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이면을 보다 - 신용권의 역사기행
신용권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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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조금 다르게 보는 시선을 통해 역사의 관점을 확장시키는 것은 각자의 의식을 변화시킨다. 천편일률적인 교과서적 틀에서 벗어나되 정도를 지키는 역사의식 강화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이들이 가져야 할 소양이며, 이러한 시기에 읽을 만한 작품이 탄생해 흥미롭다.

대마도, 한일 관계, 훈민정음, 도요토미 히데요시, 영월, 제주 4.3 사건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익히 알고 있으며, 놓치지 말아야 할 역사적 교훈이 담겨 있는 사실들. 그간 쌓아 온 저자의 노하우가 더욱 심층적으로 정리된 작품을 함께 만나고 생각하며,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대마도 하면 가깝고도 더 가깝게 느껴지는 공간이자, 우리 앞에 펼쳐진 역사의 이면이 가장 밀접하게 드러나는 장소이다. 임진왜란의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마수가 대마도로부터 시작해 대마도주를 위시해 명나라를 치겠다는 심산으로 조선의 땅을 허락하라는 말도 안 되는 내용. 익히 알고 있는 기본 걸개를 바탕으로 그 안에서 펼쳐지는 정치적 이슈와 당쟁에 의한 살벌하고도 참혹한 내부 싸움이, 임진왜란의 발단이자 가슴 아픈 결과의 씨앗이 된 것은 아닐지.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억울할 수밖에 없지만 간혹 정의가 올바로 서지 못한 역사의 참혹성. 응징이 필요하지만 오히려 시대의 미끄럼을 역류하듯 승승장구하는 간계와 간흉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사회. 그것이 허수아비 노릇이며, 무늬만 왕인 조선 시대 일부 왕의 실체이며, 그릇된 시각과 판단으로 역사의 정당성을 무너트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이렇듯 대마도를 발판으로 어긋난 판단의 과오와 역사 이면의 거짓, 혹은 진실이 지금에서야 밝혀지고 있지만, 이 또한 후세대를 위한 커다란 타산지석이 될 것임을 작품 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삼촌에 의해 폐위된 노산군 단종은 강원도 영월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그가 유배지로 있었던 곳이 영월의 청령포라 하며, 화려하고 아름답던 지역의 경관과는 반대로 가녀린 단종의 마음을 옥죄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또한 그가 사랑했던 폐비 정순왕후 또한 세조의 신하였던 신숙주에게 첩으로 들어갈 위기에 처하지만, 그것마저 쉽게 허락할 수 없었던 삼촌으로의 마지막 양심이었을까? 폐비가 된 정순왕후를 임금이 죽으면 들어가 비구니 생활을 하게 하는 ‘정업원‘에 따로 거처를 마련, 삶을 마칠 때 가지 은거하며 살 수 있게 한다.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세월이 흘러 그 진실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당시의 진실은 그저 힘의 논리였으며, 혁명이든 쿠데타든 그 일을 성사시킨 관점에서 자신들의 몫을 나누며,
반대의 행동을 했던 이들에겐 역적의 타이틀을 짐처럼 던져준다. 개국 60년 만에 유교의 이념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며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는 군주와 동조하는 무리들. 우리가 알지 못하고 누락했던 감춰진 이면의 진실이 암울했던 우리의 근현대사와도 비슷하다. 더 이상 퇴보하기 전에 현실을 직시하고, 과거의 옳고 그름을 배우고 나누는 것도, 역사를 바라보는 독자의 입장에서 마땅히 해야 할 몫이라 여겨진다.

1940년대 후반 제주 도민 3분의 1이 사망하는 희대의 참극이 벌어진다. 누군가는 잊고자 하나 잊히지 말아야 할 민족 내부의 분열이 제주에서 벌어졌다. 제주 4.3사건의 진실규명은 이제부터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의 정부든 미국의 입장은 진실을 파악해야 할 규명보다 토벌과 살생이 우선 된 무자비한 살육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저 사실을 은폐하고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려는 정권의 하수인들. 그렇게 제주인들은 이유 없이, 목적 없이 소중한 생명을 잃고 만다. 3만여 명 넘는 살상이라니...... 이것이 전쟁이었는지, 홀로 코스터처럼 집단 살인을 부추기는 폭압적 정부의 망령이었는지는 우리 모두가 꼭 풀어야 할 진실 된 과제이다.

아니, 이미 풀어가고 있지만 이것마저도 아니라고 발뺌하는 사람 혹은 증인들의 썩어 빠진 정신부터 개조해야 하는 건 아닌지 울분에 못 이겨 강한 절규하듯 외치며 역사의 이면, 그 진실이 밝혀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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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 심리학, 어른의 안부를 묻다
김혜남.박종석 지음 / 포르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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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은 우리 삶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얼굴 중의 하나다. 일이 뜻대로 안 될 때,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를 받았을 때, 자신의 한계를 느꼈을 때 등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 우울감을 경험한다.‘​

우울증이 안 좋은 이야기지만 현대인들의 대세(?)로 점철되어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처방과 치료법, 필독서 또한 많이 출간되고 있다. 우선 저자는 우울증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것과 만나라고 한다. 그리고 정신과란 것을 ‘미친‘사람들만이 가는 것이라는 편견과 착각을 벗어버리라고 한다. 링컨이 반평생을 우울감으로 살았다는 증거를 확인하면 믿을 것인가? 바쁜 현대인에게 빠질 수 없는 정신적 고독감. 주변에 많은 동료와 지인들이 있어도 외롭고 고독한 사람들. 그들은 이미 우울감의 덫에 빠진 상태이다. 어른이 되면 만병통치약처럼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믿었던 우리. 두 심리 전문의의 치유 처방전을 바탕으로 우리 스스로에게 안부와 안녕을 묻는 독서가 되길 바란다. 그 시작부터 이미 우울증과의 이별은 시작될 것이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골짜기를 거쳐 바다에 이르는 것처럼 우리의 뇌도 순차적인 흐름의 기억이 쌓여 긍정적인 심리를 자극하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 잘못된 기억과 역류하는 물의 흐름과도 같은 트라우마가 자라나 성인이 된 어른에게 우울증적 염세주의, 비관적 생각을 품는 좋지 않은 결과를 맺을 때도 있다고 하니 어린 시절의 기억의 좋고 나쁨에 따른 영향력은 무시 못 한다는 것에 공감하게 된다. 어른의 좌절은 극복 가능하나 어린 시절의 좌절과 실패, 부정적 행동은 쉽게 바꾸기 힘든 상황, 그래도 돌파구는 있지 않을까?

다음 글에 인용한 저자의 문장이 강력하게 들려진다.

‘슬픈 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긴 하다. 하지만 이 아픈 과거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야 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라고 한다. 무의식 속에서 벌어지는 슬픔의 험난한 길 확장보다 그 길을 단절시켜 새로운 나의 자아를 만든 것도 우울증을 극복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과거의 고통은 과거에 맡겨두고 현재의 긍정성에 최선을 다하라는 저자의 말. 비판적인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나 긍정이 바탕이 된 미래의 설계, 그 믿음의 끈을 놓치지 말라고 조언하고 있으며, 이것이 진정한 어른이 되고픈 우리의 우울증 탈출법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나친 조울증이자 감정의 심한 기복도 인간의 뇌에 악영향을 미친다. 우울증 보다 더 안 좋은 결과를 보일 수 있는 조울증에도 분명한 치료 책이 있다. 조울증으로 인한 무분별 언행으로 권고사직까지 받은 사례를 통해, 우리 인간에겐 필요한 변곡점이 있으며 아무 생각 없이 푹 쉬고, 에너지를 보충함으로써 조울증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보자.
두 심리 전문가의 한 문장 문장이 깔끔한 처방전같이 다가온다. 더불어 로버트 레드포드의 ‘보통 사람들‘이란 영화를 통해 첫째 아들을 잃은 가족의 상실감과 아픔을 소개하며 누군가 자신의 곁을 떠났을 때 충분한 애도 기간이 있어야만 살아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우울증 증세를 완화시킬 수 있다는 주요인이 된다고 하니 우리 모두에겐 그 상황의 죄책감보다 충분히 슬퍼하고 울며, 애도함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세월호 사건도, 최근 해외 유람선 침몰 사건도 우리 모두 깊이 아픔을 공감하고 애도하며 그 본질은 잊지 않는 기억 저장소를 공유해가는 것이 필요하단 생각을 갖게 한다.

이 책을 통해서 드는 공통적인 느낌은 우울증, 조울증이든, 공황장애이든 기타의 정신적 스트레스의 만병은 걱정과 근심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결론을 내려본다. 이러한 증상 앞에 얼마만큼 위로가 되는 존재가 함께하고 마음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근본 원인이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흔히 말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들 한다. 조력자의 따스한 말 한마디와 자기 의지가 위와 같은 신경증 증상을 완화시키고 차차 정상적인 어른의 자아를 찾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저자 또한 정신적 고통, 자살까지 생각했던 벼랑 끝 상황에서 친구의 따뜻한 위로가 큰 도움이 되어 다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기반이 되었다니, 말 한마디와 관심의 위력은 그 어떤 만병통치 약보다 큰 효력이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두 저자의 전문가적 경험이 기반이 된 문제의 해결법 제시와 직장인이라면 느껴 보았을 정신적 스트레스 사례. 다양한 정신적 질병의 원인이 되었을 상담 사례들을 집중하며 읽을 수 있음에 가독성이 뛰어난 작품이며 내 안에 잠재돼 있는 심적 앙금을 걷어낼 수 있는 시발점이 될 내용들에 속이 후련해짐을 느낀다. 조금만 다른 생각과 해결법을 위한 자세가 필요한 현대 사회의 모든 이들의 질병. 그것이 아직 정신적으로도 피폐한 우리 어른들이 풀어 나가야 할 숙제이며, 두 심리 전문가의 이야기를 통해 그 해결 고리를 조금씩 풀어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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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ː봄 - 스물넷, 이탈리아에서 만난 삶과 여행
신용원 지음 / 밥북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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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의 용기와 준비된 자세가 시작부터 온기를 불어넣는 자기계발 기록서이다. 군대 말년 미래를 위한 교두보로 준비했던 토익 시험을 발판으로 짧은 육 개월여의 이탈리아 교환학생의 여정을 시작하는 작가. 꿈꾸고 누릴 준비가 된 청춘의 희망과 대담함에 박수를 보낸다. 또래 독자에겐 꿈과 희망, 그 이상의 독자에게 어느 시기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부여해주는 작품이다.

 

저자는 교환학생 첫날부터 당황스러운 에피소드를 자아낸다. 어머니께서 무심코 백팩에 넣어주신 소형 밥솥이 문제였던 것이다. 중간 경유지였던 '히스로 공항'에서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 다행히 밥솥으로 판명돼 무사히 이태리행 항공기에 몸을 싣게 되지만, 자신의 좌석 부근에 앉은 아기의 울음소리로 인해 잠시 신경이 곤두섰다는 상황도 예쁜 기억으로 상기한다. 그리고 마'르코 폴로 공항'에 도착한 교환 학교생활의 서프라이즈 한 시작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플랫(자취집) 집 주인 톰과 그와 룸메이트들의 깜짝 마중은 잠시 긴장했던 저자의 마음을 눈 녹아내리듯 풀어주는 순간이었다며, 교환학생 시절의 시작을 큰 기대감으로 장식한다.

 

새로운 인연들과의 만남엔 설렘과 어색함이 동시다발적으로 밀려든다. 다행히 저자는 플랫 주인을 비롯해 그를 서포트해주는 교환 학교 동료 이레나의 깊은 배려를 통해 즐거운 유학 생활을 이어간다. 또한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이별의 끊기지 않는 우정도 나누며 황금 같은 시간을 된다. 플랫 주인 톰의 소개로 알게 된 또래 여행자 영연과의 만남도 좋은 추억거리인 듯 잔잔히 풀어낸다. 소매치기 등, 우여곡절 끝에 여행을 이어가는 그녀를 위해 즐거운 베네치아의 추억을 선물하려고 가면 축제에 자신의 친구들을 불러 합석하기도 하는 저자.

누군가를 대하거나 만남을 가질 때 늘 기대와 베풂이 중심이 되어가는 저자의 배려심과 청춘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한때 여행을 즐기던 독자로서 여행지에서 만났던 이들의 아련한 향수가 다시 떠오르는 계기가 된 책 읽기였다.

 

예전부터 반도국가인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지형과 성향 또한 닮은 구석이 있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외세의 잦은 침입은 당연하고 바다를 삼면에 끼고 있는 형태가 엇비슷한 사람의 성향을 만들어 냈을지도 모르겠다. 교과서적인 내용이지만 저자의 베네치아 생활을 통해 흡사한 느낌을 얻게 되었다. 그들의 음식과 생활, 문화, 인간관계 등을 자유롭고도 솔직한 마음으로 털어놓는 힘. 그것이 젊음이 주는 에너지이자 열정이라는 생각과 함께 6개월여 기간의 순간순간이 살아 숨 쉬듯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무엇보다 현지 사정을 소개해주는 친절한 사진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자신을 감추지 않는 자신감, 그것이 지금 20대의 힘이기도 하다.

 

마주 봄, 상대와의 마주 봄이며 미래를 향한 미리 봄을 의미일 수 있는 이야기들. 단순히 어디를 향해 떠나 거기서 느낀 그 당시 감정을 감성적으로 표현해내기보다 조금은 덜 세련되었지만 거짓 없는 생 날 것 그대로 활자화 시킨 젊은 작가에 대한 존경심이 들게 하는 작품이다. 이제 시작이자 또 다른 나의 삶과 마주:봄을 시작할 신용원 작가. 이 책이 또래 친구들에게 나도 할 수 있고 도전할 수 있다는 의지력이 되길 바라며 여행과 평생 공부를 꿈꾸는 독자들에게도 언제 어디서나 희망의 끈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 있는 삶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오늘도 마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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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의 방 - 2019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진유라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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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의식 변화, 건강의 이상은 한순간에 닥쳐 올 수 있다. 매사에 깔끔하고 바지런하며 온순했던 무해. 그녀는 남편과의 사별 이후 급속도로 내면의 상처가 폭풍우 몰아치듯 퍼져 의사로부터 초로기 치매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오십 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다가온 치매라는 병명은 그녀의 딸 모래에게도 큰 도전이며, 예전과 같지 않은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과 근심이 동시에 밀려오는 기폭제가 된다.

‘병은 이렇게 인간이 반박할 수 없게끔 인간의 육체를 빌려 증명하듯이 나타났다.‘​

질병의 발생이란 특정 지어 나타나는 것이 아닌 어느 순간 문득, 시련 섞인 아픔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온다. 이를 치료하기 위한 방법은 있다지만 시간의 흐름에 의해 노쇠해가는 인간 육체 본연의 모습까지 완벽히 재생해 낼 수는 없다. 그렇게 인간은 육체에서 정신까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멸해간다.

무해는 탈북자였다. 그리고 육 개월간의 국정원 조사를 통해 간첩이라는 의심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그 당시 그녀는 무수히 넘쳐나는 조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지금, 하나 남은 딸 모래를 위해 기억의 소실이 빠르게 밀어 닥치기 전 자신의 기록을 글로 남기고자 한다. 자신의 역사일 수 있지만 딸을 위해 던지는 마지막 선물이자, 유산이기도 했다.

‘농마국수‘, 음식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추억의 이음새와도 같다. 무해는 그간 모래에게 비밀로 했던 출생지에 대한 내용을 털어놓기 위해 ‘농마국수‘에 대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에서 인연을 맺었던 친구들, 용범이와 그의 누이 명희의 결혼식에 얽힌 사연들을 담아내며 ‘농마국수‘ 이야기도 기억 속에서 상기시킨다. 그리고 친구인 용범 가족의 몰락. 공산권에서 가장 금기시했던 부의 창출 욕구. 밀수 사업으로 인해 용범을 비롯해 그의 가족은 당의 주요 감시 대상이 되고, 어느새 무해의 시선에 용범 또한 멀어져 간다. 이처럼 북에서의 기억을 지우고 살던 무해는 딸에게 전해 줄 ‘농마국수‘의 레시피를 위해 잊고 싶었던 지난 기억을 한 줄씩 적어내려가며 모래와의 단출하지만 잊지 못할 ‘농마국수‘ 만찬을 나누게 된다.  그리고 그간 숨겨 둔 출생지의 비밀, 탈북인에 대한 사실을 딸 모래에게 나직하게 고백하고 만다. ‘농마국수‘는 무해의 기억이란 끈을 과거에 현재로 이어지는 매개체의 일부이며 딸에게 자신의 감춰진 진실을 알리는 전달자와도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뿌리에 대한 중요성, 기억의 끈을 기록으로나마 남기고 싶은 무해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북조선 시절 음식의 기억에 이어, 사별한 남편 강은석과의 첫 만남에 이르기까지 1인칭 시점이 아닌 제3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어쩌면 이야기의 진전을 이어가는 화자는 과거를 회상하는 그녀 혹은 기록을 살펴 가며 이야기를 정리하는 그녀의 딸 모래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조금씩 드러나는 그녀의 과거에 대한 회상 기록이 깊이감 있게 전달된다. 그만큼 오랫동안 각인되고 지속될 수밖에 없는 현실, 우리 민족의 이야기, 탈북자의 생사고락이 담긴 작품이기 때문이다.

‘무해의 방‘은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 젊은 시절 당시 교원으로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그녀. 하지만 북조선의 경제 기근으로 교원의 지위가 떨어짐을 실감하게 된다. 먹고살기에 급급한 국가적 현실로 인해, 미래의 혁명 인재를 길러내는 산실이란 보기 좋은 떡이었던 학교는 허울로만 남았을 뿐, 인색한 투자 부분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로써 자신들의 기근을 암묵적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기아와 배고픔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이들까지 생겨난다. 금전적 이익이래봤자 북과 중국 접경지대에서 벌어지는 밀수 행위가 범법임에도 행해지고 있었으며, 그 이익은 비싼 값에 불량품까지 수입하게 되는 북한의 상황에 의해, 고스란히 중국 측의 더 큰 이익으로 돌아가는 안타까운 상황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이 아프고 무력했던 기억은 무해의 기록으로 남겨질 뿐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처절함과 암울했던 북조선의 경제 상황을 글로 느끼며 드는 건 그저 ‘멍‘해질 수밖에 없는 정신을 추스르는 것이 전부일뿐이다.

‘인간은 지금 당장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살기 위해 그 모든 것을 유예 시켰다.​

압록강 물줄기를 경계로 북조선과 중국이 접경하고 있는 지역은 피와 땀, 울분, 살기까지 서려있는 공간이다. 삶과 죽음의 희망과 공포, 생존을 위한 불법 행위 등이 서슴없이 벌어지는 범죄의 온상이기도 하다. 또한 3%밖에 되지 않는 남조선으로 귀환, 자유를 꿈꾸며 빈곤하지만 의지를 불태워 마지막 동아줄을 잡으려는 북조선 민중들의 생사가 담긴 빛을 고대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불행과 어머니의 행방불명까지 겪은 무해의 어둡기만 했던 미래는, 북조선의 공산체제를 따르고 순응했던 정서에서 주변 지인들의 변화무쌍한 행위들에 의해 심적으로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녀는 그간 공산주의 국가에 충성했던 나가 아닌, 자유와 삶의 존속을 위해 생의 유예를 선언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믿고 따르려 했던 동향 김 씨의 사기행각이었음에 분노하고 만다. 한국으로 떠나야 할지, 중국인의 아내로 남은 삶을 유지해야 할지에 대한 삶의 정당한 유예. 이것이 무해의 또 다른 숙제로 남게 된 탈북 탈출기의 기록이다.

결국 하반신 불구의 중국인과 첫 혼인, 그리고 눈에 밟힐 수밖에 없던 첫아이 페이와의 이별과 현재의 딸 모래와의 만남에 이르기까지, 무해는 슬프고 암울했던 기억을 행복으로 바꿔가기 위한 종착 지점에서도 삐거덕하고 만다. 한 여인의 삶이었지만, 우리가 공감하고 함께 고민해야 할 우리 민족의 이야기로도 확장 가능하다. 남편 은석의 만남에서 죽음, 이어서 찾아오는 초로기 치매 환자 무해의 가슴 아픈 기록의 마무리는 이 책을 끝까지 탐독한 독자라면 충분히 이해 가능하고 동감할 만한 심정으로 가득하다. 내가 아니지만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함께 아파하고 기억하는 마음, 무해의 방 기록은 개인사가 아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대사의 단편으로까지 확장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보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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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되고 싶은 날 비룡소의 그림동화 261
인그리드 샤베르 지음, 라울 니에토 구리디 그림, 김현균 옮김 / 비룡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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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를 사랑한 아이. 하지만 그보다 더 진하고 아름다운 풋사랑이고 첫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이라기보다 우정에 가까운 동화 이야기를 읽다 보니 아이보다 제가 더 감동에 빠져 책을 읽게 된 것 같아요. 새를 무척이도 사랑했던 칸델라. 칸델라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나는 새고 되고 싶었답니다.

  

    

그려도 그려도 생각나는 그 아이 칸델라 차라리 그 아이의 새가 되어 하늘을 날아가고 싶었을까요? 그렇게 주인공 나는 새가 되어갑니다. 밤이 되어도 낮이 되어도 첫사랑은 꾸준히도 떠오릅니다.

    

   

같은 반임에도 부끄러워서 말 한마디, 고백 한마디 못했던 나. 그것이 첫사랑의 아픈 시작이며, 그 결과마저 해피하지 않을 아쉬움이 묻어나는 엇갈린 인연이 되어갈지. 동화이지만 소설 같고, 아기자기하지만 아련한 향수마저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칸델라가 예뻐하는 다양한 새들. 아이들과 책을 읽으며 새의 이름을 맞춰보는 잠시간의 여유.

잠시 가슴 아플 첫사랑의 고백과 결과를 뒤로 한 채 새에 대한 공부도 함께 해봅니다.

 

 

온통 새를 사랑하는 마음이 끝이 없는 칸델라.

이를 증명하듯 옷과 가방, 액세서리 등 다양한 장신구에 새 그림이 장식되고 그려진 칸델라의 새 사랑. 말투마저 새처럼 느릿느릿해진 것 같다니, 웃음만 터져 나옵니다.

    

 

친구들의 놀림에도 날씨가 더워도 나는 새 깃털 옷을 벗고 싶지 않아요. 왜냐면 언젠가 칸델라가 나를 두 눈으로 애틋하게 바라볼 기대감이 있으니까요. 한 마디 못하는 서툰 첫사랑의 감정이지만 끝까지 인내라는 용기를 가져봅니다. 새가 되고 싶은 나, 그것은 칸델라를 향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두 눈이 칸델라와 마주쳤을 때.

 

쿵쾅 쿵쾅......

    

  

그렇게 칸델라는 내게 천천히 다가와 가슴 짜릿한 포옹을 합니다. 이렇듯 아이와 부모 모두 감정이 북받쳐 옵니다. 아련하고 가슴 서린 첫사랑의 아름답고 슬픈 기억일 수도 있고, 예쁘고 바르게 자랄 아이의 꿈이 서서히 시작되는 그 서막일 수 있습니다. '새가 되고 싶은 날', 사랑과 우정이 함께 하는 애틋한 정서, 꿈을 향해 새처럼 날아갈 우리 아이의 마음에 날개를 달아주는 동화 읽기가 되길 바랍니다.

  

  

또한 친구, 인연에 대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자녀와의 소통과 대화가 이어지는 의미 깊은 책 읽기 시간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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