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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 자서전 - 나의 진리 실험 이야기
간디 지음, 함석헌 옮김 / 한길사 / 2002년 3월
평점 :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옳으니 그르니 시비를 논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고, 가능하면 거기에서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상황 아래서 어떻게 행동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또 우리가 사람을 그 드러난 행동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충분한 자료에 근거하지 않는 한, 그것은 한낱 믿을 수 없는 추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본문 p282)
'사티아그라하'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 운동'을 가르키는 힌두어다. 간디의 위대함이야 새삼 말 할 것도 없는 일임에도 한번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던 일이 없다. 그저 학교에서 배웠던 피상적인 내용, 영국 식민지 시절 악법에 복종하지 않는 시민불복종운동을 이끌었던 인도의 등불이라는 정도가 그에 대해 알고있는 전부였다.
물론 간디자서전을 읽은 지금도 알게 된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진리를 찾는 실험이야기는 중간중간 지루하기도 했고, 알수없는 힌두어 지명과 인명 그리고 연대별 정리가 아닌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왔다갔다 하는 통에 정신이 없기도 했으며, 나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고 이해 조차도 힘든 극도의 정신적 절제와 절식이나 단식이야기가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이부분에서 나는 간디가 탄력적이지 못한 인물로 느껴졌다. 자신의 틀에 아내와 자식들을 지나치게 옭아메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읽고 얻어야 하는 것은 그의 비폭력정신이다.
간디는 모든것에 편견이 없었다. 모든것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그 마음은 순결한 마음이다. 그 마음은 내 자신이 존엄할 때 모든 생명 또한 존귀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을 딛고 올라서려는 인간의 욕심은 실제는 자신의 존귀함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남을 존중할 줄 모르는 자는 결국 자신도 존중받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는 자다.
간디가 온생애를 통해 맞선 것이 바로 '인간존중'에 대한 것이다. 인종차별이라던가, 불가촉천민제도 같은 계급적 차별, 권력에 대한 비열한 복종 등은 그를 그저 평범한 식민시민으로 머물지 않게했다. 타고난 내향적 성격 탓에 첫 법정에서 제대로 입 한번 뗄수 없어 물러났던 그가 남아프리카에서의 인종차별에 대한 경험을 통해 타고난 운동가로 변모하게 된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지극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생명에 대한 존중이 채식주의로 표현되었고, 자신이나 아내, 혹은 막내 아들이 병중에 죽는다 할지라도 동물성 영양은 섭취할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이 되었다. 그점이 나에게는 견딜수 없는 답답함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내 안의 문제이다. 내 생각, 내 추측으로 간디를 평가해서 안되었다. 그것이 바로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을 보는 '비폭력대화'의 핵심이다.
간디가 국가의 횡포에 맞서 '비폭력운동'의 중심에 설 수 있기 위해 무한히 절제하고 절식하고 서슴없이 단식해야 했을 것이다. 그의 절제를 통해 인도는 조직적인 사랑의 힘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인도의 대중은 승리할 수 있었다.
간디는 자신의 생을 진리를 찾아가기 위한 실험이라고 표현했다
진리를 찾기 위해 티끌보다도 겸손한 마음과 믿음에 대한 확신, 그리고 자기 자신에겐 엄격함을, 그러나 생명을 가진 모든 것에는 평등한 마음과 태도를 가져야 함을 간디 자신이 몸소 실천하고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이론으로만 주장한 것이 아니라 평생을 소박하고 가난하게 살면서 실천했다. 겁쟁이 선생은 결코 제자를 용감하게 만들 수 없고, 자제가 뭔지 모르는 선생은 결코 자제의 귀함을 가르칠 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또하나, 그의 위대함은 단순한 실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제와 욕망에 대한 끊임없는 유혹에 시달렸으나 그 모든 것을 이겨냄에 있다. 자서전을 마치는 글에도 자신이 끊임없이 쉬지 않고 노력은 하면서도 자신의 속은 정결치 못함을 알기 때문에 세상의 칭찬이 달갑지 않다고 했다. 그도 결국 피조물의 하나일 뿐이였으므로 그 위대함이 더하다.
진정한 힘은 폭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정화를 통한 내적인 힘은 물리적 폭력을 이긴다. 그것이 간디의 비폭력무저항의 정신이다.
이론으론 이해가 가는데, 그것이 지금의 우리가 사는 극도의 물질만능 시대인 지금, 돈이 권력이고 돈이 생명까지도 덮는 이 시대에도 과연 정신이 물질을 이길 것인지 선뜻 믿음이 가지 않는다. 너무 많이 보아왔다. 힘없고, 돈없고, 갈 곳 조차도 없는 민중은 항상 핍박 받아 왔음을......
간디의 자서전 읽기를 끝내고 서평까지 마치고 난 오늘 아침 신문에서 우연찮게도 발견한 기사는 '서사하라의 간디' 19일째 단식 투쟁이라는 기사였다. 대서양의 스페인령 카나리 제도의 한 공항에서 모로코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는 하이다르 라는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기사다. 그녀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비폭력 투쟁을 벌여온 공로로 지난해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고, 인권단체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모로코는 서사하라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을뿐 아니라, 미국의 어느 단체에서 '용기있는 시민상'을 받고 귀국하는 그녀를 공항에서 여권을 빼앗고 강제 추방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스페인의 한귀퉁이 공항바닥에서 19일째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기사에는 바닥에 모포를 깔고 앉은 하이다르의 사진이 함께 실렸다. 히잡을 쓰고 모로 고개를 돌린 그녀의 표정은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그녀가 내뿜는 처절함을 느낄수 있었따. 상상할수도 없는 거대하고 조직적인 국가적 폭력 앞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 단식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란 생각을 해 본다.
결국, 비폭력 투쟁이란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마지막 보루가 아닐까 싶은 생각 또한 하게 된다. 왜냐하면 약한 자 앞에서 한없이 강해지는 인간답지 못한 인간들은 항상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정신적 숭고함을 무기로 폭력과 맞서온 간디의 비폭력 정신은 작지만 큰 변화를 일으켜 왔고, 우리 인간의 자멸을 막는 힘이 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