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건너며 NFF (New Face of Fiction)
카릴 필립스 지음, 안지현 옮김 / 시공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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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보면 운명적인 만남의 그것을 느낄 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카릴 필립스의 신간 <강을 건너며>가 꼭 그랬다. 내가 읽어야만 하는 책이라고나 할까.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지만 전혀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작가를 소개하는 문학전도사의 느낌으로 그의 이력까지 파고들기 시작했다. 위키피디아와 작가의 공식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경력을 조사해 보니 대서양 양안의 노예무역과 흑인 디아스포라를 자기 문학의 중점적 주제로 다루고 있는 카릴 필립스 작가의 문학관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출판사에서는 10권이나 발표된 작가의 작품 중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강을 건너며>를 국내 출간 첫 책으로 고른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구글로 그의 작품에 대한 해외신문사 리뷰들을 검색해 보았는데, 대강의 줄거리를 살펴보니 이 작품으로부터 꼭 십년 뒤에 발표된 <먼 바닷가>도 비슷한 줄기의 작품인 것 같아 도전해 보고 싶어졌다. 그것은 나중의 일이고 지금은 <강을 건너며>에 집중해 보자.

 

<강을 건너며>는 모두 네 개의 별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옴니버스 스타일의 소설이다. 지독한 흉년 때문에 살기 위해 세 명의 아이들 마사, 트레비스 그리고 내시를 팔았다는 모놀로그로 시작되는 소설은 <이교도들의 바닷가>, <서부>, <강을 건너며> 그리고 마지막에 <영국 어딘가에서>라는 네 개의 이야기로 시대와 공간을 가로지르며 분화한다. 카릴 필립스 작가는 네 편의 이야기 모두 다른 서술 방식을 채택한다. <이교도들의 바닷가>에서는 계몽된 플랜테이션 경영주인 에드워드 윌리엄스의 ‘은혜’로 해방되어 신생 라이베리아에 사는 이교도들에게 기독교 문명을 전파하기 위해 파견된 내시 윌리엄스 사이의 서간문 형태로 독자를 미지의 세계로 초대한다. 열병과 말라리아가 지배하는 원시세계에 도착한 문명인 내시 윌리엄스는 전 주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야심찬 개척과 선교사업을 시작하지만, 초기의 빛나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주인이 자신을 버렸다는 원망과 계속되는 가정의 불운이 겹치면서 주인과 연락이 두절되는 상태에 다다른다. 자신이 전폭적으로 믿고 파견한 내시에 대한 소식이 궁금해진 에드워드는 죽음을 무릅쓰고 진실을 직접 알아내기 위해 아프리카행을 선택한다. 카릴 필립스는 식민모국에서 편안히 살 수 있는 기회 대신, 선교를 위해 열사의 땅에 스스로 찾아 들었다가 원래의 신앙마저 지키지 못하고 소멸해 버린 내시 윌리엄스의 삶을 통해 미국에서 출발한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의 환상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노예수요의 최종 목적지였던 미국이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던가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서부>에서 환부를 드러낸다.

 

개인적으로 네 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서부>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전작이 내시 윌리엄스가 에드워드에게 보낸 편지와 에드워드의 아프리카 체험담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서부>에서는 여주인공 마사의 목소리로 비극의 본질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주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마사네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새 주인이 삼촌의 유산을 모두 경매에 내놓은 것이다. 노예, 가축 그리고 잡동사니 재산 순으로 경매에 붙여졌노라는 마사의 전언에서 우리는 비극의 전조를 읽게 된다. 인간이 가축보다 못한 시절을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과연 예상했을까? 그들이 독립선언에 명시한 천부인권은 백인지배계급을 위한 것이 아니었냐고 묻게 된다. 경매에서 남편 루카스와 딸 일라이자 메이와 생이별하게 된 새로운 주인 밑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간다. 그녀의 괴로움을 덜어 주기 위해, 종교를 통한 위안을 찾아보지만 자신의 삶이 워낙 괴롭다 보니 하나님의 아들의 고통에 마사는 공감할 수 없노라고 고백한다. 지옥 같은 남부 노예주로 팔려갈 운명을 거부하고 도망쳐서 뿔뿔이 흩어진 가족과의 재결합을 꿈꾸며 서부행을 선택하지만, 소용이 다한 늙은 마사는 원정대에서도 외면당한다. 백인 지배계급은 물론이고, 동족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한 존재로 전락한 마사의 삶이야말로 카릴 필립스가 천착하는 흑인 디아스포라의 정수가 아니었을까.

 

18세기 중반 노예무역에 나선 젊은 선주 제임스 해밀턴의 항해일지와 사랑하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로 이루어진 <강을 건너며>는 평화롭게 아프리카에 살던 흑인들을 잡아 상품으로 절대적으로 노동력이 부족하던 신대륙에 공급하던 노예무역상에 관한 이야기다. <서부>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서술된 이야기하면, <강을 건너며>는 가해자의 입장을 대변한다. 아버지 역시 노예무역상이었던 가업을 이어 받은 젊은 선주 해밀턴 씨는 자신의 사업이 기독교 정신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가업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고 아내와 미래에 태어날 아이들을 위해 피고용 선원들의 선상반란과 노예반란 그리고 생명을 위협하는 사나운 바다와 싸우고 있노라고 아내에게 편지를 통해 고백한다. 해밀턴 씨에게 흑인들은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상품에 불과하다. 그는 어떻게 하면 ‘상품’을 온전하게 보존해서 비싼 가격에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마치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노동력의 주체인 노동자들을 비인격화시켜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정글자본주의의 원형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기 위한 자본을 획득하기 위해 양심에 어긋나는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젊은 선주의 진실은 기독교 정신에 위배되는 양심을 압도한다. 어쩌면 행동이 따르지 못하는 피상적 사유와 자기합리화가 18세기 지식인의 한계였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영국 어딘가에서>는 처음 세 편의 소설과 다른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연이은 사랑에 실패하는 조이스의 일기로 독자를 초대한다. 시간의 통시적 구성을 혁파하고, 마치 퀜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독자는 초반에 정보부족으로 혼란스러워 하기도 하지만 복잡한 구성에서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아내면서 한 개인의 기록에 어떻게 자신의 장기로 삼는 흑인 디아스포라와 유무형의 차별의 연대기가 맞닿아 있는지 대가의 솜씨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아버지를 둔 조이스는 스스로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그런 여성으로 그려진다. 유럽대륙에서 히틀러가 일으킨 전쟁 때문에 섬나라 영국에 양키들이 주둔하기 시작하고 그들과 접촉하면서 조이스는 자신의 삶에 대해 자각하기 시작한다. 연극배우 허버트와의(알고 보니 그는 애딸린 유부남이었다) 풋사랑에 실패하고, 폐가 망가져서 입대하지 못한 랜과의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을 통해 책읽는 여성 조이스는 어쩌면 유심론에 도달했는지도 모르겠다. 평생을 다퉈온 어머니가 폭격으로 죽고, 남편 랜이 전시 암시장 거래죄로 부재하던 순간에 만난 흑인병사 트레비스와의 만남은 결정적으로 조이스의 삶을 전환하게 만든 계기였다. 비록 남편이 수감생활 중이긴 했지만, 타국의 유색인종병사와의 로맨스에 경멸의 시선을 보내던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던 조이스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두 세기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차별의 통시적 시선에 카릴 필립스는 정면도전장을 내민다.

 

카릴 필립스가 발표한 다른 작품들을 좀 더 읽을 수 있다면 아프리카, 신대륙 미국 그리고 작가의 실질적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을 삼각축으로 하는 노예무역의 시원과 흑인 디아스포라 주제에 접근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카릴 필립스는 ㄷ각각의 이야기 속에서 엔딩에 대한 직접적인 기술 대신 독자가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여지를 의도적으로 남겨 두었다. 내시의 마지막 정착지에 그렇게 가보고 싶어 하던 에드워드 윌리엄스는 만족했을까? 덴버에 내쳐진 마사의 가련한 영혼은 비참한 삶의 마지막을 세상의 끝처럼 보이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지 못하고 임종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젊은 선주 제임스 해밀턴은 양심의 가책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수지맞는 사업이었던 노예무역으로 돈을 벌었을까? 외로운 영국 아가씨 조이스는 기억에서 그리어와 트레비스를 지우고 새로운 삶에 완전히 적응했을까?

 

<강을 건너며> 단 한 권의 책으로 카릴 필립스 작가의 30년에 달하는 작가 경력을 평가하기란 쉽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의 주제에 천착하는 작가의 꾸준한 노력과 그 주제를 형상화하기 위해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는 시도에 대해서만큼은 높은 평가를 해주고 싶다. 또 한 가지, 18-19세기 노예무역을 가늠해 볼 수 있는 현실감 넘치는 묘사와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시체제 아래 영국 사람들의 생활상을 그리기 위해 작가가 들인 리서치 조사에 대한 공력이 대단하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멋진 작가의 훌륭한 작품들과의 계속된 해후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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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시공사에서 나온 카릴 필립스의 신간 <강을 건너며>를 읽기 시작했다. 바티스트 보리유의 <불새 여인>을 다 읽지도 못했는데, 어제 받은 새 책에 대한 유혹을 이길 수가 없더라. 그런데 이 책 재밌다. 그래서 카리브해의 섬나라 세인트 키츠 출신의 흑인 작가 카릴 필립스에 대해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에 대해 알아낸 대부분의 정보는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 바이오그래피와 위키피디아, 그리고 아마존 등의 해외 사이트에서 알게 됐다. 그리고 보니 현재 재직 중인 예일 대학교 레쥬메도 참고했구나.

 

1958년 생으로 올해 우리 나이로 58세인 3월 13일에 태어난 카릴 필립스는 생후 4개월 만에 영국으로 이주하게 됐다. 요크셔 지방의 리즈에 둥지를 튼 필립스는 1976년 옥스퍼드 대학 퀸즈 칼리지에 진학해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1979년 학사 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옥스퍼드 대학 진학 중 많은 수의 연극 대본들을 연출했고, 여름 방학 동안에는 에딘버러 축제에서 일했다고 한다. 졸업 후, 에딘버러로 이주해서 일년 가량 살면서 첫 번째 연극인 <스트레인지 프루트>(1980)를 발표했다. 다시 런던으로 거처를 옮겨 두 편의 연극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아마 소설을 쓰기 전 연극 대본 작업에 주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22세가 되던 해에 카릴 필립스는 1958년 고향 세인트 키츠를 떠난 후 처음으로 그 섬을 다시 방문했다. 이 여행은 필립스에게 자신의 첫 번째 소설인 <마지막 여정>(1985)의 영감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듬해 두 번째 소설인 <스테이트 오브 인디펜던스> 발표 후, 유럽여행을 나서기도 했는데 이 여행은 이후 <유럽 부족>이라는 에세이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필립스는 세인트 키츠와 영국을 오가며 살았는데 이 기간 동안 <하이어 그라운드>(1989)와 <케임브리지>(1991)를 연달아 발표했다.

 

영국에 머무는 동안 카릴 필립스는 라디오에 텔레비전에 방송된 수많은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작품을 쓰기도 했다. 자신의 소설인 <마지막 여정>의 대본도 직접 썼다. 1986년에는 <플레잉 어웨이> 대본을 그리고 V.S. 나이폴의 원작소설 대본을 2001년에는 쓰기도 했다.

1990년 필립스는 미국 매사추세츠 소재 앰허스트 칼리지에 방문작가로 하다가, 8년간 그곳에 머무르며 최연소 영문학 교수가 되는 영예를 차지하기도 했다. 1995년에는 종신교수의 자리에 올랐다. 그 기간 동안, 그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이번에 국내에서 출간된 <강을 건너며>를 발표했는데 수많은 상을 받으면서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의 미국 생활은 기존의 세인트 키츠와 영국에 더한 삼각편대를 이뤘다.

 

이렇게 복잡한 생활을 보내던 중, 필립스는 결국 세인트 키츠에서의 생활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후에도 주기적으로 자신의 생물학적 고향을 방문하고 있다. 1998년 컬럼비아 대학 바너드 칼리지로 옮겼다가 다시 2005년부터 예일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카릴 필립스는 지금까지 모두 10편의 소설을 발표했는데 가장 최근작은 2015년에 발표된 <로스트 차일드>다. 그 외에도 넌픽션인 <외국인들>(2007)를 비롯해서 네 권의 에세이 모음집도 발표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궁금한 책 중의 하나는 2011년에 나온 <컬러 미 잉글리쉬>라는 작품이다. 선데이 타임즈는 카릴 필립스를 1992년 젊은 작가로, 그리고 1993년 문예지 그란타에서는 그를 최고의 젊은 영국 작가 중의 한 명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카릴 필립스는 영국과 미국 외의 가나, 스웨덴, 싱가포르, 바베이도즈 그리고 인도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은 지금까지 모두 13개 언어로 번역되기도 했는데 이제 14번째 언어로 한국어가 추가되게 되었다. 카릴 필립스는 대서양 양안을 자신의 소설에서 공간적 배경으로 삼으면서 노예 무역과 흑인 디아스포라라는 주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강을 건너며>도 미국 흑인 노예 출신 내시 윌리엄스가 라이베리아 포교 도중 연락이 끊기자 그의 옛 주인인 에드워드 윌리엄스가 그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로 이 디아스포라 소설은 시작된다. 19세기 여전히 노예거래가 횡행하던 시절, 개화된 백인 농장주 에드워드 윌리엄스는 자신의 노예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자신들의 원래 고향으로 돌려 보내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지원한다. 이게 소설의 한축이라면, 시에라리온을 거쳐 신생국 라이베리아에 도착한 내시 윌리엄스의 비극과 고난의 행군을 기록한 편지들이 한 축을 구성한다. 일단 여기까지 읽은 부분을 대충 정리해봤다.

 

<강을 건너며>를 발굴한 출판사가 하필이면 뻐꺼형의 아들이 발행인(지금은 바뀌었나)으로 출판사라 좀 꺼림칙하긴 하지만, 어쨌든 NFF(New Face of Fiction) 시리즈로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세계 작가들의 멋진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아울러 카릴 필립스의 다른 작품들도 번역으로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배송료 무료하는 북디파지토리로 카릴 필립스의 신작 <로스트 차일드>를 살까 고민 중에 있다.

카릴 필립스 비블리오그래피

1. 마지막 여정 - 1985

2. 독립 상태 - 1986

3. 하이어 그라운드 - 1989

4. 케임브리지 - 1991

5. 강을 건너며 - 1993 - 국내출간 / 부커상 숏리스트 선정작

6. 핏빛 자연 - 1997

7. 먼 바닷가 - 2003 - 부커상 롱리스트 선정작

8. 어둠 속의 춤 - 2005

9. 인 더 폴링 스노우 - 2009

10. 로스트 차일드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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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11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낯선 작가의 소설들을 관심 있게 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예요. 저도 그렇고, 아무리 책을 좋아해도 익숙한 작가의 책을 선호하는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요.

레삭매냐 2016-03-11 22:05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
아무래도 익숙한 작가의 글들이 눈에 더 잘 들어오죠.

이 블로그 저 블로그 떠돌다 보면, 잘 알지 못하던
작가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는데 하나의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읽어대고 있답니다.
 
1937 상하이 전투
뤼보 지음, 한국학술정보 출판번역팀 옮김 / 이담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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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의 서막인 1937년 8월 13일부터 일본군에게 상하이가 공식적으로 함락된 11월 11일까지 석 달간의 치열했던 전투를 그린 뤼보 작가의 <1937 상하이 전투>를 지금 막 읽었다. 150쪽 남짓한 작가의 만화에서 치열했던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가 있었다. 19세기 아편전쟁 이래 서구 열강의 침탈 아래 왕정국가에서 민주공화정으로 이행 중이었던 장제스 총통이 이끄는 중화민국의 상황은 과연 어땠을까.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연이은 승전으로 신흥 제국주의 국가로 거듭난 일본에게 무력해 보이는 중국 대륙은 어쩌면 별천지 같은 존재였을지 모르겠다. 이미 1931년 만주사변으로 동북3성을 석권한 일본은 1937년 베이징에서 마르코폴로(루거우차오) 다리 사건으로 중국과의 전면전에 돌입하게 된다. 7월에 이은 본격적인 8년 대전란의 시작이 바로 상하이 전투였다.

 

전투 발발 이틀 전인 8월 9일 발생한 ‘오오야마 이사오 사건’으로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중화민국과 일본 양측은 결국 중국 측의 압도적인 선제공격으로 충돌에 이르게 되었다. 기묘하게도 양측은 선전포고도 없이 긴 전쟁에 돌입하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장제스 휘하의 국민당군은 독일 고문 알렉산더 폰 팔켄하우젠의 지도 아래 양성된 독일식 편제 정예 3개 사단을 투입해서 압도적인 병력을 바탕으로 전역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는 일본 군부 역시 총력전 태세에 돌입해서 이른바 육해공 3차원 방식의 새로운 전쟁 방식으로 대전의 서곡을 알렸다. 공군의 공습과 상하이 앞바다에 포진한 함포 사격으로 중국군이 설치한 진지를 공략한 뒤, 탱크와 후속 보병대를 돌진시키는 입체적 전술로 상하이 전체에 대한 포위 압박전을 구사했다.

 

뤼보 작가가 그린 만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장제스 휘하 정예 부대 외에 어쩔 수 없는 협력한 지방 군벌 휘하의 군대들은 아마도 전투에서 전력을 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군은 압도적인 병력의 우세와 애국심에 불타는 병사들의 개별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의 집요하면서도 체계적인 공략작전으로 패배를 거듭하게 된다. 상하이 전투에서 핵심 요충지였던 뤄뎬 전투, 바오산 전투 그리고 마지막 거점이었던 쓰항 400용사의 결사항전이 차례로 뤼보 작가의 상하이 전투 연대기에 등장한다. 뤼보 작가는 10월말에서 11월초의 패전과 후퇴 과정에서 장제스의 전략적 판단 오류 정도를 실책으로 꼽고 있지만, 중국군 총지휘부와 일선 부대와의 소통 부재, 일선 지휘관들 사이에서의 혼란, 일본군에 비해 열등했던 군수지원 등에 대한 문제는 애써 다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장제스 총통은 공간을 내주고 시간을 벌어, 열강들의 조정을 기대했지만 일단 승기를 잡은 일본에겐 먹히지 않는 공허한 외침이었을 뿐이다. 국부군의 수도인 난징을 향한 일본군의 파상적 공세 앞에 개개 부대의 산발적 저항은 12월 난징공략 후 벌어질 대참극의 전주곡이었다.

 

일본군은 청일전쟁 이후 최초로 치른 대규모 근대전이었던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뤼순 요새에 대한 공격에서 어마어마한 손실을 통해 대도시에서 벌어지는 소모적이고 지루한 진지전의 교훈을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상하이 전역에 파견된 2개 사단이 중국군을 상대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 재중 파견군 마쓰이 이와네 사령관은 본국에 지속적인 지원을 요청해서 상륙과 동시에 집중투입된 일본 지원군은 밀리던 전세를 뒤집는데 성공하기에 이른다. 만화 초반에 나온 양측 군대의 무장을 보면서 중국군에게는 없던 일본군의 가스마스크를 휴대가 눈에 띄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후반 전역에서 일본군은 국제협약에 금지된 독가스 무기를 사용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의 하나는 태평양전쟁 때 등장한 것으로 알고 있던 항공모함이 이미 상하이 전투에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항공모함 가가 호에 탑재된 함재기들이 중국 공군을 격파하고 제공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는 점은 미처 몰랐던 점이다.

 

중국전장이라는 광활한 진창에 빠져 일본군이 2차 세계대전 당시 고전했다는 작가의 지적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그러지 못한 점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중국군의 활약으로 일본이 소련과 미국을 상대로 전력을 다하지 못해 인류 문명의 발전에 공헌했다는 주장은 과장이다. 태평양전쟁 전, 최강 전력의 관동군을 동원해서 북방의 소련을 상대했던 노몬한 전투(할힌골 전투)에서 소련의 게오르기 주코프가 이끄는 기갑부대의 실력을 알게 된 대본영은 상대적으로 해상을 통한 보급이 용이하고 식민지 군대를 운영하던 전역인 남방작전으로 눈을 돌렸다. 세계 제일의 공업국가인 미국을 상대로 한 물량전에서 개전 초기의 승전만으로는 국가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는 총력전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일본 연합함대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진주만 공격에 나서기 전부터 일본 군부에 경고하지 않았던가. 물론 중국 전선에서 연이은 승전으로 태평양 전쟁에서 질과 양적인 차원에서 전혀 다른 미군을 상대하게 된 일본 군부의 자신감의 발로는 궁극적으로 패착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는 했지만 중국주둔 일본군은 태평양전쟁 당시 고착화되고 종심에 파묻힌 전선의 현상유지만으로 충칭으로 천도한 장제스의 국민정부를 압박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던가.

 

작가가 자국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영웅적 활약상을 선전하는 것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은 간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뤼보 작가의 3부작 프로젝트의 후속편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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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아 거울아 : 정시안 편
다드래기 지음 / 네오카툰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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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 책 팔러 갔다가 우연히 만난 책이다. 원래 다른 아랍권을 다룬 만화에 눈길이 더 갔지만 점심시간에 들른 것이라 오래 있을 수가 없어 고른 책이 바로 옆에 꽂혀 있던 다드래기 그룹의 <거울아 거울아>였다. 내가 아는 최근의 <거울아 거울아>는 포미닛의 노래 밖에 없는데, 표지를 들춰 보니 성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란다.

 

그래픽노블의 배경은 청암대 캠퍼스다. 요즘 캠퍼스 이슈는 무언지 모르겠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이 무렵이면 등투로 시작되어 5월이 참 뜨거웠었던 것 같은데 시절이 시절이다 보니 아마 요즘엔 그런 이슈들은 그들의 관심 밖이겠지. 만화의 주인공은 분명 정시안으로 보이는데, 읽어 보니 남자가 되고 싶은 여자 정시안 보다 여자가 되고 싶은 강호수 혹은 강석호가 실제 주인공처럼 보인다. 아마 최근 유행했던 만화원작 드라마의 스토리처럼 주인공 역전 현상이 대세가 된 걸까.

 

지난 8년간의 보수정권 아래 사회의 다양성은 철저히 무시되고 소통조차 불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소위 역주행의 시대에 사회적 편견에 맞서는 <거울아 거울아>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만화의 주인공들은 그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싶을 뿐인데, 그들에게 쏟아지는 편견의 세례는 가혹하고 그들을 옥죄는 사회적 제약과 벽은 높기만 하다. 성 소수자들에 대해 유연한 사고를 가진 서구사회에 비해 완고한 동양적 윤리질서와 규범으로 무장한 우리 사회는 여전히 변화의 조짐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예의 편견이 언제라도 그저 차가운 시선을 넘어 폭력의 형태로 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종교재판이라는 폭력적 수단으로 사회적 약자를 억누른 중세의 종교적 광기조차 엿보이는 것 같다.

 

서구사회에서 진행된 꾸준한 성 소수자의 인권개선을 위한 사회적 비판과 노력을 상대적으로 조견하는 대신 현재의 조건만을 비교대상으로 삼은 건 만화의 전략적 착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구성원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거부감이라는 설정 역시 너무 도식적인 게 아닌가 싶다. 동서양 어디고 가족내 구성원이 커밍아웃을 한다면 반발하지 않을까. 최근 읽은 앤 타일러의 <파란 실타래>에서도 말썽꾼 아들 데니의 느닷없는 게이 선언으로 집안이 뒤집히지 않았던가. 강호수/석호의 돈벌이 수단이 술집이라는 설정도 스테레오타입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성 소수자에게 열린 취업문이 그만큼 협소하다는 사실의 방증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직 다른 시리즈들을 읽어 보지 못했지만 소셜 펀딩으로 시작된 다드래기 프로젝트의 순항을 빌어 본다. 나와 다른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단순한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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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08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도 포미닛을 아시다니! ^^

레삭매냐 2016-03-08 14:48   좋아요 0 | URL
하하 -
예전에 문학동네에서 강진답사 가서 뱃놀이할 적에
현아의 <버블 팝>을 배에 탔던 그 많은 사람들 중
에 저와 고딩 친구 한 명만 알던 일이 생각나네요.

한동안 아이돌 노래 즐겨 들었답니다.
 

 

 

 

어젯밤에 잠이 오지 않아 고생했다.

눈이 다 빡빡할 정도로 그렇게 잠이 오지 않더라. 낮에 실컷 자서 그런가.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인 느낌이랄까. 그런 적이 별로 없는데 참 살다 보니 별 일이 다 있구나. 어쩌면 자기 전에 읽은 존 반빌의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 때문일지도. 자꾸만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런 문장들 탓을 해야 할까.

 

지난 주말에 시작만 하고 못 읽은 책들을 하나둘씩 끝냈다. 리뷰는 오늘 아침에 바지런히 쓰고 있는 중이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심연>은 지난 주말에 읽고 리뷰도 깔끔하게 끝냈다. 리뷰를 다 쓰고 나서 드는 생각이지만 항상 원래 책 읽을 적에 든 생각하고 리뷰는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원래 정리한 메모들을 보고 적고 그래야 하는데, 아무래도 시간에 쫓기다 보니 리뷰를 휘리릭 내갈기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무래도 책읽고 나서 느낌에 대한 사유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겠나 그래. 리뷰는 내 책읽기의 기록일 뿐일 것을.

 

어쨌든 <심연>은 알랭 들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의 결말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완전범죄를 꿈꾸지만 어디 세상에 완벽한 게 존재했던가. 사소한 부주의가 결국엔 파국을 낳게 마련이다. 어디가 비슷하다고 꼭 짚어서 말하기는 그렇지만 내 느낌은 그렇다. 좀 더 생각을 가다듬는 다면 유사한 점에 대해서도 적을 수 있겠지만 귀찮다.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고 싶다.

 

다음 타겟은 <연인들을 위한 외국어 사전>. 샤오루 궈라는 중국 출신 작가의 책인데 참 재밌게 읽었다. 이미 절판되고 구할 수도 없는 책이라 알라딘을 통해 샀다. 컨디션이 좀 그랬지만 어쩌겠나 그래. 새 책을 원하지만 절판된 책에게는 호사일 따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 생각이 많이 났다. 버거킹에서 햄버거 주문을 제대로 못해 좌절하던 시절의 기억들, 미국 남친과 살던 아는 누나가 싸움 끝에 결국 남친 경찰을 불러 다툼이 끝났다는 일 등등... 세상살이는 그리고 이방인이 느끼는 감정은 어디서나 다름 없다는 동질감이 느껴지는 그런 책이었다. 미스 좡의 체험이 더 버라이어티하다는 점에서 나와 달랐지만. 재미만으로는 정말 최고였다고 말하고 싶다. 좀 더 거창하게 쓸 수도 있었겠지만 오버는 하지말자. <그란타>에서 추천한 작가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책들을 찾아 읽는 것도 재밌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첫 번째 그란타 취향저격이었다. 다음은 아마도 애덤 풀스?

 

앤 타일러의 <파란 실타래>는 드디어 다 읽었다. 1월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이제야 다 읽다니 나도 참 게으르구나 그래. 그동안 읽기 시작해서 마무리짓지 못한 책들이 너무 많아 걱정이다. 하나둘씩 다 읽어서 리뷰까지 쓰는 게 나의 목표다. 볼티모어 휘트생크 집안의 이야기가 <파란 실타래>의 핵심인데 어디는 재밌다가 또 어디는 그렇지 않고 그런 부분들에서 힘을 잃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뉴욕타임즈의 미치코 가쿠타니는 클리셰이라고 혹평을 했는데, 나야 뭐 앤 타일러의 책은 처음으로 읽어본 지라 그런 건 잘 모르겠다. 어쩌면 후발 주자로서의 여유라고나 해야 할까. 이 책은 내가 올해 들어 읽은 18번째 책으로 기록했다.

 

자 다음은 존 반빌의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다. 지난 늦여름 뒤늦은 제주 휴가 때 읽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아예 다시 펴들 생각도 안하고 있다가 어제 다시 읽기 시작했다. 아일랜드 특유의 딱딱하고 뭐랄까 아무 맛 없는 음식을 꾸역꾸역 삼키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그렇게 읽다 보니 무언가 흐릿하게 보이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점점 기분이 좋아진다. 사실 98쪽까지 읽었던 부분들이 기억이 나지 않아 위키피디아의 플롯 서머리와 다른 블로거들의 리뷰를 참조했다. 그리고 다양한 서평들을 보려고 일단 저장해 두었다. 그들의 것을 내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은 독서와 또다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절반 가량 읽었으니 이번주 안으로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되새김질한 책에 대한 기억들이 휘발해 버리기 전에 리뷰도 조금 작성했다. 잊지 않기 위한 리뷰라... 어때 그럴 듯 하지 않은가. 왜 우리나라에서는 존 반빌이 그렇게 인기가 없는 걸까. <닥터 코페르니쿠스>도 그렇고 꼴랑 두 권 나온 책들이 모두 절판의 운명에 처해졌다. 신간인 <블루 기타>는 언제나 번역이 될지 기약이 없다. 원서로도 샀지만 언제나 그렇듯 번역에 비해 읽기가 더디다. 번역본이 나온다면 비교해 가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할 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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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08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 반빌이 작년 박경리문학상 후보 중 한 사람인데도 인지도가 안습이죠..

레삭매냐 2016-03-08 14:48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꼴랑 두 권 나온 책들 모두 절판되었다죠.
아마 다른 책들은 언감생김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