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여 잘 있거라 (모노 에디션) 열린책들 세계문학 모노 에디션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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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는 항상 우연이라는 생각이다. 이번 여름 지독히도 책을 읽지 않았다. 이제 날도 선선해지고 그랬으니 책 좀 읽어볼까라는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무려 14년 전에 사두었던,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버전으로 읽게 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를 읽었다. 무려 14년이나 걸렸지만, 읽는 데는 달랑 이틀이 걸렸다. 다시 독서력에 발동이 걸리는 걸까.

 

소설의 대가라고 알려진 헤밍웨이의 장편소설이 5권 뿐이라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알게 됐다. 그리고 1929927일에 발표된 <무기여 잘 있거라>30세의 헤밍웨이가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1차세계대전 당시 이손초 강 유역의 카포레토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발칸반도를 집어 삼키려고 섣불리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전쟁에 나섰던 이탈리아의 무모한 도전이 오스트리아-독일 동맹군의 공격 앞에 무너지는 과정을 그야말로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미국 출신 프레더릭 헨리다. 이탈리아 전우들에게 그는 종종 페데리코 엔리코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그래서 나는 그를 페데리코라고 부르기로 했다. 때는 1915년 겨울, 이탈리아 북부 우디네 부근의 최전선에 배치된 페데리코는 앰뷸런스 운전을 맡은 중위로 참전했다. 콜레라가 유행해서 7천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죽었다는 이이야기로 소설이 시작된다.

 

그런데 미국 출신의 페데리코는 아직 미국이 전쟁에 정식으로 참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이탈리아군에 가담하고 전투에 배치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기대한 미국에서 삶에 대한 이야기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젊은 미국 청년은 오로지 동료이자 외과 의사인 리날디와 사제 그리고 몇몇 이탈리아 전우들과 시덥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순간의 단순한 쾌락을 추구하는 그런 청춘으로 소개된다.

 

그러던 중에, 리날디를 통해 알게 된 스코틀랜드 출신 금발의 간호사 캐서린 바클리를 만나면서 인생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미국인답게 금세 사랑에 빠지고, 또 격정적인 사랑으로 이어지게 된다. 첫 만남부터 다짜고짜 키스를 시도하다가, 바클리 양에게 뺨을 맞기도 하는 봉변을 당한다. 이런 게 전형적인 미국식 연애방식이었나. 연애를 일종의 브리지 게임 정도로 생각하는 화자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 페데리코가 바클리 양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관계가 시작된 건 아니었다. 무려 8년이나 만난 약혼자를 솜므 전투에서 잃은 바클리 양의 사연에 서글퍼졌다. 처음부터 왠지 앞으로 벌어질 비극을 예언하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헤밍웨이가 구사하는 강력한 서사의 힘은, 마치 하드보일드 액션영화를 보는 것처럼 자세한 사항이나 미묘한 감정에 대한 묘사 없이 격렬한 사랑으로 폭풍처럼 페데리코와 캐서린을 몰고 들어간다.

 

페데리코와 캐서린의 사랑이 깊어 갈수록, 이손초 전선에서 맞붙은 오스트리아군과 이탈리아군의 전투 역시 날이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었다. 공격에 나선 이탈리아군은 19만이나 되는 대병력을 잃고 위기에 봉착했다. 사람들은 이런 추세라면, 이탈리아가 전쟁에 이길 수 없다는 전망까지 할 정도였다. 이탈리아군은 잡다한 민족으로 구성된 오스트리아군보다, 훈족의 후예라며 두려워하는 독일군의 공세를 더 두려워했다. 소설에서 헤밍웨이는 독일군 15개 사단이 훗날 이어질 카포레토 전투에 투입되었다고 기록했지만, 실제로는 독일군 6개 사단과 오스트리아군 9개 사단으로 구성된 동맹군 15개 사단이 이탈리아군을 위기로 몰아 넣었다. 훗날 사막의 여우로 명성을 날리게 되는 에르빈 롬멜이 카포레토 전투에 등장했다.

 

한편, 전선에서 페데리코가 마네라와 파시니 그리고 가부치들과 전쟁에 대한 신랄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헤밍웨이의 반전 메시지를 읽을 수가 있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이란 말인가? 누구도 손해를 보면서 전쟁을 멈출 수 없기 때문에 끝없는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으로 돈을 버는 인간들의 탐욕도 제어할 수가 없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적의 박격포탄 공격이 시작된다. 다리 부상을 당한 파시니는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페데리코는 참호용 박격 포탄을 맞아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하고 후방 밀라노로 후송된다. 그 결과, 은성 훈장을 받게 되는데 전장에서의 눈부신 무공을 세훈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헤밍웨이는 콕 집어서 서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캐서린과 다시 만나 사랑을 확인하고 미래를 약속하게 된다.

 

부상에서 치유 중인 페데리코는 찾아온 사제는 이제 전쟁이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생명을 직접 위협하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지에서 벗어난 페데리코가 전쟁을 혐오하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싶다. 다시 한 번, 왜 페데리코가 미국에서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자신의 삶과 직접적 관계도 없는 이탈리아 전선에서 싸우는 이유에 대해 알고 싶었찌만, 헤밍웨이는 이번에도 능숙하게 전쟁이 계속되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로 본질적 문제들을 회피한다.

 

그렇게 6개월 정도를 밀라노에서 무릎 부상을 치료한 페데리코는 카포레토 전투가 벌어질 전장으로 복귀한다. 19171024일 독일-오스트리아의 대공세 앞에, 이탈리아군 전선은 붕괴되고 대규모 퇴각에 나선다. 페데리코 역시 적군의 파상공세 앞에, 속수무책으로 담당한 앰뷸런스를 상실하고 동료들과 후퇴길에 나선다. 미국 출신 장교라는 정체성으로 헌병대에 체포되어 탈영병으로 간주되어 총살당할 위기에서 탈리아멘토강에 몸을 던져 탈출에 성공한다.

 

구사일생으로 익사의 위기에서 벗어난 페데리코는 추위와 허기 그리고 고통에 시달리면서 캐서린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의 힘으로 밀라노에 도착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캐서린이 스트레사로 떠났다는 말을 듣고 다시 그녀를 찾아 길을 나선다. 스트레사에서 캐서린과 재회한 페데리코는 다시 안식을 찾아 스위스까지 보트로 탈출하게 된다. 영구중립국인 스위스에서 그들에게 행복한 시간은 잠시 뿐, 결국 소설은 비극적 엔딩으로 치닫는다.

 

헤밍웨이는 인류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이라는 전통적 테마를 중심에 두고, 포탄이 비오듯이 쏟아지는 전장을 배경으로 반전 메시지를 가득 담아 <무기여 잘 있거라>를 발표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한결 같이 전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캐서린은 자신이 사랑하던 약혼자를 솜므 전투에서 잃었다. 신의 사랑을 전파하는 사제는 물론이고, 곳곳에서 등장하는 소시민과 일반 병사들 역시 전쟁의 무용성을 설파하고, 어떻게 하면 전쟁을 끝낼 수 있는지에 대해 격렬한 토론을 마다하지 않는다. 누구보다도 전쟁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심각한 부상을 당하고, 결국 자신만의 종전 선언을 한 페데리코야말로 소설의 핵심 메시지라고 할 수 있는 반전을 그대로 상징하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반드시 전쟁에서 살아남아 사랑하는 캐서린과 꼬마 캐서린을 돌봐야 한다는 사명감이 점층적으로 생산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이 발표된 뒤, 3년 후에 만들어진 게리 쿠퍼 주연의 동명 영화는 원작 소설을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소설의 엔딩은 19183월경인데, 영화에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연합국에 항복하고 이탈리아가 승리했다는 부분이 등장한다. 캐서린이 난산 끝에 죽는 장면도 소설에서는 상대적으로 담담하게 처리됐다면, 드라마성을 강조하는 영화는 좀 더 애절하고 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여담으로 1929<무기여 잘 있거라>가 발표될 당시에는 소설의 몇몇 부분들이 검열되기도 했다고 한다. 2025년 판본에는 헤밍웨이가 수정한 부분들이 검열 이전의 상태로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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