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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일기 - 아프리카의 북서쪽 끝, 카나리아에서 펼쳐지는 달콤한 신혼 생활
싼마오 지음, 이지영 옮김 / 좋은생각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국내에 출판된 싼마오의 수필집들을 모두 다 구해서 읽었고 이번에 아주 오랜만에 재독을 하였다. 허수아비 일기의 전작이라 할 수 있는 '사하라 이야기'는 싼마오가 남편인 호세와 사하라 사막에서 신혼생활을 하며 겪은 이야기들을 엮었고 이 책은 신혼을 지나 사하라 사막에서 카나리아 제도로 거주지를 옮긴 부부의 이야기를 엮었다. 그만큼 더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많고 고된 시집살이 이야기도 책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사하라 사막을 읽으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구절은 싼마오가 남편인 호세와 결혼을 결심하던 부분이다. 싼마오는 내셔널 지오그라피를 보고 사막에 살고 싶다는 꿈을 꾸었는데 당시 친구로 지내던 호세가 사하라 사막으로 가서 일자리를 구하고서는 싼마오에게 같이 살자고 프로포즈를 한 것이다. 이에 싼마오는 감동하여 '앞으로 이 남자와 함께 세상 이끝에서 저끝까지 함께 떠돌며 살리라' 결심한다. 얼마나 로맨틱한가...! 그런데 허수아비 일기 속의 호세는 내가 아는 그 호세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가부장적이다. 스페인의 본가에 가면 싼마오가 하루종일 시집식구 수발을 들어도 남의 일 마냥 일절 도와주지 않고 같이 시장 좀 가달라는 부탁에는 '남자는 그런 데 가는 거 아냐'라고 대꾸한다. 싼마오의 글솜씨는 이런 일도 나름 재미나게 꾸며두었지만 21세기 독자로서 책을 읽으며 속이 부글부글 끓은 것이 사실이다.
비단 호세뿐 아니라 남존여비 사상을 어느정도는 가지고 있는 싼마오의 면모 또한 이 책에서는 강하게 드러난다. 싼마오는 개성이 강하고 당시의 기준으로는 인습을 거부하는 신여성이었지만 그래도 그 시대에 보수적인 교육을 받고 자랐다는 한계가 있을수밖엔 없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싼마오는 적군인 시어머니의 항복을 받아내고자 오히려 지극히 시집식구들을 떠받드는 전략(?)을 취한다. 새벽부터 일어나 모든 식구의 구미에 맞는 아침식사를 바치고 청소를 하고 식구들 시중을 들고 조카들 설사똥을 치우고 등등... 이렇게 넋이 나가게 일을 하고 시집식구들이 자신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을 '항복을 받아냈다'는 식으로 서술하는데, 글을 재미나게 쓰기 위한 과장이라 할지라도 이런 종류의 글은 21세기의 공감을 받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재독을 하며 또 하나 아쉬웠던 점은 예전에는 그리 크게 느끼지 못했던 작위적인 부분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는 것인데...에세이라는 글의 특성상 소재의 고갈이 있었을 것이고 또 우리나라에서 여행기1세대 작가들이 거의 소설반실화반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커리어를 쌓은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것처럼 수십년 전 당시에 해외생활을 소재로 한 에세이는 어느정도의 구라(?)를 용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재독을 하며 이런저런 예전과는 다른 생각이 많이 들어 기록으로 리뷰를 써 본다. 싼마오의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이라면 '사하라 이야기'를 우선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