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변 십자가 모중석 스릴러 클럽 31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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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말하는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social networking service)의 시대다. 대중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그리고 개인 블로거가 실어 나르는 그야말로 넘쳐나는 정보를 취사선택해서 받아들인다. 그 정보가 얼마나 정제되었는지, 그리고 나에게 유용한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이슈라면 수위를 가리지 않는다. 동작학의 대가 캐트린 댄스가 등장하는 두 번째 시리즈 <도로변 십자가>는 바로 이제는 주변에 안착한 SNS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그런 소설이다.

 

제프리 디버는 <도로변 십자가>5일 동안의 숨 막히는 사건 전개 속에 욱여넣는다. 언제나 그렇듯 미스터리한 사건의 시작은 평이하다. 월요일, 캘리포니아 고속도로 순찰대원이 도로변에 세워져 있는 십자가를 발견한다. 문제는 시간이다. 십자가가 상징하는 죽음은 과거형이지만, 이 십자가의 날짜는 미래다. 불현 듯 예고살인이 연상된다. , 이제 앞으로 희생자들이 가진 연관성이 등장할 차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널리스트 출신 전직 변호사 제프리 디버는 해결사 캐트린 댄스를 투입한다. 탁월한 프로파일러이자 바디 랭귀지 전문가인 캐트린 댄스는 전작 <잠자는 인형>에서 다니엘 펠 사건을 함께 했던 마이클 오닐과 함께 수사에 착수한다. 그리고 예고된 희생자들이 모두 하나의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뭐 여기까지는 좋다. 하지만, 제프리 디버는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는 사건을 배배 꼬기 시작한다.

 

제프리 디버는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트래비스 브리검을 범인으로 몰아가기 위해 갖가지 준비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추리소설 팬이라면 모두 아는 클리셰이라고 해야 할까? 과연 트래비스가 범인일까? 아니면 한 번 더 꼬는 걸까? 베스트셀러 작가와 독자의 심리전이 바야흐로 개시된다. 트래비스가 관련된 예전의 교통사고를 다룬 블로그 칠턴 리포트와 운영자 제임스 칠턴이 가세하면서 제프리 디버 특유의 꽈배기 기법과 단 한 가지의 단서도 놓쳐서는 안되는 긴장감이 독자를 옥죄어 온다. 그와 동시에 역시 제프리 디버 추리소설 특유의 쫄깃한 맛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를 무대에서 실종이라는 방법으로 무대에서 지워 버리면서 제프리 디버는 독자를 혼란에 빠트린다. 뭐 이 정도 쯤이야. 방심한 틈을 타서 작가는 한 방 더 먹인다. 우리의 주인공 캐트린 댄스는 특유의 본능에 의거해서 그녀가 쫓는 트래비스가 범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느끼는 순간, 독자는 즉시 멘붕 상태에 돌입한다. 이렇게 쉽진 않겠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범인이란 말인가. 아주 고전적인 전개 방식이다. 도대체 누가 범인인지 궁금해서 책장을 넘기는 손길에 가속이 붙는다.

 

21세기 소셜 네트워크 시대답게 양방향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 그리고 블로그를 제프리 디버는 좋은 소재로 삼았다. 일단 긍정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오프라인에서 맨투맨으로 대면하면서 프로파일링을 진행해야 살 수 있는 캐트린 댄스의 전공이 한 층위 덮씌워진 온라인에서 효과적이었나 하는 근본적인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물론 수면 아래 감추어진 범행의 동기야 작가의 친절한 설명이 없다면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기존의 추리소설의 양태에서 보여주는 예상 범인의 일거수일투족을 통한 분석이 온라인 세상에서 어느 순간 휘발해 버리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게다가 온라인을 즐기는 않는 이들에게는 외계 언어처럼 다가오는 게임 용어 또한 낯설다.

 

그럼에도 첨단 테크놀로지와 감각 수사라는 종래의 수사기법의 균형추를 맞춰 주는 캐릭터로 캐트린 댄스는 매력적이다. 자신의 전공인 동작학에 기반한 프로파일링과 꼼꼼하면서도 범인 검거라는 수사관의 기본 사명에 투철한 여성수사관 아이콘은 앞으로의 활약이 더 기대된다. 전작 <잠자는 인형>이 그녀에 대한 소개였다면, <도로변 십자가>는 진화해 가는 캐릭터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다채로운 뷔페의 한켠을 차지한 거대한 음모론은 물론이고, 개인의 일상이 낱낱이 공개된 온라인 세상이 제시하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작가의 묵시록적 경고는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도 내내 마음속에 깊은 잔상을 남겼다. 올해 발표된 예정이라는 제프리 디버의 캐트린 댄스 시리즈 세 번째 인스톨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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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프랑스 혁명 1 - 혁명의 영웅
사토 겐이치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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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전공했다. 대학 시절 수업 중에 원서강독이라는 수업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영어로 된 원서를 공부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 시절에 우릴 말도 못하게 괴롭혔던 책이 바로 에릭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였다. 한 학기 내내 그렇게 강도 높은 수업을 했지만, 얼마나 진도가 나갔는지 기억조차 희미하다. 그 뒤에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 에릭 홉스봄의 저작이 한글로 번역되어 세상의 빛을 보았고, 다시 도전했지만 보기 좋게 나가 떨어졌다. 아직도 집에는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가 내 머리맡 책꽂이 얌전하게 꽂혀있다.

 

책 이야기 하기에 앞서 왠 뜬금없는 에릭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 타령이냐고? 이제 이야기할 사토 겐이치 작가의 <소설 프랑스 혁명>의 큰 줄기인 프랑스대혁명의 시원을 에릭 홈스봄이 시원하게 밝혀 주었기 때문이다. 홉스봄의 저작이 학술적인 차원에서 그가 이중혁명(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경제, 그리고 프랑스혁명이 상징하는 자본주의 정치)으로 규정했다면 사토 겐이치는 좀 더 대중이 접하기 쉬운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223년 전에 벌어진 프랑스혁명에 접근한다. 모름지기 선택은 독자가 할지어다.

 

<소설 프랑스혁명>은 스위스 평민출신 재무장관 자크 네케르가 혁명전야인 1789년 우유부단한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를 만나 당면한 재정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전국삼부회를 개최하고, 새로운 세금 제도와 그동안 세금 면제라는 시혜를 받았던 1신분(성직자)과 2신분(귀족)에 대한 과세 논의로 시작된다. 당연히 인원수에서 압도적인 3신분(평민)은 당연히 머릿수대로 의결권을 주장한다. 귀족 출신이지만, 용의 꼬리 되느니 차라리 닭의 머리가 되겠다는 신분을 초월한 발상으로 3신분 대표로 삼부회에 진출한 미라보 백작이 프랑스혁명 초기의 주역으로 발군의 정치적 실력을 발휘하는 과정을 사토 겐이치는 세세하게 그린다.

 

가만 있자, 이거 작가 사토 겐이치가 일본 사람이 아니던가. 메이지 유신 이래, 서구 문물과 학문을 체계적으로 자신들의 것으로 만드는데 일가견을 보여줬던 일본 문화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낄 수가 있었다. 문득 과연 프랑스혁명의 본고장인 프랑스 사람들이 보는 외국인이 쓴 “소설” 프랑스혁명사에 대한 평가가 궁금해졌다. 우리나라의 독립 운동사를 네덜란드 사람이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앞선다.

 

오랫동안 프랑스 혁명사를 쓰기 위해 준비했다는 일본 작가는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된 재정위기를 주된 이유를 쓸데없이 경쟁국 영국에 대항해서 독립전쟁을 치른 미국을 지원한 프랑스 왕실의 간섭에서 찾는다. 많은 이들이 생각하듯이 오스트리아 출신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지나친 낭비벽도 문제가 있었지만, 전비로 사용된 엄청난 재정지출과 1788년을 강타한 대기근과 그에 따른 식료품 부족으로 인한 물가폭등 등으로 프랑스 왕국의 대다수를 이루는 민중의 분노는 그야말로 임계점에 달해 있었다. 마르세유와 엑스를 비롯한 각지에서 벌어진 소요와 폭동은 왕국의 위기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였다.

 

왕국에 닥친 전대미문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앙시앵 레짐의 기득권 계층은 하는 수 없이 국왕 루이 16세가 수세 기만에 부활한 삼부회의 개최를 승일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 시기에 호색한이지 방탕한 몰락귀족으로 집안에서조차 내침을 받은 미라보 백작이 프랑스 정치계에 등장해서 사자후를 과시한다. 평민 출신 삼부회원들은 회의 시작에서부터 특권 계급과는 다른 차별을 받는데, 진정한 평민 계급의 대표선수라고 할 수 있는 로베스피에르의 정치적 각성이 굵직굵직한 사건의 전개와 더불어 진행되는 점을 눈여겨 볼만하다.

 

사토 겐이치의 논픽션에서 특이할 만한 점은 훗날 혁명이 자코뱅파의 무자비한 폭력과 숙청에 의해 공포정치로 치닫기 전까지 소위 혁명지도자들은 왕권신수설에 의거해서 국왕의 존재를 인정하고, 온건한 개혁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어떻게 해서 그들이 국왕 사형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에 호소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는지 작가는 그 발단의 시원을 조목조목 독자에게 들려준다. 루이 16세도 자신이 의도했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자 바로 반동적인 조치를 통해 평민회의 의결을 무시하는 반동적 조치들을 서슴지 않는다.

 

한편, 탁월한 정치가였던 미라보 백작은 이 과정에서 1신분을 이루는 성직자 계급을 먼저 타겟으로 삼아 느슨한 계급적 이해관계를 허무는 정치공작을 시작한다. 대중을 휘어잡는 선동은 말할 것도 없다. 훗날 미라보의 뒤를 이어 국민의회의 지도자로서 혁명의 기수로 등장하는 로베스피에르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어제의 적과도 거리낌 없이 손을 잡는 정치의 비정한 현실을 배워 나가기 시작한다. 자, 목 끝까지 차오른 혁명의 뜨거운 기운은 과연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 역사를 이야기(게스타이)로 다뤘듯이, 사토 겐이치 역시 공식적인 역사의 큰 줄기에서 삐져 나온 부분에 자신이 공부하고 검토한 역사 이야기를 채워 놓는다. 말할 것도 없이, 요즘처럼 녹취가 존재하지 않는 당시의 미라보와 로베스피에르의 만남 대사는 모두 작가 상상력의 발로이다. 소설의 뒷면에 나오는 수많은 참고문헌이 보여주듯, 당시 상황을 바탕으로 ‘이렇게 이야기했을 것이다’라는 것이 바로 사토 겐이치의 목소리다. 그리고 당연히 작가의 주관이 배어 있을 것이다. 사토 겐이치가 과연 이 대하 시리즈를 통해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 더 책을 읽어봐야 할 것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혁명 지도자로 등장하는 미라보와 로베스피에르의 역할에 대해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여전히 프랑스혁명의 원동력이었던 계급적 차별에 대한 개인이 아닌 민중의 행동양식과 역할론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서술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쨌거나 쁘띠 부르주아였던 로베스피에르의 정치적 각성과 계급적 자각이 모든 이들의 그것을 아우를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이제 겨우 한 권을 읽었을 뿐이다. <소설 프랑스혁명>이 모두 12권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끝나지 않은 혁명” 이야기의 시작치고는 출발이 괜찮은 것 같다.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에 다시 도전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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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청부업자의 청소가이드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4
하들그리뮈르 헬가손 지음, 백종유 옮김 / 들녘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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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킬러가 등장하는 소설은 사족을 못 쓴다. 가장 최근에 국내 작가 중에 김언수 씨가 쓴 <설계자들>은 물론이고, 정말 좋아하는 작가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루이스 세풀베다의 <감상적 킬러의 고백>에 이르기까지 킬러가 나오는 소설은 그야말로 불가사리처럼 읽어댄다. 그런데 이번엔 아이슬란드에서 날아온 킬러 소설이라? 그것도 내가 애정해마지 않는 들녘의 일루저니스트 시리즈라면 두 팔 벌려 환영이다. 우연히 소설에 대한 소개글을 읽고 바로 구매했고, 오늘 새벽에 다 읽었다.

 

이름도 생소하기 짝이 없는 하들그리뮈르 헬가손(헬가의 아들이란 뜻이겠지?) 작가의 국내에 두 번째로 소개되는 소설로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이 소설은 내전으로 만신창이가 된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출신의 킬러 “톡시” 토미슬라브의 좌충우돌 기상천외한 모험에 대한 이야기다. 잘 나가는 뉴욕의 킬러 조직원인 톡시는 잘못해서 FBI 요원을 죽이고 쫓기던 중, JFK 공항에서 막 북극의 나라 아이슬란드로 떠나려는 데이비드 프렌들리 신부님마저 ‘청소’하고 그의 신분을 빌려 간신히 아슬아슬하게 미국을 탈출한다.

 

가톨릭 신자지만 평생 교회 출입을 하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던 킬러 톡시는 속세에 찌든 악의 무리를 구원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는 아이슬란드 가정에 은신한다. 군대도 없고, 밤에도 해가 지지 않으며, 놀랄 만큼 비싼 물가로 유명하다는 아이슬란드에서 반평생 함께 한 총기 없이 지낸다는 건 그에게 차라리 고문이다. 상스러운 욕을 입에 달고 살던 톡시/토미가 전혀 다른 새로운 인물로 변신하는 과정을 헬가손은 유머스러우면서도 진중하게 그려낸다.

 

톡시는 뉴욕의 애인이 끔찍하게 살해됐다는 사실과 자신이 그동안 살아온 삶에 대한 회한으로 자살을 감행하지만 그마저 뜻대로 되지 않고, 말 그대로 죽도록 고생만 한다. 그것도 모자라 게다가 가라데 신부에게 실컷 얻어터진다. 이런 블랙 유머 코드 속에 헬가손은 전쟁에서 자신의 아버지와 사랑하는 형을 잃고 타인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생존의 기본 원리를 깨닫게 된 ‘발칸의 짐승’ 톡시의 원형을 속살 그대로 드러낸다. 작가는 암살(청소)이라는 극단적인 폭력으로 삶을 영위하던 톡시가 군대와 총기가 전무한 나라 아이슬란드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워나가는 과정에 묵언의 방점을 ‘쿵’ 찍는다. 좀 진부하기는 하지만, 종교적 구원이라는 약간의 조미료도 빼놓지 않으면서 말이다.

 

개인적으로 <살인청부업자의 청소가이드>에서 톡시가 귀트민뒤흐르의 집에서 맨발로 탈출해서 아이슬란드의 어느 집에 침입해서 그동안 자신의 삶을 반추하면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크로아티아 민병대원에서 뉴욕의 잔혹한 킬러로, 다시 구원과 속죄의 상징인 신부에서 폴란드 출신 페인트공으로 시시때때로 바뀌는 자신의 기구한 운명의 시작이 지난 세기말 집단학살과 인종청소라는 구시대적 슬로건으로 전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었던 세르보-크로아티아 내전에서 비롯되었다는 톡시의 고백이 이어진다.

 

전 미국을 돌며 무엇에 쫓기듯 살인청부를 하던 톡시는 모든 아가씨들이 버터빛 금발 머리를 하고, 대개 두서너 가지의 일거리를 가지고 있으며 6주의 짧은 여름을 즐기기 위해서라면 이제 톡시가 끊은 살인도 마다하지 않을 거라고 짐작되는 바이킹의 나라 아이슬란드에서 새로운 삶의 연착륙을 시도한다. 작가가 평화와 화해의 상징으로 제시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역시 하나의 클리셰이처럼 보이지만 나름대로 쓸만했던 것 같다. 한편, 자신의 조국 아이슬란드의 좋은 점들을 대놓고 자랑하는 헬가손이 재밌게 느껴졌다. 어쨌든 한 때는 데이트 상대를 벌벌 떨게 만드는 흉악한 킬러였지만, 과거와 이별하고 세상과 화해를 시도하는 전직 킬러의 고군분투가 너무 재밌었다.

 

어느 작가의 책을 딸랑 한 권 읽고 나서 팬이 되었다고 말하기엔 조금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하들그리뮈르 헬가손의 다른 작품을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헬가손 때문에 낯설지만 친근하게 들리는 아이슬란드에 호감을 갖게 되었다면 오바일까? 아무래도 전작 <레이캬비크 101>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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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번지는 곳 베네치아 In the Blue 6
백승선 지음 / 쉼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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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찾았다. 로마에 신부로 유학 중인 사촌형이 살고 있었고, 그 형을 따라 수도원에 가서 점심을 먹게 됐다. 식사 도중에 같은 수도원에서 지내는 형의 친구 신부님을 소개받았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으니, 베네토 사람이란다. 아니 베네토는 베네치아가 있는 지방이 아니던가. 그럼 이탈리아 사람 아닌가? 자신이 태어난 고장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베네토 신부님은 고작 100년 남짓한 통일국가의 일원으로 불리길 원하시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직 가보지 못한 베네치아에 대한 나의 잊을 수 없는 단상이었다.

 

이탈리아에 갔을 로마에 갈 생각만 했다. <낭만이 번지는 곳 베네치아>의 작가 백승선 씨가 책에서 찬양하는 베네치아에는 아예 가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 책에 실린 글과 사진 그리고 일러스트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깊은 후회감이 들었다. 아 내가 왜 그 때, 베네치아에 가지 않았던가 하고.

 

작가는 영화와 문학에서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 베네치아에 대한 현란한 서술로 나를 유혹했다. 역시 책쟁이를 꼬시는 데는 문학/영화만한 장르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아쉽게도 캐서린 헵번이 나오는 영화나 자니 뎁, 앤젤리나 졸리가 등장하는 ‘베네치아’ 영화는 보지 못했다. 다만 오래 전, 한창 영화에 미쳐 살던 시기에 만난 루치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의 죽음> 영상이 떠올랐다. 토마스 만의 원작으로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절세의 미소년을 사랑한 어느 노작가의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넘나드는 이야기의 잔상만이 무시로 떠올랐다. 바닷가에서 자신이 사랑한 소년을 바라보던 주인공의 아련한 눈빛...

 

고대말 유럽에서 가장 선진 국가였던 로마제국을 침공한 야만족을 피해 바닷가에 있는 섬에 엄청난 수의 말뚝을 박아 넣고 그 위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것이 오늘날 베네치아의 시초라고 했던가. 이제는 여행의 고전 같은 지위에 오르게 된 베네치아를 한 번 찾은 사람은 언젠가 다시 찾게 될 거라는 작가의 전언이 아직도 베네치아에 가보지 못한 나그네의 가슴 한 켠을 맹렬하게 자극한다. 그렇지 고전은 모름지기 다시 읽어야 하는 법인 것처럼, 좋은 곳 역시 다시 찾는 법이다.

 

기존의 번짐 시리즈가 특정 국가와 지붕이 있는 장소였다면, 이번의 여섯 번째 ‘번짐’에서는 드디어 특정 도시가 등장한다. 한 나라가 혹은 다른 나라의 특정한 장소를 한 권에 그동안 담아냈는데 이번에는 책 한 권을 온전하게 작가가 사랑해 마지않는 한 도시에 헌정하는 셈인가. 작가는 과거와 현재가 오묘한 공존을 이루며 존재하는 도시 베네치아의 곳곳을 은근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들려준다.

 

아무렇게나 내다 널은 빨랫감에서 오늘은 사는 인간의 냄새를, 그가 물의 도시라고 명명한 도시의 물 위에 비친 하늘거리는 알록달록한 건물의 물그림자 그리고 수백 년 동안 대를 이어 만들어 온 유리세공업자들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소통”이라는 주제를 자연스럽게 제시한다. 책을 읽으면서 언제나처럼 질투심이 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꼴랑 며칠짜리 순례객이 아니라, 며칠이고 마음껏 머물면서 도시의 이곳저곳을 누빌 수 있는 작가의 무한한 자유가 너무나 부럽다. 나에게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도 그처럼 베네치아를 멋지게 찬양할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폭염특보가 내려 무더위와 싸우는 중에 잠시나마 <낭만이 번지는 곳 베네치아>를 읽으면서 행복했었다. 나는 이렇게 멋진다는 베네치아에 가보려나. 나 대신 지난 봄에 베네치아에 다녀 오신 부모님이 몇 장 찍어다 주신 사진으로 아쉬움을 달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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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번지는 유럽의 붉은 지붕 - 지붕을 찾아 떠난 유럽 여행 이야기 In the Blue 5
백승선 지음 / 쉼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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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부럽다. 이렇게 백승선 씨처럼 많은 유럽의 나라에 가보고, 번지는 추억을 되새겨 볼 수 있다니 말이다. 지금까지 나온 네 권의 번짐 시리즈가 개별 나라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 책은 전 유럽을, 그 중에서도 붉은 지붕과 잿빛 지붕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아우른다.

 

언제나처럼 독자를 반겨주는 푸근한 사진이 담긴 기행문은 어느새 백승선 씨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느낌이다. 책을 처음 보는 순간, 삭막한 회색빛 아파트 단지가 삶의 표준 양태가 되어 버린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다채로운 빨간 지붕의 화려한 행렬에 그만 황홀해졌다. 모름지기 여행이란 일상의 권태에서 탈출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유럽의 붉은 지붕이 주는 시각적 만족감은 상상 그 이상이다.

 

직접 가봤던 파리와 잘츠부르크 그리고 그간의 번짐 기행문에서 만날 수 있었던 두브로브니크, 브뤼헤, 겐트, 스플리트, 토룬이라는 도시 이름이 어찌나 반갑던지.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면서 오래 전에 함께 했던 소중한 여행의 추억이 샘솟는 기분이 들었다. 미처 가보지 못한 피렌체, 바르셀로나 그리고 뤼데스하임 같은 지명에서는 새로운 도전의식을 고취시킨다. 나도 언젠간 가보고 말겠다는.

 

그중에서도 가장 나의 눈길을 끄는 건 몬테네그로의 페라스트였다. 도대체 어디에 위치한 곳인지 알고 싶은데 구글맵으로 찾아보는 수고도 마지않았다. 게다가 인터넷으로 페라스트-몬테네그로를 검색해 보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 나온 블로그를 클릭해 보니 바로 백승선 씨의 첫 번째 범진 시리즈였던 크로아티아의 일러스트 그림이 대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니 동일한 분의 블로그였던가. 책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훨씬 많은 사진에 그만 입이 쩍 벌어졌다. 때로는 구구절절한 그런 말보다, 한 장의 사진에 더 울림이 있는 법이다. 그렇게 무언가 좀 부족한 마음에 찾아낸 페라스트의 감흥은 유달리 풍부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기행과 문학의 접목도 인상적이었다. 오래 전에 헌책방에서 만나 사기는 했지만 여전히 읽지 못하고 있는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는 그래서 더 특별하게 다가왔던 걸까. 캐나다 작가 스티븐 갤러웨이의 장편소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의 배경이었던 사라예보도 마찬가지다. 저격수의 총탄과 박격포탄이 난무하는 내전의 한복판에서 폭격으로 사망한 22명의 망자를 위로하며, 평화를 염원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첼로 연주를 감행했다는 베드란 스마일로비치의 전설 같은 이야기는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다. 언제나 그렇지만, 여행의 고갱이는 역시 아름답고 수려한 풍광이 아니라 그 풍광을 완성시키는 인간의 이야기였다.

 

번짐 시리즈를 통해 작가 백승선 씨의 아름다운 풍광을 찾아나서는 창조적인 가치 추구야말로 이 시리즈의 핵심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로 말미암아 번져 나가는 행복 바이러스가 모쪼록 계속해서 창궐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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