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우울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염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2000년 1월부터 2년간에 걸쳐 한 잡지에 연재했던 에세이를 묶은 것이다. '의고체'로 쓰인 중세의 수도사 이야기로 데뷔한 히라노 게이치로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일본 청년이라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계기로서 이 에세이집을 출판했다고 옮긴이는 말한다. <얼굴없는 나체들>을 인상깊게 읽었던 나는 오히려 그의 데뷔작이며, 수상작인 <일식>은 읽지 못했다. 의고체도 피곤했지만 시대적 공간적 배경도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았던 것이다. 솔직히 그는 중세의 유럽보다는 현대의 일본이 더 어울리는 청년이라고 여겨진다.

 

<문명의 우울>이 씌인 2000년이라면 벌써 13년 전으로 무척이나 오래된 느낌이지만, 사실 책을 읽어보면 그다지 오래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또한 그가 살고있는 일본이라는 사회로 공간을 한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보편적인 현대문명과 인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터넷, 게임, 블로그, 쇼핑, 로봇, 휴대전화, 광우병, 장기이식… 등, 강산이 바뀌는 것은 비교도 안 될만큼 빠르게 변하는 요즘 세상이지만, 13년 전이나 현재의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는 그다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단 한 사람의 걸출한 인간의 출현으로 그가 속한 장르 전체가 화려해질 수 있다면 그같은 사람은 드높여지는 것이 마땅하다는 내용의 '특별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씌여진 수영선수 '이안 소프'에 대한 글은 어쩐지 히라노 게이치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져 껄끄러웠으나, 히라노가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 <결괴>를 읽고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소설 <결괴>는 그저 범죄소설이기만 한 것은 아니였던 것이다. 히라노라는 사람이 갖은 인간과 세상의 이치에 대한 사유의 결정체라고나 할까. 

어쨌든 통찰력과 사유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생각한 것을 글로 구성하고 표현할 줄 아는 재간을 가진 그는 잘생기기까지 했으니, 분명 세상은 유전적으로 불공평한 면이 있는 곳이며,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쩐지 부럽다는 생각뿐인데, 한 인간이 완성되는 것에 있어 유전보다는 환경을 믿는 나로서는 그가 자란 가정환경이 자못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스믈세편의 글중 인터넷 블로그에 관한 글인 '낙서에 대한 단상'과 게임의 리얼리즘에 관한 글, '인데도와 이니까', 9.11테러와 헐리웃 영화를 엮은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가장 좋았다. 그건 그렇고 한 권의 책으로 묶기에는 내용이 너무 적었다는 것은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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