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의 쇼트리스트가 발표되었다. 그 정보는 인별그램을 통해 알게 됐다. 여튼 정보 하나는 빠르다.

 

롱리스트 12권 중에서 절반이 떨어져 나가고 이제 6권이 남은 모양이다. 이 중에서 한 권이 대망의 수상작이 될 전망이다.

 

국내에 소개된 작가는 아르헨티나 소설가 마리아나 엔리케스와 프랑스 소설가 에리크 뷔야르 뿐이다. 후자는 그나마 공쿠르상 수상빨로 국내에 소개된 것 같다. 국내에는 두 권의 책이 소개되었는데 그 책들은 모두 읽었다. 서사가 너무 짧고 아예 모르는 부분들이 아니라 좀 아쉬운 느낌이었다. <콩키스타도르><콩고>도 읽고 싶다. 이번에 노미네이션이 된 작품은 2019년에 발표된 <가난한 사람들의 전쟁>이다.

 

 

영어로 된 번역서를 찾아보니 달랑 80쪽이다. 왜 너튜브 리뷰어들이 책이 짧아서 아쉽다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종교개혁 당시 천상에서의 평등이 아닌 현세에서의 평등을 주장한 토마스 뮌처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모양이다. 리뷰를 한 번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열린책들은 이 책의 분량도 적은데 신속하게 번역해서 내야 하는 게 아닐까?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지. 기존에 나온 책의 저자 소개에 책 제목이 나온 걸 보면 아마도 판권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데 말이다.

 

 

쇼트리스트에 오른 6권의 책 중에서 나의 우선 픽은 프랑스 작가 다비드 디옵이 2018년 발표한 <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영어제목 At Night All Blood Is Black)>. 디옵은 1966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세네갈에서 자랐다고 한다. 보통의 경우, 반대가 아니었던가. 그의 책 중에서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된 책이기도 하다. 디옵은 대학에서 예술과 언어 부서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전문 분야는 18세기 프랑스 문학과 17세기 아프리카 연구라고 한다.

 


 

불어를 할 줄 알면, 저자가 출연한 프랑스 대담 프로그램을 좀 들어 보겠는데 아쉽다. 좀 들어 보니 어느 외계어 같다는 생각만 든다. 놀라운 건, 프랑스에 저자가 직접 출연해서 자신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에서는 아예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는 그런 프로그램이 아닌가. 과거에 있었다면 나의 무지의 소산이고.

 

 

1914년 그레이트 워라고 불린 1차 세계대전에 230만 명에 달하는 프랑스와 영국 아프리카 식민지 출신 병사들이 참전했다. 그 중에서도 세네갈 출신 병사들은 유럽 전선에서 프랑스로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빌헴름 카이저의 독일군과 맞서 싸웠다. 히틀러 시대에 만연한 인종주의 정도는 아니었지만, 독일에서는 그런 프랑스 식민지 병사들을 두고 라인 강의 검은 공포라는 말로 선전을 해댔다. 나중에 참전하게 되는 미국도 40만 명 정도의 흑인 병사들을 동원했는데, 비슷한 시기 미국 남부에서는 짐 크로우 법으로 수많은 흑인들이 차별당하고, 인종주의자들에게 희생되고 있었다.

 

<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는 굉장히 어두운 색채의 전쟁 소설이다. 주인공이자 화자는 알파 엔디아예(발음은 내 마음대로 정해봤다, 나중에 번역이 되면 달라질 수도 쿨럭). 소설은 피와 살이 튀는 전장에서 내던져진 알파의 내적 고백으로 시작한다. 형제 이상이었던 전우 마뎀바 디옵이 전투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고, 내장이 튀어 나와 죽어 간다. 마뎀바는 알파에게 세 번이나 자신의 고통을 끝내 달라고 간청한다. 더 이상의 고통을 견딜 수 없었던 마뎀바는 알파에게 자신의 목을 그어 죽여 달라고 부탁한다. 마치 번제물로 받쳐진 희생양처럼 말이다. 전장에서 자신은 인간이 아니었노라고, 알파는 고백한다.

 

알파의 후회가 이어진다. 마뎀바가 처음 부탁했을 때 그의 청을 들어주었어야 했다고. 나의 브라더가 산 채로 하이에나에게 잡아먹히던 늙고 외로운 사자처럼 죽게 만들지 말고, 그의 고통을 자신이 끝냈어야 했다고. 이보다 더한 트라우마가 있을 수 있을까. 친구의 시신을 소중하게 자신의 코트와 셔츠로 단단하게 감싼 알파는 참호로 되돌아간다. 죽어가는 친구의 마지막 요청을 들어주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마뎀바에게 용서를 구하며.

 

참호에서 병사들의 두목인 아르망 대위는 독일놈들이 검은 아프리카의 쇼콜라 병사들을 야만적인 니그로, 식인종 그리고 줄루로 생각하고 두려워한다고 사기를 북돋는다. 그가 말하지 않은 게 하나 있다. 백인 프랑스 병사들 역시 쇼콜라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르망은 또 쇼콜라들에게 사기를 친다. 프랑스가 그들을 존경한다고. 훗날 식민지를 모두 잃은 프랑스는 세계대전에서 한때 그들의 조국이었던 프랑스를 위해 싸운 알제리 출신 병사들에게 연금 지급을 거부했다. 백인 제국주의자들의 허위와 위선은 그렇게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소설은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그렇게 친구를 잃은 알파는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리며 복수심에 불타 폭주하기 시작한다. 독일군 진지로 넘어가 마체테로 적군을 죽이고 그들의 손을 잘라 오는 패기를 보여준다. 그런 그에게 동료 병사들은 그야말로 용감무쌍하다며 칭송하지만,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 알파의 영혼을 살인이 계속될수록 피폐해져 갈 뿐이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나라 세네갈이 아니라, 자국을 수탈하고 억압하는 식민 모국 프랑스의 용병이 아니었던가. 도대체 그들이 그레이트 워라고 불리는 유럽 대륙에서의 패권 경쟁이 평생 자신의 마을을 떠나지 않고 살던 알파와 마뎀바 같은 시골 청년들에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동료들은 그를 영웅이라고 칭송하지만, 알파가 네 번째 손을 가져오자 그를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동료 쇼콜라 병사들은 전쟁의 광기에 물든 알파를 디몬 혹은 소서러라고 부른다.

 

영어 번역서로 160쪽 정도 되는 다비드 디옵의 <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는 그의 두 번째 소설이다. 첫 소설인 <1889, l'Attraction universelle>2012년에 발표됐다.

 

다음에는 에리크 뷔야르의 <가난한 사람들의 전쟁>에 대해 디비 보자.

 

 

오늘의 점심 메뉴, 존슨네 고기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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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05-14 10:2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멋진 소식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세상엔 작가와 이야기가 이렇게나 많고 많아서... 장수해야해요;;;; (홍삼을 마시며)

레삭매냐 2021-05-14 11:38   좋아요 3 | URL
도무지 스토리텔링의 세계는
정말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만
나기 위해서라도 부디 장수만세!!!

잠자냥 2021-05-14 10: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하여간 정보 빠르셔~ ㅎㅎ

레삭매냐 2021-05-14 11:39   좋아요 3 | URL
인별그램을 겟하고
여기저기서 퍼온 정보로
다가 구성해 봤습니다.

아마존 킨들 맛보기로 소설
서두를 본 것은 안 비밀입네다.

미미 2021-05-14 10: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핫한 뉴스를 실어다 주셨습니다.ㅋㅋ👍<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빨리 번역되면 좋겠네요!!!전쟁때 귀,코...저런 기념물?들 많이 챙겼다는데 죽음에 대한 공포도 한몫했을것 같아요. 으..

레삭매냐 2021-05-14 11:40   좋아요 3 | URL
급한 마음에, 아마존에서 제공
하는 맛보기를 조금 읽었는데
정말...

해외 너튜버들이 작년에 읽은
최고의 책 중의 하나로 꼽는
이유가 있었네요 기래.

페넬로페 2021-05-14 11: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신선하고 핫한 뉴스~~
감사합니다^^
‘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
넘 기대되는 작품이예요

레삭매냐 2021-05-14 13:37   좋아요 3 | URL
이 책이 얼렁 번역이 돼서
출간되었으면 바램입니다.

분량도 적으니 속히 -

새파랑 2021-05-14 13: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정보력이네요. 전 항상 정보만 얻어가는데 ㅎㅎ 저기에 있는 작가는 아무도 모른다는데 반성합니다 ㅜㅜ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1-05-14 13:38   좋아요 4 | URL
저도 에리크 뷔야르 외에는 전혀
듣도 보도 못한 그런 작가들이랍
니다.

아, 마리아나 엔리케스는 들어는
보았군요.

세계문학은 정말 파고들수록 대단
하다는 느낌입니다.

바람돌이 2021-05-14 14: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런 고급정보를 알려주시다니요. 레삭매냐님 항상 감사!!!
저는 맨부커상 수상작들은 거의 다 좋더라구요. 올해도 설레면서 기다릴 수 있을 거 같아요.

레삭매냐 2021-05-14 16:14   좋아요 1 | URL
올해는 인터내셔널 부커상
이 어느 작가에게 돌아가게
될 지 궁금합니다.

다음달 6월 21일 발표네요.

coolcat329 2021-05-14 15: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레삭님 이런 정보 늘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

레삭매냐 2021-05-14 16:15   좋아요 2 | URL
부족한 정보가 도움이 되셨
다니 다행입니다.

mini74 2021-05-14 22: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디비보자. 너무 좋습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1-05-15 08:23   좋아요 0 | URL
에리크 뷔야르의 <가난한 사람들의 전쟁>
위해서 토마스 뮌처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잘 디비~보도록 하겠습니다.

붕붕툐툐 2021-05-14 2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메냐님 정보력 갑!!
지금 번역이 안 된 작품이라도 상 받으면 바로 번역되어 나오겠죠?
올해도 완전 기대!! 행복한 기다림 주셔서 감사해용~ 언제 상 받는지는 몰랐어요~ㅋㅋㅋㅋ

레삭매냐 2021-05-15 08:25   좋아요 1 | URL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상 받은 작품은 아니지만 마이클
온다치의 <워라잇>이 여적 뭉개
고 있는 걸 보면 말이죠.

<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는
분량이 적어서 번역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외전인 인터내셔널은 봄이고,
본상은 가을에 발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