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K의 삶과 시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6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동안 절판되어 구할 수가 없었던 존 맥스웰 쿳시의 책이 재출간되었다. 역자는 예전과 같이 쿳시 작가의 전문 번역가라고 할 수 있는 왕은철 선생이 맡았다. 이번에 앨런 홀링허스트의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데, 동일한 역자가 한 작가를 전담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이클 K의 삶과 시대>는 쿳시 작가의 1983년에 발표된 네 번째 소설로, 작가에게 첫 번째 부커상을 안겨준(1983) 작품이다.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소설의 주인공은 마이클 K. 그의 삶은 참으로 모호하기만 하다. 쿳시가 인도하는 소설의 줄거리 역시 몽롱하다고나 할까. 구순열의 입술을 가지고 태어난 마이클은 헤이스 노리니어스 시설에서 자랐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의 정원사가 되었다. 그가 31세가 되던 6월의 어느 날, 가정부로 일하던 마이클의 어머니 안나 K가 수종증에 걸리고 병원에서 쫓겨나게 되자 모자는 어머니의 고향인 프린스 앨버트로 향한다. 당시 나라는 전쟁 중이었고(내전?) 계엄령이 선포된 상황이라 모든 시민의 자유로운 이동이 제한되어 있었다. 처음에 모자는 기차를 예약해서 떠나려고 했지만, 이주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 발이 묶인다.

 

마이클은 얼기설기 만든 수레에 어머니를 싣고 도보로 머나먼 프린스 앨버트로 가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모자의 로드무비는 어머니가 결국 고향으로 가던 길에 돌아가시고 한줌의 유골로 변하는 장면으로 귀결된다. 안나 K가 죽은 뒤, 마이클은 병원과 수용소 그리고 경찰유치장을 들락거리는 신세로 전락한다. 사내는 어머니의 고향 프린스 앨버트의 버려진 피사기 농장에서 조용하게 살고 싶지만, 세상은 그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우리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영혼의 소유자인 마이클은 도주에 도주를 거듭하는 위대한 탈출 예술가가 될 수밖에 없는 팔자였나 보다. 케이프타운의 시 포인트(Sea Point)에서 시작된 마이클의 여정은 래잉스버그, 크루이드폰테인 같은 정말 낯선 지명을 거쳐 프린스 앨버트에 도달한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음식조차도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야생화된 염소를 손으로 잡아먹고, 도마뱀붙이와 새총으로 사냥한 새들 그리고 개미 유충까지 가리지 않는 식성을 보여준다. 마이클은 그렇다면 야만인인가? 세상은 직업과 신분이 뚜렷하지 않은 마이클을 어떻게 해서든 구속하려 들고, 마이클은 반대급부로 탈출을 계속한다. 물론 마이클이 거창하게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것도, 자유를 갈구하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마이클에게 탈출은 주어진 지상과제가 아니었을까. 시민의 재산과 안녕을 보호해야할 군인들에게 어머니가 남겨 주신 돈을 털리기도 하고, 강도당할 뻔한 위기도 경험하면서도 고향을 향한 마이클의 여정은 멈추지 않는다. 그런 마이클의 모습을 지켜보는 독자의 시선은 염려로 가득하다.

 

다시 한 번 피사기 농장에 돌아온 마이클은 타인의 시선을 피해 가며 호박과 멜론을 재배한다. 다시 한 번 인간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전혀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하는 점이 부각된다. 버려진 농가의 헛간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마이클은 이번에는 아예 토굴을 파고 살기로 작정하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다. 이번에는 산사람들, 게릴라와 내통하는 부역자로 몰려 케닐워스 수용소로 끌려간다. 우리의 주인공이 겪는 수난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1부가 마이클의 시선에서 전개되었다면, 2부에서는 케닐워스 수용소 백인 임시 군의관의 시선이 주를 이룬다. 사실 소설에서는 마이클의 인종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을 때, CM(Colored Male)으로 분류된 정보에서 마이클이 유색인종이라는 사실을 유추해낼 수 있다. 지난 1년간의 갖은 고생 끝에 바싹 여윈 마이클에 대해 군의관은 그야말로 아무런 조건 없는 시혜를 베푸는 헌신적인 박애주의자로 등장한다. 경찰들은 마이클이 게릴라들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에게서 정보를 얻어 내기 위해 애를 써보지만, 군의관은 그들의 주장을 일축한다. 갓난애 같은 남자가 무슨 깡다구로 그렇게 위험한 산사람들과 협잡해서 공공의 질서를 위협하겠냐는 주장이다.

 

한편 마이클은 케닐워스 수용소의 병원에서 제공하는 각종 음식을 거부하는데, 그것은 백인 제국주의와 남아프리카 공황국에 만연한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거부의 상징이다. 그리고 숱한 고통을 거쳐 주체적인 인간으로 거듭나는 순간으로 해석하고 싶다. 마이클은 그저 자기가 애써 키운 호박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있냐고 묻는 질문에, 마이클은 몸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셈이다. 밥이 되던 죽이 되던 간에 그곳에 사는 원주민들에게 맡겨야 하는데, 전지전능하다고 믿는 백인들이 구축한 질서 때문에 원주민들은 고통의 순환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소설 <마이클 K의 삶과 시대>에서 주인공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구속하는 전쟁 역시 백인들이 초래한 갈등에서 기원한 것이다.

 

마이클과 다수의 억울한 사람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그들을 착취하는 국가권력 혹은 부유한 지주들의 모습에서는 비인간적이고 냉혹한 자본주의의 실체가 떠올랐다. 하긴 사적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주의가 언제는 인간적인 적이 있었던가.

 

소설에서 마이클이 겪는 구속과 탈출의 쌍끌이 내러티브는 우리도 예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체의 구속으로부터의 영원한 탈출을 꿈꾸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계의 압박에 문득 나는 서글퍼졌다. 쿳시 작가의 전작에 도전하고 있는데, 지난번에 읽다만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는 너무 어려워서 절반 정도 읽다가 중단했다. 마저 읽어야겠다.

 


이것은 외국 원서의 표지인데, 마이클 K가 자신의 엄마 안나 K를 자신이 직접 어렵사리 만든 손수레에 싣고 떠나는 장면이다.

 

케이프라는 거대 도시에서 소외된 모자의 떠남, 무엇이 그들의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 채 모험에 나서는 컷을 형상화한 표지다. 이렇게 책의 내용을 압축해서 전달하는 메시지를 담은 표지들을 볼 때 나는 전율한다. 너무 놀랍기 때문에. 판타스틱한 일러스트레이션이 아닐 수 없다.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1-06-09 09:4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걸 벌써 읽었어요? 이 신간으로??

레삭매냐 2021-06-09 09:59   좋아요 6 | URL
이것은 오래 전 리뷰의 울궈먹기
입니다.

동지들의 혹시나 하는 땡스투를
노린 ㅋㅋㅋ

바람돌이 2021-06-09 09: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허걱! 이거 어제 신간 뜬거 보고 보관함에 넣었는데 벌써 읽으셨단 말입니까?
놀라워요!!!!!

레삭매냐 2021-06-09 10:09   좋아요 5 | URL
재독을 하고 있기는 합니다.
분량이 적어서 한나절이면
다 읽을 것 같네요.

3년 전에 읽고 쓴 리뷰랍니다.

그레이스 2021-06-09 10: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오오 👍
쿳시!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ㅠ

레삭매냐 2021-06-09 11:13   좋아요 4 | URL
이번에 다른 출판사에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가 새롭게 나온다고 하니
기대해 봅니다.

구간만 번역되어 나오고 신간은 좀
지지부진하네요.

Falstaff 2021-06-09 11:04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아, 또 쿳시.
전 이 양반 책이 불편하다고요. 그래 읽기는 읽어야겠는데 선뜻 손에 잡히지 않는 우라질 작가 가운데 한 명입니다.
다행스럽게 별점이 세 개이긴 합니다만. ㅋㅋㅋ

레삭매냐 2021-06-09 11:19   좋아요 5 | URL
별 다섯 개를 줄 정도로 미칠
정도로 좋지는 않아서...

어쨌든 백인 작가의 시선으로
남아프리카의 현실을 세상에
알렸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공
감하는데, 결국은 백인의 시선
이라는 한계 때문이지 싶습니다.

Falstaff 2021-06-09 11:25   좋아요 6 | URL
그것보다요, 쿳시 이 작자가 좀 과하게 연출하는 경향이 있어서 말입죠.
야만인을 기다리며에서 야만인보다 더 잔인하게... 달군 쇠를 눈동자 가까이 대는 백인 군바리들, 추락에서도 오버가 분명한 여러 장면들, 이런 것들이 저한테는 불편하거든요. 그러면 좀 에로틱 하든가 말이지요.
하여튼 서사는 좋은데 마음에 들지 않아요.

잠자냥 2021-06-09 11:45   좋아요 4 | URL
그러면 좀 에로틱 하든가 말이지요222222.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미 2021-06-09 11:1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리뷰보면 재밌을 것 같고
(표지도 근사하네요!!)
게다가 쿳시인데! 별이 세 개. 고민됩니다. ‘추락‘하나 읽었을 뿐이지만ㅋㅋㅋ

레삭매냐 2021-06-09 13:47   좋아요 3 | URL
다시 읽어 보니 처음보다 책은
재밌다는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쿳시 작가에 대한 내공이 쌓인
탓이지 싶습니다.

전작 중인 작가인지라 거북스
걸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초딩 2021-06-09 12: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아이 쿳시요!!! 좋네요~~~~
아 근데 별이 3개 ㅜㅜ라 고민이네요 저도

레삭매냐 2021-06-09 13:49   좋아요 4 | URL
절판돼서 구할 수 없었던 책인데다가
부커상 수상작이라는 아우라까지 있
으니 소장각이지요.

별점은 개의치 말아 주시길...
쓰리~풔어 어딘가 쯤으로 생각해 주
시면 될 듯 합니다.

초란공 2021-06-09 14: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새로 나온 작업인 줄 알았는데 절판 되었던 책이 있었네요^^ 소개글 감사합니다. Thanksto도 성공하셨습니다 ㅋㅋ 일단 책장에서 발견된 <철의 시대>를 읽어야 겠네요~ ^^

레삭매냐 2021-06-09 15:04   좋아요 3 | URL
17년 전에 <마이클 K>라는 제목
으로 나온 적이 있답니다 :>

저는 그동안 12권의 쿳시 작가 책
을 읽었는데, <철의 시대>는 8번
째로 만난 책이었네요.

coolcat329 2021-06-09 18: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재출간 반갑네요~~^^

레삭매냐 2021-06-10 10:10   좋아요 1 | URL
그동안 구할 수가 없어서
아쉬웠었는데 새로 나와
아주 반갑네요.

mini74 2021-06-10 1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철의 시대 재미있게 읽어서 ㅠㅠ 레샥매냐님께 감사감사를 ㅎㅎ

레삭매냐 2021-06-11 17:57   좋아요 1 | URL
오 미니님도 쿳시샘 팬이셨군요.

전 반다시 쿳시샘 전작 읽기에
성공할 겁니다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