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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
알베르 카뮈 지음, 안건우 옮김 / 녹색광선 / 2025년 3월
평점 :

대혼돈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110일 전의 비상계엄 사태가 시발점이었다. 책쟁이들은 무언가 이런 시절을 달랠 수 있는 책을 원했고, 출판사는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알베르 카뮈의 희곡 <계엄령>을 신속하게 펴냈다. 무려 77년 전에 발표된 카뮈의 희곡 <계엄령>은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찬반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희곡의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에스파냐 총독이 다스리던 카디스에 어느날 페스트와 그의 비서가 등장해서, 권력을 이양 받는다. 당연히 페스트는 독재/전체주의의 상징이다. 실질적 권력자였던 총독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보장받고, 권력을 페스트에게 넘긴다. 왜 이 장면에서는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를 수상으로 발탁한 바이마르 공화국의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페스트와 그의 충실한 비서는 각종 포고령과 표식이라는 폭력적 방식으로 카디스를 장악해 버렸다. 전체주의 독재자답게 죽음이라는 공포 그리고 까다로운 조항의 규칙과 규정들을 제정해서, 대중의 비판을 무력화시킨다. 삼단계로 구성된 살생부에서 마지막 단계인 ‘말소’의 위력은 대단하다.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고 말을 듣지 않는 카디스 인사들은 예외 없이 말소 처리된다. 그렇게 카디스 시민들은 페스트의 노예로 전락한다.
이런 테러와 공포로 무장된 페스트 일당에게 시장이나 주정뱅이 나다처럼 적극적으로 부역하는 이른바 콜라보들이 잇달아 등장한다. 하지만, 반대로 희곡의 실질적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디에고와 그의 약혼녀 빅토리아처럼 페스트로 죽어가는 무고한 이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저항에 나서는 이들도 없지 않다. 문제는 카디스의 대부분의 인사들처럼 그들 역시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떻게 죽음이라는 근원적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카뮈는 좀 진부하기는 하지만, 사랑의 힘으로 카디스 시민들에게 주어진 억압과 굴종의 족쇄를 풀어버릴 수 있게 저항에 나서야 한다는 판타지에 가까운 서사를 이어나간다. 그 와중에 빅토리아의 아버지 카사도 판사네 집에서 벌어지는 막장극은 한바탕 코미디다. 이런 실소를 자아내는 에피소드 역시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희곡에서 빠지면 안 되는 그런 요소가 아니었을까.
카뮈가 <계엄령>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어쩔 수 없이 시대정신을 담보할 수밖에 없다. 디에고로 대변되는 선동가들은 전후 프랑스 정계에서 활발한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헤게모니를 장악한 프랑스 공산당(PCF)을 연상시킨다. 전후 비시 정부의 나치 부역자들을 숙청하는데 성공한 프랑스는 서방세계를 위협하는 스탈린의 소련과의 냉전 모드에 돌입한다. 카뮈의 <계엄령>은 그런 상황에서,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을 모델로 삼아야 하지 않았냐는 격렬한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물론 에스파냐 내전에서 승리하고 스스로 카우디요의 자리에 오른 프랑코 총통의 에스파냐가 희곡 <계엄령>의 무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카뮈의 전체주의 비판이 공산주의 뿐 아니라 서방세계의 독재 전체주의국가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빅토리아가 페스트에 감염되어 죽을 위기에 처하자, 연인을 대신해서 대속제물을 자처하는 디에고의 모습에서는 기독교의 메시아가 연상됐다. 결국 그의 거룩한 희생으로 빅토리아는 구원받고, 카디스 역시 페스트의 손에서 해방된다. 문제는 그렇게 한 번 물러간 페스트(전체주의)가 남긴 악의 씨앗이 언제고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치명적 후유증을 남겼다는 점이다. 그런 점은 우리가 강고하다고 믿어왔던 민주주의가 이번 사태에서 얼마나 취약했던가와 대비되면서 많은 교훈을 준다.
카뮈의 <계엄령>에 대해 너무 많은 기대를 했었나 보다. 아무래도 디테일에서 70년이라는 시간의 더께를 뛰어넘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무지와 망각을 먹고 자라는 독버섯 같은 전체주의 독재의 망령에 대한 청년작가의 은유는 탁월했지만, 우리의 상황은 당시 프랑스가 처한 그것과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고, 또 당시 프랑스의 시대상에 대해 몰라서 더 공감하기 어렵지 않았나 싶다. 그런 점에서 책의 말미에 달린 해설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지만, 자꾸만 지연되는 정의 때문인지 무력감에 에너지가 소진되어 버린 느낌이다. 문득 <계엄령>을 진짜 연극 무대에서 관람하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