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다’에서 ‘팔리다’로 - 미즈노 마나부의 브랜딩 디자인 강의
미즈노 마나부 지음, 오연정 옮김 / 이콘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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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풍조가 있습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솔루션이라 일컫는 해결책이 중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진짜로 필요한 것은 문제를 찾아내는 능력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엇이 문제인지가 분명해지면, 사람이 모여 지혜를 짜내는 것으로 대부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시대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찾아내는 쪽이 어렵습니다.

..회사 안팎의 브랜딩을 철저히 관리하면서 상품에 달린 태그를 시작으로 회사용 봉투나 배송용 골판지 상자까지도 새로 디자인하였습니다. 상품 태그나 봉투는 그렇다 쳐도, 골판지 상자는 기본적으로 상점과 본사 창고를 이어주는 유통 외에는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흔히 있는 무지의 갈색 상자를 사용해도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인한 이유는

첫째, 상점 등의 뒤뜰에 놓아둔 상자가 우연히 고객 눈에 띄었을 때도 좋은 이미지를 주기 때문입니다.

둘째, 한 사람의 인품과 함께, 살짝 엿보았던 옆얼굴에 따라서도 인상이 좌우됩니다. 그것은 점포든 기업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기업 브랜딩은 실제로 직원의 동기부여를 향상하는 효과로도 이어집니다. 근사한 브랜드에서 일한다면 좀더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아름답거나 생김새가 멋져야만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기업이나 사업의 목적을 완수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고, 대의에 충실해야만 합니다. 그 목적과 대의를 정확히 반영하기 위해서도, 경영자와 브랜딩을 직접 다루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나 아트디렉터는 대등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관계인 것이 좋습니다. 또는 경영과 디자인의 거리감이 가까운 것이 좋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리는 부분은 산출물의 완성도를 올리는 프로세스입니다. 예를 들면 로고 타입을 한 글자씩 정성껏 만든다든가, 포스터에 사용하는 파란색의 색조를 어떻게 할지라든가 하는 거런 것에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광고를 포함한 기업 커뮤니케이션 제작을 거들 때 저는 반드시 의인화를 사용합니다. 기업이 만약 사람이라면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생각되는 것이 좋을까,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가를 상당히 초기 단계에서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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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를 기르는 법 1
김정연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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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사는 동안에 뭔가를 이뤄볼 수 있을까요? 명망을 얻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대문호 헤밍웨이는 거대한 덩치와 마초적 이미지와는 달리 음경이 매우 왜소했단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것이 시간과 세계를 가로질러 서울에 사는 먼지 같은 저에게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해보면...정말로 엄청난 것이죠. 나도 뭔가를 이루면 내 가슴 같은 것도 쿠바까지 갈까?

세상에는 많은 소재들이 있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 역시 콘크리트입니다. 콘크리트 벽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왠지 회화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람이 아닌 사물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오브젝트 섹슈얼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제가 그렇단 말은 아니지만, 콘크리트보다 못한 사람을 몇명 알고 있기는 하죠.

시간을 의식하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고, 그만큼 여러가지 기준들이 있어왔습니다. 삶에 단위를 매기는 것은, 자신을 운용하는 톱니바퀴를 하나 품고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월드컵을 주기로 하는 4년짜리 피파력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4년마다 나름의 중대한 결정들을 해왔습니다. 크게 흔들거나, 관두거나, 시도하기에 3년은 짧고, 5년은 길기 때문이죠. 월드컵 기간 동안에는 앞으로의 4년을 계획하며 축구만 봅니다. 그래서 새벽 경기도 전혀 무리가 없죠. 제 인생은 과연 월드컵 몇개짜리일까요. 한번쯤은 제 슛도 먹혀야 할 텐데요.

일년에 한번씩, 나이는 저를 잊는 법이 없습니다. 초를 켰던 저와, 끄는 저는 어디가 어떻게 다르면 되는 걸까요. 분명 시간이 흐르면서 축적된 것들도 있을 테지만...그만큼 무너지거나 망가지는 것들도 생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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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함께라면 말이야 - 1년차 새내기 남편 오상진의 일기
오상진 지음 / 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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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너무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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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5-19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 왜요 ㅋㅋㅋㅋㅋㅋ 전 아마도 라일라님이 별 하나 준 이유가 짐작 되어 읽고 싶지 않은 거겠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8-05-20 0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일 따위를 삶의 보람으로 삼지 마라 - 나답게 살기 위해 일과 거리두기
이즈미야 간지 지음, 김윤경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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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삶의 방향성이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요즘 세대들을 타겟으로 하는 일반적인 정신승리류의 에세이에 비해서 상당히 진지한 책이기는 하다. 저자는 정신과 의사로 시니시즘에 젖은 많은 청년세대를 치료한 경험이 있으며, 이 문제의 원인에 대해 병리적 접근을 벗어나 사회경제적인 원인을 찾아나선다. 사실 여기까지는 상당히 독창적이고 사고의 흐름에 있어 탁월하다고 할만하다. 


저자는 경제성장이 고도화되어 성장률이 둔화되고 노동이 분절화되어 파편화된 현재의 상황에서는 이전세대가 추구하였던 '직업적 자아실현'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진단한다. 또한 젊은 세대들은 이런 현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에 '도전'이라던가 '패기' 가 젊은 세대의 미덕으로 간주되던 이전의 패러다임을 거부하고,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 아주 어린 나이부터 고민하기 시작한다고 설명한다.쉽게 말하자면, 어짜피 아둥바둥 일해봐야 40대 50대에 명퇴하고 별거없는 인생인데 왜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을 십대부터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노동은 선이고 노동이 미덕이며,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이 최고선이라는 종교적.자본주의적 가치관이 전세계를 장악하고 있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답이 없는 고민 '어짜피 뻔한 인생인데 무슨 일을 해야 좋을까?'를 하는 것이고 이러한 쳇바퀴 모순 속에 많은 젊은이들이 무기력과 우울함에 사로잡힌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진단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그가 해결으로 제시하는 대안은 문제를 제기한 구조적/사회적 요인과 무관하게 개인 수준의 자발적 실천이라는 점이다. 그는 많은 성인들이 행동을 하기 전 본능적으로 행위의 경제적 득실을 따지며 가장 효율적인 선택만을 내리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이 재미가 없다고 말한다. 때로는 우연에 몸을 맡기고, 인생에 의미가 있는가 없는가를 고민하지 말고 내 스스로 인생에 의미를 둘 것인가 말 것인가 결정하는 주체가 되라 말한다. 이런 종류의 제안이 그리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지만. 거창했던 문제제기에 비해 용두사미격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또한 학문적으로 보자면, 원인을 구조로 상정하면 해결책 또한 그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동등한 수준에서 제안해야 의미가 있다. 문제는 구조인데 해결은 마음으로 하라니. 이건 무슨 소리인가. 


저자가 쓴 건 논문이 아니라 교양서라고 감안해서 이해를 해준다 할지라도, 최소한 자신이 자부하는 환자들의 치료 케이스들이라도 몇 가지 예를 들어 주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진단까지는 꽤 흥미로웠다. 이전에는 40대 이상이 하던 고민이 저연령화되어 이제는 십대부터 시작한다는 부분은 특히 좋았다. 이런 부분은 정신과 의사가 전문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부분이리라. 하지만 앞서 말한 부분들에서 남은 아쉬움은 어쩔 수 없으며, 이런 부분을 더 보완한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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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8-04-16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해결방법을 제기하는 책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쉬운 건 아니지만 어쨌든 대다수의 책들이 문제제기나 파악을 하는 정도까지는 잘 나가는데 그 다음 부분은 좀 많이 부족한 듯..

LAYLA 2018-04-16 00:53   좋아요 1 | URL
마르크스 같은 사람이 쉽게 나올수는 없겠지요. 이 저자는 열정은 넘치는데 의학도라 그런지 이런 종류의 논의를 탄탄하게 이어나가는 부분은 취약하다 싶더라구요. 마르크스 이야기가 나온 김에...저자는 마르크스의 분석에서 노동이 분업화된다는 부분은 차용하고 또 한 편으로는 마르크스 때문에 현대인들이 모든 행위에서 잉여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따지기 때문에 문제라고 하는데... 사석에서 하면 그럴듯한 말 같으나 이렇게 책으로 엮어두니 논리성이나 과학성은 무척이나 취약하다 싶네요. 최근 미국에서 나오는 조기은퇴하라, 하루 4시간만 일하라는 류의 책도 현실성이 떨어질거 같다는 인상인데 시간이 되면 읽어볼까 해요.

transient-guest 2018-04-17 0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 4시간 일하고 어쩌고는 제가 예전에 읽은 책 같습니다. 처음엔 혹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면 ‘나‘는 4시간 일하고 나머지는 노는 걸 설파하는 저자의 여가시간을 받쳐주는 건 또 다른 이들의 노동이더라구요. 뭔가 진리를 찾은 양 떠들지만 아직은 타인의 노동을 원동력으로 삼거나 아이템을 잘 잡은 무역중개의 경우가 아니면 먹고 사는데 필요한 만큼을 벌기 위해서는 여전히 8-10시간 이상의 노동이 요구되는 것 같습니다.ㅎㅎ
 
왕가위 - 영화에 매혹되는 순간
왕가위.존 파워스 지음, 성문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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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영화마다 꼭 되돌아오는 빠져나갈 수 없는 ‘사랑의 갈망‘, 더 심오하게는 ‘사랑의 상실‘이란 주제를 이때부터 추구하고 있었다. 왕가위 버전의 사랑의 갈망과 상실의 세상은 높친 기회, 부재중 연락, 지나치는 야간 지하철로 이루어진 우주다. 젊든 늙었든, 결혼했든 미혼이든,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그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레너드 코헨의 노래 가사 ‘사랑에는 치료제가 없다‘는 게 사실임을 깨닫는다. ...이 주제에 집착하는 왕가위를 보고, 그가 몸소 사랑의 고통을 겪었기에 그런 작품이 나오는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허나 현실의 왕가위는 그의 아내 에스터와 행복한 결혼생활 중이고 최근 버클리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 과학도로 진학한 아들 칭도 두었다. 부부는 카오룽의 한 가게에서 청바지 판매원으로 만난 이후 쭉 함께였다. 당시 그는 19세 그녀는 17세. 거의 40년의 세월을 함께한 셈이다. 언젠가 내가 물었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어째서 불행한 사랑 이야기만 만드는 겁니까? 당신 사랑은 안 그러면서."

그가 잠시 생각한다. 그러다 마침내 대답한다.

"내 사랑이 안 그래서일지도 모르죠. 살아보지 못한 인생을 생각하는 게 훨씬 재밌잖아요. 실컷 상상할 수 있으니까."

왕가위처럼 장숙평도 상서로운 우연과 마술적 사고에 엄청난 믿음을 갖고 있다. ‘간절히 생각하면 바라던 게 결국은 찾아온다‘고 그는 주장한다.

"정말 옵니다. 아비정전때 옛날식 냉장고를 찾아다녔는데 정말 찾기 어려운 모델이었거든요. 그런데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했더니 우리 비서가 하나를 찾아냈어요 뭐든 마음속에 있다면 언젠가는 찾아오게 돼 있습니다. 해피 투게더 때는 아르헨티나에서 크리스와 함께 폭포를 촬영하러 갔는데 그 당시 폭포수가 정말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찍은 걸 보여줬더니 환상적이라며 다들 만족해했죠. 나중에 왕가위가 폭포를 한 번 더 찍어왔으면 좋겠다고 해서 다시 갔더니 그때는 물이 거의 없었어요. 알고 보니 우리가 처음 폭포를 찍었을 때 그전 일주일 동안 계속 비가 왔다더군요. 그런 환상적인 장면을 얻은 건 순전히 운이 좋았던 거죠. 왕가위와 나는 항상 이 말을 믿어요. "받아들여라, 그럼 올 것이다."

중경삼림이 제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라는 말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근데 저 말만 하면 감독님은 어쩐지 불쾌해하는 것 같더라고요.

아뇨, 안 그런데?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서 혹시 후다닥 만든 작품이라 그러시나 하고.

글쎄요 전 그런 느낌 없는데. 사람들이 보통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를 말할 때 저는 그게 영화보다 말하는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걸 말해준다고 봐서(웃음)

우리가 알고 있는 화양연화의 아이디어 전체가(양조위의 캐릭터가 특히) 칸 영화제에 늦을 거 같단 이유로 180도 바뀌었다는 게 저는 살짝 불편한데요.

하지만 그런 일은 늘상 일어나는 걸요. 누구든 영화를 만들면 스토리가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일이 진행되는 내내 선택지가 나타납니다. 이 인물은 이걸 할 건가 아님 저걸 할 건가? 그리고 그런 선택 하나하나가 나중에 더 많은 다른 선택으로 이어지고요. 가능성은 끝도 없이 불어납니다. 그중 몇 가지를 시도해보죠. 하지만 가능성 하나한마다 가격표가 붙어 있고, "한번 해보자"는 말만큼 이 업계에서 비싼 말도 없습니다. 최종적으로 손에 남는 건 지금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그러나 원했던 게 아닐 수도 있는 한 편의 영화인 거죠. 영화를 만든다는 게 사람들에게 당신이 가진 담배를 깊이 들이마셔보라며 내미는 행위와 비슷합니다. 그렇게 들이마신 부분이 화면에 담긴 것들이죠. 나머진 그냥 재일 뿐입니다.

평범한 일반인을 찍을 때조차도, 감독님은 그들에게 빛을 부여해서 그들이 실제보다 훨씬 잘나 보입니다.

저는 제 영화 속 인물들을 좋아합니다. 자기 영화 속인물들을 좋아하면 그들을 보는 시각도 다정해지죠. 저는 영화를 보면 감독이 그 영화 속 배우를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보입니다. 다 드러나요. 턱이 두 겹으로 찍히고 조명을 못 받고 그런 게 아니라, 그보다 훨씬 포괄적인 어떤 것입니다. 즉, 다정함이 없다는 것. 저는 캐릭터들과 함께 있고 싶지 그들 위에 군림하고 싶진 않아요.

그 말씀인즉, 아름다움을 잘 포착하는 실력은 애정에서 우러나온다?

영화 속 아름다움은 시각적으로 어떻게 보이느냐 이상의 문젭니다. 좋은 영화는 보고 난 뒤에 남는 맛이 있어야 해요. 어떤 한 장면일 수도 있고 한 줄의 대사일 수도 있고 그냥 어떤 한 순간도 좋고요. 뭐가 됐든 관객에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남는 게 있어야 합니다.

이 시나리오를 쓰시는 데 그렇게 오래 걸렸다는 게 웃겼어요. 왜냐하면 해피 투게더를 생각할 때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아파트, 폭포, 가죽재킷을 입은 장국영, 불행해 보이는 양조위 표정, 그런 것들이거든요. 행동이 기억에 남는다는 거죠. 대사라고 해봤자 기억에 남는 건 양조위가 장첸의 녹음기에 한 말입니다. 우리 귀에는 사실상 들리지도 않았지만.

그 말은 칭찬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사실 최고의 대사는 두드러지지 않는 대삽니다. 개인적인 선언 같은 게 아니라 그 배역한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야 하는 그런 말들이죠. 그게 다 제가 티비 방송 출신이라 그렇습니다. 티비는 대사와 플롯이 전부 다라서. 하지만 영화는 대사와 플롯에 대한 게 아니죠. 영화는 행동에 대한 겁니다. 우리는 사람의 말보다 행동을 통해 그 사람을 많이 알게 됩니다. 말에는 거짓에 포함될 수 있으니까요. 양조위가 연기하는 인물은 자기가 좋은 사람인듯 말하지만 실상은 장국영의 여권을 숨겨놓고 안 주잖아요.

저는 이 책이 쉽게 굴러갈 거라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만.

빔 벤더스가 자기 책을 두고 한 말 같은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하려 했던 도전은 ‘묘사가 불가능한 경력을 묘사하려는 시도‘였다고. 저는 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거든. 사람들이 재즈를 두고 ‘꼭 물어봐야겠다면 결국 영영 모를 것이다‘라고 하는 것처럼요. 개인적인 이야기도 역시 좋아하지 않아요. 이건 영화 이야기 하자는 것보다 명분이 더 없어. 영화를 만든 30년 가까운 세월을 300페이지 책 한권과 맞바꾼다는 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발상인지. 이 책을 수락한 건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어요. 제 아들이 올해 스물한 살이 됩니다. 소년 시절을 뒤로 하고 성인이 되는 거죠. 아들과 아들이 보낸 유년기에, 왕가위의 의미는 부재나 다름없었습니다. 처음엔 제 직업적 경력이 만들어낸 스펙터클에 그 애를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아서 보호하려 했던 거였지만, 나중엔 그 애 자신이 사람들의 시선을 원하지 않더라구요. 제 영화 중에서 그 애는 일대종사와 화양연화 밖에 안 봤습니다.

혹시 그 애가 나머지를 볼 날이 오면 저는 그 영화들을 자기 형제와 누이로 맞아주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어떤 면에선 아들도. 그 영화들도 함께 자란 셈이니까. 그리고 어떤 형제와 누이들이 그런 것처럼 어떤 아이는 잘되고 또 어떤 아이는 잘 안되고, 일부는 뒤늦게 좋은 결실을 보기도 하고 그런 거죠. 이 모든 형제 누이들의 공통점을 혹시 이 책이 그 애에게 알려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인생을 살면서-뭐든 대담한 시도를 하려면- 한 번쯤 해야 하는 이 말 한마디에서 태어났다고. 그래, 한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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