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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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두 권의 책을 샀다. 그리고 그 중에 한 권을 오늘 출근길에 집어 들었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이었다. 프랑스 작가들이 지닌 공통점일까? 얼마 전에 만난 아니 에르노의 책이 생각났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니 그에 대한 설명은 패스하자. 때는 1963, 저자의 어머니 프랑수아즈 여사가 대퇴부 골절을 당한다. 다리가 그렇게 부러진 다음, 77세의 할머니는 지인들에게 연락하기 위해 전화기까지 자신의 몸을 끌고 가는데 두 시간이 걸렸다고 했던가. 시작부터 범상지 않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우리의 삶의 여정은 공평하지 않지만, 종착점에 도달해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필명의 존재인 인간에게 영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프랑수아즈 여사도 그리고 이 글을 쓴 보부아르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이런 일들을 생각하려니 왠지 모르게 삶이 참 덧없게 느껴진다.

 

젊은 시절, 프랑수아즈 여사를 돌보지 않았던 아버지가 죽었을 때 시몬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서서히 소장에 자리 잡은 악성 종양으로 그렇게 아름다웠던 어머니가 서서히 시들어 아니 죽음의 신이 다가온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위대한 철학자는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그런 슬픔과 비애를 느꼈다고 한다.

 

프랑수아즈 여사는 병상에서 죽어가는 자신을 찾아온 젊은 지인들에게 삶을 즐기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왜 시몬과 동생인 푸페트(엘렌)에게는 그 시절에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그 또한 역설이 아닐까. 병상에서 고통에 시달리던 모리스 삼촌은 주변 사람들에게 총으로 자신의 고통을 끝내 달라고 소리쳤다는 기억을 저자는 회상한다. 프랑수아즈 여사도 마찬가지였다. 욕창과 종양 때문에 병상에서의 40여일은 그야말로 끔찍한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모르핀에 의존하다가는 정말 마지막 순간에는 감당할 수 없다는 말도, 현재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가 없는 그런 선택이 아니었을까. 그런 경험을 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저자의 폐부를 찌르는 그런 고통들을 솔직히 가슴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어려서 신과 결별하고 무신론자인 장녀와 달리 마지막까지 투철한 종교적 신념을 고수했던 고인은 기이하게도 병사성사를 하지 못했다. 병원의 전문의들은 자신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며, 죽어가는 어머니의 고통을 견딜 수 없었던 딸들의 요청을 제압한다.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어머니의 죽음이 도달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하나의 우주였던 어머니라는 존재는 이제 시신으로 존재 자체가 바뀌었다. 프랑수아즈 여사는 생전에 네모난 상자(아마도 관을 의미하지 않나 싶다)에 들어가길 거부했으나, 우리 인간의 의례에서 관은 불가피했고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입관 절차가 이루어졌다. 다만, 프랑수아즈 여사의 바람대로 구덩이에 던져지는 것은 면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하나의 우주가 소멸한다는 건 아무래도 슬픈 일이다. 그래도 프랑수아즈 여사는 저명한 저자를 딸로 둔 덕분에 자신에 대한 기록을 세상에 남길 수 있지 않았던가. 오늘도 이름도 없이 그렇게 소멸하는 수많은 우주들에 대해 이 자리를 빌려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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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12-21 23: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 제목이 참 좋아요! 이 책 저도 읽었는데 백자평만 쓰고 리뷰를 못 썼네요 ㅜㅜ 어머니 돌아가시게 되는 훗날 떠오를 듯한 책입니다.

레삭매냐 2021-12-22 01:08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아니 에르노도 그렇고, 프랑스
작가들이 쓴 병상일기를 자주
만나게 되네요.

mini74 2021-12-21 23: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나의 우주가 소멸한다는 건 슬픈 일 이라는 매냐님 문구가 참 슬퍼요. 저마다의 우주를 품고 빛을 발하며 살던 이들ㅠㅠ 결혼식보단 장례식이 더 많을 나이라서인지 더 와닿는 글입니다

레삭매냐 2021-12-22 01:10   좋아요 2 | URL
저도 그렇답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 보니
경사보다 애사가 더 많아지네요.


라로 2021-12-24 14: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Thank you, and I wish you a blessed Christmas!!!

레삭매냐 2021-12-24 19:04   좋아요 0 | URL
니에, 라로님도 해삐 베리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