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떠나가는 배 / 거친 바다 외로이 / 겨울비에 젖은 돛에 /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 / 언제 다시 오마는 / 허튼 맹세도 없이 / 봄날 꿈 같이 / 따사로운 / 저 평화의 땅을 찾아 / 가는 배여 / 가는 배~여 / 그곳이 어드메뇨 / 강남길로 해남길~로 / 바람에 돛을 맡겨 / 물결 너머로 어둠속으로 / 저기 멀리 / 떠나가~는 배
정태춘의 노래 '떠나가는 배' 1절이다. 저 '떠나가는 배'가 닿고자 하는 따사로운 평화의 땅은 어디일까? 인적없는 무인도가 아닐까? 현실에서의 고통은 타인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니, 인적없는 무인도야 말로 따사로운 평화의 땅이 아니겠는가. 무인도는 황폐함의 한 상징이지만 정 반대의 상징이기도 한 셈이다.
사진은 「파수도(波水島)」라고 읽는다. '파도치는 섬'이란 뜻이다. 파수도는 안면도에 산재하는 무인도 중의 하나로, '내파수도(內波水島)'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동백나무 군락과 천연 뭉돌(둥근 자갈) 방파제로 유명하다. 과거 중국의 상선이나 어선들이 우리나라를 오갈 때 폭풍을 피하거나 식수를 공급받기 위해 정박하던 곳이기도 하다. 사진은 안면도 가는 길에 찍었는데, 얼핏보면 횟집 간판처럼 보이지만 물류업체 간판이다.
안면 사람들은 이 섬을 무척 아낀다고 한다.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가 났을 때 이곳까지 기름띠가 번졌는데, 무인도임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배를 타고 가서 기름띠를 제거했다고 한다. 아끼는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혹 안면 사람들은 이 무인도를 저 '따사로운 평화의 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波와 島가 약간 낯설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자.
波는 氵(물 수)와 皮(가죽 피)의 합자이다. 몸의 바깥 부분인 가죽처럼 외부로 용솟음쳐 흘러가는 물결이란 의미이다. 물결 파. 波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波濤(파도), 波高(파고) 등을 들 수 있겠다.
島는 山(뫼 산)과 鳥(새 조) 약자의 합자이다. 사면이 물로 둘러싸인 고지대[섬]란 뜻이다. 山으로 뜻을 표현했다. 鳥는 음(조→도)을 담당한다. 섬 도. 島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島嶼(도서), 孤島(고도) 등을 들 수 있겠다.
'떠나가는 배'를 타고 '따사로운 평화의 땅'을 찾던 정태춘은 파수도같은 무인도에 안착하지 않고 그를 그토록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현실에 도로 안착한다. 가요 사전심의 폐지운동을 비롯 이른바 사회 변혁을 위한 문화운동에 헌신한 것. 이상은 바로 현실의 이면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인도가 황폐함의 상징이자 정 반대의 상징이기도 한 것처럼 말이다. 안면 사람들이 파수도를 그저 마음의 귀향처로 삼을 뿐 가서 살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