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라이터
사미르 판디야 지음, 임재희 옮김 / 나무옆의자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소설 <블라인드 라이터(Blind Writer)>를 읽으면서 두 가지 궁금증에 사로 잡혔다. 하나는 왜 제목을 맹인작가라고 하지 않고 원제 그대로 블라인드 라이터라고 했을까. 다른 하나는 왜 인도 작가들이 쓰는 소설에 등장하는 작가들의 페르소나는 하나 같이 일류 대학을 졸업한 재원이어야만 하는 걸까 하는 사실 말이다. 두 가지 모두에서 왠지 모를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잔재를 느꼈다고 한다면 오버일까?

 

three to tango

 

처음 만나는 작가 사미르 판디야는 인도 출신으로 8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가서 데이비스에 소재한 캘리포니아 대학을 졸업하고 소설에 등장하는 세 명의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라케시 메타처럼 스탠퍼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문학과 문예창작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가히 엘리트 코스를 밟은 작가라는 느낌이다.

 

맹인작가로 15권이나 되는 책을 쓴 아닐 트리베디와 힌두 여신을 닮은 그의 아내 미라 그리고 스탠퍼드에서 역사를 전공 중인 대학원생 라케시가 <블라인드 라이터>의 주인공이다. 아닐은 샌프란시스코를 방문 중으로, 인도 취향을 가진 예술애호가의 집 별채에 머물고 있는 중이다. 아닐은 자신을 위해 다양한 종류의 신문/책을 읽어줄 조수를 찾았고, 일주일에 세 번 하루에 세 시간에 15달러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라케시와의 인연을 시작한다. 그리고 자연스런 수순대로 라케시는 아닐에게서 부상(father figure)의 이미지를 조각해 나간다. 하긴 어떤 부모 자식이 아닐과 라케시 같은 관계를 가지게 될까 싶다.

 

독자는 처음부터 맹인작가 아닐, 그의 26살이나 어리고 매력적인 아내 미라 그리고 24난 청년 라케시의 조합이 결국 문제가 될 거라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이제는 예전 같은 필력을 자랑하지 못하지만, 장애를 가졌지만 뛰어난 유머감각을 지닌 아닐은 평생의 인연 미라를 찾았지만, 대가로 글쓰기를 잃어 버린 것일까. 마치 문하생처럼 아닐을 수행하며 작가의 꿈을 키우는 청년 라케시의 모습은 오늘을 사는 문청의 그것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스토리는 구루 슬립 바바를 떠나 자신의 아버지를 떠난 어머니에 대한 분노와 원망 그리고 첫 키스의 아련한 추억을 남긴 채 크리스마스 명절을 보내기 위해 자신들의 거처로 떠나 버린 미라를 찾아 아버지와 만난다는 변명으로 뉴욕을 찾은 라케시의 행적을 소설은 차분하게 묘사해낸다. 문창과 교수답게 사미르 판디야의 소설 구성과 작법은 무리가 없다. 다만 초반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비록 카스트 제도에 대한 언급은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이민자 특유의 성공에 대한 강박, 세계의 돈을 모두 긁어모을 것 같았던 월스트리트 생활을 떠나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서부로 떠난 라케시에 대한 응원 같은 감정들이 소설의 곳곳에서 넘쳐 나는 걸 독자는 목격한다. , 그리고 약쟁이 배리 본즈가 한창 활약을 벌이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경기를 보러 아닐과 라케시가 야구장을 찾았었지. 어쩌면 청년 라케시는 평생 아버지에게 원하던 바를 자신이 사부라고 생각하던 아닐에게서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치명적 파국 끝에 오락가락하던 데이트 상대 헬렌과 결국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라케시는 아닐이 자동차 사고로 죽은 뒤, 책을 펴낸 미라의 독서낭독회에서 근 이십년만의 재회를 경험한다. 오래 전 행복했던 시절만은 간직한 채, 다시 자신의 돌아가야 하는 남녀의 모습이 왜 그리도 애잔하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어제부터 시작한 나의 사미르 판디야와의 만남은 퇴근 길 독서로 마무리되었다. 항상 궁금해 하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와 무엇보다 좋아하는 야구에 대한 묘사가 담겨 있어서 기대 이상으로 만족했었다. 물론 디아스포라라는 소재를 체험한 이방인의 이야기라 더더욱 좋았던 게 아닐까. 판디야 교수님의 또다른 작품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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