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의 생존경제학 - 경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
미네르바 박대성 지음 / 미르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작년 이맘때다. 갑자기 이사 결정을 하고 덜컥 집이 나가버렸다. 작년 이맘때 부동산 거래가 얼마나 얼어붙었는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것이다. 그런데 나는 정작 몰랐다. 계획성도 없고, 경제관념 조차 없던 나는 당장 이사갈 집을 찾아 찬바람 속을 헤메게 되었다. 그 와중에 동생은 아고라의 경제대통령 미네르바를 들먹이며 거의 울부짖듯이 계약금을 날리라고 전화로 메일로 닥달을 해대었다.
그리고 1년간 많은 일이 있었다. 개인적인 변화도 그랬지만 경제대통령 미네르바에게도 큰 변화였으리라.
나 개인적으로는 계획성없고, 경제관념까지 없다는 것은 거의 생존력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란 것을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면 변화일까.

역시나 경제 이야기는 쉽지 않다. 뭐가 뭔지 알아보기 힘든 경제지표에, 경제용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경제 시스템...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해고가 사회적 사형선고나 다름없고, 최저생계비를 낮게 잡아 사회복지 예산을 깎아 대규모토목건설 사업에 충당하며, 체감 물가 상승률은 임금상승률을 뛰어넘는 현재의 불합리한 경제체제에서 살아 남는 법은 더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공부하고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경제적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렵지만 한장 한장 읽어나가면서 정부 발표와 소비자 체험물가가 왜 다른지, 집값은 앞으로 어떤의미가 있는 것인지, 펀드를 그냥 저렇게 퍼질러 놓아야 하는지, 보험과 연금은 믿고 있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는 책읽기 였다.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히자면, 기업이 잘되고 부자가 잘 살아야 우리 모두가 잘 살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정부는 기업이 잘되고, 부자가 잘 살면 그밖의 다른 이들에게도 콩가루라도 떨어지지 않겠느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하나하나의 개인들이 희생해서 잘 살게 되는 것은 소수의 ’그들’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장경제의 법칙
이몬 버틀러 지음, 김명철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책 제목처럼 그야말로 시장경제의 법칙에 대한 책이다.
읽는 동안 내내 불편했던 마음은 바로 그것때문이다. 애덤스미스의 원론적인 시장경제에 대한 예찬만을 나열했기 때문이다.
아몬 버틀러의 주장에 의하면, 시장이란 체제의 완성을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도 보조도 필요없다. 바로 애덤스미스가 주장한 자유로운 시장과 경쟁의 이점을 말하고 있는것이다. 
자본주의를 이제 막 열어가고 있는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었다면 이렇게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시장'의 매력에 폭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경쟁'만이 살길 이라고 하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지내고 있다.
이쯤에서 이런 원론적인 시장경제의 법칙에 대한 책이 왜 필요했을까를 생각해 본다.
이미,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즉, 자본주의에 대한 성찰을 필요로 하고 있는 시점이다. 이 때에 아몬 버틀러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같은 주장을 왜 펼치고 있는 것일까.

시장은 실제로 어떤 특정인들에게는 막대한 부를 창출했다. 특정인 외의 다수에게는 이상적인 '부'의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사람다운 삶이란 경제발전이 있을때 가능하다는 가치관을 심어주었다. 실로 비약적인 발전을 '시장'은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안다. 시장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과도한 경쟁은 인간성의 파괴라는 결과를 낳는 괴물이라는 것을.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불평등과 불공평이 너무나도 합당한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 시대의 이 불합리는 자본주의를 넘어 신자유주의의 신봉이 나라를 살린다고 믿는 소수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우학교 이야기 - 가장 이상적인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
정광필 지음 / 갤리온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이우학교 
대안학교
기존의 교육에 대해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 학교
진정한 대안교육이 아닌 '학원화' 내지는 '귀족화'

어쩌면 대안학교도 일종의 치맛바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내 아이를 대안학교로 전학시켰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구체적으로 대안학교에 대해 알아보면서 현실적인 문제가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일단, 대안초등학교로 전학을 하려면 300만원에서 500만원 정도의 기탁금이 들어가야 하고 또 몇백만원 정도의 예치금, 그리고 월 학비 30~50만원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이 제일 먼저 다가왔다. 이건 뭐 그냥 공립초등학교에서 방과후 교육비, 식비 정도 내던 형편엔 조금 기가 질리는 상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일단 우리아이는 사교육을 받지 않고 있으니, 교육비야 내자고 한다면 못할것도 없다는 마음으로 다음단계로 넘어간다. 
두번째로 '헉'소리 난것은 학교 전반에 걸쳐 부모의 참여 내지는 간섭이 지나쳐 실제로 부모들끼리 뜻이 맞지않아 분교하는 곳도 있다고 하니 이또한 나에게는 여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게으름일지는 몰라도 일단 아이를 맡겼다면 믿고 싶다. 내가 일일히 쫓아다니며 의심하고, 확인하면서 내 시간을 쪼개기가 쉽지않다. 대안학교는 일종의 공동체이니 모두의 의견을 모으고 합의에 이르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전반적인 모든것에 부모가 참여해야 한다면 방향을 잘못 틀면 공교육에서 늘 문제가 되는 엄마의 치맛바람과 다르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또, 등하교의 문제가 있다. 실제로 내가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뚝 떨어져 있는 학교까지 아이를 실어나를 일이 보통이 아니겠다 싶다.
아이의 기질을 죽이고, 개성을 죽이고, 서로가 서로를 딛고 올라서야만 하는 경쟁적 공교육의 대안교육을 한다는 꿈의 대안학교....
명령하고, 주입하고, 낙오시키는 학교를 떠나 존중하고, 이해해 주고, 스스로 깨닫게 하는 교육을 받게 하고 싶은 엄마마음은 현실의 문턱에 또한번 무릎이 꺾인다.

아이의 내적인 힘을 길러,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교육을 목표로 한다는 이우학교는 어쨌거나 매력적이다. 
'이우'에서 중3과정을 지나고 있는 아이의 글을 읽으며 나혼자서 목이 메었다. 
<나는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였다. 남이 원하는 만큼만 하면 되었다.(중략) 나는 진짜 나라는 사람이 누군지, 내가 뭘 해야 좋을지 알고 싶다. 이우학교는 우리더러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중략) 이우학교는 내게 배움은 즐거운 것임을 가르쳐주었고, 그에 앞서 배움은 결코 수업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수업을 통해 알려주었다.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대학교를 들어가는 게 어렵기는 하지만 무섭지는 않다. 새로운 학교에 들어가 배울것들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학교 뒤에 있는 더 길고 넓은 곳까지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학교에서 배우고자 했던 것, 내 아이가 학교에서 배웠으면 하는 것을 이 아이는 '이우'에서 중학교 3년을 지내는 동안 스스로 깨닫았다. 

이우에는 초등과정은 없다.  아이가 이우중에 진학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우'에서도 나름의 경쟁과 서열이 있을까봐 두렵기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손도끼를 든 아이 독깨비 (책콩 어린이) 4
데이비드 알몬드 지음, 데이브 맥킨 그림, 김민석 옮김 / 책과콩나무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리보기를 이용해 모니터에서 책장을 넘겨볼 때의 섬뜩한 느낌은 이상하게도 슬픔으로 다가왔다.
표지 그림 만큼이나 처절하고 끔찍한 모습..... 손도끼를 든 아이... 책을 받기도 전에 이미 나는 그 슬픈 아이의 포로가 된 듯 했다.



성선설을 믿는가.  나는 믿지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은 본시 태어날 때부터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그저 깨끗하다. 
백지처럼 깨끗하다.
다만,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반복된 관찰과, 경험과 박복된 학습을 통해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게 된다.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선하고 깨끗한 그림을, 때로는 폭발하고, 끔찍하고, 소름끼치도록 잔인한 그림을....

행복했던 블루는 어느날 갑자기 죽어버린 아빠와 함께 자신의 행복도 죽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상처받은 블루에게 짐승처럼 달려드는 호퍼.   
"내가 ’나가 뒈져 버려, 이 뚱뚱보야.’라고 말했지. 그랬더니 정말 그렇게 되더라고."  아빠의 죽음에 대한 호퍼의 잔인한 말을 듣고도 엉엉 울며 한 쪽으로 비켜가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던 블루는 <손도끼를 든 아이>를 쓰기 시작했다.

외롭고, 슬프고, 고독한, 쓸쓸한, 잔인한, 사나운, 난폭한 손도끼를 든 아이.... 그리고 그 아이는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블루는 손도끼를 든 아이를 통해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들, 그러나 꼭 하고 싶은 것들을  한다. 
칼을 움켜쥐고, 이웃농장의 돼지 등에 올라타 춤을 추고... 그리고는 잠든 호퍼를 찾아가 으르렁 거리고, 고함을 지르고, 호퍼에 얼굴에 침을 뱉고, 그리고 있는 힘껏 두들겨 패주고.......
그리고 블루는 마침내 자신의 이야기 속의 야만인을 찾아가 화해하고, 아빠 마저도 진정으로 떠나보낼 수 있게 된다.

블루가 자신 속의 야만인을 잠재우고, 화해 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엄마의 역활도 크다. 악몽에서 깬 밤 블루는 엄마에게 자신의 글 <손도끼를 든 아이>의 이야기 한 편을 읽어준다. 보통의 엄마라면 소름끼치는 아들의 글을 듣고 어떻게 대처했을까.... 



아마도 아들이 사악하다거나 혹은 정신이상이 아닌가 불안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블루의 엄마는 아들의 상상을 재미있게 들어주었고, 아들의 슬픈 마음을 소리없이 공감해주었고(어떤 말이나 표현이 아니라 느낌을), 인정해 주었다. 그래서 블루는 행복했다가 아니라 행복하다.
울타리가 되어 줄 아빠는 이미 블루의 곁에 없지만, 블루를 믿어주고 인정해 주는 엄마가 있고, 블루 자신이 돌봐야 하는 여동생이 있는 한, 블루는 세상의 많은 호퍼들에게 짓밟히지 않고 일어설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안학교 길라잡이 - 초등
민들레 편집실 엮음 / 민들레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예전에는 아니 불과 몇년 전에는 ’대안학교’ 하면 일반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소위 문제아들이 다니는 어쩐지 정상적이지 못한 학교라는 선입견이 강했다. 그런데 최근 몇년 사이에 대안학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다. 
아이를 자유로운 영혼으로 크게 하고 싶은 부모들, 혹은 입시위주의 교육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부모들이 대안학교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일종의 ’붐’을 일으키기도 한다.
요사이 한창 일제고사 때문에 말이 많다. 일제고사를 시행함으로써 정부는 학력이 딸리는 학교에 재정적 지원을 늘려 학력수준을 높이겠다고 하지만, 그것은 정말 행정적인 정책일 뿐이고 교사와 학교는 아이들의 학력수준을 높이기에 혈안이 될 것은 너무도 뻔한 일이다. 거기에 학부모들 또한 전전긍긍하게 되고 지금도 지옥수준인 사교육인 더 극성을 부릴 것이다. 아이들은 인성과 감성이 무너져서 세상은 지금보다도 더 각박하고 경쟁에서 쳐진 아이들은 그야말로 설 곳이 없어지게 되는 세상을 살게 된다.
아이를 훈육할 때 부모들이 흔히 하는 말은 "네가 행복하게 잘 살게 하고싶어서"라고 하지만 실제 지금의 교육방법으론 아이들이 행복해 질 길이 없다. 행복은 미래가 아니고 현재다.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나는 가끔 아이에게 묻는다. 너, 행복하니..?

대안학교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최근일은 아니다. 아이가 입학하기 전 부터 생각은 해 보았지만, 나서서 알아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부모로서 하는 내 선택이 정말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딱히 대안학교에 보내겠다고 결심이 서지는 않았지만, 일단은 알아보아야 했다.
절실하게 공교육이 아이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 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다.
아이는 초등학교 3년을 다니는 동안 많이 유순해지고, 자신에 대한 주장이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눈치를 보기도 하고 아예 무엇인가 하려는 의욕이 없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내 아이가 진정 자유로운 영혼이 되길 바란다.

민들레에서 나온 이 책은 대안학교에 대한 확실한 믿음 보다는 표지의 글
 "과속은 사고의 지름길! 대안학교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라는 경고의 메세지와 함께 대안학교들 소개와 더불어 정보를 준다.

섬뜪한 생각이 든다. 정말 내가 하려는게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과도한 경쟁 속에서 경쟁을 모르고 자유롭게 크면 정말 행복하게 사는 걸까...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대안교육을 시키고 있는 교사들과 부모가 부러워진다. 아직은 용기가 필요하다. 
이 책을 길라잡이 삼아 천천히 잘 알아보아야 겠다. 나처럼 대안교육을 생각하는 부모에게 길잡이가 되어줄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