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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아름다움 - 스물아홉 번의 탱고로 쓴 허구의 에세이
앤 카슨 지음, 민승남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앤 카슨의 책들을 잇달아 읽고 있다. 이북의 시대, 언제라도 원하는 책을 집에서 편하게(다만 누워서 보기에는 조금 불편한) 빌려서 볼 수 있게 되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빨강의 자서전>에 이어 <남편의 아름다움>도 바로 주파했다.
저자의 그리스 문화, 특히 호메로스에 대한 사랑은 노골적이다. 굳이 넣어야 할 필요가 있나 싶은 내가 영원히 알 수 없었던 기원전 413년의 아테네군의 시켈리아 원정 당시 벌어졌던 에피폴라이 전투까지 자신의 작품에 인용하는 발군의 실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조금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단면을 보았다고나 할까. 대단하다 대단해.
아름다움 때문에 그를 사랑했다는 고백을 들어 보면, 화자의 남편은 아름다웠던 모양이다. 얼굴 뜯어 먹고 살 일 있냐는 속된 표현을 자주 들었지만, 삶에서 어떤 형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걸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런데 개개인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이데아란 과연 무엇일까? 모두가 동의하는 그런 수준의 아름다움일까? 현대 문명에서 아름다움조차 획일적으로 평가되고, 또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서 화폐가치로 환산되어 거래가 되고 있는 건 아닌지하는 상상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남편의 아내의 몸보다 나폴레옹이 치른 보로디노 전투에 더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놀랍군 그래. 그렇다면 그는 현재가 아닌 과거에 사는 사람일까? 그런데 계속해서 꾸준하게 거짓말을 하고, 바람을 피워대는 걸 보면 또 그런 거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남편은 어제 앤 카슨의 작품에서 한자락 배운 이칸티카(아무리 수행해도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 구제불능의 중생) 같은 인물이 아닐까.
작가의 남편이 구사하는 거짓말에 대한 현란한 분석이 마음에 들었다. 삶의 대부분이 거짓과 위선으로 점철되어 어느 순간에는 심지어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마구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심지어 상대방이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걸, 인지하면서도 내 거짓말을 멈출 수 없다고. 모든 게 거짓이라는 블록으로 쌓아 올린 것이기에, 단 하나의 블록이라도 빠지면 삶 전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어서 거짓말을 계속했다는 정도의 변명이 조금은 위로가 되려나. 모두가 알겠지만, 삶에서 어느 정도의 거짓말의 춤추기가 또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 않나.
작가는 스스로를 이른바 ‘비주얼 아티스트’라는 말로 표현했다고 하는데, 책의 곳곳에서 번득이는 앤 카슨의 문장력을 감탄을 자아낼 만하다. 말과 사물의 연결점은 신들의 방식이라고 했던가. 의사소통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인 말이 내 의사에 반해서 상대에게 도달할 때, 난감해 하던 적이 한두번이던가. 존재는 아름다움에 의존한다는 표현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존재는 아름다움에 이를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우리는 추상적 혹은 현실적 아름다움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반복되는 작가의 시적 구사의 모호함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독자의 상상력을 그야말로 무한대로 끌어 올린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제낀 자신감의 표출일까 과연.
낮 세계는 밤의 그것에 비해 저속하고 명백하다는 구절도 마음에 들었다. 낮의 빛은 타인은 절대 알 수 없는 아름다운 남편 사이에서 벌어지는 위선과 갈등, 증오를 상징하는 밤의 어둠과 대조되는 이미지를 창조한다. 어쩌면 부부간의 결혼생활이란, 대혼란 혹은 아수라장을 의미하는 팬더모니엄처럼 무질서 가운데 질서를 구축해 나가는 지난한 과정이라는 생각도 잠깐 해봤다. 아름다운 남편이 툭하면 내세우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사랑과 전쟁>을 떠올렸다면 무리수일까나. 그 외에도 아름다움의 주사위나 요한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분절과 편린들이 오간다. 그걸 하나하나 다 이야기하자면 리뷰가 끝도 없이 이어질 것만 같다. 단시간에 과다하게 입력된 정보들을 다루려다 보니 지친다.
여하튼 탱고 검색의 알고리즘은 나를 다시 한 번 탱고의 세계로 인도했다. 어려서 좋아하다가 까먹은 <라 쿰파르시타>의 그야말로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 올리며, 야릇하게 간드러지는 연주가 일품이다. 역시 너튜브의 도움으로 반도네그로라는 밴드를 알게 됐는데, 아주 마음에 든다. 앤 카슨은 탱고를 ‘순전한 방탕함’이라고 표현했는데 왠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더라.
무엇이 나를 삶의 의지로 그리고 튼튼하게 만드는가?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아마도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 더 나아가서는 욕망이라고. 우리는 나와 구별되는 바깥의 우주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남편의 아름다움>은 다 읽고 나서 리뷰를 쓰다 보니, 읽을 때보다 더 많은 사유를 하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