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10대들


 밤이 이슥했다. 기분 좋게 한 잔 하고, 기분 좋게 취해서 흔들흔들 집으로 가고 있다. 번화한 길을 벗어나 우리집으로 가는 길로 접어드는데 바로 앞에 중학생쯤

으로 보이는 두 명이 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 시간에 학생들이......’하면서 별 생각 없이 흔들흔들 그들의 뒤를 따라 걷는데, 가로등 불빛이 가려지는 조금 외진 곳에 이르자 앞에 가던 두 넘이 저희들 끼

리 소곤소곤하더니 갑자기 뒤돌아서서 나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내지른다.


 술에 취했지만 그렇게 많이 취하지는 않았었고 딱 기분 좋을(?) 만큼 취했었다. 그리고 또 그 넘들의 뒤를 따르면서 그들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면서 연거푸 내지르는 그 넘들의 주먹을 모두 피했다.


 나도 젊었을 때는 한 가락 했고(어렸을 때 우리 동네 태권도 도장, 복싱 도장 구경 많이 해서 이론은 빠삭했다.ㅋㅋㅋ), 당시는 30대인 한창 때라, 맨 정신 같으면, 건장한 성인이 아닌 학생 두 명 정도는 가볍게 제압할 자신이 있었는데 술을

먹고 보니 반사 신경이나 신체의 반응이 정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술이 확 깨는 것 같았다. 다리가 풀려 있으니 태권도는 안 되겠고 복싱 자세를 잡고 반격할 준비를 하는데, 이 넘들, 내가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눈치 챘

는지 냅다 달아나기 시작한다. ‘아니, 저 넘들이......’


 나는 그 밤, 파출소에 찾아가서 신고하고 그 넘들을 찾는다고 한참을 헤맸다. 넘들 웃기는 넘들이었잖아......(나도 웃겼지, 술 취해서 뭐하는 짓이었는지?ㅋㅋㅋ)


 그렇게 또 세월이 10년도 더 흘러, 내가 우리 아파트 입주자 대표 회장으로 있을 적 이야기다. 그날도 밤 늦은 시간에 한 잔 기분 좋게 취해서 후문을 통해 집에 오는데, 아니, 중학생으로 보이는 다섯 명이 아파트 관리실 1층에 있는 화장실로 우르르 몰려 들어간다. 당시 우리 아파트는, 규모가 작아서, 밤에는 관리실에 사람이 없었는데, 경비들이 화장실을 쓰면서 문을 잠그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아니, 이 넘들이......’ 술 취한 회장님의 가슴 속에는 의무감이 불타오른다. 흔들흔들하면서 문 앞에 딱 버티고 서서 그 넘들을 부른다. “! 니 넘들 다 이리 나와!” 이 넘들, 쭈뼛쭈뼛 밖으로 나온다.


 “여기 옆으로 일렬로 서!”하면서 일장 잔소리를 늘어놓을 준비를 하는데, 이 넘들, 슬슬 눈치를 살피며, 일렬로 서면서 보니, ! 나무라는 아저씨 술 냄새를 풍기며 흔들흔들하는 몰골이 정상이 아니다한 넘이 나를 확 밀어 넘어뜨리고는 우르르 달아난다.


 나는 바닥에 큰 대자로 자빠져서 그날 큰 일 날 뻔 했다.(이 넘들 큰 일 낼 뻔한

넘들이었잖아......)


 그래서 그날 이후로 나는, 젊었을 때와는 달리, 불의(?)를 보면 절대로, 그냥 꾹

참고 못 본 척 피해 가는 사람이 되었는데.


 은퇴 후, 어느 날 친구 녀석이 전화가 와서 같이 등산을 가잔다. ‘웬일로?’ 모처럼 할매가 돼지고기 수육을 해서 싸 준다. 막걸리 두 통에, 김밥에, 수육에, 맛있게 먹고 산에서 내려오는데 알딸딸하니 기분이 최고다.


 그런데 저쪽 주택가 골목에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오륙 명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어라! 그런데 그 여학생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나는 못 본 척 방향을 바꾸려는데, 이 친구, 아직도 정의감에 불타는 내 친구는,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학생들에게로 가서 시비를 건다. “! 느그들 어느 학교 다니노? 학생이 길에서 담배 피우면 되나? 어른들이 지나다니는데.” “왜요? 왜요?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잖아요. 아저씨가 우리 담배 피우는데 뭐 보태준 거 있어요?”


 “아니, 이놈들이 어디서 못 된 것만 배워 가지고, 어른이 뭐라 하는데 눈 동그랗게 뜨고 달라드노?” “아니, 그러면 아저씨는 눈 네모로 뜰 수 있어요?” (아이구, ㅋㅋㅋ, 본전도 못 찾을 거 왜 건드려 가지고......) “느그들 어디 사노? 니들 부모님께 일러줘야 되겠다.”


 “아저씨, 그냥 가시는 게 나을 걸요. 아저씨가 우리 성추행했다고 신고하기 전에요.” 허걱!’ “성추행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덮어씌우면 무고죄로 잡혀가는 거 모르나?” 그래도 우리는 미성년자라, 아저씨가 훨씬 더 고생할 걸요.” 쐐기를 박는다.


 한 때는 그래도 정의감에 불탔던 내 친구, 아이들은 꽃으로도 때려서는 안 된다는 나와는 달리, 학교와 사회가 아이들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하면 가정에서, 아니면 주변에 있는, 어른들이 때려서라도 참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이론으로 무장한 내 친구, 할 말을 잃는다.


 “낄끼빠빠, 낄끼빠빠.(낄 때는 끼고 빠질 때는 빠져라.)” 나는 억지로 친구를 말려서 전장에서 후퇴했다. ! 무서운 아이들이었다.


 내가 나이를 먹어 가는 것과 같이 우리의 10대들도 웃기는 넘들에서큰일 낼 뻔한 넘들로무서운 아이들로 변해 갔다. 세상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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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2021-06-07 16: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십분 공감되는 글입니다.

하길태 2021-06-07 21:17   좋아요 0 | URL
그래서 요즘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삽니다.^^

붕붕툐툐 2021-06-07 18: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야~ 이런 일을 당하셨군요~ 저도 점점 못본 척 달인이 되어가는 거 같습니다!ㅎㅎ

하길태 2021-06-07 21:20   좋아요 1 | URL
ㅎㅎ 세상이 참......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coolcat329 2021-06-07 23:07   좋아요 0 | URL
저도 정말 못본척 하려고 앞만 보며 지나칩니다. 빠른 걸음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