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 230 Days of Diary in America
김동영 지음 / 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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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행을 하며 성욕을 참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너무 섹스가 하고 싶다고. 그래서 창녀를 샀는데 창녀의 젖가슴을 만질 돈은 있고 삽입을 할 만한 돈은 없단다. 그 창녀는 이 작가가 맘에 들었는지 젖가슴 만질 돈으로 삽입까지 하게 해주겠다고 흥정을 하는데, 이 작가는 감성팔이로 먹고 사는 분 답게 '비행기 살 돈으로 너를 사면 나는 여행을 할 수 없어 :)' 하면서 훈훈하게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이 베스트셀러에 쓰여있다.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대충 이런 스토리. 200달러였던가.

-> 다시 책을 읽어보니 공짜로 가슴만 만지고, 손으로 해주는 게 200달러인데 그 돈으로 삽입까지 서비스 해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했다는 이야기. 

어쩌다가 아침 먹은 직후에 저 페이지를 읽어서 진짜 토나올 거 같았다. 결벽증이 아니다. 호스텔에서 뒹구는 무개념 철부지들 보면 그래 니들이 좋을때다, 아주 관대히 보살같은 마음으로 알아서 자리 피해주고 당사자들 좋다면 여행자들 불장난 뭔 문제냐 생각한다. 이 글에서 쏠렸던 건 아무리 곱게 봐 줘도 저 글로는 솔직한 저자라는 호평과 감수성 초크초크하네여...☆라는 감상의 2마리 토끼를 잡기는 역부족이라는 거다. 한 우물을 팠어야지. 존나 꼴려서 아무나 꼬셔서 5분 안에 모텔로 들어갔다는 화끈한 스토리나, 아니면 아예 초식남으로 포지셔닝해서 여행하는 동안 금욕의 생활을 하였다는 서정적인 스토리나..(엘리자베스 길버트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책의 서두에 여행의 목표가 celibate라고 선언한다) 이건 뭐 이도 저도 아니고 독자님 기분만 드럽다. 통 크게 대폭할인 제안하셨던 창녀님은 뭔 죄로 이역만리 타국 언어로 활자화된거임?

꼴리면 하던가. 아예 화끈하게 했다고 쿨싴하게 적을것 아니라면 이런 이야기는 일기장에 적는게 작가와 독자 쌍방 모두에게 좋았을거 같다. 글 적을라고 '너도 떠나보면 알게 될 거야 섹스'로 검색을 해보니 작가의 마초이즘이 이 초크초크 감성 저변에 깔려있어 불편했다는 이가 나 혼자는 아닌듯 하다. 그냥 꼴리면 하는 것이지 굳이 여행=외로움=여자=섹스=창녀(?)  이렇게 흘러가니 어이탱이가 없는 것이다. 아.. 꼴리면. 그냥. 하세요. 외롭다고 핑계대지 말고. 나는 이 마초감성 반댈세..  이제 인세도 많이 받았을테니 다음 책에서는 꼭 200달러를 치른 이야기를 보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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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3-05-08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왓, 정말 LYALA님 최고! (하고픈 이야기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해주시니 마음이 뻥! 뚫리는걸요) 근데 은근 좋게 읽으신 분들도 많아서 말을 잘 못하고 있었거든요.

2013-05-08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3-05-08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라일라님 리뷰 좋다.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5-08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렇군요. 솔직하다거나 쿨하다기보다는 매춘에 대한 인식의 결여가 아닌가 싶습니다. 매춘을 욕망을 위해서는 할 수 있는 짓 정도'로 인식하는 한국 남성 사회의 비뚤어진 근성이 조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 아니겠습니까. 대한민국에서는 남자와 많이 잔 여자는 창녀 취급을 받고
여자랑 많이 잔 남자는 매력 있는 놈 취급을 받고는 하죠..

곰곰생각하는발 2013-05-08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남자입니다만. 참, 부끄러운 걸 모르는 거죠. 성매매'에 대해서 말이죠. 이 말은 거꾸로 한국 사회'가 성 윤리에 둔감하다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저 에피소드'는 사실 솔직한 글이 아니라 성 윤리에 둔감해서 자신이 한 짓이 부끄러운 걸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긴 오류입니다.

LAYLA 2013-05-09 01:4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곰곰생각하는발님
제가 책을 다시 보니 작가가 돈을 내지는 않았네요. 본인은 매춘을 한게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금발여자랑 자는건 모든 아시아 남자의 로망이라는 등 글의 행간을 보았을 때 성윤리 부분에 대한 지적에 공감이 됩니다. 부끄러워야 할 건 매춘 그 자체인데, 매춘에 돈을 지불하고 비행기표를 사지 못하는 자신이 더 부끄러울 것이라니..

라로 2013-05-08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어이탱이!!
암튼 역시 레일라님!!!^^

LAYLA 2013-05-09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다시 보니 가슴 만진 건 공짜였네여. 내 참 만지기까지 하고 돈도 안주다니...

프레이야 2013-05-09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이런 베스트셀러(ㅎㅎ)가 있단 말에요? 처음 보네요.
화끈하고 솔직한 리뷰!!! 짱!!
문득 창녀를 추억한 이국의 늙은 작가가 생각나요.^^

의렬 2013-09-21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우연히 보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댓글을 답니다.

책을 얼마나 진지하게 읽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창녀와 섹스라는 단어만 보고 흥분해서 말도 안되는 리뷰를 남기신 것처럼만 보입니다.
아니면 원 나잇 스탠드라는 자극적인 소제목만 보고 그 부분만 읽으셨거나 아니면 책을 읽고서도 섹스라는 자극적인 부분만 기억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 댓글을 다신 다른 분들도 책을 읽으시긴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원 나잇 스탠드에서 작가가 창녀를 사러간 게 아닙니다.
뉴욕에서 대낮에 길을 가다가 창녀를 마주쳤다고 나옵니다.
작가가 냉큼 창녀의 가슴을 만진 것도 아니라 창녀가 자신을 사라며 작가의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 위에 얹습니다.
'비행기 살 돈으로 너를 사면 나는 여행을 할 수 없어'가 아닙니다.
'내가 만약 너를 살 돈이 있으면 그 돈으로 쿠바에 갈 수 있을텐데'입니다.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작가는 창녀를 살 생각도 없었고 사지도 않았으며, 쿠바행 비행기표도 사지 않았습니다. 작가의 여행과는 전혀 상관없이 동떨어진 것들입니다.

금발여자랑 자는 게 모든 아시아 남자의 로망이라는 것과 성윤리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습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여자가 남자에게 성적인 욕구를 느끼는 자체 만으로 문제가 된다면 전세계 모든 사람이 성범죄자이겠습니다.
금발여자랑 잔다=매춘이라고 떠올리는 편협한 사고야말로 그릇된 성 인식으로 보입니다.

외로움=창녀라니요,
이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외로움이 오로지 여자와 섹스에 대한 이야기입니까?
남자로서 여자의 몸에 대한 그리움도 일부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작가가, 그리고 글을 읽은 저와 제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낀 것은 살아온 모든 익숙한 것을 떠나 나홀로 외딴 땅에 서 있을 때 인간으로서 느끼는 외로움입니다.

멀쩡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게 얼마나 쉬운건지 절감하고 갑니다.
부디 책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읽어보십시오.
만약 그러고서도 책에서의 외로움이 오직 섹스에 대한 갈망으로만 느껴지신다면 LAYLA님께는 감성의 큰 부분이 고장난 것일지도 모릅니다.

변상화 2013-10-25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이 글 리뷰에서 하는 얘기가 ㅅㅅ에 관한 얘기를 그리 강하게 까는데에 놀랐

고 공감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데에 놀랐고(이 책에서 이부분은 아주 잠깐 나왔고,

그보다 더 좋은, 할 얘기들이 많았을텐데) 대댓에 저렇게 말하는 것이 막말인지 시

원하고 용기있게 말하는 건지 구분못하고 칭찬하는데에 놀라네요. 여튼 사람들 생

각이 참 다양한거 같습니다.

LAYLA 2013-10-26 14:47   좋아요 0 | URL
막말인지 비판적 리뷰인지는 이 책과 리뷰를 보는 분들이 판단하시는 거겠죠.

그리고 저 또한, 이 책에는 더 좋은 , 할 얘기들이 많기 때문에 제가 문제의식을 느끼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었냐는 지적에 대해서 많이 놀랍습니다. 저는 지금도 매춘을 소재로 삼아 자신의 감수성을 증명하려 한 글에 대해서는 저것 이외의 평가를 할 수가 없네요. 여튼 사람들 생각이 참 다양한거 같습니다.
 
도련님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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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은 소세키와 달리 아주 재기발랄한 문체라 뜻밖이었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소세키의 천재성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소세키의 주인공이라 하면, 아는 것이 많아 슬픈 존재들이었는데 도련님의 주인공인 '도련님'은 명민하고 쿨싘한 청년이지만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만 생각할 뿐 그것을 자의식으로 연결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저급하고 비열한 세상사에 대해 거리를 두고 관조하는 이전의 주인공들과 달리 부조리에 쉽게 흥분하고 발끈하고 주먹을 날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언뜻, 고상하고 세련된 이전의 주인공들에 비해 띨띨해 보이기도 하는데 바로 그 모습을 잘 포착하여 살아있는 목소리로. 하나의 허점도 없이 일백 퍼센트의 설득력으로 그려내는 소세키의 필력이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다. 똑똑한 척보다 더 어려운게 덜 떨어진 척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더 그렇다. 이런 소세키느님 같은 조상을 둔 나라에서 오쿠다 히데오, 가네시로 가즈키, 야마다 에이미 등 통통 튀는 작가들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 소설의 구성이나 형식으로서도 21세기의 소설과 비교하여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모던함을 보여준다. 도련님과 도련님의 하녀 '기요'의 관계는 소설 초반과 후반부에만 집중적으로 묘사되지만 그 둘의 관계가 자아내는 애틋한 분위기가 소설 전반에 자리잡고 있는 점, 어찌보면 도련님의 좌충우돌 사회생활기와 기요와의 관계는 전혀 동떨어진 소재임에도 그 두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전혀 이질감없이 한 편의 이야기로 엮이고, 마지막에 이르러 고작 한 두 문단으로 깔끔하게 맺어지는 결말(그러면서도 독자의 가슴은 울리는...)까지 개인적으로는 그 구성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역시 소세키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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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3-04-30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소세키의 단편이 그렇게나 훌륭하다고 여깁니다.
역시 소세키님이죠. :)

LAYLA 2013-05-03 06:47   좋아요 0 | URL
이북으로만 봐야 하니 선택의 폭이 넓지는 않습니다. 한국가면 종이책으로 단편까지 보고 싶네요

네꼬 2013-05-02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세키느님. ㅎㅎ 저도 읽어보겠어요. 한 작가 따라읽기 재밌는 것 같아요. 저도 요새 동화를 그러고 있습니다. (시간도 많고~)

LAYLA 2013-05-03 06:48   좋아요 0 | URL
따라읽기는 재미있지만 보통의 경우 처음 본 작품보다 뛰어난 작품을 발견하기는 어렵더라구요 ㅎㅎ
 
도련님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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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색이 희고 멋쟁이 머리 모양을 한 키가 큰 젊은 여자와 마흔 중반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란히 매표소 앞에 서 있다. 나는 미인이 어떻게 생겼네 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뭐라 할 수 없었으나 정말 미인이었다. 뭐냐, 수정 구슬을 향수로 데워서 손에 쥐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198쪽

그 후 어떤 사람의 소개로 철도회사의 기수로 취직했다. 월급은 25엔이고 다달이 내는 방값은 6엔이었다. 기요는 으리으리한 대궐 같은 집은 아니지만 나와 같이 지내면서 항상 "좋아요, 기뻐요" 하다가 올 2월 폐렴으로 죽었다.

죽기 전날, 나를 불러서 "도련님 부탁이 있는데요, 내가 죽으면 도련님 다니시는 절에다 묻어주세요. 무덤 속에서 도련님 오시길 기다리면 좋겠어요" 했다. 그래서 기요의 묘는 고비나타에 있는 요겐지에 있다.-334쪽

왼편으로 돌아 혈탑 문으로 들어간다. 옛날 장미전쟁 때 많은 사람들을 잡아 가둔 곳이 바로 이곳이다. 풀을 베듯 사람의 목을 치고, 닭처럼 사람을 쪼아대고, 명태 말리듯 시체를 쌓아두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혈탑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무리는 아니다.-429쪽

자신의 눈앞에 자신이 죽는 순간을 떠올릴 수 있는 자는 행복하다. 매일 낮, 매일 밤 죽음을 기원하라. 마침내 주님의 부르심을 받게 될 내가 무엇을 두려워 하리.

...아침이 되면 밤이 오기 전에 죽는다 생각하고, 밤이 되면 내일이 오지 않기를 기도하라. 마주 보지 못하는 죽음보다 더한 치욕은 없으리니...-4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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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쓰메 소세키 지음, 이지선 옮김 / 책만드는집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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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무릎을 끓은 기억이 있으면 훗날 상대의 머리 위에 다리를 올려놓으려 들기 마련이야. 난 그런 수모를 겪느니 차라리 지금 받는 존경을 사양하고 싶네. 지금보다 더 비참한 미래를 감내하느니 차라리 외로운 현재를 견디는 게 나아. 우리가 태어난 시대는 자유와 자립 그리고 자아를 마음껏 향유할 수 있지만 그 대가로 쓰디쓴 외로움을 견뎌야 하지.-82쪽

논쟁이라면 질색이에요. 남자들은 걸핏하면 논쟁이지요. 그것도 아주 재미있다는 듯이. 내 눈에는 빈 술잔을 지치지도 않고 주고받는 사람들처럼 공허하게 보인답니다.-92쪽

누구라도 대학에 첫발을 내디딜 때는 위대한 포부를 가슴에 안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만 한 해 두 해 시간이 지나고 졸업이 가까워지면 자신의 자취를 뒤돌아보고 실망하곤 하지.-395쪽

신체든 정신이든 인간의 모든 능력은 외부의 자극으로 인해 발달하기도 하고 파괴도기도 하지. 하지만 불필요하게 자극의 강도를 높이다가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는데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도 이를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의사의 말에 의하면 인간의 위장만큼 약삭빠른 것도 없다고 하네. 부드러운 음식만 먹으면 그 이상 딱딱한 음식을 소화하지 못한다고 하거든. 따라서 무엇이든 가리지 말고 먹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네. 그러나 이는 그저 익숙해진다는 이야기가 아니야. 자극의 강도를 높임으로써 저항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을 의미하지. 만약 강한 자극 때문에 위장 자체의 기능이 약해진다면 그 자극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K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이런 부분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네. 단지 고통에 익숙해지면 그만이라고 단정해버린 것이지. 아픔을 반복해서 견디다 보면 그 공덕으로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온다고 굳게 믿었다네. -403쪽

나는 K 몰래 부인과 딸에게 K에게 자주 말을 걸어달라고 부탁했네. K를 지배해온 침묵이 그를 병들게 했다고 생각했지. 철을 쓰지 않고 방치하면 녹슬듯이 그의 마음에도 잔뜩 녹이 슨 것 같았네. -405쪽

...K가 들어온 후로는 딸이 k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지. 만일 딸의 마음이 K에게 기울었다면 내 사랑은 입에 올릴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네.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게 싫어서라든가 그런 이야기가 아닐세. 나 혼자 아무리 좋아해도 상대의 마음이 온통 다른 사람에게 향해 있다면 나는 그런 여자와 맺어지고 싶지 않았네. 세상에는 상대의 생각이야 어찌 됐든 자기 마음대로 여자를 맞아들이고 만족해하는 남자도 있다지만, 그런 사람은 나보다 더 세상 이치에 어둡거나 그게 아니면 어지간히 사랑의 심리를 모르는 둔감한 경우라고 치부했네. 일단 결혼만 하면 그럭저럭 살아가기 마련이라는 사람드르이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내 가슴은 뜨거웠다네. 다시 말해 나는 지극히 고매한 사랑의 이론가였던 것이지. 동시에 가장 빈곤한 사랑의 실천가였네. -4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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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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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시절에 도련님이나 고양이로소이다는 왠지 구태의연해보여 읽지 않았는데 우연히 알지도 못했던 '그 후'를 읽고서 소세키에게 완전히 압도되어 버렸다. 신처럼 모시는 작가라면 김승옥과 존 파울즈 정도인데 이제 나쓰메 소세키까지 삼(三)신으로 모셔야 할 듯. 그 중에서도 서열을 정하자면 김승옥은 나쓰메 소세키의 문장으로 발을 적시고 필력을 키운 아들신 쯤으로. 김승옥을 읽을 때면 60년대에 이 모던함은 무엇이냐며 어찌 20대 남자가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글을 썼을까, 도저히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며 흥분했었는데 나쓰메 소세키는 1907년에 이런 문장을 쓴다. 


...다이스케는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속으로 서로를 모욕하지 않고서는 감히 서로에게 접촉할 수 없는 현대 사회의 양상을 20세기의 타락이라 부르고 있었다.


...세이타로는 올봄부터 중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키가 커진 것 같았다. 이제 한 두 해가 지나면 목소리도 변할 것이다. 그리고 그 후로 어떤 경로를 거쳐서 성장할지 모르지만, 어차피 하나의 인간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될 운명에 봉착할 것이 틀림없다. 그때 그는 조용히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차림을 하고 거지처럼 뭔가를 찾으면서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를 서성일 것이다. 


이 소설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소세키 특유의 고뇌하는 지식인이 사랑을 한다면 그 사랑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서사이다. 빈틈없는 사고력과 예민한 감수성, 그에 걸맞는 날선 신경까지 갖춘 주인공 다이스케는 생계를 위한 노동은 저열하다는 인식에 기반하여 '감자를 다이아몬드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순간 인간은 끝장'이라 믿는 부잣집 도련님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에 꽤 자신이 있기에 서른이 되도록 직업을 구하지 않고 아버지와 형님으로부터 용돈을 받아쓰며 자신의 고상한 생활을 이어 나간다. 그러던 중 친구의 아내이자 지금은 죽은 옛 친구의 여동생인 미치요에게 마음이 끌리면서 그의 확고하던 세상과 한량질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나에겐 세상 최고의 사랑이야기. 평론가들은 지식인의 내면이 어쩌구 운운 하지만 정확히 말해서 이건 단순한 지식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식인의 러브 스토리'이다. 물론 일반적인 로맨스와는 구조도 흐름도 다르지만 바로 그렇게 '지식인'의 '러브 스토리'로 두 축에 힘을 적절히 나누어 싣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리는 힘이 바로 소세키의 천재성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보고나니 제인 오스틴 류의 연애담은 미개인과 원시인의 이야기로 느껴질 뿐. 이 책에는 달달한 고백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까지 기승전결 독자의 가슴을 지지고 볶는 장치도 전혀 없다. 단지 사랑의 열정을 식히려 수반에 물을 붓고 불안을 잠재우려 정원에 꽃을 흩뿌리고 예민한 신경을 누그러뜨리려 배갯잎에 고급 향수를 뿌리는 다이스케의 서성거림이 있을 뿐. 


다이스케와 같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면 나는 식당 도우미로 일해서 그를 먹여 살리는 가시밭길 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평균적인 삶을 보장하는 봉급봉투를 매달 가져다 주는 보통남자 100명의 사랑을 받기보다는 다이스케 같은 남자 단 한 명의 사랑을 받고싶다. 그는 한량질을 하던 그 모습과 그 논리 그대로 사랑꾼으로 변모하여 자기 스스로의 알을 깨고 세상으로 걸어나온다. 그에게 전혀 모순은 없었다. 그렇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것은 러브 스토리. 지식인의 러브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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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6 0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27 0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27 0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27 1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13-04-26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꾼, 좋죠. 역시 다이스케와 같은 남자는 하늘의 별 따기와 비슷한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LAYLA 2013-04-27 00:40   좋아요 0 | URL
미치요 같은 여자가 되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슬픔을 머금은 촉촉한 눈망울??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