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면 종교에서 물로 세례를 준다고 하지만, 애에서 어른으로 될 때는 술로 세례를 받는 게 아닌가 싶어요. ...술과의 최초의 접촉이랄까? 그때의 느낌은 대부분 중독성이 있는 것과 처음 접촉할 때 다 그렇듯이 굉장히 어지럽고 황홀하고, 제정신이 아니고, 뭐랄까, 연애를 한다고 할까, 그런 기분...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와 누우면 빙빙 도는 세계, 천장만 도는 게 아니라 우주 전체가 도는 것 같으 는낌이, 이것이 어른들의 삶이구나, 나도 이제 어른이 됐구나..." -성석제-24쪽
몇 해 전 한겨례신문에 연재된 임재경 회고록에 조건영 이야기가 나온다. 1980년 5월 민주인사들이 붙잡혀가고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한창일 때, 조건영이 광주 사진을 외신에 전해주기 위해 뛰어다녔다는....(조건영은 그 직후에 공안기관에 잡혀가서 심한 고문을 당했다). 그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왜 안 그랬겠나. 당대의 싸움을 피한 이와 마주한 이는 나이 들어 웃는 표정에 온유함의 크기가 다르다. -32쪽
"20대에 연극을 할 때는 연극이 (사람을 치료하는) 약이라고 생각했고, 그 뒤에 상업영화를 할 때는 영화가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술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사색의 여유를 주는) 차와 같은 것을 하고 싶다."
그는 20대 때 연극판에서 술값도 못 벌면서 술은 끊임없이 마셨다고 한다. "한국은 술 인심이 참 좋아!" 제 돈 내고 술 마시기 시작한 게 30대 중반 영화 <약속>에 출연한 이후였단다.
- 정진영-39쪽
1990년대 초중반, 술집 심야영업을 금지할 때였다. 카페 소설 주인 염기정이 자정 넘어 영업하다가 걸렸다. 경찰이 영업 허가증을 들고 갔다. 파출소로 오라고 했다. 그 직후에 차승재가 왔다. 염기정 왈, "허가증 뺏겨서 장사 못 해." 차승재가 앞장섰다. 염기정에게 라면 한 박스를 사라고 했다. 그걸 들고 둘이 함께 파출소로 향했다. 경찰관에게 차승재가 말했다. "제 집사람인데요, 제가 무능해서 술 팔게 하고 있는데..." 차승재는 염기정의 남편이 아니다. 단골손님일 뿐이었다. 차승재와 경찰관 사이에 몇 마디 말이 더 오갔고 경찰관이 딱하다는 듯 허가증을 돌려줬다. 이후 심야영업 단속 나갈 때 염기정의 카페에 미리 연락해 주기까지 했단다. -43쪽
하지만 무슨 일에 앞장서는 건 그의 체질과 거리가 멀다. 배후에서 활약하는 음모가 스타일도 아니다. 학생운동을 했고, 졸업하고 군대 갈 때까지 공자에 위장취업도 했음에도 그는 느긋함과 한량스러움이 몸에 배어 있었다. 5공 때인 1984년 가을, 대학 4학년일 때다. 이런저런 걱정이 많을 시기인데, 그는 졸업 전까지 할 일 세 개를 정했다. 당구, 바둑, 기타. 학생회 사무실에서 바둑 두고 기타 치고... 운동권 후배들의 눈초리가 곱지 않은데 그는 태연히 벽에 낙서를 했다. '마지막 가는 이 가을을 저질러버리자!' 그 무렵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경찰이 학생회관을 수색햇다. 그 장면이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면서 그가 쓴 '....저질러버리자!'라는 글씨를 길게 비추었다. 내 눈에도 과격하게 보였다. 그 저질러버리자는게 당구, 바둑, 기타였음을 알 길이 없는 시청자들에겐 더했을 것이다. -박덕건-190쪽
내 다른 친구들에 비해 김성수는 확실히 특벽한 데가 있다. 나와 친한 친구 중에 유일하게 이과 출신이다. 난 이게 많은 걸 설명하는 것 같다. 문과 출신들은 대체로, 그중에서도 언론이나 문화 계통에 종사하는 이들은 더욱더 자기 견해, 세계관, 자아 같은 것들에 아집이 있다. 예민한 만큼 자폐적이거나 공격적이기 쉽고, 논쟁적인 만큼 관념적이기도 하다. 아울러 남들과의 차이나 거리를 잘 인정하지 못해서 동지 아니면 적으로 만들고 마는 경향이 있다. 김성수는 그렇지가 않다. 차이나 다름을 잘 인정할 줄 안다. 음식,스피커 등 구체적인 사물에 대해선 까다로울 때가 있지만 생각이나 취향 등 관념적인 것들에 대해선 너그럽다. 언어나 사고도 구체적이고 담백해서, 김성수라면 '고독하다'는 말 대신 '심심하다'라고 말하고, 영혼이 아프네 어쩌네 하는 식의 엄살과도 거리가 먼 스타일이다.-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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