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산으로 얼룩진 나의 3월이 그렇게 갔다.

그 핑계를 대고 책도 많이 못 읽었노라고 고백한다. 아니 그건 어디까지나 사실이다.

 

다달이 독서량이 줄어 들고 있다. 1월엔 대박 2월엔 중박 그리고 3월엔 쪽박이다.

꼴랑 8권을 읽었다. 버뜨, 이 책 저 책 찝적거리다 보니 그런 거라고 난 변명한다.

지금은 아모스 오즈의 <유다>를 읽고 있다. 요즘 수에즈 운하 사태가 한창인데, 고 부분을 리뷰에 녹여 넣으면 재밌을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주인공 슈무엘 아쉬와 그가 얹혀 사는 집의 할배와의 대화에도 1956년 영국과 프랑스가 이집트-이스라엘 분쟁에 개입해서 벌어진 수에즈 사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암튼...

 

이달에 새로 만난 작가는 당연 알베르토 모라비아다. 대표작인 <경멸>은 원래 중고서점에서 구간을 사냥해서 읽으려고 했는데 너무 맴이 급해서 도서관으로 뛰쳐가서 빌려다 순식간에 다 읽어 버렸다. 책은 드럽게 재밌었다. 게다가 베베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1950년대 섹스심볼이었던 브리짓 바르도 주연의 영화도 있더라. 그 영화도 봐야 하는데, 마음이 다 잡히지 않으니 집중할 수가 없어서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다.

 

그리고 내친 김에 <권태>도 구해서(그의 책들은 거의 품절과 절판의 운명이다) 읽기는 시작했는데 당장! 읽어야 하는 그런 책들이 불쑥불쑥 튀쳐 나오는 통에 초반 조금 읽다가 접어 두었다. 아무래도 4월에 마저 읽어야지 싶다.

 

러시아 작가 이름도 가물가물한 루드밀라 페트루솁스카야의 <시간은 밤>도 실컷 달려서 조무래기 단편들은 다 읽고, 표제작 읽다 말았네 그려. 알렉산더 클루게의 <이력서들>... 지난 주말에는 에드거 모건 포스터의 <인도로 가는 길>도 호기롭게 읽기 시작해서 첫 번째 꼭지를 모두 읽었다. 그 책에서는 왠지 조지 오웰의 <버마 일기>가 연상됐다. 그러니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월말에 가서는 빈약하기 그지 없는 독서 달력이 창출된 것이다. 에잉!

 

월초에 만난 디노 부차티의 <타타르인의 사막>도 대단했다. 책이 도착하길 기다릴 수가 없어서 미리보기로 읽기 시작했는데 어찌나 감칠맛이 나던지... 다 읽고 나니 오래 묵힌 숙제를 마친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역시 대미는 가즈오 이시구로 선생의 <클라라와 태양>이었다. 이틀 전에 받은 책인데 미친 듯이 읽어서 어제 오전에 다 읽고 리뷰까지 깔끔하게 마무리지었다. 참 이것저것 할 말들이 많았으나 나의 부족함으로 리뷰에 담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늘 새벽에 일어나 두 번째 리뷰를 새롭게 쓰기도 했다. 하나의 책을 읽고 나서 두 개의 리뷰를 쓸 수도 있구나 싶다. 두 번째 리뷰에서는 영화 제작을 할 때, 이 장면은 과연 어떻게 연출될 지에 대해 미처 첫 번째 리뷰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나의 색깔도 빼면서.

 


어제는 회사 앞의 야적장에 불이 나서 실컷 불구경을 했다. 소방차 아저씨들이 신속하게 도착하셔서 불은 금세 꺼졌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1도 없었다. 불구경과 쌈구경이 최고라고 하더니만 그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더라. 저녁에는 만두전골을 먹으러 나갔었는데 왕겹벚꽃이 정말 이쁘게 폈더라. 이 동네 벚꽃은 정말 끝내준다. 오래전, 아무도 없는 경복궁에서 즐기던 흩날리는 벚꽃 시절의 추억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잠자냥 2021-03-31 10: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레삭매냐 님이 8권 뿐이라니?! *동공지진*

레삭매냐 2021-03-31 11:46   좋아요 2 | URL
아무래도 3월의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서 책에 집중하지 못했더라는
핑계를... 네 다 핑계입니다 ㅠㅠ

너튜브에 빠져서 그거 보다가 그만.

얄라알라 2021-03-31 11: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처럼 우아한 언어 쓰시는 분께서 ˝드럽게 재밌다˝하시니 호기심 100배충전입니다. 저는 그나마 3월엔 기록조차 못해서 몇권인지도 모르는데 8권이면 많은 사람들 2년치 읽을 책같아여.

레삭매냐 2021-03-31 11:48   좋아요 3 | URL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

드랍게 재밌는 건 사실이기 때문
에 다른 표현이 딱히...

동네 독서모임 공고가 났는데 1년
목표가 네 권이라고 해서 좀 놀랐
습니다.

바람돌이 2021-03-31 11: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얄라얄라님 글에 덧붙이면 8권은 어떤 사람에게는 교과서 빼고 평생 읽는 책 숫자일수도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을걸요? ㅎㅎ 타타르인과 경멸은 저도 빨리 읽고야 말겠습니다. 클라라와 태양은 일단 집에 있는 책 부터...ㅠ.ㅠ

레삭매냐 2021-03-31 11:49   좋아요 3 | URL
아주 탁월하신 선택이십니다.

세 권 모두 좋은 책들입니다.
<클라라>는 시간을 두고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네요. 아 생각할
수록 짠하네요.

새파랑 2021-03-31 12: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독서달력에 있는 책들이 눈에 들어오네요~4월에는 다시 대박이실 겁니다 ^^ 이거보니 저도 정리한번 해보고 싶네요 ㅎㅎ

레삭매냐 2021-03-31 13:10   좋아요 3 | URL
네 요로코롬 정리해 두면 나중에
라도 아, 내가 이 시절에 이런저런
책들을 읽었구나 하고 기억에 도움
이 되더라구요 :> 좀 귀찮긴 해도
기록하고 있답니다.

4월 대박 완쉐이~

청아 2021-03-31 12: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3월 쪽박이라 하셔도 레삭매냐님 리뷰는 대박이었습니다. <경멸>뛰어난 작품이었고 <권태>도 꼭 읽어볼래요!다른 책들도 궁금하니 이 페이지도 찜ㅋㅋ4월도 설레는 책들로 잘부탁드려요!

레삭매냐 2021-03-31 13:12   좋아요 4 | URL
모라비아 쌤의 책은 <경멸>보다도
<권태>가 낫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
더라구요.

역자 분이 열심히 달리고 계시다고
하니, 올해 신간을 기대해 보렵니다.

4월 대기작으로 에드가 모건 포스터
의 <인도로 가는 길>부터 마저 읽
어야지 싶습니다 :>

북플을 통해 알게 된 일본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책도 한 번 만나
볼까 어쩔가 생각 중이랍니다.

책읽기는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
고행인가 봅니다.

페넬로페 2021-03-31 15: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께서 사용하신 꼴랑, 쪽박의 단어는 저한테 엄청 입니다^^
매번 제가 모르는 좋은 책 올려주셔서 눈팅하며 사알짝 읽고 있는 중이예요.
제가 일일이 표현은 못해도 그렇게 알고 계시면
꼴랑이라도 항상 가르침을 주시고 있는거랍니다~~
‘시간‘도 래삭매냐님의 서재에서 알고 읽은 책이예요.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1-03-31 17:01   좋아요 3 | URL
다른 건 몰라도 책에 대한 욕심은
절제할 수가 없네요. 아니 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예 절제할
생각도 안하는 거겠지요.

저도 홋타 요시에 선생의 <시간>
보고 나서 절판된 책들 구하느라
애를 먹었었네요.

보잘 것 없는 저의 책 소개가
도움이 되었다니 절로 어깨가 들썩
합니다, 감사합니다.

scott 2021-03-31 15: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독서 달력에서 독서라는 단어만 뺴버리면 증권가 첫달에 발행하는 이번주 기대주목록 같음 ㅎㅎㅎ 매냐님은독서계의 트레이더 이쉼

레삭매냐 2021-03-31 23:45   좋아요 1 | URL
작년에 블록에 올해 독서 계획을
잠시 짜보았으나.... 막무가내 독서
의 전범을 보여 주고자 ㅋㅋㅋ

뭐 그랬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coolcat329 2021-03-31 18: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밥 먹으며, 은은하게 미소지어가며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근데 레삭님이 쪽박이시면 저는 ㅡ.ㅡ

레삭매냐 2021-03-31 23:47   좋아요 0 | URL
오늘은 그래24에서 자그마치 상품권
을 오천원이나 주는 바람에 부랴부랴
질렀습니다. 램프의 요정과는 차원이
다르네요.

그리고 중고서점으로 달려가 호평인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도 샀고,
신간은 희망도서로 신청했답니다.

알뜰한 3월의 마지막 날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