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빨강의 자서전 - 시로 쓴 소설
앤 카슨 지음, 민승남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어제 202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캐나다 출신 시인이자 소설가, 고대 그리스어 전문가 기타 등등의 타이틀을 지닌 앤 카슨이다. 수상 소식을 듣고, 집의 책탑에서 어딘가에 파묻혀 있을 작가의 책을 찾기 시작한다. 오래 전에 어디선가 수배해 두었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일찌감치 포기하고 대신 경기도서관 구독형 이북으로 읽기 시작했다. 정말 편한 세상이다. 이제는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지 않고서도 집에서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는 세상에 되었다.
기원전 7세기 경의 고대 그리스 시인 스테시코로스가 남긴 <게리오네이스>가 <빨강의 자서전>의 모티프가 된 작품이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어 전문가인 작가는 해당 작품을 자신의 스타일로 변형해서 새롭게 재창작했고, 가상의 인터뷰까지 책에 실었다. 어쩌면 다른 문화권에 사는 우리로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차원의 변용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방면에서는 매들린 밀러라는 작가가 비슷한 결의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앤 카슨의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진입장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 중에 하나가 소위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으로 알려진 에피소드다. 헤라의 미움을 받은 헤라클레스는 12가지 과업을 부여 받았다. 그 중에 하나가 서쪽 끝 에리테이아 섬에 멋진 소떼를 가지고 있는 게리온에게서 소떼를 훔쳐 오라는 헤라의 명령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소몰이꾼 안타이오스와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오르트로스를 이기고, 세 사람의 몸뚱이를 지닌 게리온과 정면대결을 벌이고 마침내 히드라의 독을 바른 화살로 그를 처치하고 소떼를 차지하는데 성공한다. 물론 귀환 길에 헤라의 방해로 소들이 모두 도망가 버리는 곤경에 처하기도 하지만.
앤 카슨이 “로맨스”라고 명명한 소설의 주인공은 게리온이다. 어려서 형에게 성적으로 시달린 게리온은 자신에 대한 자서전을 쓰기 시작한다. 14살에 된 게리온은 헤라클레스를 만나 묘한 관계에 빠지게 된다. 둘은 헤라클레스의 고향이라는 소도시 하데스(HADES)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하데스는 명계 또는 음부를 지칭하지 않는가. 동시에 죽음의 장소이기도 하다. 헤라클레스가 그곳 출신이라는 점은, 스테시코로스의 작품에서처럼 헤라클레스의 출현이 게리온에게는 죽음을 상징한다는 뜻일까. 종잡을 수 없는 모호함이 넘실거리는 가운데, 서사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곳에서 헤라클레스의 할머니는 1923년 화산폭발 사건과 유일하게 생존한 용암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시를 뒤덮은 화산폭발로 모든 사람이 죽었지만, 감옥에 갇혀 있던 재소자 한 명만 살아남았다고. 그리고 그는 순회 서커스단에 들어가 자신의 운을 이용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했던가. 그것은 마치 신화 속의 헤라클레스가 12가지 과업이라는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미션들을 해치우는 과업이 서커스라는 암시였을까. 신이 점지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무기력한 인간 한계에 대한 일종의 냉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에서 게리온은 꾸준하게 카메라로 기억을 기록하고, 시간을 포착한다. 이제 22세가 된 게리온은 시간과 공간이동을 시도한다. DX100 컬러 필름 6통을 들고, 철학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한다. 독일 철학을 3년 동안 공부한 게리온은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그간 체득한 사유들을 재점검하는 시간을 갖는다. 나는 내 운명의 지배자인가? 그리고 무감정이라 불리는 ‘아타락시아’ 따위에 대해 논한다. 그리고 시간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같은 이야기도 등장한다. 문득 앎이나 지식에 대한 갈망 그리고 궁극의 학문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일련의 과정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디선가 읽은 바에 의하면, 시간은 현대의 발명품이라고 한다. 모든 시간은 유한한 존재인 인간에게 필멸로 귀결된다. 고대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무한이었다면, 모든 것이 정해진 규칙대로 움직여야 하는 현대의 시간은 일종의 압박이자 강박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정해진 시간에 수행해야 하는 노동은 소득자본으로 환산되고, 그렇게 벌어들인 소득은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는데 소진된다. 켜켜이 쌓인 인간관계 역시 시간에 비례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8년이라는 시간차를 뛰어 넘은 시간은, 낯선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헤라클레스와의 재회라는 뜻하지 않은 사건을 소환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좀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게리온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체험에서 빠질 수 없는 탱고 바 방문도 빼먹지 않는다. 바에는 피아노, 기타 그리고 아코디언으로 구성된 밴드가 있었다고 했던가. 난 이 부분에서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가 생각나서 너튜브로 검색해 본다. 그리고 반도네온의 대가 아티스트 고상지 연주에 잠시 넋이 나가기도 했다. 도대체 나의 독서 여정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종잡을 수 없는 사유의 오락가락은 어쩌란 말인가. 그리고 자신이 빨강 악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이 이어지는 탱고 여가수의 기습 질문.
예상하지 못했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헤라클레스와의 재회에는 방해꾼이 하나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앙카시. 헤라클레스의 새로운 남자친구란다. 굳이 말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들의 정체성이 어떤지 이제는 알겠지. 그는 에밀리 디킨슨 다큐멘터리에 필요한 화산 소리를 녹음하는 이른바 소리수집가다. 그의 이름은 앙카시(anqash)는 케추아어로 “가벼운”이라는 뜻이라고. 게리온과 헤라클레스의 관계에 비하면 앙카시는 그런 가벼운 존재라는 뜻일까. 그들의 대화에서 다시 한 번 지나간 관계의 시간으로 만들어진 더께들을 현재의 시간이 대체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뭉친 이 기묘한 삼총사들은 진짜 화산의 소리를 기계 장치에 담기 위해 페루의 리마로 달려간다. 이번에 그동안 대충 페루의 수도 리마가 고산도시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태평양 연안에 면한 항구도시였다는 걸 새삼 알게 됐다. 그전에 그들은 해롯 백화점에서 테스카, 호랑이 모형을 훔쳐 앙카시의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리겠다고 소동을 벌였던가. 책을 대하는 나의 의식만큼이나 주인공들의 좌충우돌식 모험도 종잡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리마가 끝이냐고? 천만에 앙카시는 어머니의 고향 우아라스 북쪽 주쿠라는 마을에 화산을 신으로 숭배하는 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화산 내부에서 온 사람들을 케추아말로 일명 ‘야스콜 야스카마크(Yazcol Yazcamac)’, 줄여서 야스카마크라고 하는데 ‘가서 보고 돌아온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말에 게리온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앙카시의 설명에 따르면 야스카마크는 화산이라는 시련을 통과하면서 인간의 유한성까지 포함한 모든 약점을 소멸한 “날개 달린 빨간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설명을 듣고 나면, 심지어 안데스 산맥이라도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로맨스 소설을 천명한 앤 카슨의 <빨강의 자서전>은 점점 더 인간의 본연적인 그리고 철학적 주제들에 서슴지 않고 이렇게 도전장을 들이민다.
게리온은 카메라를 들고 “시간의 기원”에 도전한다. 짧은 시간 동안 다 읽어냈지만, 소설의 엔딩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만난 이칸티카(Icchantika:일천제)야말로 소설 <빨강의 자서전>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가 아닐까 싶다. 불가에서는 이칸티카를 아무리 수행해도 깨달음을 없을 수 없는 자라고 규정한다. 한편, 고대 인도에서는 쾌락주의자를 의미한다. 아무리 책을 읽어도 깨달음에 경지에 도달할 수 없는 구제불능의 쾌락주의자가 아닐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캐나다 작가의 소설에서 내가 나의 페르소나 같은 이칸티카의 개념과 만나게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