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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노프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평점 :
이 책은 소설이다. 프랑스 작가 엠마뉘엘 카레르가 러시아 정치인이자 작가인 실존 인물, 에두아르드 리모노프의 인생을 추적한 소설이다. 그러나 카레르가 리모노프를 실제로 인터뷰한 것은 두번뿐이고, 대부분의 내용은 리모노프가 쓴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씌여진 것이다. 어쨌든 소설 속의 장면들은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라는 것이다.
1943년 우크라이나의 하급 장교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외아들 에두아르드는 어린시절부터 자유롭고 위험한 삶을 동경했다. 폐쇄적이고 허무주의적이지만 요령만 잘 파악한다면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구 소련 사회에서 리모노프의 아버지는 평범하고 또 그만큼 어리석은 하급관리였다. 그러나 리모노프는 아버지와 같은 일상적이며 무난한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범죄세계에서라도 이왕이면 황제 자리에 등극하고 싶어하는 야심만만한 아이였다.
조폭세계를 동경하는 등의 삐딱한 청소년 시절을 거친 리모노프는 모스크바에서 언더그라운드 시인으로 데뷔한다. 이어 1974년 미국 이민길에 올라 떠돌던 중 여자친구 덕에 억만장자의 집사 노릇을하고, 자신의 인생 역경을 기록해 작가로 데뷔 한다. 그러던 리모노프는 어느날엔가는 느닷없이 사라예보 인종 청소의 주범인 라도반 카라지치와 함께 사라예보의 전장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후 러시아로 영구 귀국한 리모노프는 민족볼셰비키당이라는 극우 민족주의 정당을 창당해 활동하다 쿠데타 기도 혐의로 체포돼 러시아 감옥에서 2년간 복역하고, 현재는 모스크바의 작은 아파트에서 잡지에 글을 기고해 받는 원고료로 근근하게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 책의 작가 엠마뉘엘 카레르가 리모노프의 일대기를 출판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리모노프는 굳이 자신에 대해 책을 쓰고 싶은 이유를 물었다. 카레르는 리모노프의 인생이 흥미진진하며, 아슬아슬하고, 역사 속으로 몸을 던지는 위험한 선택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자 리모노프는 이렇게 대답한다. 개떡 같은 인생이지, 한마디로.(515쪽)
맞다. 카레르가 묘사한 책 속의 리모노프는 그 자신의 말처럼 때때로 개망나니로 여겨질 만큼 충격적이고 도전적이며, 파격적인 삶을 살았다. 접이식 칼을 늘 호주머니에 꽂고 다니며 폭력배들과 어울리고, 자살을 시도하고, 정신병원에 갇히고, 예술가 집단에 섞이고, 흑인남자들과 상대하고, 뉴욕에서 최고급 파티에 참석하고, A등급의 여자들과 어울리고, 그러면서도 그 모든 것들이 금지되던 과거의 소련 시절을 그리워하는 리모노프. 특히 당황스러웠던 것은 사라예보의 언덕에서 포위상태의 도시를 향해 탄창을 비우는 리모노프를 볼 때 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리모노프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며, 사람을 버리지 않는 사람, 상대가 아프거나 힘들면 옆에서 챙겨 주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야기인즉슨, 입으로는 선의와 연민을 부르짖으면서 실제로는 그와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악인들에 비해 리모노프는 덜 이기적이고 덜 무심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리모노프에게서 작가가 말하는 특별난 인간미를 느끼지는 못하겠다. 아마도 스티븐 갤러웨이의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를 읽고,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가 유고슬라비아로 부터 분리 독립할 당시 무고한 시민들에게 쏟아진 세르비아계 민병대들의 무차별 총격에 대해 받은 충격 때문이겠지만, 그토록 무심하게 총을 쏘아댈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가슴 속에 인간을 향한 '연민'은 없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한 개인이 어떤 삶을 살던 그건 그 자신의 선택이지만, 적어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만 한 삶이라면, 이념이나 가치관, 국가관, 세계관을 떠나 무엇보다 인간을 연민하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리모노프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연민은 차고 넘쳤다. 도덕군자나 성인이 아닌만큼 인간 전반에 대한 연민이 필요한 이유를 대라고 하면 논리가 빈약하지만, 그러나 리모노프가 사라예보로 달려가 총을 쏴야 할 만한 이유 또한 이 책에서 발견해 내지 못했다.
내 주변 사람이 소중한 만큼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도 모두 존중되어야 한다라고 믿는 나는 리모노프가 경멸해 마지않는 인간박애주의자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나는 작가 카레르의 말처럼 입으로는 선의와 연민을 부르짖으면서 행동은 그렇지 못한 악인 조차도 되지 못하는 평범하고 작은 이기주의자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르겠고.
그에 비한다면 리모노프는 체제와 기존의 관습, 혹은 모든 좋은 것에 반항하며 자기 나름의 독특한 인생관을 설계하고 지켜온 풍운인 것 만은 확실하다.
어쨌든 그래서 '뭐?'하는 생각이 든다. 리모노프의 삶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흥미진진하긴 하지만 이름도 생소한 리모노프라는 한 사람의 인생일 뿐이고, 특별히 그가 존경받을 만한 삶을 산것도 아닌데우리가 리모노프의 삶에 대해 알아야 하는지 좀 의아스럽다. 도대체 작가가 리모노프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도 말이다. 저명한 러시아계 사학자인 어머니와 나치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한 외할아버지를 둔 작가 엠마뉘엘 카레르로서야 자신의 뿌리에 대한 이해를 위해 러시아의 상황을 개괄하는 리모노프의 삶이 의의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의 파란만장하고 위험천만한 인생이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모노프, 그 자신과 러시아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우리 모두의 역사에 대해서 말이다(523쪽) 라고 작가 카레르는 말한다.
리모노프의 굴곡진 삶이나 리모노프를 영웅시하는 작가 카레르나 도통 이해하지 못했지만, 러시아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라면 이전보다는 조금 더 알게되었다. 러시아에선 반체제 인사들과 정적에 대한 암살의 역사가 뿌리 깊다는 것과, 2000년 푸틴 집권 후에도 그 상황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인 2월 27일에는 푸틴의 정적인 넴초프가 모스크바 시내 한복판에서 암살 되었다. 지난 8일 넴초프의 암살 혐의자들로 러시아 당국이 발표한 이들은 모두 체첸공화국 출신이며, 이는 이전 암살 사건들에서 처럼 러시아 당국이 체첸계 이슬람주의에 덤터기를 씌우고 있다는 러시아 야권과 서방의 의혹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련의 의혹들은 지금까지 배후가 드러난 적은 한번도 없다고. 이런 사실들에 대해 소설<리모노프>는 르포로 봐도 좋을만큼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