
이 책이 더 재미나다 하시니 얼른 담아가요^^

LAYLA 2012-01-18 02:47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새벽에 갑자기 또 술 마시고 싶네요 'ㅠ' 흐흐흐

라로 2012-01-17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저 이책 당장 담아가요!!
임범도 화이팅!
레이라님도 화이팅!!^^

LAYLA 2012-01-18 02:47   좋아요 0 | URL
나비님 맘에 들었으면 좋겠어요 ^^

마태우스 2012-01-18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네21 광고보고 살까말까 한참 망설였던 책인데요 제가 좋아하는 라일라님이 "글솜씨가 최고"라고 하니 사겠습니다!

LAYLA 2012-01-18 02:4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댓글 꼭 임범님이 봐줬으면 좋겠네요 ㅋㅋㅋㅋㅋㅋ 마태님 칼럼들은 언제 묶여서 나오나요?^^

마태우스 2012-01-18 21:48   좋아요 0 | URL
칼럼은 원래 시의성이 생명이라, 지난 걸 다 모으면 누가 읽긴 할까 싶습니다. 암튼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락방 2012-01-18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야겠어요! 불끈.

LAYLA 2012-01-19 22:46   좋아요 0 | URL
술 이야기인데 당근!!! ^,^
 
내가 만난 술꾼 - 임범 에세이
임범 지음 / 자음과모음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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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면 종교에서 물로 세례를 준다고 하지만, 애에서 어른으로 될 때는 술로 세례를 받는 게 아닌가 싶어요. ...술과의 최초의 접촉이랄까? 그때의 느낌은 대부분 중독성이 있는 것과 처음 접촉할 때 다 그렇듯이 굉장히 어지럽고 황홀하고, 제정신이 아니고, 뭐랄까, 연애를 한다고 할까, 그런 기분...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와 누우면 빙빙 도는 세계, 천장만 도는 게 아니라 우주 전체가 도는 것 같으 는낌이, 이것이 어른들의 삶이구나, 나도 이제 어른이 됐구나..."
-성석제-24쪽

몇 해 전 한겨례신문에 연재된 임재경 회고록에 조건영 이야기가 나온다. 1980년 5월 민주인사들이 붙잡혀가고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한창일 때, 조건영이 광주 사진을 외신에 전해주기 위해 뛰어다녔다는....(조건영은 그 직후에 공안기관에 잡혀가서 심한 고문을 당했다). 그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왜 안 그랬겠나. 당대의 싸움을 피한 이와 마주한 이는 나이 들어 웃는 표정에 온유함의 크기가 다르다. -32쪽

"20대에 연극을 할 때는 연극이 (사람을 치료하는) 약이라고 생각했고, 그 뒤에 상업영화를 할 때는 영화가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술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사색의 여유를 주는) 차와 같은 것을 하고 싶다."

그는 20대 때 연극판에서 술값도 못 벌면서 술은 끊임없이 마셨다고 한다. "한국은 술 인심이 참 좋아!" 제 돈 내고 술 마시기 시작한 게 30대 중반 영화 <약속>에 출연한 이후였단다.

- 정진영-39쪽

1990년대 초중반, 술집 심야영업을 금지할 때였다. 카페 소설 주인 염기정이 자정 넘어 영업하다가 걸렸다. 경찰이 영업 허가증을 들고 갔다. 파출소로 오라고 했다. 그 직후에 차승재가 왔다. 염기정 왈, "허가증 뺏겨서 장사 못 해." 차승재가 앞장섰다. 염기정에게 라면 한 박스를 사라고 했다. 그걸 들고 둘이 함께 파출소로 향했다. 경찰관에게 차승재가 말했다. "제 집사람인데요, 제가 무능해서 술 팔게 하고 있는데..." 차승재는 염기정의 남편이 아니다. 단골손님일 뿐이었다. 차승재와 경찰관 사이에 몇 마디 말이 더 오갔고 경찰관이 딱하다는 듯 허가증을 돌려줬다. 이후 심야영업 단속 나갈 때 염기정의 카페에 미리 연락해 주기까지 했단다. -43쪽

하지만 무슨 일에 앞장서는 건 그의 체질과 거리가 멀다. 배후에서 활약하는 음모가 스타일도 아니다. 학생운동을 했고, 졸업하고 군대 갈 때까지 공자에 위장취업도 했음에도 그는 느긋함과 한량스러움이 몸에 배어 있었다. 5공 때인 1984년 가을, 대학 4학년일 때다. 이런저런 걱정이 많을 시기인데, 그는 졸업 전까지 할 일 세 개를 정했다. 당구, 바둑, 기타. 학생회 사무실에서 바둑 두고 기타 치고... 운동권 후배들의 눈초리가 곱지 않은데 그는 태연히 벽에 낙서를 했다. '마지막 가는 이 가을을 저질러버리자!' 그 무렵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경찰이 학생회관을 수색햇다. 그 장면이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면서 그가 쓴 '....저질러버리자!'라는 글씨를 길게 비추었다. 내 눈에도 과격하게 보였다. 그 저질러버리자는게 당구, 바둑, 기타였음을 알 길이 없는 시청자들에겐 더했을 것이다.
-박덕건-190쪽

내 다른 친구들에 비해 김성수는 확실히 특벽한 데가 있다. 나와 친한 친구 중에 유일하게 이과 출신이다. 난 이게 많은 걸 설명하는 것 같다. 문과 출신들은 대체로, 그중에서도 언론이나 문화 계통에 종사하는 이들은 더욱더 자기 견해, 세계관, 자아 같은 것들에 아집이 있다. 예민한 만큼 자폐적이거나 공격적이기 쉽고, 논쟁적인 만큼 관념적이기도 하다. 아울러 남들과의 차이나 거리를 잘 인정하지 못해서 동지 아니면 적으로 만들고 마는 경향이 있다.
김성수는 그렇지가 않다. 차이나 다름을 잘 인정할 줄 안다. 음식,스피커 등 구체적인 사물에 대해선 까다로울 때가 있지만 생각이나 취향 등 관념적인 것들에 대해선 너그럽다. 언어나 사고도 구체적이고 담백해서, 김성수라면 '고독하다'는 말 대신 '심심하다'라고 말하고, 영혼이 아프네 어쩌네 하는 식의 엄살과도 거리가 먼 스타일이다.-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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