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디자인 산책 디자인 산책 시리즈 1
안애경 지음 / 나무수 / 200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산타클로스, 사우나, 눈,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인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에 이어 최근에는 다양성과 평등이 보장된다는 핀란드의 교육이 내가 생각하는 핀란드의 대표적인 이미지다. 실제 서점에 나가보면 핀란드의 교육에 관한 책을 쉽게 만날수 있다. 여러권의 교육에 관한 책들 사이에서 생소하게도 핀란드의 디자인에 관한 책을 발견했다. 

핀란드의 눈 쌓인 숲을 닮은 표지를 한 이 책은 매일 기록적인 추위를 기록하고 있는 요즘에 읽기에 너무나 환상적인 책이었다. 나는 이 책을 겨울여행길의 기차 안에서 읽었다. 핀란드의 숲 처럼 풍성하진 못했지만 달리는 기차 창 밖으로 펼쳐지는 눈 쌓인 풍경이 너무나도 어울리는 아름답고 차가운 시간이었다. 
핀란드의 디자인은 간결하고 차갑고 이성적이다. 간결함과 차가움이 인위적이라거나 거부감을 주지 않는 이유는 자연을 조작하지 않고 이용하지 않고 거스르지 않는 어울림에 포인트를 두기 때문일 것이다. 도로를 내더라도 일부러 자연을 훼손해 직선도로를 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연을 훼손하고 결국엔 인간생명을 훼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들고 부수고, 만들고 부수기를 즐겨야 하는 소비문화와 성장주의 문화에서는 자연이 ’주’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자연은 방해물이 될 뿐이다. 보기 싫다고 판단되는 나무들은 잘라야 하고  구불구불한 이차선 도로대신 직선의 사차선 도로를 시원하게 뚫어야 한다. 자연을 훼손한 자리엔 자연을 닮은 조형물이 들어서기도 한다. 그리고는 녹색성장, 녹색설계 등등 녹색을 운운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연이 삶에 ’주’가 되는 사회에서는 인위적으로 ’녹색’을 강조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핀란드에는 소비성 물질이 풍부하지 않다고 한다. 화학 섬유 공장도 없으며 새것보다는 있는 것을 어떻게 이용할지를 고민한다고 한다. 소박함은 간결함으로 이어지고 절제는 차가움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변화에 민감하지 않은 핀란드인들은 아이들에게도 성장과 경쟁을 부추기지 않고 하나하나 다른 모두의 개성을 존중한다. 요즘의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핀란드의 교육방식은 바로 이점이다. 하나하나 모두가 다르고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교육도 디자인도 한 사회의 가치관의 반영임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사회 속에 역사가 살아있다는 것은 그들만의 전통과 문화가 오래도록 존재한다는 것이다.  핀란드의 헬싱키는 100년 전후를 생각하며 도시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녹색성장도 100년 후를 생각하며 벌이는 공사라고 한다. 그러나 다른점은 헬싱키는 계획을 세우는데도 30년이 걸렸고, 계획을 실행하기 전에 오랜시간에 걸쳐 시민들의 의견을 듣고 재검토하며 또 앞으로도 실현되려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이다. 또, 도시의 변화는 개인의 이익과는 무관한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동요하지 않으며, 도시계획은 다음세대를 위한 변화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100년 후 까지도 생각한 녹색성장이라고 한다. 때문에 국민의 반대쯤은 간단히 무시되고, 계획이나 공사기간 또한 단기간이다. 빠른 변화, 눈부신 성장에는 오래도록 끌 시간이 없다. 도시의 변화에는 반드시 몇몇 개인의 이익이 상관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심사숙고 대신에 만들고 부수는 실용을 택한다고 해야하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은 잘 알지도 못했던 북반구의 핀란드라는 나라가 갖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막연하게 부러웠다. 항상 무엇인가를 채우기 위해 급급한 우리의 모습이, 일상이 예술이라는 핀란드인들의 비움 속에 겹쳐져 부끄러워졌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사대주의자인 것일까. 
항상 변하기를 갈망하고 실제로도 '급변'을 멈추지 않는 우리 사회 속에 진정 우리것인 역사가 살아있는지 의심스럽다.
촌스러운 우리말 대신 영어를 사용해야 격이 높아보인다는 천박한 상상력이 우리의 독특한 전통과 문화를 죽인다. 낡고 오래된 것들은 부숴야 하고, 남보기에 누추하고 지저분한 것은 감춰야 한다. 그러기에 서울은 내가 자랄때부터 내 아이가 자라고 있는 지금까지도 쉬지않고 성장하느라 계속 늘 항상 오래도록 ’공사중’이다.

핀란드의 디자인을 산책하는 동안 지하철 4호선의 차가운 알루미늄 의자와 물이끼가 여전히 아직도 부자연스러운 청계천의 돌틈과 신문로의 키가 23m라는 ’망치질하는 사람’이 떠올랐다.
'디자인이 먼 곳에 와서 고생이 많다’는 손호철 교수의 말도 떠올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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