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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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전작 <나를 보내지 마>를 읽고 단박에 팬이 되어 버렸다. 그 다음 수순은 그의 책들을 사냥하는 것이었다. 국내에 소개된 모든 책들을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읽었다. 사실 그 책은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아마 읽다가 포기한 것 같다. 전작 읽기를 완수하기 위해서라도 그 책을 읽어야겠다. 그리고 이제 대가의 반열에 오른 그의 신작을 애타게 기다렸다. 2021년 봄, 신작 <클라라와 태양>이 출간됐고 국내 번역도 아주 빠르게 진행되어 3월의 끝자락에 만나볼 수가 있었다. 그 작가는 바로 가즈오 이시구로다.

 

본격적으로 소설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삼천포로 빠져 보자. 왜 작가는 전통적 서사나 역사물 대신 다시 SF 장르로 신호탄을 쏘아 올렸을까. 출간에 앞서 인별그램을 통해 저자의 짧은 책 소개를 만나볼 수가 있었다. 친절하시기도 하여라. 사실 그걸 보고 나서 이 책은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독자 친화적 마케팅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다. 동영상에서 그는 자신의 전작 <나를 보내지 마><남아 있는 나날>의 어느 중간점이 바로 <클라라와 태양>이라고 했던가. 부랴부랴 너튜브에서 <나를 보내지 마> 영화 소개를 다시 찾아보았다. 오래 전에 본 소설과 영화인지라 기억의 소환이 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게 우리 인간이 아니던가. 경험하고 잊고 또 다시 찾아보는 무한반복의 어느 지점에 서 있는. 이시구로 선생은 그렇게 나에게 화두를 던져 주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책을 받은 순간, 만사 제쳐두고 이 책부터 읽고 싶었다. 생각보다 진도가 쑥쑥 나갔다. 오랜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라고나 할까. 6부로 구성된 <클라라와 태양>에서 화자는 1인칭 시점의 에이에프, 가상의 친구(Artificial Friend) 클라라다. 훗날 클라라의 주인이 되는 조시의 표현에 따르자면, 프랑스풍의 얼굴이라고 했던가. 인공지능을 탑재한 에이에프의 목적은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 주기 위한 그런 존재다. 기존의 인형 같은 존재가 아닌, 스스로 사유하고 배워 주인님, 마스터의 기분에 들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창조되었다. 다년간의 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알레고리를 클라라는 상점 쇼윈도를 통해 외부 세계를 관찰하면서 배운다. 상점의 매니저가 그런 클라라의 교육에 도움을 준다.

 

참 우리의 에이에프들은 태양으로부터 자양분을 얻는다. 그러니 태양이 많이 드는 곳을 선점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 거대한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동인 중의 하나인 지대의 다른 표현이라고나 할까. 다른 에이에프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클라라지만, 역시 3세대 신제품에 시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휴대폰처럼 아무리 최신 기능으로 무장하고 시장에 나오지만, 더 좋은 기계가 등장하면 곧바로 시장에서 퇴출되는 그런 숙명을 지니고 있다. 아무리 인간과 인간에 가까운 감정을 지닌 안드로이드의 종속 관계라고 하지만, 그것을 소비하는 나의 감정은 슬프다.

 

심지어 새로 나온 B3 에이에프들은 기존의 2세대 에이에프들과 거리를 두려고까지 한다. 뻔히 보이는 차별적 계급화의 과정이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의 그것을 냉소적으로 다루는 듯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같은 재료로 지어진 아파트 사이에 임대냐 자가냐로 보이지 않는 선, 때로는 보이는 선으로 구분 짓고 교류를 차단하는 세태가 떠올랐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런 차별의 일상화 가운데 자란 이들이 공동체의 선을 위한 작은 희생이나 불편함을 감수하리라고 상상할 수가 없었다.

 

뭐 어쨌든 클라라는 14세 소녀 병약한 소녀 조시에게 구매되어 상점에서 조시네 집으로 위치 이동한다. 그러고 보니 클라라는 같은 상점에 있다가 먼저 팔린 로사에 비해서도 월등한 교감과 학습 능력을 보여 주었다. 조시의 엄마 크리시는 신상인 B3 제품을 원했지만, 조시의 주장으로 클라라를 구매했다. 어쩌면 매니저의 특별 할인가정책이 구매를 촉진했는지도 모르겠다. 소비주의에 매몰된 우리는 가성비가 뛰어난 제품을 선호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태생적으로 외로운 존재인 우리 인간이 울고 싸우고 또 상처받는 전통적 방식의 사회적 관계 대신 불필요한 감정의 소모를 대신하기 위해 에이에프를 개발해서 대체한다는 저자의 설정은 한편으로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서글프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끊임없는 감정의 소모 그리고 자기발전적 회생을 통해 우리는 인간으로 거듭나는 게 아니었던가.

 

그 뒤에 이어지는 조시네 집에서의 생활은 마치 시한폭탄처럼 다가온다. 클라라가 점점 더 조시와 크리시 가족의 일원처럼 진화되면서 왠지 모를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보통 사람들도 잡아낼 수 없는 그런 미묘한 감정선들을 귀신 같이 잡아내는 클라라의 능력에 감탄했다. 이게 바로 거장의 실력이라는 걸까. 어느덧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클라라는 병에 시달리는 클라라에게 특별한 도움이 도래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 안에서 자신의 주인이자 친구 조시를 돕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클라라와 태양>은 성장소설의 단면도 함께 지니고 있다. 조시의 이웃이자 남사친 릭은 병마에 시달리는 엄마 헬렌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할 태세다. 하지만 헬렌의 생각은 달랐다. 재능이 있는 자신의 아들 릭이 애틀러스 브루킹스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 자신에게는 비밀 병기도 있고, 가능하면 클라라가 릭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싶다고 말한다. 하긴, 비용이 드는 에이에프는 가지고 싶다고 해서 살 수 있는 제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경제적 토대가 없는 헬렌으로서는 사랑하는 아들 릭에게 그만을 위한 에이에프를 사줄 여력이 없었다. 클라라는 릭의 성공을 위해 자발적 외로움을 자처하는 헬렌의 모정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아직 그런 감정을 배우지 못했던 걸까. 그러고 보니 어떤 감정들은 처음부터 갖고 있었던 게 아니라, 사회적 추체험들을 통해 배우는 거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인간이 되어간다.

 

나도 너무 인간처럼 사유하고 계속해서 학습하는 클라라 같은 존재를 마주하게 된다면 불편해 할까? 아마 내 특성상 그럴 것 같다. 나라는 존재를 특별하게 만드는 그 무엇인가가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깨달음의 과정을 <클라라와 태양>에서 나는 마주할 수가 있었던 것 같다. 자기희생을 통한 구원이라는 전통적 서사가 전면에 등장하는 게 아닌가라는 걱정은 기우였다. 유전자편집을 통한 향상으로 치열한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겠다는 부모들의 결정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보다 더 나은 기회를 주겠다는 그네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 결과로 조시나 샐 같은 파국이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사랑하는 존재를 다른 무엇인가로 대체한다는 내러티브에 대해서도 할 말이 참 많지만, 너무 늘어질 것 같다. 내가 하는 일들이 언제라도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현실을 모를 정도로 청맹과니는 아니지만.

 

<클라라와 태양>을 읽으면서 만난 다양한 감정들을 글로 표현해 내기란 나 같이 우매한 독자에게는 지난한 임무일 것이다. 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소설의 곳곳에서 대면한 감정들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지난 이틀 동안 에이에프 클라라에 대입한 나의 감정은 슬픔이었다. 소설 말미에 등장하는 야적장 시퀀스에서는 왜 자꾸만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생명이 소진되어 가던 레플리컨트 로이 배티의 마지막 대사가 떠오르던지...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나는 가즈오 이시구로 선생이 SF 장르를 빌어 우리 현대인에게 보내는 이 비가(悲歌)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우리 모두 외롭지 말자, 책과 서사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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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3-30 15: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양탄자가 매냐님 댁 배송은 총알로 보내줬네요. 예약 주문했는데 아직도 못받은 1人 ㅎㅎ

레삭매냐 2021-03-30 15:16   좋아요 2 | URL
이건 뭐 거의... 생쌀 씹어 먹듯이
그렇게 우적우적 읽었네요.

영화로도 만들어진 예정이라고 하던데,
과연 어떤 연출이 될 지 궁금한 장면들
이 몇몇 있더군요. 이 참에 이시구로
선생이 아예 연출을 하는 건 어떠실지.

scott 2021-03-30 15:27   좋아요 3 | URL
매냐님 엔딩 요정은 블레이드 러너 ㅋㅋㅋ

레삭매냐 2021-03-30 15:46   좋아요 2 | URL
엔딩 요정, 레알 굿~입니다.

청아 2021-03-30 17:06   좋아요 2 | URL
생쌀ㅋㅋㅋㅋㅋ인정인정입니다! 정말 그정도로 빨리 받고 바로 읽으셨네요!!마지막 문장도 너무 좋아요!

새파랑 2021-03-30 15: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늘 도착한다고 해서(이미 도착~!) 일단 ‘좋아요‘만 하고 사진만 보고, 리뷰는 다음에 읽겠습니다^^
(🌟다섯개라니~!!)

레삭매냐 2021-03-30 15:47   좋아요 3 | URL
일빠로 리뷰를 날리고 싶은 욕심에
읽기도 쓰기도 휘리릭이었습니다.

차분하게 재독을...

2021-03-30 1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1-03-30 15:4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최대한 스포는 제외하려고 노력
했습니다.

원더북 2021-03-30 16: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만 중도에 읽다가 말고 나머지는 다 읽었어요 ㅎㅎ ‘클라라와 태양’ 먼저 읽으셔서 부럽습니다^^ 저도 얼릉 읽어봐야겠어요~

레삭매냐 2021-03-30 17:49   좋아요 3 | URL
와우 저랑 딱 동지시네요.
제가 이시구로 선생 전작을 그 책
때문에 못하고 있네요 ㅠㅠ

<클라라와 태양>은 정말 찐~입니다.

mini74 2021-03-30 18: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헉. 저도 읽고나서 로이가 생각났어요. 너무나 인간적인 로이. 죽음마저 누구보다 멋지죠 ㅠ

레삭매냐 2021-03-30 20:37   좋아요 1 | URL
전작 <네버 렛 미 고> 영화판과 블레이드 러너
스필버그의 <에이아이> 등등 기존의 SF 영화
들을 끊임 없이 소환하더군요.

stella.K 2021-03-30 18: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으시다니. 대단하심다!
저는 노벨문학상 알레르기가 있어
읽어도 이담에 혹시 중고 나오면 혹시 생각하고 있습니다.ㅠ

레삭매냐 2021-03-30 20:38   좋아요 1 | URL
이건 도저히 안 읽고 배길 재간
이 없었습니다.

저도 비슷한 알레르기 증상을
안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 정도
의 장벽이 없어서 수월하게 만
날 수가 있었습니다.

psyche 2021-03-31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빌려읽는다는 저의 결심을 깨고 싶게 만드는 리뷰네요. 아 갈등된다.

레삭매냐 2021-03-31 11:50   좋아요 0 | URL
저 같은 책중독 리뷰쟁이에게 더할 수
없는 상찬이십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1-04-12 11: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술술 잘 읽히는 소설, 그만큼 좋은 리뷰입니다. 클라라를 한 번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고요. 이 소설 덕분에 이시구로의 소설을 더 읽고 싶어졌어요.

레삭매냐 2021-04-12 11:37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랬습니다. 왜 이렇게 재밌게
잘 읽히던지요.

이시구로 선생의 책들은 한 권 빼고
모두 다 읽었네요. 고 책은 쉽지 않
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