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 상하이 전투
뤼보 지음, 한국학술정보 출판번역팀 옮김 / 이담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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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의 서막인 1937년 8월 13일부터 일본군에게 상하이가 공식적으로 함락된 11월 11일까지 석 달간의 치열했던 전투를 그린 뤼보 작가의 <1937 상하이 전투>를 지금 막 읽었다. 150쪽 남짓한 작가의 만화에서 치열했던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가 있었다. 19세기 아편전쟁 이래 서구 열강의 침탈 아래 왕정국가에서 민주공화정으로 이행 중이었던 장제스 총통이 이끄는 중화민국의 상황은 과연 어땠을까.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연이은 승전으로 신흥 제국주의 국가로 거듭난 일본에게 무력해 보이는 중국 대륙은 어쩌면 별천지 같은 존재였을지 모르겠다. 이미 1931년 만주사변으로 동북3성을 석권한 일본은 1937년 베이징에서 마르코폴로(루거우차오) 다리 사건으로 중국과의 전면전에 돌입하게 된다. 7월에 이은 본격적인 8년 대전란의 시작이 바로 상하이 전투였다.

 

전투 발발 이틀 전인 8월 9일 발생한 ‘오오야마 이사오 사건’으로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중화민국과 일본 양측은 결국 중국 측의 압도적인 선제공격으로 충돌에 이르게 되었다. 기묘하게도 양측은 선전포고도 없이 긴 전쟁에 돌입하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장제스 휘하의 국민당군은 독일 고문 알렉산더 폰 팔켄하우젠의 지도 아래 양성된 독일식 편제 정예 3개 사단을 투입해서 압도적인 병력을 바탕으로 전역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는 일본 군부 역시 총력전 태세에 돌입해서 이른바 육해공 3차원 방식의 새로운 전쟁 방식으로 대전의 서곡을 알렸다. 공군의 공습과 상하이 앞바다에 포진한 함포 사격으로 중국군이 설치한 진지를 공략한 뒤, 탱크와 후속 보병대를 돌진시키는 입체적 전술로 상하이 전체에 대한 포위 압박전을 구사했다.

 

뤼보 작가가 그린 만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장제스 휘하 정예 부대 외에 어쩔 수 없는 협력한 지방 군벌 휘하의 군대들은 아마도 전투에서 전력을 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군은 압도적인 병력의 우세와 애국심에 불타는 병사들의 개별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의 집요하면서도 체계적인 공략작전으로 패배를 거듭하게 된다. 상하이 전투에서 핵심 요충지였던 뤄뎬 전투, 바오산 전투 그리고 마지막 거점이었던 쓰항 400용사의 결사항전이 차례로 뤼보 작가의 상하이 전투 연대기에 등장한다. 뤼보 작가는 10월말에서 11월초의 패전과 후퇴 과정에서 장제스의 전략적 판단 오류 정도를 실책으로 꼽고 있지만, 중국군 총지휘부와 일선 부대와의 소통 부재, 일선 지휘관들 사이에서의 혼란, 일본군에 비해 열등했던 군수지원 등에 대한 문제는 애써 다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장제스 총통은 공간을 내주고 시간을 벌어, 열강들의 조정을 기대했지만 일단 승기를 잡은 일본에겐 먹히지 않는 공허한 외침이었을 뿐이다. 국부군의 수도인 난징을 향한 일본군의 파상적 공세 앞에 개개 부대의 산발적 저항은 12월 난징공략 후 벌어질 대참극의 전주곡이었다.

 

일본군은 청일전쟁 이후 최초로 치른 대규모 근대전이었던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뤼순 요새에 대한 공격에서 어마어마한 손실을 통해 대도시에서 벌어지는 소모적이고 지루한 진지전의 교훈을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상하이 전역에 파견된 2개 사단이 중국군을 상대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 재중 파견군 마쓰이 이와네 사령관은 본국에 지속적인 지원을 요청해서 상륙과 동시에 집중투입된 일본 지원군은 밀리던 전세를 뒤집는데 성공하기에 이른다. 만화 초반에 나온 양측 군대의 무장을 보면서 중국군에게는 없던 일본군의 가스마스크를 휴대가 눈에 띄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후반 전역에서 일본군은 국제협약에 금지된 독가스 무기를 사용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의 하나는 태평양전쟁 때 등장한 것으로 알고 있던 항공모함이 이미 상하이 전투에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항공모함 가가 호에 탑재된 함재기들이 중국 공군을 격파하고 제공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는 점은 미처 몰랐던 점이다.

 

중국전장이라는 광활한 진창에 빠져 일본군이 2차 세계대전 당시 고전했다는 작가의 지적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그러지 못한 점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중국군의 활약으로 일본이 소련과 미국을 상대로 전력을 다하지 못해 인류 문명의 발전에 공헌했다는 주장은 과장이다. 태평양전쟁 전, 최강 전력의 관동군을 동원해서 북방의 소련을 상대했던 노몬한 전투(할힌골 전투)에서 소련의 게오르기 주코프가 이끄는 기갑부대의 실력을 알게 된 대본영은 상대적으로 해상을 통한 보급이 용이하고 식민지 군대를 운영하던 전역인 남방작전으로 눈을 돌렸다. 세계 제일의 공업국가인 미국을 상대로 한 물량전에서 개전 초기의 승전만으로는 국가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는 총력전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일본 연합함대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진주만 공격에 나서기 전부터 일본 군부에 경고하지 않았던가. 물론 중국 전선에서 연이은 승전으로 태평양 전쟁에서 질과 양적인 차원에서 전혀 다른 미군을 상대하게 된 일본 군부의 자신감의 발로는 궁극적으로 패착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는 했지만 중국주둔 일본군은 태평양전쟁 당시 고착화되고 종심에 파묻힌 전선의 현상유지만으로 충칭으로 천도한 장제스의 국민정부를 압박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던가.

 

작가가 자국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영웅적 활약상을 선전하는 것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은 간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뤼보 작가의 3부작 프로젝트의 후속편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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