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매불망 기다리던 나의 보라돌이 네그리타가 드디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 보니 꽃봉오리에서 보라돌이의 기운이 보였다.
다른 녀석들도 질세라 피기 시작하는 걸까.
볼품 없던 구근 덩어리에서 초록 빛깔 줄기가 쑥쑥 자라더니 드디어 꽃을 피운다.
그동안 노란 튤립 빨간 튤립은 봤어도 보라돌이 튤립은 못보지 않았었나.
드디어 봄이 오는 모양이다.
날은 여전히 춥지만.
지난 며칠 동안 ‘후안’ 리드의 <반란의 멕시코>를 읽기 위한 사전 공부를 했다.
일단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멕시코 혁명 시기에 대한 글들과 논문도 읽었다. 그러면서 연대순으로 정리를 해보니 대강의 그림이 그려졌다.
사실 <반란의 멕시코>에서는 멕시코 혁명의 세 번째 무대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 멕시코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프란시스코 마데로의 정부를 뒤집어 엎은 우에르타 독재정권의 반혁명 그리고 마데로의 뒤를 이어 두 번째 혁명을 주도하는 인물들로 역사의 무대에 나서게 되는 판초 비야, 에밀리아노 사파타, 카란사와 알바로 오브레곤에 이르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지금은 후안 리드의 헌정군이 콜로라도 부대에 공격을 당하는 장면까지 읽었다. 확실히 멕시코 혁명이 이루어지는 대강의 개요를 접하고 나니 좀 더 이해가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선태 교수님이 강의한 비슷한 시기를 다룬 마리아노 아수엘라의 소설 <천민들>을 듣고 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다만 책이 절판되어 구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반란의 멕시코>와 짝을 이루는 그런 작품이 아닐까 싶다.
아수엘라 자신을 투영한 지식인이자 이념가 그리고 먹물인 루이스 세르반테스란 인물에 대한 묘사가 마음에 들었다. 누구를 위한 혁명이란 말인가? 주인공 데메트리오 마시아스는 자신을 위해 혁명 전선에 나섰다. 아니 얼떨결에 마데로 일파로 몰려 마을에서 쫓겨났고, 소집단에 들어가 연방군과 싸우다가 장군의 자리에까지 도달했다. 후안 리드의 책에도 나오듯이 아시엔다의 농노처럼 일하기 싫어서 혁명에 나섰다는 병사들의 말이 왜 이렇게 와 닿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보니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도 인민 해방을 위한 투쟁에 나섰지만, 정작 자신들이 노동현장에 내몰렸을 때는 일하기 싫었다는 빨치산들의 말이 떠올랐다. 인간 해방, 노동 해방을 꿈꾸었지만, 정작 자신들은 일하기 싫었다라...
워밍업이 끝났으니 이젠 신나게 <반란의 멕시코> 나머지를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