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7일

 

반딧불이 - 무라카미 하루키 <헛간을 태우다>

 

오래 전 수중에 넣은 하루키의 <반딧불이> 소설집에 실린 <헛간을 태우다>를 읽었다. 계기는 이번에 이창동 감독이 영상화해서 칸느 영화제에 연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였다.

 

마침 책장에 꽂혀 있던 터라 바로 읽을 수가 있었다. 단편은 심심했다. 오마이뉴스에서 영화 <버닝>에 대한 기사를 읽고나서 영화에 대한 상당한 정보는 입수했는데 소설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역시 귤이 회하를 건너면 낑강이 되는 법인가.

 

마라톤, 레코드 그리고 화이트 와인 같이 일본적이라기 보다 코스모폴리탄적인 요소들로 특징 지워진 하루키의 글은 1990년대에는 우리나라에서 먹혔을 진 몰라도 이제 그런 분위기들이 일상이 되어 버린 2018년 대한민국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어 버린 ‘쿨함’이라고나 할까. 그 시절에는 누가 봐도 우와하고 감탄을 내지를 법한 페데리코 펠리니의 흑백영화를 연상시키는 은빛 색깔의 독일산 스포츠카도 그닥 감흥을 자아내진 못하는구나.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변하는 법이다.

 

기이한 인연으로 알게 된 그녀와 소설을 쓰는 기혼의 남자 나 그리고 북아프리카를 여행하다가 우연히 만난 그녀의 남자 친구가 빚어내는 기묘한 조합이 낯설기만 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북아프리카라니. 게다가 무역 일을 한다는 남자의 스타일은 기가 막힐 정도로 멋지다. 스포츠카에 그래스를 마는 남자라...

 

그녀는 물론 두 남자의 긴장을 교묘하게 만들어내는 그런 팜므파탈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역시 하루키 스타일답게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다. 대신 남은 두 남자는 기묘한 욕망, 헛간 태우기에 대한 비밀을 공유하기에 이른다. 그녀의 애인 못지않게 집착하는 남자, 그러니까 소설의 나레이터는 그녀의 애인이 태우겠다고 선언한 주변의 헛간 찾기에 나선다.

 

어디로 가는지 방향성도 없고, 헛간 태우기라는 기묘한 맥거핀을 내세웠지만 결국 이게 뭐야?라는 식으로 끝이 나는 엔딩도 하루키답게 싱거웠다. 뭐 그런 거겠지.

 

 

[뱀다리] 영화 <버닝>에서 ‘쓰리투탱고’는 종수(유아인), 해미 그리고 벤이라고 한다.

 

원작 소설에서 그녀의 애인은 헛간을 태우러 다니지만, 영화 <버닝>에서 벤은 비닐하우스를 노린다. 비닐하우스가 아마 우리에게 더 적합할 테니까. 탁월한 선택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년 5월 16일

 

안녕 코르시카 그리고 제발트 안녕

 

드디어 제발트 작가의 마지막 책이 출간된 모양이다. 올해 제발트 전작읽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애를 먹이던 <아우스터리츠>도 읽고, 특별한 인연의 <공중전과 문학>도 다시 읽고 리뷰도 마침내 썼다.

 

이제 아직 읽지 못한 시집 하나, 그리고 읽었지만 리뷰로 기록하지 못한 현기증 정도가 남았는데 이제 마지막 책이 나왔다고 하니 한편으로 쓸쓸한 마음이다.

 

동시대 작가에 대한 기대는, 계속해서 그가 책을 펴낼 거라는 기대감인데 이제 고인이 된 작가에 대해서는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쉽다.

 

그래서 4편의 산문 그리고 14편의 에세이가 담긴 <캄포 산토>는 찬찬히 조금씩 야금야금 읽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책욕심에 벌써 천재전략가 나폴레옹이 나고 자란 아작시오에 대한 첫 번째 산문을 읽어 버렸다. 바로 두 번째 <캄포 산토>(이태리 어로 교회 묘지를 뜻한다고 한다)를 읽기 시작했다. 주제 사라마구의 책처럼 띄어쓰기가 부족해서 좀 답답하다.

 

이번 주말에는 캄포 산토와 함께 하는 그런 시간들이 될 것 같다.

 

 

5월 18일 추가


어젯밤에 잠이 오지 않아 결국 캄포 산토를 다시 집어 들었다. 초반의 코르시카 이야기는 아름다웠고, 14편의 에세이들은 강렬했다.


자신의 인생을 통해 꾸준하게 비판했던 전후 독일문학인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맥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제발트의 다른 책들을 모두 읽은 이들이 읽어야 할 책이었다. 아우스터리츠, 공중전과 문학 등등... 우리나라에는 아마 아직 소개되지 않은 카자크의 소설과 노사크의 에세이들, 페터 바이스의 수사에 이르기까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독일문학의 한계는 과연 어디일까. 독일문학에 제발트의 존재야말로 축복이다, 우리의 누군가와는 달리.


페터 바이스의 <저항의 미학>은 역시나 1권만 사서 읽다 말았는데 이번 기회에 아마도 다시 읽어야지 싶다. 아, 파스빈더와 뉴저먼시네마를 이끌었던 알렉산더 클루게의 소설집도 을유문화사에 나왔다는데 이 책도 한 번 구해서 읽어봐야겠다. 세상은 넓고 읽은 책들은 역시나 부지기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8-05-25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넘 아름다워서 아껴서 읽고 싶어요!
이 책 나오자마자 장바구니에 담았던 터라 레샥매냐님 글 쓰신 거 봤음 땡스투 했을텐데 안탑!

레삭매냐 2018-05-25 21:38   좋아요 1 | URL
책은 애당초에 다 읽었는데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 지 몰라서 일주일 째 언제 쓰나
라는 생각만 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이제 더 이상 제발트의 작품들을 볼 수
없다는 게 고저 아쉬울 따름입니다.
 
지팡이 대신 권총을 든 노인
대니얼 프리드먼 지음, 박산호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멤피스가 미국 어느 주에 있는 도시더라. 엘비스는 펠비스라 불리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고향이 멤피스 아니었나. NYU 출신 변호사는 예전부터 작가의 꿈을 꾼 모양이다. 이름과 작품에 등장한 유대인 주인공의 버크 샤츠라는 이름으로 보아 아마 유대계 출신이 아닐까 추정된다.

 

특이하게 출판사가 아닌 교보문고에서 출간된 대니얼 프리드먼의 <지팡이 대신 권총을 드 노인>은 숨겨진 나치의 황금을 찾게 된다는, 조금은 황당한 설정으로 출발한다. 멤피스에서 뛰어난 민완형사로 활동하다가 오래전에 은퇴해서 노년을 즐기던 버크 샤츠는 오래전 전우 짐 월리스에게 죽음의 시간이 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를 찾아간다. 죽기 전, 자신이 그동안 친구에게 숨겨온 비밀 그러니까 전쟁포로 시절 버크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엄청나게 학대했던 나치 전범 하인이히 지글러가 엄청난 금액의 황금덩어리를 가지고 도주하는 것을 뇌물(황금 한 덩어리)을 받고 묵인해 주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히고 죽는다.

 

이제는 더 이상 예전 같이 완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된 87세의 버크 할아버지는 나이가 들면 당연시 되는 기억력 감퇴와 조금만 액션을 사용해도 온 몸에 멍이 드는 유리같은 체력의 소유자다. 물론 기질 만큼은 한창 시절의 그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그러지 못한 일을 냉철하게 분석해 내는 그런 능력이 아닐까. 뉴욕에서 날아온 손자 빌리/테킬라의 도움으로 자신을 핍박했던 개자식 지글러는 찾아 나선다.

 

그렇게 나치 전범을 찾는 것만으로는 아마 이야기가 되지 않겠다고 프리드먼 작가는 판단했는지 염통이 다 쫄깃해지는 다양한 긴장 요소들을 수차례 삽입한다. 나치 황금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는 도박중독으로 타락한 목사님 카인드 박사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탐욕스러운 월리스의 사위 노리스 필리, 구 소련 출신 유대인 요원 이츠하크 스타인블라트 그리고 이웃 세인트루이스 출신 채무업자 프랫에 이르기까지 왜 그들이 지글러의 황금이 자기 것이라는 합리적인 설명 없이 그저 주인 없는 돈은 내거다라며 들이대는 한바탕 소동 속으로 저자는 독자를 인도한다.

 

저자 대니얼 프리드먼은 변호사 출신답게, 버크와 테킬라가 나치의 황금을 수중에 넣기 위해 추적해 가는 과정에 마주하는 소소한 법률적인 정보들을 아주 자세하게 제공한다. 한 마디로 말해 자신의 전공을 발휘한다고나 할까. 가령 예를 들어 버크 2인조가 찾아낸 나치의 황금을 집안에 두는 게 차에 보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는 사실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프라이버시 이슈 때문에 가택수색은 개인의 사적 공간으로 간주되어 엄격하게 보장하지만 자동차는 공적 공간으로 분류된다고 했던가. 버크가 지글러 행세를 해서 안전보관 금고로 황금을 찾으러 갔을 적에도, 서명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은행 대리인을 윽박질러 대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한편 저자는 스릴러의 창조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유대인 행세를 하며 일련의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킬러가 소설에 등장하는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프리드먼은 극대화한다. 그러니까 그런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이 소설을 흥행시키는 주요한 요소라는 점을 정확하게 파악해낸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점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리고 그가 범인으로 지목한 선수에 대해, 혹시 범인이 아닐까 하는 내 예감이 적중해서 더 만족스러웠다. 어쩌면 저자가 이 흥미진진한 소설의 곳곳에 포진시킨 범행의 동기와 기회야말로 독자의 예단을 흐리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였을 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악당에게도 그리고 조용하게 은퇴를 해서 살아가는 우리의 주인공 버크 샤츠에게도 죽음은 공평하다는 조용한 저자의 의견도 멋지다. 이제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될 87세의 노인장이 매그넘을 쏘아 대고, 결국엔 온통 금연천지가 된 세상에서 발할라 에스테이트 요양원 행을 받아들이는 장면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게 다가왔다. 뭐 인생이 그렇게 가는 거겠지. 멋진 소설이었고, 예상 외로 단박에 읽었다. 사실 이 책을 다 읽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었다고 고백해야겠지만.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syche 2018-05-15 0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멤피스는 테네시주에 있는데요. 사실 엘비스가 태어난 곳은 아니고 거기서 자라고 활동을 했죠. 멤피스는 록큰롤의 고향이라고 불리는데 미국에서 위험한 도시 5위안에 항상 드는 그런 곳이기도 해요.
그건 그렇고 책이 무척 재미있어 보이네요 ^^

레삭매냐 2018-05-15 09:40   좋아요 1 | URL
말씀 듣고 위키피디아 검색해 보니 출신은
미시시피 터펄로라는 곳이라고 하는군요.

전 지금까지 엘비스가 멤피스 출신으로
알고 있었네요 :>

그나저나 멤피스가 정말 위험한 도시로군요.
미처 몰랐습니다.

책 아주 재밌습니다!

psyche 2018-05-15 12:14   좋아요 1 | URL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자라고 활동하고 죽은 곳이 멤피스니까요. 엘비스 하면 멤피스가 떠오르고 멤피스를 대표하는 사람중 하나가 엘비스인게 맞죠. ㅎㅎ
 
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 판단이 틀렸다. <베어타운>의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전작 <오베라는 남자><할미전>이 퀼트 이불조각꿰기 같은 시트콤 스타일의 소설들이었다면 신작 <베어타운>은 새롭게 단장한 정극 드라마 같은 스타일이었는데, 소설의 1/3 지점 그러니까 그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느슨하면서도 장황한 소개 때문에 판단착오를 일으킨 모양이다. 경제가 쇠락해 가는, 하키를 거의 종교의 수준으로까지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곰들이 사는 베어타운의 추악한 실체가 드러나는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하긴 그전에 영화로 만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도 아마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물질과 승리만을 추구하는 매모니즘에 몰입된 인간들의 욕망을 프레드릭 배크만은 정확하게 저격한다.

 

헤드 같은 도시 사람들이 거지타운으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베어타운의 경제는 날이 갈수록 몰락해 가는 와중이다. 어려서부터 스케이트로 얼음을 지치켜 하키 전사로 성장한 청소년들의 탈출구는 베어타운 하키팀의 단장 페테르 안데르손처럼 큰 무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NHL이나 A팀 선수가 되는 것 뿐이다. 도태된 이들은 아무런 기술도 없이 침울한 표정으로 공장에서 일하는 것 밖에는 선택지가 없다.

 

시대는 영웅의 탄생을 기다린 모양이다. 17세 소년 케빈 에르달의 천재적 능력과 눈부신 활약으로 베어타운 청소년팀은 4강에 진출하는데 성공한다. 베어타운의 사람곰들은 제각기 다른 꿈을 꾸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팀을 이끌어온 나이든 코치 수네의 자리를, 오직 승리만 추구하는 젊은 코치 다비드로 바꾸는 일로부터 시작해서 승리가 가져다줄 달콤한 약속에 젖어 들기 시작한다. <베어타운>이 미국 아마존에서 상당히 많은 판매고를 기록했다는 광고를 본 것 같은데,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4대 스포츠 중의 하나인 아이스하키를 소재로 다루면서 동시에 그네들이 좋아라하는 디테일에 집중한 점을 들어 나는 프레드릭 배크만이 독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짚어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베어타운은 겉보기에 평화로운 시골 마을처럼 보이지만 거주지부터 철저하게 자본의 유무에 따라 나뉜 계급사회다. 하이츠와 할로 사이의 거리는 지구별과 달에 견줄만하다. 물질에 대한 탐욕이 넘실대기는 지구별의 그 어느 장소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배크만 작가는 우리에게는 사회복지 천국이자 지상낙원으로 알려진 스웨덴도 인간의 욕망이라는 도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걸까. 베어타운의 청소년들에게 욕망의 탈출구가 아이스하키라는 스포츠 종목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태생적으로 성공의 출발선이 다른 이들에게 그나마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스포츠야말로 유일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는 반증이려나. 물론 그들이 신 이상으로 숭배하는 아이스하키 역시 후원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자본의 통제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 치명적 약점이긴 하지만. 하긴 우리 사회에서도 제일가는 재벌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언론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언론사 간부들을(학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돈으로, 선물로 그리고 공연티켓으로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는 중이다. 케빈 에르달의 성폭행 사건이 뉴스가 되었을 때, 기자들의 자유로운 취재를 방해하려는 베어타운 사람들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라. 그들의 모습과 2018년 어느 민주공화국의 모습이 한치의 오차도 없다는 사실을 나는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가 있었다.

 

베어타운에는 곰들이 산다 아주 비겁한

 

소설 <베어타운>은 케빈의 성폭행 사건을 기점으로 해서 클라이맥스로 치닫기 시작한다. 단지 거지타운의 승리를 다룰 거라는 나의 예상은 이미 보기 좋게 벗어나 버렸다. 이제는 모두의 묵인 아래 야수가 되어 버린 케빈 일당에 맞서는 마야 안데르손 가족과 일말의 이성과 양심을 이들의 대결구도가 형성된다. 배크만 작가에게 크게 한 방 먹은 느낌이다. 이런 기가 막힌 에피소드가 뒤에 대기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말이다.

 

15세 소녀 마야는 비극을 딛고, 더 이상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베어타운 전체를 상대로 힘든 싸움을 시작한다. 문제는 소녀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도 상상을 초월하는 무지막지한 따돌림과 마타도어가 벌어진다는 점이다. 당장 하키팀의 단장인 아버지 페테르는 자신의 일자리부터 걱정해야 할 처지다. 자신들의 우상이 된 아이스하키팀을 지키기 위해, 사건의 진실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베어타운의 비겁한 곰들의 모습에서 4년 전 참담한 사건의 진실을 가리기 위해 전력투구했던 우리네 언론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울러 현재진행형인 미투운동에 대한 단상도 떠올랐다. 왜 모두가 그 순간만 넘기면 될 거라는 단순한 발상에서 거짓을 끊임없이 생산해 내는 걸까? 거짓으로 가리기 위해선 또다른 거짓말을 동원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가해자들은 모르는 것일까? 난 그들의 치졸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피해자들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것이 문제해결이 시발점이라는 것을 그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경찰서에서 풀려난 케빈이 자신을 영웅으로 떠받드는 미련한 곰돌이 타운의 사람들의 응원에 힘입어 당당하게 마을을 활보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비극의 시작인 것을 절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케빈과 더불어 베어타운 하키팀을 특별하게 만든 벤이(벤야민)의 성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는 또 어떤가. 그 누구보다 남성성이 강조되는 하키 선수가 게이라니! 그래서 소설 막판에 벤이를 마치 자신의 아들처럼 대했던 다비드가 그 사실을 알고는 수치와 배신감에 치를 떨게 되었던 걸까? 이해와 용서 대신 어려서부터 주입된 성적 정체성에 대한 편견이 드러나는 장면도 소설 <베어타운>에서 빼놓으면 안될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케빈의 성폭행 사건 이후 자각해서 성공만이 유일한 삶의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몰락할 지도 모를 베어타운 하키팀을 후원하겠다고 나선 프락의 경우는 또 어떤가. 잘못된 것을 자각하고,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 만큼 부끄러운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자신의 자식에게 부끄러운 아버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야말로 오늘날의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사족 같지만 베어타운 사람들에게 선지자처럼 행동하는 펠센의 주인장 라모나에게서는 오베의 향기가 났다.

 

배크만 작가는 <베어타운>에 나온 캐릭터들의 후속담을 그린 시퀄을 이미 완성했다고 한다. 역시 영화화 되기에 적절한 요소를 갖춘 <베어타운> 역시 영화화가 결정되었다는 뉴스로 따라 붙는다. 이렇게 멋진 캐릭터들을 일회용으로 쓰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베어타운 삼부작 정도는 되어야 하는게 아닐까. 그리고 영화는 제발 너무 할리우드 스타일로 만들지 말고, 북구 스타일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라인드 라이터
사미르 판디야 지음, 임재희 옮김 / 나무옆의자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소설 <블라인드 라이터(Blind Writer)>를 읽으면서 두 가지 궁금증에 사로 잡혔다. 하나는 왜 제목을 맹인작가라고 하지 않고 원제 그대로 블라인드 라이터라고 했을까. 다른 하나는 왜 인도 작가들이 쓰는 소설에 등장하는 작가들의 페르소나는 하나 같이 일류 대학을 졸업한 재원이어야만 하는 걸까 하는 사실 말이다. 두 가지 모두에서 왠지 모를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잔재를 느꼈다고 한다면 오버일까?

 

three to tango

 

처음 만나는 작가 사미르 판디야는 인도 출신으로 8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가서 데이비스에 소재한 캘리포니아 대학을 졸업하고 소설에 등장하는 세 명의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라케시 메타처럼 스탠퍼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문학과 문예창작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가히 엘리트 코스를 밟은 작가라는 느낌이다.

 

맹인작가로 15권이나 되는 책을 쓴 아닐 트리베디와 힌두 여신을 닮은 그의 아내 미라 그리고 스탠퍼드에서 역사를 전공 중인 대학원생 라케시가 <블라인드 라이터>의 주인공이다. 아닐은 샌프란시스코를 방문 중으로, 인도 취향을 가진 예술애호가의 집 별채에 머물고 있는 중이다. 아닐은 자신을 위해 다양한 종류의 신문/책을 읽어줄 조수를 찾았고, 일주일에 세 번 하루에 세 시간에 15달러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라케시와의 인연을 시작한다. 그리고 자연스런 수순대로 라케시는 아닐에게서 부상(father figure)의 이미지를 조각해 나간다. 하긴 어떤 부모 자식이 아닐과 라케시 같은 관계를 가지게 될까 싶다.

 

독자는 처음부터 맹인작가 아닐, 그의 26살이나 어리고 매력적인 아내 미라 그리고 24난 청년 라케시의 조합이 결국 문제가 될 거라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이제는 예전 같은 필력을 자랑하지 못하지만, 장애를 가졌지만 뛰어난 유머감각을 지닌 아닐은 평생의 인연 미라를 찾았지만, 대가로 글쓰기를 잃어 버린 것일까. 마치 문하생처럼 아닐을 수행하며 작가의 꿈을 키우는 청년 라케시의 모습은 오늘을 사는 문청의 그것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스토리는 구루 슬립 바바를 떠나 자신의 아버지를 떠난 어머니에 대한 분노와 원망 그리고 첫 키스의 아련한 추억을 남긴 채 크리스마스 명절을 보내기 위해 자신들의 거처로 떠나 버린 미라를 찾아 아버지와 만난다는 변명으로 뉴욕을 찾은 라케시의 행적을 소설은 차분하게 묘사해낸다. 문창과 교수답게 사미르 판디야의 소설 구성과 작법은 무리가 없다. 다만 초반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비록 카스트 제도에 대한 언급은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이민자 특유의 성공에 대한 강박, 세계의 돈을 모두 긁어모을 것 같았던 월스트리트 생활을 떠나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서부로 떠난 라케시에 대한 응원 같은 감정들이 소설의 곳곳에서 넘쳐 나는 걸 독자는 목격한다. , 그리고 약쟁이 배리 본즈가 한창 활약을 벌이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경기를 보러 아닐과 라케시가 야구장을 찾았었지. 어쩌면 청년 라케시는 평생 아버지에게 원하던 바를 자신이 사부라고 생각하던 아닐에게서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치명적 파국 끝에 오락가락하던 데이트 상대 헬렌과 결국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라케시는 아닐이 자동차 사고로 죽은 뒤, 책을 펴낸 미라의 독서낭독회에서 근 이십년만의 재회를 경험한다. 오래 전 행복했던 시절만은 간직한 채, 다시 자신의 돌아가야 하는 남녀의 모습이 왜 그리도 애잔하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어제부터 시작한 나의 사미르 판디야와의 만남은 퇴근 길 독서로 마무리되었다. 항상 궁금해 하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와 무엇보다 좋아하는 야구에 대한 묘사가 담겨 있어서 기대 이상으로 만족했었다. 물론 디아스포라라는 소재를 체험한 이방인의 이야기라 더더욱 좋았던 게 아닐까. 판디야 교수님의 또다른 작품을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