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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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와 더불어 양대 고딕 소설의 하나인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망겔 선생의 책을 읽고 나서 바로 읽었다. 역시나 명불허전이었다. 무엇보다 메리 셸리가 이 책을 쓴 게 십대소녀 시절이었다는 점이 더 놀라울 따름이다.

 

사실 텍스트는 오래 전에 내가 좋아하던 배우 로버트 드니로 주연의 영화로 만났다.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기억하기로는 괴물(이하 크리처로 표기하겠다)이 죽인 소년이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원전을 읽어 보니 아들이 아니라 막내 동생 윌리엄이었더라. 이래서 원전을 읽어야 한다니깐 그래.

 

그리고 놀랍게도 소설의 시작은 빅토르 프랑켄슈타인(박사로 알고 있었는데 그가 박사 학위를 땄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다)이 아닌 북극해를 탐험하던 탐험대 대장 로버트 월턴이 사랑하는 누이 마거릿에게 보낸 편지로 시작한다. 아니 영화도 그랬었나. 어쨌든 원작을 읽지 않는다면 이런 사소한 기억의 오류들이 오리지널 텍스트를 삼켜 버릴 지도 모르겠다.

 

인적 없는 북극해에서 우연히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을 만난 탐험대 대장 월턴은 유빙을 타고 표류 중이던 그를 구조한다. 그리고 그에게 지난 수년 간 있었던 듣고도 믿지 못할 만한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기록한다. 요즘처럼 비디오카메라라는 기록 장치가 없던 18세기, 종이 매체에 남긴 기록은 그대로 역사가 됐다. 구술이 그런 것처럼, 문자 기록도 역시나 진위를 가릴 수 없다는 점에서 저자가 시도하는 실증 사학적 접근에 대한 신빙성을 묻고 싶어졌다. 하지만 기억하자, 이것이 문학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있을 법한 이야기 혹은 거짓말을 지어내는 문학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스위스 제네바 출신의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한 청년이다. 어려서부터 자연철학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빅토르. 비록 어머니 카롤린 보포르를 일찍 여의긴 했지만, 사촌 여동생 엘리자베트와 두 동생들인 에네스트와 윌리엄 그리고 아버지 알폰세로 이루어진 가정은 화목했다.

 

문제는 자연철학에 경도된 빅토르가 유학길에 나선 잉골슈타트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화학이라는 학문에 투신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위험한 창조라는 시험에 나선다. 출발점은 죽음을 이기기 위한 하나의 시도였다. 그리고 그는 전기라는 새로운 시대의 신호탄이 된 발명과 시체조각들을 소재로 삼아 조물주 이래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인간의 창조에 성공한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과학도 빅토르가 만들어낸 크리처가 본래 의도와는 다른 흉측한 외모로 만들어졌고, 끊임없이 자가발전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21세기에도 외모는 개인이 지닌 하나의 자산으로 치부되지만, 2백 년 전인 18세기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무엇보다 크리처를 만들어낸 빅토르 자신이 크리처를 보고 놀라 도주해 버렸다. 240cm나 되는 거구와 괴력을 자랑하는 크리처에게 이때부터 시련이 닥치기 시작했다. 크리처는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일찍이 조물주는 흙으로 자신을 닮은 피조물을 만들고 온갖 사랑을 베풀어 주었지만, 새로운 프로메테우스인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그런 임무를 방기해 버렸다. 그리고 그런 방기에 대한 혹독한 복수가 크리처를 통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소설 <프랑켄슈타인> 1부가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의 사연을 듣는 월터의 사연 그리고 어떻게 해서 빅토르가 크리처를 창조해냈고, 그의 처절한 복수가 시작되었는가를 그리고 있다면 2부에서는 주로 크리처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소설에서 빅토르는 크리처를 악마라고 부르는데, 크리처가 처음부터 그런 악의 상징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보통의 여느 개체들처럼 사람들에게 사랑과 친절함을 받고 공감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흉측한 외모 때문에 사람들은 크리처를 보자마자 달아나기에 바빴다. 그러니 크리처는 자신을 창조해낸 창조부로부터 버림받은 사회적 피해자였던 것이다.

 

어디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던 크리처는 결국 자기혐오와 분노로 이성을 잃고, 드디어 우려했던 대로 괴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로버트 월턴처럼 독학으로 언어를 배우고, 문자까지 깨우친 크리처의 지성은 대단했다. 샤모니 부근에서 휴양하던 빅토르와 조우한 크리처는 자신에게 반려자를 만들어 달라는 논지의 요청을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전개한다. 다른 건 아무 것도 필요 없으니, 반려자만 빅토르의 기술로 만들어 준다면 남아메리카(왜 하필이면?)의 오지에 가서 조용하게 살겠다는 것이다. 그의 화려한 언변과 협박에 넘어간 빅토르는 번뇌의 시간을 거쳐 그러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래서 해피엔딩으로 끝났을까? 우리의 고딕 소설이 그런 행복한 결말로 갈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일 것이다. 자신의 건강을 우려해서 곁에서 헌신적으로 간호에 나선 절친 앙리 클레르발을 따돌리고 외딴 오크니 섬에서 크리처의 요청대로 반려자 창조에 나선 빅토르. 하지만, 그는 거의 완성의 순간에 도저히 새로운 괴물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판단한다. 계약은 크리처와의 계약이지 새로운 크리처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한 끝에 그는 새로운 피조물을 갈가리 찢어 버린다. 그러니까 계약 파기의 주인공은 바로 빅토르였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크리처는 빅토르에게 혹독한 복수를 맹세한다. 크리처의 저주는 결혼식 날, 나타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저주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에 대해 광증에 빠진 빅토르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반려자를 얻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격분한 크리처는 통제를 벗어나 광기 어린 살육을 벌이기 시작한다. 그전에 이미 빅토르의 막냇동생 윌리엄을 살해하고, 프랑켄슈타인 집안의 하녀였던 유스틴 모리츠마저 교묘하게 살인범으로 몰아 처형하게 만든 크리처(대단한 지능의 소유자가 아니던가)는 그야말로 프랑켄슈타인 집안을 풍비박산으로 만들어 버린다.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잃은 빅토르는 자신이 만든 크리처를 없애기 위해 그야말로 지구 끝까지 쫓겠다는 맹세하고 결국 북극해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자연과학에 경도되어 가공할 만한 시도인 인간 창조에 나선 젊은 과학도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에게는 열정과 노력만 가득했지, 자신이 만든 크리처 때문에 발생할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감을 느끼지 못했다. 이게 바로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우리가 항상 좋은 의도로 무슨 일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결과만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18세기 이래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는데 성공했지만, 무분별한 개발과 지속적인 환경오염으로 21세기 지구별은 그야말로 주화입마 상태에 빠져 버렸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지불유예된 청구서가 우리 인류에게 돌아온 것이다. 자연 개발의 편리만 누릴 게 아니라, 그에 따른 책임감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볼 시간이다.

 

개인적으로 메리 셸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 전기와 시체조각을 이용해서 새로운 인간, 크리처를 만들어냈는 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뭐랄까 기술적으로 피해 간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실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한 미션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빅토르를 북극해에서 구조한 로버트 월턴에게도 빅토르는 그것을 알려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멋지지 않은가! 이런 식으로 디테일에 대해서는 회피했구나.

 

1부와 2부에서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로 전개되던 창조와 복수의 서사는 마지막 3부로 가면서 속도감 있게 절정으로 치닫는다. 이게 정녕 영국의 십대 소녀가 쓴 소설이 맞단 말인가? 신의 권위에 도전한 인간 정신의 추락부터 시작해서, 과학자의 창조 윤리 그리고 인간이 빚어낸 대재앙 서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들이 넘쳐나는 고딕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힘은 역시나 대단했다.

 

망겔 선생의 책을 읽고 나서 오랜 숙제 같았던 <프랑켄슈타인>을 반나절 만에 주파했다. 다음에는 <로빈슨 크루소> 혹은 <보물섬>을 읽어 볼까나. 역시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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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6-21 14:48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메리 셸리가 이 책을 출판한 1818년에는 자신이 이 책의 작가임을 밝히지 못했답니다. 당시만 해도 여자가 소설을 쓰는 자체를 돼먹지 못한 일로 알았기 때문입지요. 여자는 글을 쓸 머리가 없다고 교육받아왔거든요.
초판의 서문은 메리의 남편이자 시인인 퍼시 셸리가 썼는데, 서문에서도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싹 빼먹었답니다. 그리하여 어떤 논문에선 죽은 인간의 살과 뼈로 만들어진 괴물이 바로 작가인 메리 셸리를 말한다 주장하기도 했다네요.
이 논문은 메리와 이름이 같은 엄마 메리 올스턴크래프트가 여성운동가로 ˝여자는 남자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존재하고 남자에게 복종해야 하고, 여자의 교육은 남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기획되어야 한다˝는 루소와 계몽주의자들에게 엿이나 먹으라고 외쳤는데, 메리 셸리가 너무 어린 시절에 죽었으나, 엄마의 유지를 간직했다가, 괴물을 창조하는데 사용한 것이라고....

이상은 권박의 시집 <이해할 차례이다>에서 요약했습니다.

잠자냥 2021-06-21 15:09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 권박 시집도 써먹을만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21-06-21 15:12   좋아요 3 | URL
소설에 워낙에 이러저러한 은유와 비유
들이 많다 보니, 후대에 학자연하는 이
들에게 아주 흥미진진한 멋잇감이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루소+계몽주의자들의 시대적 한계가
명백하게 들어나는 구절이었습니다.

coolcat329 2021-06-21 17:05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 권박 시인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엄청난 주석에서 요약하신거죠? ㅋ

잠자냥 2021-06-21 15: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메, 저도 이거 소싯적 읽은 작품인데 알라디너들이 극찬하니 저도 다시 읽어봐야겠삼.

레삭매냐 2021-06-21 15:14   좋아요 3 | URL
자기 전에 집어 들었는데
너무 재밌어서 날밤 깔 뻔
했습니다.

지금 드니로 주연의 영화
<프랑켄슈타인> 리뷰를 보고
있는데 소설하고는 약간의 차
이가 있게 각색했네요.

미미 2021-06-21 15: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ㅋㅋㅋㅋ역시!ㅋㅋ레삭매냐님 리뷰로 이 작품 읽게되는 분들이 많아질것 같아요. 괴물이 문학에 빠져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깨닫는 과정도 전 너무 좋았어요.<보물섬> 작년쯤 읽었는데 역시 훌륭합니다!매냐님 리뷰 기대됩니당😎

레삭매냐 2021-06-21 15:40   좋아요 4 | URL
책쟁이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읽지도 않았으면서 하도 이러저러한
말들을 하도 들어서 읽은 것으로 착
각하게 되는 책들이 종종 있는데...

저에게는 <프랑켄슈타인>이 그랬네요.

이번 완독으로 고전깨기 하나 완성했
습니다 :> 보물섬도 곧 깹니다.

새파랑 2021-06-21 15: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전 이거 이미지 때문에 안읽었는데(친구의 별명이어서 ㅎㅎ 이것도 편견?) 최근에 이 책 좋다고 해서 중고로 구매했는데~ 레삭매냐님 리뷰도 완전 흥미진진 이네요. 게다가 반나절 완독이라니~!!

레삭매냐 2021-06-21 15:43   좋아요 3 | URL
네 저도 3년 전에 중고로 사둔
책이었네요.

망겔 샘의 신간 읽고 나서 바로
찾아서 읽기 시작했답니다.

책 읽기 전에 너튜브 치트키를
사용해서 프리뷰를 하고 들어
갔는데 왠지 복습하는 그런 기
분이었답니다. 강추하는 바입니다.

페넬로페 2021-06-21 16: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프랑켄슈타인>이란 단어를 하도 많이 들어 저도 이 책을 읽은 줄 알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제가 알고 있는것과는 많이 달랐어요. 로빈슨크루소와 보물섬도 기대됩니다^^

레삭매냐 2021-06-21 16:02   좋아요 3 | URL
1994년 케네스 브래너가 연출하고
출연하기도 한 <프랑켄슈타인>은
원전하고 상당히 다르더군요.

그래서 역시나 원전을 읽어야 하나
봅니다.

로빈슨 크루소랑 보물섬도 속히...
우선 책부터 수급을.

coolcat329 2021-06-21 17: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까 읽는 중이시라더니 그새 글이 올라왔네요. 오~~저는 정말 이 책은 꼭 읽어야하네요. 왜냐면 이 책이랑 지킬박사랑 헷갈려서요. ㅠㅠ

레삭매냐 2021-06-21 17:54   좋아요 2 | URL
앗 그리고 보니 <지킬 박사>도
읽지 못했네요.

하여간에 읽을 책들은 넘쳐
흐르고 시간과 에너지는 참말
로 부족하네요.

그렇게혜윰 2021-06-21 18: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희 아들도 무척 인상깊게 읽고 5학년 애들에게 읽어주고 독후감대회 했을 때 그 독후감들의 깊이에 감동한 경험이 있어요. 역시 내 아들보단 남의 아들들이 더. . . .아이들도 되게 빠져드는 책. 이거이 고전 아니겠습니꽈?

레삭매냐 2021-06-21 19:15   좋아요 2 | URL
왠지 모를 객관과 주관
사이의 깊은 고민이 느껴지는
듯합니다만.

그렇지요 남녀노소 지위고하
를 막론하고 모두가 빠져들게
맹그는 고전 빠워!!!

mini74 2021-06-21 18: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었다는 착각을 했어요. 청소년 문고판? 나중에 원작 읽고 좀 놀랬어요. 내가 아는 내용과 큰 줄기는 맞지만 뭐랄까 분위기와 묘사 등. 너무 낯설었어요.

레삭매냐 2021-06-21 19:16   좋아요 2 | URL
저에게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가 그런 책이랍니다.

연전에 원전에 도전해 보겠노라고
호기롭게 나섰다가 실패하고서는
저짝에 책을 치워 두었네요.

어려서 읽은 책들은 무효로 하는
것으로.

독서괭 2021-06-21 19: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말 놀라운 작품인 것 같습니다. 고전으로서는 흔치 않게 재미있다는 점에서도..^^ 로빈슨크루소는 <방드르디, 태평양의끝>과 함께 읽었는데 꽤 재미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보물섬>은 어린이책 같은 제목 때문인지 손이 안 가던데, 레삭매냐님이 리뷰 써주시면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ㅎㅎ어서 읽어주세요!

레삭매냐 2021-06-21 23:23   좋아요 0 | URL
보물섬은 원전이 워낙 좋아서
그런지 계속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리메이크 되는 것 같습니다.

책이 수배되는 대로 읽고 리뷰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