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 시장에 관한 6가지 질문
이정전 지음 / 한길사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2009년으로 경제에 관심이 있던것도, 대책없는 내 소비욕망에 대해 심각하게 고뇌해 본일도 없었던 때였다. 더구나 397쪽을 빼곡히 매운 글양은 나같은 문외한이 겁없이 덥썩 책을 집어들만큼 만만한 것도 아니였다. 짐작컨데 그당시 구독중이던 <녹색평론>에서 이 책을 알았으리라. 기억난다. 보존서고에서 이 책을 애써 찾아주던 시립도서관의 사서의 의아해하던 눈길이.

'시장의 원리나 시장의 논리를 일상 생활의 문제와 연결해서 쉽게 풀이해보려고 애를 썼다(7쪽)'는 지은이 이정전 박사의 말처럼 책은 나같은 이가 읽기에도 그다지 힘들지 않았을뿐더러,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새로운 충격으로 몸을 떨었다. 그리곤 결국 이 책을 사지 않을 수 없었는데, 평생을 두고 몇번이고 다시 읽어야할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문득 이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었다. 자크 아탈리의 '등대'를 읽고 난 후, 내 인생의 등대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어쨌든 '내 인생의 책'으로 일컫어질 단 한 권이라면 언제고 이 책을 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이 책을 읽기 전과 후로 나뉜다.

 

이 책을 읽기전 나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같은 것이며, 이보다 더 합리적인 사회체제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을 뿐더러 남보다 더 갖고자 하는 욕망은 '선'이고, 돈을 쥔자가 모든 선택권을 가지는 이 체제를 열광적으로 지지했었다. 언뜻 보기에 이보다 더 합리적인 체제는 없을 것만 같았다. 노력하면 누구나 그 댓가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이란 너무나 평화스럽고 안정적으로 보이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사실 나는 사회체제나 세상의 불합리 따위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대신 화려한 미디어에 둘러싸여 끝도없이 부푸는 내 욕망의 정당성에 대해 어떤 의심도 하지 않으며, 마음껏 소비하는 생을 살고 싶었을 뿐이다.

살다보니, '마음껏' 소비할 수 없다는 걸 암과 동시에 그럴수 없다는 것을 알수록 더 늘어만가는 '소유에 대한 욕망'으로 내 온몸과 맘이 지쳐가던 그때, 이 책은 단비와도 같이 나를 적셔주었다. 갖지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끼던 그때 기실 나는 아무것도 없었고, 아무것도 아니였다. 뭉실뭉실 부풀어가는 욕망 속에 허덕이는 '누구나' 중 하나였다.

갖지 않아도, 사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그것도 당당하게 가꾸어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바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갖게 된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이 책은 내 인생의 책이 되었다. 지금껏 읽은 책 중 단 한 권을 고르라면 백번이라도 이 책을 고를 수 있을 것만 같다.

 

처음에는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이처럼 소비와 욕망에 대해 중점을 두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는 '사회적 자본'에 많은 부분 밑줄을 그었다. 시장에 의해 정치조차도 합리적인(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자본만능주의 시대에 각개인은 투표자로서도 소비자로서도 무력하기 짝이 없다.

때문에 투표시기에만 한 표를 행사하는 무책임하고 비합리적인(투표일을 '투표하는 날' 대신 하루의 휴일로 즐긴다거나 하는 것이 개인적 이익에 부합하는 행위이므로 투표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개인에게는 합리적 행동으로 이정전 교수는 보았다) 선택적 투표자로만 존재하기 보다, 각 개인은 민주적이고 자율적이며 다양한 공동체를 구성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 역시 지역 공동체, 지지정당 공동체, 종교 공동체, 학부모 모임 같은 다양한 공동체 모임에 참여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는 피상적인 활동일 뿐, 실제의 나는 '공동체' 활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각개전투자다. 어느새 나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인 소비자로서만 존재하는 것을 편한 삶의 방식으로 몸에 익혀버림으로써 이정전 교수가 말하는 '합리적 바보'가 된 것이다. 

천박하게 속이 보이는 미소일지라도 소비하고 지불하는 동안의 온갖 호사를 누리며, 판매원이 고객님으로 나를 모셔주는 그 가식적인 친절을 주기적으로 필요로 하는 나는, 그정도의 인간관계만을 누리는 한편으로 SNS에 간간히 타임라인을 올리고, 공감하며 그것도 '사회적 자본'이라고 믿으며, 현대사회에 적합한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삶의 방식을 바꾼다는 쉽지 않겠지만, 자발적 사회 참여의 필요성을 절실히 여기고 있는만큼, 시장만능주의에 끌려다니지 않는 자발적 민주주의자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사회적 자본' 즉 공동체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렇지만 나도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 책을 읽을수록 '나'라는 인간의 덧없음에 자꾸만 발목이 잡히고, 살아있다는 것이 꿈인 것만 같다.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느냐고 묻는 경제학적이며 인문학적인 이 물음에 나처럼 질척대는 인간이 또 있을까. 나는 어쩐지 감정만 앞서는 싸구려같다. 여전히 지금도 아무것도 아닌. 도대체 나는 언제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내 삶을 바꿔준 이 좋은 책은 안타깝게도 절판 되었다. 이정전 교수가 쓴 경제와 정의, 그리고 각 개인의 행복에 관한 책은 한길사2008년 출간된 <우리는 행복한가>와, 2011년과 2012년 김영사에서 출판된 <경제학을 리콜하라>, <시장은 정의로운가>가 있고, 역시 2012년 토네이도에서 출판된 <우리는 왜 행복해지지 않는가>가 있다.

시장은 무엇이고, 시장의 원리와 시장만능주의자들의 주장은 무엇이며, 그들의 주장과 달리 시장에 의해 우리가 행복하거나 자유스럽지 않은 이유는 어떤 것인지, 그렇다면 시장이 민주주의와 병해될 수 있는 것인지, 병행될 수 있다면 시장과 민주주의가 함께 앞으로 나아갈 방안에 대해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이 한권으로 정리되었던 내용들을 세분화했으며, 이에 부족한 내용을 보충해 분권하고, 더 쉽게 정리했으며, 디자인 조차도 세련되어, 자신은 경제학과 관련없다 여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의도한 것이리라. 생각 같아서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한권씩 선물하고 싶다. 물론 이정전 교수의 시장과 행복에 관한 책 중 최고는 역시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라고 생각함에는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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