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팡이 대신 권총을 든 노인
대니얼 프리드먼 지음, 박산호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멤피스가 미국 어느 주에 있는 도시더라. 엘비스는 펠비스라 불리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고향이 멤피스 아니었나. NYU 출신 변호사는 예전부터 작가의 꿈을 꾼 모양이다. 이름과 작품에 등장한 유대인 주인공의 버크 샤츠라는 이름으로 보아 아마 유대계 출신이 아닐까 추정된다.
특이하게 출판사가 아닌 교보문고에서 출간된 대니얼 프리드먼의 <지팡이 대신 권총을 드 노인>은 숨겨진 나치의 황금을 찾게 된다는, 조금은 황당한 설정으로 출발한다. 멤피스에서 뛰어난 민완형사로 활동하다가 오래전에 은퇴해서 노년을 즐기던 버크 샤츠는 오래전 전우 짐 월리스에게 죽음의 시간이 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를 찾아간다. 죽기 전, 자신이 그동안 친구에게 숨겨온 비밀 그러니까 전쟁포로 시절 버크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엄청나게 학대했던 나치 전범 하인이히 지글러가 엄청난 금액의 황금덩어리를 가지고 도주하는 것을 뇌물(황금 한 덩어리)을 받고 묵인해 주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히고 죽는다.
이제는 더 이상 예전 같이 완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된 87세의 버크 할아버지는 나이가 들면 당연시 되는 기억력 감퇴와 조금만 액션을 사용해도 온 몸에 멍이 드는 유리같은 체력의 소유자다. 물론 기질 만큼은 한창 시절의 그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그러지 못한 일을 냉철하게 분석해 내는 그런 능력이 아닐까. 뉴욕에서 날아온 손자 빌리/테킬라의 도움으로 자신을 핍박했던 개자식 지글러는 찾아 나선다.
그렇게 나치 전범을 찾는 것만으로는 아마 이야기가 되지 않겠다고 프리드먼 작가는 판단했는지 염통이 다 쫄깃해지는 다양한 긴장 요소들을 수차례 삽입한다. 나치 황금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는 도박중독으로 타락한 목사님 카인드 박사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탐욕스러운 월리스의 사위 노리스 필리, 구 소련 출신 유대인 요원 이츠하크 스타인블라트 그리고 이웃 세인트루이스 출신 채무업자 프랫에 이르기까지 왜 그들이 지글러의 황금이 자기 것이라는 합리적인 설명 없이 그저 주인 없는 돈은 내거다라며 들이대는 한바탕 소동 속으로 저자는 독자를 인도한다.
저자 대니얼 프리드먼은 변호사 출신답게, 버크와 테킬라가 나치의 황금을 수중에 넣기 위해 추적해 가는 과정에 마주하는 소소한 법률적인 정보들을 아주 자세하게 제공한다. 한 마디로 말해 자신의 전공을 발휘한다고나 할까. 가령 예를 들어 버크 2인조가 찾아낸 나치의 황금을 집안에 두는 게 차에 보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는 사실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프라이버시 이슈 때문에 가택수색은 개인의 사적 공간으로 간주되어 엄격하게 보장하지만 자동차는 공적 공간으로 분류된다고 했던가. 버크가 지글러 행세를 해서 안전보관 금고로 황금을 찾으러 갔을 적에도, 서명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은행 대리인을 윽박질러 대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한편 저자는 스릴러의 창조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유대인 행세를 하며 일련의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킬러가 소설에 등장하는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프리드먼은 극대화한다. 그러니까 그런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이 소설을 흥행시키는 주요한 요소라는 점을 정확하게 파악해낸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점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리고 그가 범인으로 지목한 선수에 대해, 혹시 범인이 아닐까 하는 내 예감이 적중해서 더 만족스러웠다. 어쩌면 저자가 이 흥미진진한 소설의 곳곳에 포진시킨 범행의 동기와 기회야말로 독자의 예단을 흐리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였을 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악당에게도 그리고 조용하게 은퇴를 해서 살아가는 우리의 주인공 버크 샤츠에게도 죽음은 공평하다는 조용한 저자의 의견도 멋지다. 이제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될 87세의 노인장이 매그넘을 쏘아 대고, 결국엔 온통 금연천지가 된 세상에서 발할라 에스테이트 요양원 행을 받아들이는 장면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게 다가왔다. 뭐 인생이 그렇게 가는 거겠지. 멋진 소설이었고, 예상 외로 단박에 읽었다. 사실 이 책을 다 읽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었다고 고백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