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락모락 펭귄의 부엌 in the UK
펭귄 지음 / 애니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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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하고 만날 운명이 있는 모양이다. 이 책과 만나기 얼마 전, 웹툰으로 펭귄이라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영국남자 메브와 사는 펭귄 작가는 아마 지금 영국에 가 있는 모양인데 브렉시트 건으로 모두가 걱정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웹툰으로 소개했다. 사실 영국 사람들 말고 모든 이들이 우려과 걱정의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정작 본국에서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렇군 싶었다.


그리고 이번에 영국남자 메브의 아내가 된 펭귄 작가가 소개하는 영국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만나 보게 됐다. 한국에서 지낼 적에는 알콩달콩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한국말 배우는 이야기가 주를 이뤘는데 본격 요리책인 <모락모락 펭귄의 부엌>에서는 영국 음식은 정말 맛이 없어라는 기존의 편견을 깨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그녀가 소개하는 영국 요리들은 큰 어려움 없이 준비할 수 있는 거란 생각에 요리라면 정말 문외한인 나조차도 한 번 시도해 볼까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 정도였다. 친절도 하셔라. 원래는 요리까지 도전한 기록을 담는 그런 리뷰를 쓰고 싶었으나 타고난 게으름 덕분에 그 시도는 미처 못하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음식의 세계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 같다는 펭귄 작가 권두언이 계속해서 잔상을 남긴다. 그렇지 요리의 세계에 정답이 어디겠는가.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는 레시피는 정말 각양각색이 아닐까. 그 멋진 요리를 마다하고 현란한 음식의 향연이 펼쳐지는 뷔페에 가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수프를 주저하지 않고 퍼담는 메브의 모습을 보며 웃음꽃이 절로 피었다. 영국 문화권이라고 할 수 있는 캐나다에서 한동안 살았던 옆지기에게 물어 보니, 우리나라 식으로 표현하자면 육수에 해당하는 아주 다양한 스톡이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그녀가 선보인 양송이 수프에서는 아마 치킨스톡을 사용했었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소시지롤, 보기만 해도 절로 군침이 넘어가는 스코치에그, 간편가정식처럼 보이는 코티지파이 같이 간단하면서도 식감을 자극하는 사진들을 보니 당장 마트에 달려가 식재료들을 장만해서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요리를 먹고 싶은 마음이겠지. 토드인더홀처럼 기괴한 이름의 요리는 또 어떤가. 만화의 말미에 펭귄과 메브 모두 두꺼비킬러라는 컷은 정말 최고였다.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피시앤칩스도 당연히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칩숍이라고 해서 피시앤칩스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 사진을 보니 바삭하게 구워져 전통적 방식으로 신문지 같은 데 둘둘 말려져 나오는 피시앤칩스에 시원한 에일 맥주 한 잔 마시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오 지상천국에 온 기분이려나. 언젠가 영국에 가게 된다면 꼭 칩숍에 들러서 피시앤칩스를 먹어 볼테다. 마지막으로 삼색으로 장식된 디저트 코너의 트라이플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어졌다. 아무리 간단하다지만 내가 그런 요리를 할 수 있을 진 정말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난 만드는 것보단 먹는 데 소질이 있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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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천명관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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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여전히 <고래>는 한국 최고의 데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 소설 한 편으로 나는 천명관 작가의 팬이 되었노라고 자부한다. 문제는 그 후의 행적이다. 야구로 치면 클리이튼 커쇼 급의 신인투수가 혜성처럼 등장해서 리그 MVP, 사이영상 그리고 팀을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려 놓을 정도의 활약으로 타자들을 씹어 먹었다. 그런데 2년차부터 서포머 징크스에 시달리다가 그저 그런 투수로 전락해서 저니맨이 되었노라는. 그런데 되짚어 보면 천명관 작가의 출발부터 B급 정서의 유전자가 그의 작품 곳곳에 잠재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애정이 <고래>시절 만큼은 아니지만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마음으로 읽은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에서는 정말 싸이의 <강남 스타일> 저리가라할 정도의 B급 정서가 폭발한다.


우선 내고향 인천의 지명이 숱하게 등장하기 때문에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를 애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의 핵심적인 주인공 인천 연안파의 때깔 나는 보스 양석태 사장이 산 채로 묻혔다가 기적적으로 탈출해서 복수극에 나선다는 건달전설로 시작되는 소설의 책장은 정말 쉴 새 없이 넘어간다. 그 와중에 한 껀 크게 잡아서 건달로 성공해 보겠다는 야심만만한 청년 건달후보 울트라(리스크)가 등장하기도 하고, 한탕 크게 사기 치고 베트남으로 튄 뜨끈이가 등장하며, 에로 영화계의 신화 박 감독이 가세하며, 안산 아웃소싱 인력업계의 거물 장대리, 빼어난 미모로 양 사장을 현혹시키는 연변 출신의 안마사 연희 아니 지니라는 아가씨, 20억 짜리 다이아몬드 강탈사건에 연루된 삼 대리의 출현, 영암출신 조폭으로 국회의원 도지사를 거쳐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며 시베리아 호랑이를 사겠다고 덤벼드는 시골촌닭 남 회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35억 짜리 종마 천둥이를 도둑맞은 부산 손 회장까지 악머구리 끓듯 욕망의 행성이 대충돌하는 난장이 벌어진다. 그런데 물론 소설은 그만큼 재밌다.


건달세계도 신자유주의 영향을 받아 꼭 필요한 인원만 챙기고, 일이 있을 때마다 동네에서 건달을 꿈꾸는 비정규직 선수들을 수급하는 아웃소싱 시대라는 말에 실소가 터졌다. 전세계를 정복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어느 순간 건달업계에도 그 마수를 미쳤구나 싶어서 말이다. 헬조선의 대표선수들이라고 할 수 있는 울트라와 깡구 그리고 공업용은 건달업계에서도 밑바닥 인생이다. 아, 조 위에 목록에서 양 사장의 오른팔이자 브레인으로 활동하는 형근에 대한 이야기가 빠졌구나. 빵에서 알게 된 동생 루돌프와 야릇한 관계로 발전해 가는 과정이 참말로 눈물겨울 지경이다. 마초 중에 마초일 수밖에 없는 건달이 호모라는 설정은 도대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기발하면서도 해괴한 발상인지 웃음이 빵빵 터진다.


업계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관심법의 명수로 알려진 양 사장이 자신이 원래 슈킹하려고 계획했던 20억 다이아먼드를 털리고, 괘씸하게 자신의 재산을 털어갈 만한 이들의 목록을 주욱 작성해서 궁예를 능가하는 신기의 기술로 마침내 범인을 지목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느닷없이 베트남에서 어렵게 모셔온 뜨끈이를 자기네 물건이라며 강탈해간 영암 남 회장과 일당의 호랑이 사랑은 또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호랑이 대신 고양이로 바꿔치기하려고 했다가, 족보도 모르는 무지렁이 건달들에게 다구리 당하고 동네 건달에게 접촉사고 때문에 두들겨 맞은 망신은 도대체 어떻게 해결할지 답이 없어 보인다. 우리 헬조선 삼총사들은 마떼기 작업에 나서서 부산까지 원정가서 말 무르팍을 조지라는 명령을 받고 갔다가, 양 사장보다 한 수 위인 손 회장이 애지중지하는 35억짜리 종마 천둥이를 무슨 옆징 똥개 훔치듯 그렇게 탈취한다. 하지 말라는 짓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죽어라고 하고, 하라는 짓은 당최 관심없는 이들이 건달계를 평정하겠다고 나섰으니 그 바닥이 엉망진창이 되는 건 시간문제가 아닐까. 어설픈 투시법이 종국에 가서 성공한다는 만화 같은 설정 역시 최고다.


이 시점에서 천명관 작가는 코믹활극 장르 정도로 해서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의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소설을 쓴 게 아닌가 하는 미필적 고의에 해당하는 의심이 불쑥 튀어나온다. 건달세계에조차 청년실업 문제를 갈음하는 아웃소싱이라는 노동의 양극화 현상이라는 현실 비판에서부터 사회에 독버섯처럼 퍼지는 사행성 성인게임방이 유원지에까지 등장할 수 있다는 가설, 밀수와 해외도피, 에로 영화 촬영 등 하류사회의 꿈틀거리는 욕망을 저인망식으로 긁어내는 솜씨가 가히 일품이지 않은가. 역설적으로 그것은 도저히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코리언 드림을 이룰 수 없다는 사회구조적 병리현상에 대한 찌질한 수컷들의 눈물겨운 투쟁의 기록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헬조선 삼총사들은 부의 상징인 BMW나 아우디, 벤츠 같은 고급차량을 자신도 언젠가는 몰 수 있는 착각에, 그런 차에 늘씬한 미녀를 태우고 도로를 질주하는 판타지를 적절하게 배합한 비현실적인 황홀경에 젖는다. 업계 뒷면에 도사린 누군가의 조종과 보호를 받고 배분의 법칙이 냉정하게 집행되어야 한다는 엄혹한 현실은 뒤로 한 채.


양 사장은 또 어떠한가. 시대의 로맨티스트답게 연희 아니 지니를 업계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박 감독을 통해 에로영화 데뷔를 도모하고, 그녀의 과거를 덮어줄 줄 아는 그런 호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연안파의 전설로 불리는 그도 알고 보면 어린 시절 어창에 갇혀 죽을 뻔한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의 입지전적 인물이 되었단다. 어떻게 보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당한 학대와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살다 보니 오늘의 자리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 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할 게 공부 밖에 없어서 공부로 성공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또 누군가는 할 게 소위 뜻이 하늘에 통해 건달이 되었다는 식의 등치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렇게 다양한 삶의 모습을 쉴 새 없이 읽다 보면, 한 무리 건달들이 각종 연장을 들고 사생결단을 내겠다고 분탕질을 치고, 2미터 장신의 용가리와 폐유를 뒤집어 쓴 루돌프라는 이름의 애인을 둔 형근이 슬로모션으로 싸우는 장면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베레타를 들고 다이아몬드와 종마 천둥이를 모두 거머쥐고 튀다가 호랑이 밥이 되어 버리는 어느 건달의 최후는 너무 황망하니 이쯤에서 마무리짓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는 정말 뛰어난 페이지 터너라는 데 의견이 없다. 아울러 영화로 만들어도(흥행은 보장할 수 없다) 괜찮은 수작이라는 느낌이다. 다만 문학적 완성도에서 본다면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재밌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어떤 경우에는 너무 가벼워서 탈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가볍게 읽기에는 정말 최고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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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29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명관 작가의 소설을 이 작품으로 처음 읽었어요. 너무나도 유명한 《고래》는 아직 안 읽어봤어요. 독서모임 시절 때 형님, 누님들이 《고래》를 호평했던 것이 기억나요. 이번 천 작가의 신작 소설은 가벼워 보였습니다. 《고래》를 인상 깊게 봤던 독자라면 신작 소설의 가벼움을 참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16-11-29 14:42   좋아요 0 | URL
정말 기대를 많이 하게 되고 <고래> 때문에 놓지
못하게 된 그런 작가인데,,, 그 후의 족적은 데
뷔작을 능가하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너무 뛰어난 데뷔작을 쓴 덕분일까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요...
 


내가 주로 이용하는 알라딘 중고서점은 산본점과 수원점 그리고 분당점이다. 산본점이야 걸어서 바로 갈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자주 가지만 수원이나 분당은 생각보다 좀 더 멀다. 그래도 필요한 책이 있다면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 가는 편이다. 가기 전에 검색을 해서 책 소장유무를 확인하고 간다. 그래야 가서 헛걸음을 하지 않으니까. 가는 도중에 누군가 책을 사간 경험도 있다. 그리고 매장에 가서 돌아다니며 책을 구경하다가 미처 몰랐던 책을 만나는 경우도 많다. 알라딘 중고서점의 강점 중의 하나는 매일 같이 스캔해서 책 위치를 파악해 주는 서비스가 아닐까. 내가 가장 최근에 방문한 북수원홈플러스 4층에 자리잡은 알라딘 서점도 새로 오픈해서 직원분들이 스캔작업을 하느라 분주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단독매장으로 자리잡은 다른 알라딘 중고서점과 달리 북수원홈플러스 알라딘 중고서점은 팝업스토어 개념으로 다른 매장들과 함께 자리를 하고 있다. 바로 옆에 상상노리라는 키즈카페가 있는 걸 봐도 그렇지 않은가. 게다가 저층에는 먹거리를 파는 푸드 스토어와 홈플러스가 입점하고 있어서 장 보고 책 읽는 시스템도 구축되어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경우 알라딘 매장들은 대부분 지하에 자리잡고 있는데 북수원홈플러스 매장은 지상 4층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 그리고 좀 더 넓은 연면적을 임대해서 그런지, 매장 내 공간이 다른 매장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넓고 이동이 용이했다. 평일 낮시간에 방문해서 그런지 몰라도 고객들이 비교적 적은 편이어서 마음껏 책구경을 할 수가 있었다. 시간만 좀 더 충분했다면 더 둘러보고 올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출발하기 전에 검색한 책들의 위치가 인쇄된 종이를 들고 가서 서가에 비치된 책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사고 싶은 단 한 권 밖에 없다면 책의 퀄러티는 중요하지 않겠지만, 두 권 이상의 책이 있다면 퀄러티 비교는 필수다. 물론 퀄러티에 따라 가격 차가 발생하는 건 당연히 감수해야할 사항이다.



책을 둘러 보다 보니 집에 사서 모셔 두고 아직까지도(!!!) 읽지 않은 책들을 중고서점에서 만나 당황한 기억이 한 두 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 출신 작가 마틴 에이미스의 <누가 개를 들여놓았다> 역시 그런 책이었다. 나의 서가 정중앙에 떡하니 꽂혀 있는데 이렇게 중고서점에서 만나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나 그래. 대산세계문학 전집으로 출간된 에른스트 윙거의 <대리석 절벽 위에서>도 서가에서 발견하고는 “음~”하는 신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윙거의 책을 중고서점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보유하고 있는 책이라 차마 살 수가 없었다.



아직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지 손님들이 거의 없었다. 나로서는 한가롭게 서가를 마음대로 구경할 수가 있어서 좋았지만, 종로나 강남 알라딘처럼 손님들로 벅적댔으면 하는 그럼 바람이 들었다. 책을 저렴하게 만날 수 있는 나로서는 책의 주요 수급처가 늘어나는 현상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책의 유통과 순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름 이해하지만 책의 소비자의 입장도 생각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원래 준비해간 자료를 보고 선정한 네 권의 책을 독서대에 두고 찬찬히 살펴 보는 중이다. 창비 세계문학 전집 시리즈로 나온 요제프 로트의 <라데츠키 행진곡>을 제일 먼저 골랐는데, 생각보다 두꺼워서 깜짝 놀랐다. 맨 위에 놓은 루이스 세풀베다의 <핫 라인>은 한 때 전작에 도전하느라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고는 사지 않은 기억이 난다. 세풀베다의 책이 우리나라에서는 생각보다 인기가 없어서 예전에 나온 책들이 소리 소문 없이 품절, 절판되고 있는지라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책 바구니에 담았다.


다음은 밀로라드 파비치의 <하자르 사전>으로 역시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로 나온 책을 득템했다. 그리고 보니 파비치의 <바람의 안쪽>도 중고서점에서 샀는데 아직 안 읽고 버티고 있는 중인가 보다. 마지막으로 피터 니콜스의 <록스 호텔>은 오늘 아침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이 소설 생각 이상으로 재밌다. 시간을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구성에서부터 시작해서 루루와 제랄드 두 남녀 사랑과 이별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내가는 기술이 남다르다. 왜 이렇게 좋은 작가들의 책은 우리나라에 드문드문 소개가 되는 걸까. 피터 니콜스의 다른 책도 만나 보고 싶다.



이제 진짜 레어 아이템이 된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도끼 전집의 레드정장본을 수 권 목격할 수 있었다. 이미 <죄와 벌> 그리고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입수를 했지만 미처 읽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라 선뜻 구매할 엄두를 내지 못하겠더라. 모름지기 책은 사서 읽어야 하는데 사는 속도를 읽는 속도가 도저히 따라 잡지 못하니 책 사는 행위가 점점 마음 한 구석의 부담이 되는 듯한 그런 느낌이어서 적절하게 구매를 자제하게 되었다.



서가의 이곳저곳을 뒤지다가 문득 오래 전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을 한 권 만났다. 내가 수년 전에 서평계에 처음으로 입문하면서 만났던 책이 <달라이 라마 자서전>이었고 두 번 째 책이 바로 이날 다시 만난 <만사형통>이었다. 처음에는 무언가 힘을 잔뜩 들여서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그렇게 노력했던 것 같다. 다 지나고 나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자각하게 되었지만, 또 그땐 그랬으니까. 그 시절을 되돌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직 도서 분류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발터 뫼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가 영미문학으로 분류가 되어 있더라. 책에 대해 조금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 보면 단박에 알 수 있었을 텐데 아직 훈련과 교육이 부족한 모양이다. 그 외에도 그런 부분들이 많이 눈에 띄었지만 그런 점들을 다 꼬집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나의 마지막 장바구니는 처음에 골랐던 대로 채워졌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핫 라인>, 밀로라드 파비치의 <하자르 사전>, 피터 니콜스의 <록스 호텔> 그리고 요제프 로트의 <라데츠키 행진곡> 이렇게 네 권의 책을 골랐다. 일주일 동안 네 권의 책 중에서 가장 얇은 <핫 라인>은 이미 읽었고, 오늘부터 <록스 호텔>을 읽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출발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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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0-18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스24 중고서점 등장 때문일까요? 요즘 알라딘 중고서점이 하나씩 새로 들어서는 상황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

레삭매냐 2016-10-18 11:02   좋아요 0 | URL
어디선가 들은 바로는 알라딘이 더 이상의 매장 설립은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도 우후죽순식으로
마구 생겨가고 있네요. 이젠 오프라인 수준인 것 같습니다.

한 도시에도 두 곳씩 생기고, 스타일도 점점 진화하고 있죠.
대형마트 팝업스토어는 정말 생각도 못했네요.

제가 알기로는 중고서점 운영해서 벌어 들이는 수익이
제법 짭짤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점점 매장이 늘어
나는 거게죠. 장사가 안 되는데 굳이 세우겠습니까.

아마 이에 질세라 예스24도 매장을 늘리고, 인터파크
도 중고서점 시장에 뛰어들겠죠. 새책 파는 교보만
안됐네요.
 
핫 라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권미선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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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다시 루이스 세풀베다를 읽었다. 어제 새로 오픈한 북수원홈플러스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러서 모두 4권의 책을 샀다. 원래 계획했던 책 2권 그리고 즉석에서 산 2권. 후자의 두 권의 책 중의 하나가 바로 루이스 세풀베다의 <핫 라인>이었다. 물론 <핫 라인>은 오래 전에 읽은 책이다. 하지만, 당시에 책을 사진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었던 것 같다. 나의 몇 안되는 전작주의 작가 목록에 당당하게 올라 있는 루이스 세풀베다의 책이니 당연히 컬렉션에 추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보니 간간히 소개되는 그의 책을 읽고서도 리뷰를 쓰지 않은 것 같다. 다시 읽고 쓰지 못한 리뷰를 써야지 싶다.

 

세풀베다의 <핫 라인>은 2002년에 발표된 책으로 흑색 소설 계로 분류된다는 역자 후기를 읽었다. 1973년 아옌데 인민연합 정부가 극악한 피노체트 일당의 쿠데타로 전복된 이후, 칠레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사그라 들어 버렸다. 소설에서는 마누엘 칸데라스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군부독재의 대표선수가 자그마치 16년 동안이나 나라를 통치하면서, 칠레의 자유를 짓밟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면서 조국이 지상천국이라는 선전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씁쓸하게도 어느 나라의 현재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 그리고 보니 군부와 결탁해서 독재의 과실을 즐긴 기득권층에게 조국은 지상천국이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그런 나라 칠레의 오지 파타고니아, 아이센 해협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양갈비를 뜯고 지역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가축 도둑들을 잡는데 매진하는 조지 워싱턴 카우카만 형사다. 참고로 조지 워싱턴 형사의 형제 이름은 벤저민 프랭클린이라고 한다. 어느 날,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서 지역 사람들의 가축을 훔친 가축 도둑들에게 어김없이 정의의 총질을 해댔다. 문제는 그 중 하나가 국가 최고 권력자 칸데라스 장군의 아들이었다는 점이다. 카우카만을 지도하는 서장은 자기 휘하의 유능한 형사의 파멸을 두고 볼 수 없어, 수도 산티아고에서 성범죄를 담당하는 부서로 전출시키기에 이른다.

 

카우카만 역시 자신에게 다가오는 음습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던 모양이다. 소설의 프롤로그에서 화자가 만난 카우카만은 본능적으로 무언가 “안 좋”다는 예감을 충분히 받았다. 그의 말대로 고약한 냄새가 나는 쓰레기 천지에, 파타고니아와는 달리 자연친화적이지 않은 수도의 분위기가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에게 유일한 위로가 되는 존재는 택시운전사 아니타 레세스마 뿐이다. 둘의 나이가 합쳐 여든이 넘어가는 두 남녀는 중간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빠르게 사랑에 돌입한다.

 

새 부임지의 동료 형사들은 최고 권력자 아들의 엉덩이를 날려 버린 마푸체 인디오 출신 카우카만 형사에게 아무 일도 주지 않겠노라고 선언하지만, 사건사고를 몰고 다니는 그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국가의 녹을 축낼 수는 없지 않은가. 혹독한 군사독재를 피해 칠레를 떠났던 배우 커플이 조국으로 돌아와 새로 시작한 사업은 바로 핫 라인을 이용한 폰 섹스 비즈니스였다. 어떤 미치광이가 등장하기 전까지 사업은 나름 호조였던 모양이다. 우리의 주인공 파타고니아의 카우보이 카우카만 형사는 바로 무언가 안 좋다는 느낌을 확연하게 받는다. 과연 주인공 카우카만 형사는 시시각각 닥쳐오는 위협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라틴 아메리카 문학 씬에서 마술적 리얼리즘이 횡행하던 시절에도 루이스 세풀베다는 추세를 따르지 않고, 현실도피 대신 정면승부를 택했다. 비록 군부에 의해 추방되어 독일과 스페인을 전전했지만 필생의 업이었던 문학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글을 써댔다. 16년 기나긴 피노체트 독재를 끝내고 마침내 민주화를 이루어 냈지만, 피노체트 시절 군사독재에 협력했던 기득권 우파 세력의 벽은 강고했다. 그런 칠레의 현실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환경파괴를 소재로 삼아 다양한 글을 세풀베다는 발표해왔다. 누가 봐도 누아르 계열의 소설이라는 점을 <핫 라인>에서 느낄 수 있는데, 어둠을 어둠으로 제압하겠다는 설정이었을까. 마지막 칸데라스 장군과의 대결에서 카우카만은 인디오는 지난 수백년 동안 패배를 거듭해 왔지만, 우이냐(아라우코 산맥에 사는 작은 고양이)가 승부가 뻔히 보이는 개들과의 대결에서 그랬던 것처럼 적에게 최대한의 타격을 가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칠레 민주화 투사로 투쟁하던 배우 커플이 귀국해서 에로틱한 전화 사업자로 변신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칠레가 정상적인 국가였다면 올곧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사업에 종사했을까? 법 위에 무소불위의 권력이 횡행하는 비정상 국가에서 정의와 불의의 경계는 모호하기만 하다. 국가만이 행사할 수 있는 폭력을 개인적 원한 때문에 사적으로 전용하고, 형사를 죽이기 위해 고용된 킬러가 자신을 제압한 인디오 형사에게 뇌물을 주겠다고 제안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실소가 터져나왔다.

 

리얼리즘에 기반한 소설이지만, 결말은 지극히 판타지에 가깝다. 어쩌면 현실세계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설정을 한 걸까. 마지막 문단에서 수도 산티아고의 쓰레기 수거차량들이 자기 본연의 임무를 위해 부지런히 도심을 누비는 장면에 대한 묘사는 정말 대가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어주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말이지만, 잊어서도 안 되고 용서할 수도 없다는 말의 의미를 곱씹게 해줬다.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가 담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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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로베르트 제탈러 지음, 오공훈 옮김 / 그러나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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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발굴해냈다면,
2016년 로베르트 제탈러의 <한평생>도 버금가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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