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빛
마이클 온다치 지음, 아밀 옮김 / 민음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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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무려 넉 달 만에 만나게 되는 달궁 모임의 날이 내일로 다가왔다. 원래 지난달에 보기로 되어 있었는데, 날짜가 좀 밀렸다. 안도했다고 해야 하나. 요즘 도통 책읽지 못하고 있던 차에, 아 이제 진짜 독서 모임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빨리 마이클 온다치의 <기억의 빛>을 읽어야 하는데. 그러다가 지난주에 느닷없이 앤 카슨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부랴부랴 앤 카슨의 책들을 좀 읽느라 <기억의 빛> 완독이 좀 늦어졌다. 그래도 어제 다 읽고 지금 이렇게 리뷰를 쓰고 있는 중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마이클 온다치의 <기억의 빛>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가 결국 3년 전에 출간이 됐고, 바로 산 기억이 난다. 그리고 좀 읽다 말았다. 나중에 다시 읽기 시작했다는 어느 순간 멈췄다. 그런 다음에는 책도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서 한참 찾았다는. 다행히 책탑 가운데서 <기억의 빛>을 찾아내고 3번 도전 끝에 완독했다.

 

사실 미스터리-스릴러 형식의 이야기에 좀처럼 초반에는 집중하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소설의 화자는 너새니얼 윌리엄스. 1945년에 시작되는 1부에서 그가 14살 정도라는 점을 미루어 볼 때, 너새니얼(별명 스티치)은 1931년생 정도 되는 것 같다. 아직 독일에서 히틀러가 권력을 잡지 못하고 있던 전간기에 태어난 모양이다.

 

1부는 대영제국을 초토화시킨 2차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에 시작된다. 어느날 아버지와 어머니 로즈가 멀리 싱가포르로 떠나게 된다는 선언을로 소설은 시작된다. 그럼 레이철(렌) 누나와 나는? 엄마의 친구라는 나방 아저씨(월터)가 어린 남매를 돌보게 된다고 엄마는 말한다. 어째 시작부터 좀 찜찜하지 않은가.

 

지금의 상황도 그렇지만, 나이 어린 남매를 낯선 이가 돌본다는 게 말이 되는가. 어쨌든 엄마와 아빠는 그렇게 영국을 떠나 멀리 극동의 아시아로 떠나고, 이제 나방 아저씨와의 낯선 삶이 계속된다. 그리고 루비니 가든의 윌리엄스 남매의 집에는 나방 아저씨의 친구들로 곧 가득차게 된다. 민속지학자라는 올리브 로렌스와 아무래도 과거가 의심스러운 "화살"을 필두로 다양한 인물들이 레이철과 너새니얼의 삶 속에 끼어든다.

 

아마 내가 첫 두 번의 책읽기에 실패한 이유는 이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낯선 상황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 고비를 넘기면서 나의 책읽기는 계속된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기억의 빛>은 화자인 너새니얼의 성장소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재 가운데, 소년 너새니얼은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크라이테리언에서의 힘겨운 나날도, 그리고 또 우연히 알게 된 애그니스와의 철부지 사랑도 다 어른으로 가는 과정에서의 일탈에 가까운 일종의 모험이 아니었을까.

 

 

너새니얼의 청소년 시절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바로 화살이었다. 경주견과 도자기 밀수, 위조와 사기 등의 경력으로 점철된 인물이 바로 화살(Tarter)였다. 모리스를 몰며 수많은 여성들과 염문을 뿌리던 그의 매력에 너새니얼 역시 빠져든 모양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너새니얼은 "그리운 밤의 여정"이라는 말로 그 시절을 기억한다. 싱가포르 유니레버로 떠난 아버지의 부재 가운데, 어쩌면 화자는 화살에게서 father figure 같은 감정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애인 애그니스에게 자신의 아버지로 소개도 하고. 천부적 거짓말쟁이였던 화살은 물론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다.

 

소설의 초반부 등장하는 schwer(슈버)라는 키워드는 너새니얼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상징으로 읽힌다. '어렵다', '무겁다'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궁극적으로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경고로 보면 될 것 같다. 그런데 무엇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는 말일까? 왜 윌리엄스 남매는 안전하지 못한 상태라는 걸까. 그것은 바로 어머니 로즈의 원죄로부터 시작됐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엄마 로즈의 트렁크를 발견하게 된 나는 엄마가 싱가포르로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미스터리한 서사는 힘을 얻기 시작한다. 너새니얼은 언젠가부터 누군가의 추격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결국 사단이 나고 만다. 1부 엔딩에서 모종의 인물들에 납치되었다가 풀려나는 과정에서 이 모든 일에 엄마 로즈가 과거에 정보국 소속으로 비밀업무에 종사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윌리엄스 남매를 보호하던 나방 아저씨가 죽었다는 사실도.

 

<기억의 빛>의 진짜는 2부에서부터 시작된다. 그전에 진지하게 설치해둔 떡밥들을 회수할 차례가 돌아왔다. 납치 사건이 발생하자 그제야 나타난 엄마를 따라 레이철과 너새니얼은 보다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레이철은 연극 무대로, 너새니얼은 엄마의 유전자를 좇아 정부 기록보관소에서 일하게 된다. 그 때는 이미 어머니도 돌아가신 후였다. 어머니의 사인에 대해서는 나중에 드러난다.

 

너새니얼의 지난 10년은 어머니의 종적을 추격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전쟁 중에 화재감시원으로 일했다던 어머니가 전후에 비밀 업무에 적극 가담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후 특히 1945년부터 1947년까지 유럽의 각지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던 전투를 필두로 해서 각종 역사 지우기 작업에 어머니가 로즈가 개입했다는 놀라운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어머니 팔에 남은 흉터들도 그 때의 흔적이었으리라.

 

화살과 그의 애인이었던 올리브 로렌스 그리고 이엉장이의 아들 마시 펠론 등도 모두 숨겨진 영웅들이었다고. 화자의 말에 의하면 진짜 영웅들은 어디서 자신의 공적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법이다.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역사에서 자신의 임무가 끝나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조용한 삶을 살았다. 진짜 영웅들은 그런 거라고. 어머니 로즈, 시대를 풍미한 코드명 비올라라고 알려진 그녀는 시골 마을의 온실에서 자신이 기다리던 운명을 맞았다.

 

화자는 결국 그리운 밤의 여정을 함께 했던 추억의 화살, 노먼을 찾아가지만 현재의 화살은 과거와 완전히 단절되어 소피라는 이름의 아내와 딸과 함께 살고 있다. 너새니얼과 달리 화살은 과거에 대해 아예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결국 너새니얼은 돌아서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찾던 이와 원하던 해답을 얻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너새니얼은 과거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출발에 나선다.

 

마이클 온다치의 <기억의 빛>은 후반으로 갈수록 몰입도를 더해가는 그런 맛이 있는 소설이다. 그의 대표작 <잉글리시 페이션트>처럼 전쟁이라는 주제에 파생된 이야기는 윌리엄스 가정에서 출발해서, 아버지-누나 그리고 어머니를 차례로 분사시키고 난 뒤 우주로 향하는 로켓처럼 엔딩으로 달려 나간다. 어떤 과거의 사실들은 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동시에 현실에 충실하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또 과거의 진실을 알아야,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또 진실로부터 해방되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봤다. 그런 모든 일에는 모름지기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14세 너새니얼 윌리엄스가 14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나서야, 전쟁기의 혼란스럽고 흐릿한 "워라이트"로부터 벗어나 보다 명징한 진실의 세계에 도달하지 않았던가.

 

어쨌든 3년을 끌어서야 비로소 <기억의 빛>을 다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자, 이제 내일 독서모임에 출격해서 또 어떤 내가 미처 만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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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아름다움 - 스물아홉 번의 탱고로 쓴 허구의 에세이
앤 카슨 지음, 민승남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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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카슨의 책들을 잇달아 읽고 있다. 이북의 시대, 언제라도 원하는 책을 집에서 편하게(다만 누워서 보기에는 조금 불편한) 빌려서 볼 수 있게 되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빨강의 자서전>에 이어 <남편의 아름다움>도 바로 주파했다.

 

저자의 그리스 문화, 특히 호메로스에 대한 사랑은 노골적이다. 굳이 넣어야 할 필요가 있나 싶은 내가 영원히 알 수 없었던 기원전 413년의 아테네군의 시켈리아 원정 당시 벌어졌던 에피폴라이 전투까지 자신의 작품에 인용하는 발군의 실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조금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단면을 보았다고나 할까. 대단하다 대단해.

 

아름다움 때문에 그를 사랑했다는 고백을 들어 보면, 화자의 남편은 아름다웠던 모양이다. 얼굴 뜯어 먹고 살 일 있냐는 속된 표현을 자주 들었지만, 삶에서 어떤 형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걸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런데 개개인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이데아란 과연 무엇일까? 모두가 동의하는 그런 수준의 아름다움일까? 현대 문명에서 아름다움조차 획일적으로 평가되고, 또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서 화폐가치로 환산되어 거래가 되고 있는 건 아닌지하는 상상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남편의 아내의 몸보다 나폴레옹이 치른 보로디노 전투에 더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놀랍군 그래. 그렇다면 그는 현재가 아닌 과거에 사는 사람일까? 그런데 계속해서 꾸준하게 거짓말을 하고, 바람을 피워대는 걸 보면 또 그런 거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남편은 어제 앤 카슨의 작품에서 한자락 배운 이칸티카(아무리 수행해도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 구제불능의 중생) 같은 인물이 아닐까.

 

작가의 남편이 구사하는 거짓말에 대한 현란한 분석이 마음에 들었다. 삶의 대부분이 거짓과 위선으로 점철되어 어느 순간에는 심지어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마구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심지어 상대방이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걸, 인지하면서도 내 거짓말을 멈출 수 없다고. 모든 게 거짓이라는 블록으로 쌓아 올린 것이기에, 단 하나의 블록이라도 빠지면 삶 전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어서 거짓말을 계속했다는 정도의 변명이 조금은 위로가 되려나. 모두가 알겠지만, 삶에서 어느 정도의 거짓말의 춤추기가 또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 않나.

 

작가는 스스로를 이른바 ‘비주얼 아티스트’라는 말로 표현했다고 하는데, 책의 곳곳에서 번득이는 앤 카슨의 문장력을 감탄을 자아낼 만하다. 말과 사물의 연결점은 신들의 방식이라고 했던가. 의사소통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인 말이 내 의사에 반해서 상대에게 도달할 때, 난감해 하던 적이 한두번이던가. 존재는 아름다움에 의존한다는 표현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존재는 아름다움에 이를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우리는 추상적 혹은 현실적 아름다움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반복되는 작가의 시적 구사의 모호함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독자의 상상력을 그야말로 무한대로 끌어 올린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제낀 자신감의 표출일까 과연.

 

낮 세계는 밤의 그것에 비해 저속하고 명백하다는 구절도 마음에 들었다. 낮의 빛은 타인은 절대 알 수 없는 아름다운 남편 사이에서 벌어지는 위선과 갈등, 증오를 상징하는 밤의 어둠과 대조되는 이미지를 창조한다. 어쩌면 부부간의 결혼생활이란, 대혼란 혹은 아수라장을 의미하는 팬더모니엄처럼 무질서 가운데 질서를 구축해 나가는 지난한 과정이라는 생각도 잠깐 해봤다. 아름다운 남편이 툭하면 내세우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사랑과 전쟁>을 떠올렸다면 무리수일까나. 그 외에도 아름다움의 주사위나 요한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분절과 편린들이 오간다. 그걸 하나하나 다 이야기하자면 리뷰가 끝도 없이 이어질 것만 같다. 단시간에 과다하게 입력된 정보들을 다루려다 보니 지친다.

 

여하튼 탱고 검색의 알고리즘은 나를 다시 한 번 탱고의 세계로 인도했다. 어려서 좋아하다가 까먹은 <라 쿰파르시타>의 그야말로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 올리며, 야릇하게 간드러지는 연주가 일품이다. 역시 너튜브의 도움으로 반도네그로라는 밴드를 알게 됐는데, 아주 마음에 든다. 앤 카슨은 탱고를 ‘순전한 방탕함’이라고 표현했는데 왠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더라.

 

무엇이 나를 삶의 의지로 그리고 튼튼하게 만드는가?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아마도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 더 나아가서는 욕망이라고. 우리는 나와 구별되는 바깥의 우주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남편의 아름다움>은 다 읽고 나서 리뷰를 쓰다 보니, 읽을 때보다 더 많은 사유를 하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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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의 자서전 - 시로 쓴 소설
앤 카슨 지음, 민승남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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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202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캐나다 출신 시인이자 소설가, 고대 그리스어 전문가 기타 등등의 타이틀을 지닌 앤 카슨이다. 수상 소식을 듣고, 집의 책탑에서 어딘가에 파묻혀 있을 작가의 책을 찾기 시작한다. 오래 전에 어디선가 수배해 두었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일찌감치 포기하고 대신 경기도서관 구독형 이북으로 읽기 시작했다. 정말 편한 세상이다. 이제는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지 않고서도 집에서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는 세상에 되었다.

 

기원전 7세기 경의 고대 그리스 시인 스테시코로스가 남긴 <게리오네이스>가 <빨강의 자서전>의 모티프가 된 작품이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어 전문가인 작가는 해당 작품을 자신의 스타일로 변형해서 새롭게 재창작했고, 가상의 인터뷰까지 책에 실었다. 어쩌면 다른 문화권에 사는 우리로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차원의 변용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방면에서는 매들린 밀러라는 작가가 비슷한 결의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앤 카슨의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진입장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 중에 하나가 소위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으로 알려진 에피소드다. 헤라의 미움을 받은 헤라클레스는 12가지 과업을 부여 받았다. 그 중에 하나가 서쪽 끝 에리테이아 섬에 멋진 소떼를 가지고 있는 게리온에게서 소떼를 훔쳐 오라는 헤라의 명령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소몰이꾼 안타이오스와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오르트로스를 이기고, 세 사람의 몸뚱이를 지닌 게리온과 정면대결을 벌이고 마침내 히드라의 독을 바른 화살로 그를 처치하고 소떼를 차지하는데 성공한다. 물론 귀환 길에 헤라의 방해로 소들이 모두 도망가 버리는 곤경에 처하기도 하지만.

 

앤 카슨이 “로맨스”라고 명명한 소설의 주인공은 게리온이다. 어려서 형에게 성적으로 시달린 게리온은 자신에 대한 자서전을 쓰기 시작한다. 14살에 된 게리온은 헤라클레스를 만나 묘한 관계에 빠지게 된다. 둘은 헤라클레스의 고향이라는 소도시 하데스(HADES)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하데스는 명계 또는 음부를 지칭하지 않는가. 동시에 죽음의 장소이기도 하다. 헤라클레스가 그곳 출신이라는 점은, 스테시코로스의 작품에서처럼 헤라클레스의 출현이 게리온에게는 죽음을 상징한다는 뜻일까. 종잡을 수 없는 모호함이 넘실거리는 가운데, 서사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곳에서 헤라클레스의 할머니는 1923년 화산폭발 사건과 유일하게 생존한 용암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시를 뒤덮은 화산폭발로 모든 사람이 죽었지만, 감옥에 갇혀 있던 재소자 한 명만 살아남았다고. 그리고 그는 순회 서커스단에 들어가 자신의 운을 이용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했던가. 그것은 마치 신화 속의 헤라클레스가 12가지 과업이라는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미션들을 해치우는 과업이 서커스라는 암시였을까. 신이 점지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무기력한 인간 한계에 대한 일종의 냉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에서 게리온은 꾸준하게 카메라로 기억을 기록하고, 시간을 포착한다. 이제 22세가 된 게리온은 시간과 공간이동을 시도한다. DX100 컬러 필름 6통을 들고, 철학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한다. 독일 철학을 3년 동안 공부한 게리온은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그간 체득한 사유들을 재점검하는 시간을 갖는다. 나는 내 운명의 지배자인가? 그리고 무감정이라 불리는 ‘아타락시아’ 따위에 대해 논한다. 그리고 시간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같은 이야기도 등장한다. 문득 앎이나 지식에 대한 갈망 그리고 궁극의 학문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일련의 과정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디선가 읽은 바에 의하면, 시간은 현대의 발명품이라고 한다. 모든 시간은 유한한 존재인 인간에게 필멸로 귀결된다. 고대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무한이었다면, 모든 것이 정해진 규칙대로 움직여야 하는 현대의 시간은 일종의 압박이자 강박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정해진 시간에 수행해야 하는 노동은 소득자본으로 환산되고, 그렇게 벌어들인 소득은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는데 소진된다. 켜켜이 쌓인 인간관계 역시 시간에 비례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8년이라는 시간차를 뛰어 넘은 시간은, 낯선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헤라클레스와의 재회라는 뜻하지 않은 사건을 소환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좀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게리온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체험에서 빠질 수 없는 탱고 바 방문도 빼먹지 않는다. 바에는 피아노, 기타 그리고 아코디언으로 구성된 밴드가 있었다고 했던가. 난 이 부분에서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가 생각나서 너튜브로 검색해 본다. 그리고 반도네온의 대가 아티스트 고상지 연주에 잠시 넋이 나가기도 했다. 도대체 나의 독서 여정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종잡을 수 없는 사유의 오락가락은 어쩌란 말인가. 그리고 자신이 빨강 악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이 이어지는 탱고 여가수의 기습 질문.

 

예상하지 못했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헤라클레스와의 재회에는 방해꾼이 하나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앙카시. 헤라클레스의 새로운 남자친구란다. 굳이 말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들의 정체성이 어떤지 이제는 알겠지. 그는 에밀리 디킨슨 다큐멘터리에 필요한 화산 소리를 녹음하는 이른바 소리수집가다. 그의 이름은 앙카시(anqash)는 케추아어로 “가벼운”이라는 뜻이라고. 게리온과 헤라클레스의 관계에 비하면 앙카시는 그런 가벼운 존재라는 뜻일까. 그들의 대화에서 다시 한 번 지나간 관계의 시간으로 만들어진 더께들을 현재의 시간이 대체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뭉친 이 기묘한 삼총사들은 진짜 화산의 소리를 기계 장치에 담기 위해 페루의 리마로 달려간다. 이번에 그동안 대충 페루의 수도 리마가 고산도시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태평양 연안에 면한 항구도시였다는 걸 새삼 알게 됐다. 그전에 그들은 해롯 백화점에서 테스카, 호랑이 모형을 훔쳐 앙카시의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리겠다고 소동을 벌였던가. 책을 대하는 나의 의식만큼이나 주인공들의 좌충우돌식 모험도 종잡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리마가 끝이냐고? 천만에 앙카시는 어머니의 고향 우아라스 북쪽 주쿠라는 마을에 화산을 신으로 숭배하는 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화산 내부에서 온 사람들을 케추아말로 일명 ‘야스콜 야스카마크(Yazcol Yazcamac)’, 줄여서 야스카마크라고 하는데 ‘가서 보고 돌아온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말에 게리온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앙카시의 설명에 따르면 야스카마크는 화산이라는 시련을 통과하면서 인간의 유한성까지 포함한 모든 약점을 소멸한 “날개 달린 빨간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설명을 듣고 나면, 심지어 안데스 산맥이라도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로맨스 소설을 천명한 앤 카슨의 <빨강의 자서전>은 점점 더 인간의 본연적인 그리고 철학적 주제들에 서슴지 않고 이렇게 도전장을 들이민다.

 

게리온은 카메라를 들고 “시간의 기원”에 도전한다. 짧은 시간 동안 다 읽어냈지만, 소설의 엔딩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만난 이칸티카(Icchantika:일천제)야말로 소설 <빨강의 자서전>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가 아닐까 싶다. 불가에서는 이칸티카를 아무리 수행해도 깨달음을 없을 수 없는 자라고 규정한다. 한편, 고대 인도에서는 쾌락주의자를 의미한다. 아무리 책을 읽어도 깨달음에 경지에 도달할 수 없는 구제불능의 쾌락주의자가 아닐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캐나다 작가의 소설에서 내가 나의 페르소나 같은 이칸티카의 개념과 만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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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10-10 0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엔 시인이 상을 타서, 외국시를 전혀 읽지 않는 제 입장에서는 상을 탔네 해서 굳이 찾아 읽을 책이 없어 좋습니다. ^^;;

레삭매냐 2026-10-10 08:49   좋아요 2 | URL
저도 시는 잘 몰라서...
그래서 소설을 골라서 읽어
봤습니다.
 
미스 론리하츠 ㅣ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17
너새니얼 웨스트 지음, 이종인 옮김 / 빛소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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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에 필적한 만한 미국 산문계의 대가가 너새니얼 웨스트라고 했던가. 37세의 이른 요절한 한 너새니얼 웨스트의 작품이라고 하니 더욱 관심이 갔다. 이 책이 발표된 해는 1933년 그러니까 1919년부터 시행되던 금주법이 폐지된 해다. 그런데 책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바에 가서 술을 한 잔 걸치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 점이 좀 궁금했다. 이미 그 당시에 금주법은 유명무실한 그런 법이었었나 하고.

 

미스 론리하트는 신문사에서 구독자들의 고민들을 상담해주는 칼럼니스트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독실한 크리스천처럼 보인다. 물론 실제는 그런 삶과는 많이 다르지만. 참고로 '미스'라는 말이 빚어내는 오해와 달리 그는 남자다. 그리고 본명은 나오지 않는다. 얼마 전, 베티라는 여성에게 청혼했지만 또 딱히 그녀와 결혼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하여튼 간에 미스 론리하트란 인간은 정의하기 힘든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 발표되던 1933년은 미국에서 대공황이 한참이던 시절이다. 그래서인지 그에게 편지를 보내는 이들의 삶은 하나 같이 고통과 가난 그리고 다양한 고민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신문사에서는 미스 론리하트의 칼럼이 돈벌이가 될 거라는 점을 정확하게 알았던 모양이다. 아니 타인의 고통과 불행을 통해, 나는 이 정도라면 행복하지 뭐 그런 심산이 아니었을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그 정도는 아니잖아라는 자기만족적 글쓰기랄까.

 

베티는 그런 미스 론리하트의 칼럼 쓰기가 못마땅해 그만 두라고 종용하지만, 이미 자신의 일에 중독된 미스 론리하트는 사실 그럴 생각이 없으면서도 애인을 설득하기 위해 광고대행 일을 찾아보겠다고 공수표를 날린다.

 

침례교 출신 목사님의 자녀답게 항상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해 고민하지만, 또 현실에서는 그만큼 타락한 인간이 없다. 술집에 가서 한 잔 걸치다가, 싸움이 붙어서 이가 다 흔들릴 정도로 얻어터지고 또 의자에 맞는 봉변도 당한다. 그리고 자신의 팬을 자처하는 도일 여사와 불륜을 저지르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잘 나가는 것 같았던 미스 론리하트 삶의 작은 균열이 결국 그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하나의 결정적 탄환이 되었다.

 

미스 론리하트가 구축한 질서는 완벽해 보인다. 애인 베티와의 관계가 조금 삐걱거리긴 하지만, 곧 결혼을 앞두고 있고 신문사에서 구독자들이 보내는 편지에 대한 고민 해결사이자 그리스도의 사제로서의 임무도 나쁘지 않다. 다만 삶이 태생적으로 지닌 가역적 유동성은 미스 론리하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완벽해 보이는 질서 역시 결국 무질서로 향하게 된다는 단순하지만 불변의 메시지를 너새니얼 웨스트는 던지고 싶었던 것일까.

 

소설의 분량은 짧았고, 파국적 엔딩으로 치닫는 진행 속도를 따라 잡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시간을 두고 다시 한 번 읽어야봐야겠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미스 론리하트>가 나에게 크리스 아이셔우드의 <싱글맨> 같은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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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여 잘 있거라 (모노 에디션)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모노 에디션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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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는 항상 우연이라는 생각이다. 이번 여름 지독히도 책을 읽지 않았다. 이제 날도 선선해지고 그랬으니 책 좀 읽어볼까라는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무려 14년 전에 사두었던,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버전으로 읽게 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를 읽었다. 무려 14년이나 걸렸지만, 읽는 데는 달랑 이틀이 걸렸다. 다시 독서력에 발동이 걸리는 걸까.

 

소설의 대가라고 알려진 헤밍웨이의 장편소설이 5권 뿐이라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알게 됐다. 그리고 1929년 9월 27일에 발표된 <무기여 잘 있거라>는 30세의 헤밍웨이가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1차세계대전 당시 이손초 강 유역의 카포레토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발칸반도를 집어 삼키려고 섣불리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전쟁에 나섰던 이탈리아의 무모한 도전이 오스트리아-독일 동맹군의 공격 앞에 무너지는 과정을 그야말로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미국 출신 프레더릭 헨리다. 이탈리아 전우들에게 그는 종종 페데리코 엔리코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그래서 나는 그를 페데리코라고 부르기로 했다. 때는 1915년 겨울, 이탈리아 북부 우디네 부근의 최전선에 배치된 페데리코는 앰뷸런스 운전을 맡은 중위로 참전했다. 콜레라가 유행해서 7천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죽었다는 이이야기로 소설이 시작된다.

 

그런데 미국 출신의 페데리코는 아직 미국이 전쟁에 정식으로 참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이탈리아군에 가담하고 전투에 배치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기대한 미국에서 삶에 대한 이야기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젊은 미국 청년은 오로지 동료이자 외과 의사인 리날디와 사제 그리고 몇몇 이탈리아 전우들과 시덥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순간의 단순한 쾌락을 추구하는 그런 청춘으로 소개된다.

 

그러던 중에, 리날디를 통해 알게 된 스코틀랜드 출신 금발의 간호사 캐서린 바클리를 만나면서 인생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미국인답게 금세 사랑에 빠지고, 또 격정적인 사랑으로 이어지게 된다. 첫 만남부터 다짜고짜 키스를 시도하다가, 바클리 양에게 뺨을 맞기도 하는 봉변을 당한다. 이런 게 전형적인 미국식 연애방식이었나. 연애를 일종의 브리지 게임 정도로 생각하는 화자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 페데리코가 바클리 양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관계가 시작된 건 아니었다. 무려 8년이나 만난 약혼자를 솜므 전투에서 잃은 바클리 양의 사연에 서글퍼졌다. 처음부터 왠지 앞으로 벌어질 비극을 예언하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헤밍웨이가 구사하는 강력한 서사의 힘은, 마치 하드보일드 액션영화를 보는 것처럼 자세한 사항이나 미묘한 감정에 대한 묘사 없이 격렬한 사랑으로 폭풍처럼 페데리코와 캐서린을 몰고 들어간다.

 

페데리코와 캐서린의 사랑이 깊어 갈수록, 이손초 전선에서 맞붙은 오스트리아군과 이탈리아군의 전투 역시 날이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었다. 공격에 나선 이탈리아군은 19만이나 되는 대병력을 잃고 위기에 봉착했다. 사람들은 이런 추세라면, 이탈리아가 전쟁에 이길 수 없다는 전망까지 할 정도였다. 이탈리아군은 잡다한 민족으로 구성된 오스트리아군보다, 훈족의 후예라며 두려워하는 독일군의 공세를 더 두려워했다. 소설에서 헤밍웨이는 독일군 15개 사단이 훗날 이어질 카포레토 전투에 투입되었다고 기록했지만, 실제로는 독일군 6개 사단과 오스트리아군 9개 사단으로 구성된 동맹군 15개 사단이 이탈리아군을 위기로 몰아 넣었다. 훗날 사막의 여우로 명성을 날리게 되는 에르빈 롬멜이 카포레토 전투에 등장했다.

 

한편, 전선에서 페데리코가 마네라와 파시니 그리고 가부치들과 전쟁에 대한 신랄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헤밍웨이의 반전 메시지를 읽을 수가 있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이란 말인가? 누구도 손해를 보면서 전쟁을 멈출 수 없기 때문에 끝없는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으로 돈을 버는 인간들의 탐욕도 제어할 수가 없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적의 박격포탄 공격이 시작된다. 다리 부상을 당한 파시니는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페데리코는 참호용 박격 포탄을 맞아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하고 후방 밀라노로 후송된다. 그 결과, 은성 훈장을 받게 되는데 전장에서의 눈부신 무공을 세훈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헤밍웨이는 콕 집어서 서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캐서린과 다시 만나 사랑을 확인하고 미래를 약속하게 된다.

 

부상에서 치유 중인 페데리코는 찾아온 사제는 이제 전쟁이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생명을 직접 위협하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지에서 벗어난 페데리코가 전쟁을 혐오하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싶다. 다시 한 번, 왜 페데리코가 미국에서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자신의 삶과 직접적 관계도 없는 이탈리아 전선에서 싸우는 이유에 대해 알고 싶었찌만, 헤밍웨이는 이번에도 능숙하게 전쟁이 계속되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로 본질적 문제들을 회피한다.

 

그렇게 6개월 정도를 밀라노에서 무릎 부상을 치료한 페데리코는 카포레토 전투가 벌어질 전장으로 복귀한다. 1917년 10월 24일 독일-오스트리아의 대공세 앞에, 이탈리아군 전선은 붕괴되고 대규모 퇴각에 나선다. 페데리코 역시 적군의 파상공세 앞에, 속수무책으로 담당한 앰뷸런스를 상실하고 동료들과 후퇴길에 나선다. 미국 출신 장교라는 정체성으로 헌병대에 체포되어 탈영병으로 간주되어 총살당할 위기에서 탈리아멘토강에 몸을 던져 탈출에 성공한다.

 

구사일생으로 익사의 위기에서 벗어난 페데리코는 추위와 허기 그리고 고통에 시달리면서 캐서린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의 힘으로 밀라노에 도착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캐서린이 스트레사로 떠났다는 말을 듣고 다시 그녀를 찾아 길을 나선다. 스트레사에서 캐서린과 재회한 페데리코는 다시 안식을 찾아 스위스까지 보트로 탈출하게 된다. 영구중립국인 스위스에서 그들에게 행복한 시간은 잠시 뿐, 결국 소설은 비극적 엔딩으로 치닫는다.

 

헤밍웨이는 인류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이라는 전통적 테마를 중심에 두고, 포탄이 비오듯이 쏟아지는 전장을 배경으로 반전 메시지를 가득 담아 <무기여 잘 있거라>를 발표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한결 같이 전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캐서린은 자신이 사랑하던 약혼자를 솜므 전투에서 잃었다. 신의 사랑을 전파하는 사제는 물론이고, 곳곳에서 등장하는 소시민과 일반 병사들 역시 전쟁의 무용성을 설파하고, 어떻게 하면 전쟁을 끝낼 수 있는지에 대해 격렬한 토론을 마다하지 않는다. 누구보다도 전쟁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심각한 부상을 당하고, 결국 자신만의 종전 선언을 한 페데리코야말로 소설의 핵심 메시지라고 할 수 있는 반전을 그대로 상징하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반드시 전쟁에서 살아남아 사랑하는 캐서린과 꼬마 캐서린을 돌봐야 한다는 사명감이 점층적으로 생산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이 발표된 뒤, 3년 후에 만들어진 게리 쿠퍼 주연의 동명 영화는 원작 소설을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소설의 엔딩은 1918년 3월경인데, 영화에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연합국에 항복하고 이탈리아가 승리했다는 부분이 등장한다. 캐서린이 난산 끝에 죽는 장면도 소설에서는 상대적으로 담담하게 처리됐다면, 드라마성을 강조하는 영화는 좀 더 애절하고 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여담으로 1929년 <무기여 잘 있거라>가 발표될 당시에는 소설의 몇몇 부분들이 검열되기도 했다고 한다. 2025년 판본에는 헤밍웨이가 수정한 부분들이 검열 이전의 상태로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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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6-09-25 2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추석 잘 보내셨나요.
가족과 함께 즐거운 명절 보내시고, 남은 연휴 편안하고 좋은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