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 오브 이집트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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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해마지 않은 안드레 애시먼 작가의 이집트 회고록 <아웃 오브 이집트>의 첫 장을 읽는 순간부터, 이 책은 올해 만난 최고의 책으로 꼽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그런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다.

 

과연 나에게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일까? 문학을 필두로 한 모든 서사들은 모름지기 인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내 삶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또 타인의 그것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단조로운 나의 삶에서 탈출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는 바로 그런, 범상치 않은 다른 이들의 삶에 나를 투사해 보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세파르디 유대인의 후예로 태어나, 로마를 거쳐 결국 미국인이 된 안드레 애시먼의 기구한 삶이야말로 그런 좋은 이야기를 위한 소재에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다.

 

이야기는 스페인/포르투갈에서 가톨릭 통일왕국의 압제를 피해 이탈리아로 이주한 세파르디 유대인 조상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오스만 제국의 심장부인 콘스탄티노플로 이주했다. 지난 세기 초, 야만적인 오스만 터키의 아르메니아 학살이 시작되던 시절 즈음인 1905년 애시먼의 가족들은 콘스탄티노플을 떠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이주했다. 그리고 낯선 곳에서 그들은 번성했다. 새로운 위험들이 닥쳐오기 전까지 말이다.

 


저자 안드레 애시먼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의 잃어버린 시간과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에르빈 롬멜 장군이 이끄는 독일 아프리카 군단이 카이로를 향해 진격해 오는 동안에도, 애시먼 가족들은 자신들의 운명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유럽에 잔류한 유대인들이 어떤 가혹한 운명을 겪었는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물론 그들도 어디론가 피난을 가야 한다는 어렴풋한 생각들은 하고 있었다. 독일군 기갑부대가 추격할 수 없는 그런 곳으로 말이다. 마다가스카르 아니면 인도까지 생각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야곱의 후손들에게 안식할 땅은 그때까지도 존재하지 않았다.

 

애시먼 가족은 태생적으로 한 곳에 정주할 수 없는 그런 숙명이었다. 압도적으로 아랍인들이 많은 땅에 살면서도 그들은 유월절 같은 절기를 비롯해서 자신들의 관습과 의식 그리고 언어를 고수했다. 디아스포라 이래 그들을 덮친 숱한 위기 속에서도 애시먼들은 생존에 성공해온 것이다.

 

<아웃 오브 이집트>를 읽으면서 왜 그렇게 유대인들이 돈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는지 정확하게 깨달을 수가 있었다. 그들은 어디에서도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집트 땅에 살면서도 그들은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 같은 이방의 언어를 사용했다. 그들에게 아랍은 천박함 그 자체였다. 상이한 종교에서 유래한 태생적 이민족과의 불화는 어린 소년 안드레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전에 아버지 앙리와 청각 장애가 있던 엄마 지지의 로맨스도 상당히 생각해 볼만한 그런 점들을 제공해 준다. 각각의 자녀들의 엄마들이었던 공주와 성녀는 이웃에 살았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쫓겨나다시피 이집트로 이주해온 공주네는 당구장을 시리아계 유대인인 성녀네는 자전거포를 운영했다. 라디노 유대계인 공주네는 성녀네 집안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아마 유대인이라고 해서 다 같은 유대인들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마 그 전의 이야기들은 모두 가족의 전언으로 어린 소년 안드레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커서 하바드 출신 박사이자 문학 교수님이 된 안드레 애시먼은 그 시절의 기억들을 끌어 모아 이런 멋진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반세기나 너무 더운 이집트 땅에서 살아온 그들에게 두 번째 위기가 닥쳤다. 1952년 가말 압델 나세르와 일단의 장교단이 부패하고 영국 제국주의에 협력해온 파루크 왕을 퇴위시키고, 공화국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나세르가 촉발한 아랍 민족주의 물결은 결국 서방 열강과의 충동을 야기했다.

 

4년 뒤,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에 대한 이집트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국유화 선언을 하자,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이스라엘이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에서는 연합군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기본적으로 제국주의 열강의 재침략이었던 수에즈 전쟁은 각국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세계 패권이 미국으로 넘어가던 시절에,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이스라엘의 비밀공모는 패착이었다. 나세르는 비록 전쟁에 지기는 했지만, 역설적으로 반제국주의 투쟁이라는 대의명분에서는 승리를 거두었다.

 

바로 이 시기를 안드레 애시먼은 냉정한 시선으로 자신의 회고록에서 다루고 있다.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아랍인들은 엄격한 등화관제를 실시한다. 등화관제 속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참 매력적이었다. 전쟁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일상을 영위해야 하니 말이다. 그리고 보니 코로나 시국에도 우리는 술도 마시고, 사람도 만나고 그러지 않던가. 그전처럼 자유롭지는 않아도 말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유대인들은 적에게 협력한 비열한 배신자로 내몰린다. 플로라 숙모와 거리에 나갔던 안드레는 돌팔매질을 당할 뻔하기도 한다. 나라 없는 백성들의 설움이라고 해야 할까. 어디에서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숙명의 한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아랍 학생들이 절대다수인 학교에서도 안드레는 체벌을 당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아랍어에 코란까지 필사해야 할 판이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애시먼 가족들은 반세기나 살아온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지도 모르겠다. 무슬림 세계에서 유대인보다 차라리 기독교인의 존재가 나았는지 무슈 시뇨레는 그리스 정교도로 개종하기도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개종까지도 불사하는 그네들의 모습이 얼마나 처량한지 모르겠다. 그런 모습을 보니, 스페인 카스티야 왕국에서 개종한 세파르디 유대인들을 신뢰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마지막 위기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마지막 위기는 명백하게 애시먼 가족을 위시한 모든 유대인들에 대한 재산 몰수와 추방령이었다. 그런데 마치 애시먼 가족들은 이 모든 사태를 짐작이라도 했다는 듯이, 암시장에서 물건을 사들이고 특히 공주 할머니는 손주를 데리고 그전부터 해온 자산의 해외도피를 서슴지 않는다. 안드레의 아버지 앙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가 섬유공장을 경영하면서 이룬 재산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세르의 민족주의 세력들이 통치하는 이집트 국가는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재산을 빼앗고 아랍 국가에서 떠나라는 일방적인 명령을 내렸다.

 

안드레의 할아버지를 필두로 해서, 100세가 넘으신 증조할머니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난다. 온갖 위기를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돌파해온 가족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살아온 알렉산드리아의 거리를 떠나고 싶지 않다고 계속해서 말한다. 찬란한 지중해 바다와 아지자와 같은 삶의 동반자들 그리고 자신들이 나고 살아온 정든 땅을 왜 떠나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또 역설적으로 본다면, 그들이 알렉산드리아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그들의 존재는 언젠가는 그곳을 떠나야 하는 이방인이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아랍 현지인들보다 더 알렉산드리아라는 공간을 더 사랑한 이들이었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 앙리를 찾는 전화부터 시작해서, 결국에는 체포영장까지 발부되지 않았던가. 누가 학교에서 아랍인들의 개라고 불리는 걸 좋아하고, 교사들로부터 아랍어를 하지 못하는 유대인이라고 해서 체벌까지 받아야 한단 말인가. 안드레의 엄마 지지가 학교를 찾아가 자신의 아들을 체벌한 교사에게 뺨을 내갈기는 장면은 통쾌하기까지 했다. 평소에는 수줍고 얌전한 아줌마였지만,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하고 모욕당했다고 느끼는 순간, 어느 용맹무쌍한 전사보다도 열렬하게 싸우는 게 바로 안드레의 엄마였다.

 

책을 읽는 내내, 익숙한 곳에서 결국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운명의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에 대한 동조로 가슴이 먹먹했다. 동시에 저자가 회고록(메무와)의 곳곳에서 보여주는 진중한 유머는 안드레의 할머니들이 즐기는 달콤한 간식거리처럼 달콤하게 다가왔다. 이런 달콤 쌉싸름한 서사의 구사와 균형감각은 역시나 대가다운 실력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안드레 애시먼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하바드 스퀘어>의 출간을 기다려 보련다. <아웃 오브 이집트>도 나왔으니 말이다.

 





안드레 애시먼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발음하는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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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10-26 19:1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이런 말을 들으면 자꾸 착각해서 고대가 연상돼요.
안드레 애시먼 작가의 이야기는 1900년대 같군요~~
레삭매냐님께서 만난 올해의 최고의 책이라니 급관심이 갑니다^^
내용도 흥미로워요**

레삭매냐 2021-10-26 20:35   좋아요 4 | URL
그러고 보니 서양의 도시 이름
들이 모두 이집트에서 연유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랍니다.

알렉산드리아, 테베, 멤피스
그리고 이브라히미에(아브라함)...

메무와의 시기는 1940년대부터
애시먼 가족이 이집트를 뜨는
1965년까지인 듯 합니다.

새파랑 2021-10-26 19: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의 올해의 책이라니 이건 필독서군요~!! 전 이 작가의 작품은 읽어보진 않았는데 읽어봐야 겠어요~!!

레삭매냐 2021-10-26 20:35   좋아요 4 | URL
읽으면 읽을 수록 정말
글을 잘 쓰는구나 싶어
지는 그런 작가랍니다.

강추하는 바입니다.

mini74 2021-10-26 21:0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을 만난 매냐님의 행복이 글에서 느껴집니다 ㅎㅎ 매냐님 올해의 책이라면 저도 당연히 *^^*

레삭매냐 2021-10-26 22:18   좋아요 1 | URL
두 말이 필요 없는 그런 책입니다.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

붕붕툐툐 2021-10-26 22: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안드레 애치먼 작가군요! 레삭매냐님 글에는 안드레 애시먼라고 되어있는데 읽는 방법의 차이겠죵? 이러나 저러나 저에겐 초면인데 매냐님은 좋아하는 작가시군요!! 저도 담아두고 읽어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1-10-26 22:20   좋아요 3 | URL
한국에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으로 알려졌는데 저는 <알리바이>
읽고 나서 뻑이 갔습니다.

애시먼 작가 이름의 발음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너튜브 동영상
을 하나 달았습니다.

저는 백 번 들어도 자신의 이름을
발음하는 저자의 이름이 애시먼
으로 들립니다.

붕붕툐툐 2021-10-26 22:43   좋아요 2 | URL
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작가군요!(작가 이름을 잘 안 읽는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 저도 <알리바이> 읽어보고 싶네용~ 너튜브 들어보니 애시먼이 정확한데요? 근데 왜 굳이 애치먼이라고 쓰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