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기특한 불행 - 카피라이터 오지윤 산문집
오지윤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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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기특한 불행

 


불행이란 행복하지 아니한 것이다. 그럼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은 거꾸로 말해서 불행하지 않은거란다. 가만보면 행복과 불행의 행이라는 글자는 앞뒤 글자 순서만 다를 뿐, 가져다 쓰는 글자들은 다 같지 않은가.

지독한 행복도 또 지독한 불행도 때때론 가슴에 오롯하게 담아내기 힘이 들 때가 있더라. 그런 까닭에 분에 넘치는 행복 또한 경계하기를. 허우적거리며 몸살을 떠는 불행이라는 순간순간까지 온전히 나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라며 살기를. 그런 생각을 하며 사는가도 싶다.

 


제목이 작고 기특한 불행이다. 누가 불행을 일컬어 이토록 긍정의 소박함을 모아 명명할 수 있을까. 누가 감히 깊은 쓰라림마저 기특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말이다. 생각하기 나름인가.


 

글을 쓴 이는 카피라이터라고 했다. 그래서그런지 이 사람 오지윤의 글은 생생하다. 시처럼 감각이 살아있는 산문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무엇보다 자신이 쓴 글에 녹아 흩어지지 않으면서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한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대부분의 에세이가 자신의 글 속에 깊이 갇혀 가는 인상을 받는 반면에 이번 책은 좀 달랐던 것 같다는 말이다. 글쎄다. 차이가 무엇인가 묻는다면 그다지 할 말은 없을 것도 같다. 그냥 내 느낌이 그랬던 것 같다는 말이다.

그녀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담백하고 솔직하다. 그리고 질척이지 않는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어떤 면에서는 명쾌하다기보다는 조금 더 사색적이다.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무겁게 다가오는 글이건만 친근하다. 그렇게 생각의 깊이가 깊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 또한 소심한 개인적인 인상이지만 어쨌든 내겐 그녀의 이야기가 참 정겹게 다가온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걱정을 하는 딸에게, 퇴직 이후의 또다른 삶을 살아가던 아버지는 시간이 너무 안 가서 힘든 사람도 있단다.” 와 같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에피소드가 기억난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에 따라 혹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그 해석이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구나. 라는 생각들? 사실 이런 건 표면적인 생각들이다. 그리고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책 속에는 뭐랄까 눈에 보이는 것과 함께, 우리가 채 인지하지 못했던 그 너머의 것들이 가만히 살아나곤 한다.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무엇에까지 저자의 시선은 확장되어 있었으며, 그 시선이 멈추는 곳마다 무척이나 따스하다.



-외부의 것이 나를 기쁘게 하거나 슬프게 하도록 내버려 두기 싫은 밤이다. 매일 밤 나의 기분은 사실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 타인이 만들어 왔다.-p113

 


-또 봄이 왔다. 어제는 가족들과 함께 부추전을 먹었다.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고되게 이별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삶을 시작한다. 우리의 식탁에는 이제 할머니 대신 형부가 앉아 있다. 부추가 또 말을 걸어온다. “별일 없지? 맛있게 먹어라.” -p120


 

-그리고 이곳에서 낯선 이들과 무용한 것에 대해 끝까지, 끝까지 파고든다. 그러다 보면 위로를 받고 만다. 무용함의 쓸모 글쓰기의 쓸모.-p208

 


 

-“좋아했던 사람을, 사랑했던 순간을, 화가 났던 날들을, 소중했던 햇빛을 힘주어 눌러 쓰며 오늘의 나에게 보냅니다. 기억하지 않으면 영영 휘발될 것 같아요. 어떤 것들은 익숙해져서 닳아 버린 낱말들처럼, 날이 밝으면 사라질 것 같아요.”-p210 (글 쓰기 모임을 함께 하는 태훈의 글을 인용한 부분이다)

 

 


사족이다.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 걸까. 세상은 거칠고 험하고 축축하고 날카롭기가 그지없지만 이렇게 쓰고보니 내가 꼭 염세주의에 빠져 사는 것 같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이 세상이란 것이 참 많은 이미지들로 가득차 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많은 시인과 소설가들은 그 속에서도 보석을 꿈꾸는 원석을 찾아내곤 한다. 찾다보면 그렇게 들추어 들여다보기를 노력하다보면 새롭게 보이는 무언가가 있겠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쓰다보면 생각의 깊이는 더 깊어질 일이다. 넋두리가 길어졌다. 이 글을 쓰면서 내내 듣고 있던 음악도 이젠 바꿔야겠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음악도 글도 다들 제각각 품고 있는 이야기들이 많더라. 잊어야 하지만 잊지 못하는 것. 마음을 비워내야겠지만 어렵다는 것. 쉽지 않은 일들. 그럼에 불구하고 그 사이에서 인간은 천천히 성장해간다. 조금씩 느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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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사이언스 클래식 38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 사이언스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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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이 출몰하는 세상

 



-헛소리 탐지기의 전원을 올려라


 

칼 세이건의 책이다. 그의 책은 엄밀히 말해서 처음이다. 일전에 다른 책을 아주 조금 읽어보긴했어도 이렇게 길게 오래도록 읽어보는 순간은 처음인가 싶다. 뇌세포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누군가라면 이번 칼의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지 궁금해진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때때로 적절한 순간에 반박하며 논리적으로 파고들어가는 행위를 즐기는 누군가들이라면, 이 책이 그들에게 어떤 방향을 일으키게 될지 아니 이미 어떤 반응을 일으켰을지 그것마저도 궁금해진다.

 


우주를 관찰하고 우주를 연구하는 과학자. 내 머릿속에 각인된 칼 세이건의 이미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정해진 선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젠가 잠시 접했던 그의 이야기에서, 나는 그가 다양한 주제를 풀어가는 성실한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을 언뜻 알아차렸던 것을 기억한다.

그는 과학자이기 이전에 이야기꾼이다. 악몽이 출몰하는 세상 역시 그가 펼쳐놓는 이야기들의 한 마당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책에는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실렸다. 주를 이루는 내용은 과학과 비과학에 관련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과학이 아니 과학적 원리가, 또는 과학적 요소와 접근법 그리고 그 활용법과 과학적 이해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과학적인 것들이 공존하고 있는가말이다. 삼십여 년 전 내게 화학을 가르쳐주셨던 과학 주임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해보면, 우리가 생활하는 데 있어 10할에서 9할 이상이 과학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보폭의 크기로 생각을 정리하다보면, 칼이 지적한 것처럼 과학적이지 않은 비과학 요소 역시 도처에 이미 널리 퍼져 있음을 미루어 짐작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다.

칼은 자신의 저서에서 이 비과학적 요소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비판한다.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모든 과학이 일괄적으로 주장하는 것처럼 바로 증거주의다. 과학은 증거에서 시작되고, 증거에서 확장되며, 증거 안에서 다시 또다시 반증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서론은 그렇다는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족들과 두세 번 짧은 논쟁이 있었다. 지극히 이과적 성향을 타고난 남편과는 달리 나는 뼛속까지 문과생의 면모를 타고났다. 어쩌란 말인가. 나는 칼의 책에서 거론되는 것들을 중립적인 입장에서 보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드는 의구심과, 때때로 고개를 드는 반발심으로 몸이 근질거리곤 했던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남편과 또 한 사람 아빠를 닮아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선호하는 아들을 상대고 말문을 열곤 했었다.

 


-----과학은 인간의 호기심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 있다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이 과학자가 누구인지도 기억하지 못했을 게 아닌가. 따라서 과학은 인간의 지적 호기심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상상력에 의해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칼의 이미지는, 인간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 말에 남편과 아들은 즉각 반론을 제기했다. 과학은 실험과 결과 그리고 명백한 사실 증거 안에서 움직인다고 말이다.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정확하고 믿을 수 있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칼 세이건의 입장이 그러한 것일 뿐이라고 두 사람이 지적한다.

 


소심한 내가 보기에 칼은 우주를 연구하고 분석하며 우주를 향해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학자이며 과학자임에는 분명한데 말이다. 그러한 그가 왜 지구를 담고 있는 우리 은하계가 아닌 다른 은하에 살고 있을 법한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것은 과학의 열린 사상과는 거리가 있는게 아닌가. 그것만 보면 모순이지 않은가. 라고 말했다.

그는 지구에 찾아온 외계인, 혹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 생체실험 비슷한 것을 하는 외계인의 존재만을 부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외계 생명체 전체를 부정하는 것일까.

과학을 천문학을 연구한다면 외계 생명체에 대한 지적 호기심은 기본으로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질문을 했었다.----

 

여기까지가 우리의 어설픈 토론 내용이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대한 칼의 의견에 대한 토론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하자.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하는가. 실은 책을 읽다보면 어느정도 칼의 이야기에 설득?당하게 된다고 말하려던 참이다. 칼은 논리적이고 비판적이며 또 분석적인 자세로 문제에 접근한다. 그는 보통 사람들의 생각들 이를테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 그럴 수 없다’. 라는 답변을 내놓기 위해 여러 자료와 전문적인 지식을 가져오곤 한다. 여기에서 한가지 또 주목해보고 싶은 것은 서로 다른 것들을 두고 연관관계를 새로 이어가는 데에 있는 칼의 응용력이라고 해야할지. 독특한 개성이라고 해야할지. 어쨌든 그만의 새로운 관점으로 들여다보기는 신선했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바로 이 대목이다. 중세의 마녀사냥과 현재 외계인 납치 사건에 대한 공통된 관점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대목 말이다. 그의 접근은 신선했고 나름 설득력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역시 칼 개인의 주장이고 이론일 뿐이라는 사실이 나를 상기시킨다. 증거로 이야기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는 결국 어떤 부분에서 확신하지 않는다. 일정부분 반증을 위한 문을 열어놓은 것이었을까. (P 270; 결정적인 증거 없음 확인) 그것이 열린 결말을 품는 과학의 정신인가.

그에 주장에 따르면 어쩌면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회의주의자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의 말처럼 의심이 많은 자인지로 모를 일이다.

외계인과 관련 집단 최면 혹은 집단 환상에 대한 칼의 의견에 차라리 나는 감응성 정신병’(밀접한 관계의 두 사람이 같은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현상) 쪽으로 접근해보는게 더 낫겠다 싶었다.

 


과학과 사회, 인간 행동과 지성 그리고 정치. 물론 그는 정치에 대한 언급은 그다지 하고 싶지 않는 눈치였다. 그에게 있어서도 과학은 역시 정치가 아니었던가 보다. 그러나 그는 지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로 관심을 확장시켰다. 그렇게 생각하고 분석하며 들여다보기를 꾸준히 이어갔던 것 같다.


 

과학을 할 때 우리는 실험 결과나 데이터, 관측 결과나 측정값 같은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사실에 대한 설명을 가능한 한 풍부하게 고안해 내고 각 설명을 사실과 체계적으로 대조해 본다. 과학자들은 과학자로서의 훈련 과정에서 헛소리 탐지기라고 할 만한 것을 갖추게 된다.”- P 311

 


좋아하는 학자 칼 포퍼의 이론은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모든 학문을 바라보는 시선에 기준을 만들어준 이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이제 와 만났던 칼 세이건의 이야기는 칼 포퍼의 이야기 위해 올려진 새로운 성이라고 생각한다. 내게는 많은 이야기가 끊임없이 밀려와 이해하기에 시간이 걸렸던 것이 사실이었다. 다소 생각의 방향성이 다른 이야기였을 법도 하고, 접근법에 차이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그는 멋진 사람이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가 언급한 헛소리 탐지기장치를 가져와야겠다. 남은 생을 살아가는 동안 나는 늘 그렇듯 회의주의자의 옷을 걸치고서라도 칼이 알려준 헛소리 탐지기의 전원을 올려볼 요량이다.

 

 

 



 

PS

책은 칼이 부인과 함께 공저한 내용도 함께 실렸다.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몇 가지의 화제는 학생들이 토론한 주제에서 나온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공존하는 곳에서 이어지는 토론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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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죽음 - 살아 숨 쉬는 현재를 위한 생각의 전환
헨리 마시 지음, 김미선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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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죽음

 

 

 


책을 읽는 동안에 가끔 충동에 빠지곤 한다. 빨리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욕심 내지는 순간적인 충동이다. 책에 대한 느낌과 감흥 그리고 하나에 몰입해 생각하다가 떠오르는 여러 가지 경험과 생각들이 꾸역꾸역 좁은 방안에 들어차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생각해보면 그런 경험은 기분좋은 찰나적 경험이다.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을 것만 같은 난해한 책을 마주하고 앉아있는 순간과 비교를 한다면, 천국과 지옥의 이미지를 가져다 놓아야 할 것만 같다는 말이다.

 


헨리 마시의 참 괜찮은 죽음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다른 두꺼운 책을 같이 읽고 있었다. 주제도 다르고, 표현도 다르고, 저자에게서 느껴지는 태도와 분위기도 완전히 다른 정말이지 정반대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두 권의 책을 양손 안에 들고 교대로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은 그러니까 서로 이렇게도 다르구나’, 였다.

시집을 읽을 때면 시집을 읽을 책상에 앉아야 하고, 소설을 읽을 때는 그 옆 책상으로 옮겨야 하며, 다른 인문학 혹은 기타 다른 전공서적을 읽을 때마다 자리를 옮겨가며 책을 읽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기억난다. 뭐랄까. 그건 어쩌면 책에 대한 또는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다행이다. 헨리 마시의 이야기를 먼저 풀어놓을 수 있어서 이것마저도 참 다행이지 않은가 싶다.

 


저자는 신경외다. 책은 그의 경험과 의사로서 사유하는 그만의 철학과 정신이 담긴 지극히 사적이면서도 딴은 지극히 공적인 이야기가 가득하다. 일반 사람들은 잘 접하기 어려운 병원 에피소드이다. 그의 전공이 외과 특히 신경외과 쪽이다보니 대부분의 환자 이야기가 뇌와 연관되어 있으며, 특히 다양한 뇌종양 환자들의 사례를 많이 다루고 있었다.

 


저자 스스로가 의사의 자리에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의료인의 자리에서 느끼는 생각과 경험들이 주를 이룬다고 봐야 한다. 수술의 성공과 실패, 좌절과 희망, 또는 법적인 의료소송에 대한 이야기와 멀리 타국(우크라이나)에 나아가 자원봉사를 하는 이야기까지 이번 책은 저자 헨리 마시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다양한 삶의 순간들을 기록하고 있다.

 


환자의 입장에서나 의료진의 입장에서나 죽음이란 마주하기 어려운 난제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제목 참 괜찮은 죽음은 실제 저자 헨리가 자신의 노모의 죽음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연상했던 철학적 개념이자 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

 


-순간적으로 소멸하는 죽음을 끝내 이루지 못한다면 내 삶을 돌아보며 한마디는 남기고 싶다. 그 한마디가 고운 말이 되었으면 하기에, 지금의 삶을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P275

 


헨리 마시는 여느 의사보다 조금 더 인간적인 이미지로 각인된다. 수술실과 진료실에서 그는 때론 거칠고 잘 흥분하면서도 때론 지극히 인간적이고 여린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그가 의사라는 자리에서 만났던 많은 환자들과 더불어 그 역시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늙고 약해지지만, 반면 삶의 지혜는 늘어간다는 말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경험의 수는 사람을 어른으로 성장시킨다는 말이 된다. 그 사람이 환자든 혹은 그가 의사든 어느 위치에 있든지간에 각자의 위치에서 시간은 사람을 버티고 이겨내게 하는 것이다.

 


제목 참 괜찮은 죽음의 상징성은 최후 마지막의 결론적인 이야기가 아닌, 과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괜찮은 죽음을 위해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삶의 한 과정인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과 태도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더란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괜찮은 죽음을 결과론적으로 접근해 본다면 어떨까. 괜찮은 죽음의 기준은 역시나 아직도 모호하지만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부분이기에 그저 만족했다면 만족했었다, 라고 한다면 누가 어떤

말을 감히 물고 늘어질 수 있을까 싶은거다. 괜찮은 죽음은 과정이든 결론이든 결국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인가보다.

 


우크라이나에서 만난 어린 소녀 타냐와 어머니 카티아의 이야기와 의지할 곳 없는 알코올 중독자 이야기가 유독 기억에 자리한다. 하나는 모성애가 자극되었기 때문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생의 가장 밑바닥으로 내몰린 평범하고 나약한 한 사람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야기가 안에서 의사로서 책임감과 후회와 자아 성찰의 면모를 찾아볼 수 있는 책이다. 기타 의료체계처럼 같이 논할 부분도 많지만 이쯤에서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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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증인 - The Last Witness
유즈키 유코 지음, 이혁재 옮김 / 더이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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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증인

 


일본 작가 유즈키 유코의 작품이다. 이 작품이 발표가 된 시기는 2010년으로 소개되고 있다. 해설 부분에서 작가는 여성작가의 시선으로 보는 남자, 특히 중년 남자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전성기가 시작됐다는 소개가 실리기도 했다. 하필이면 이 대목에 시선이 갔던 까닭을 아직도 찾지 못해 고민 중이다.

딱히 저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는 생각하지 않고 작품을 읽었다. 다만 생각했던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섬세함과 깊이감 그리고 면밀함이 스며든 심리묘사가 눈에 띈다는 점이다. 작가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글에 녹아들고 있는 섬세함은, 작품의 스토리와는 별도로 묘한 안정감과 동시에 완성도를 올려 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책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번 최후의 증인은 초반에 실린 프롤로그 덕분에 시작부터 트릭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7년전 교통사고로 억울하게 누명을 쓴 열 살 아들을 잃은 부부 다카세와 미쓰코는 아들의 복수를 결심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살해됐다. 사건은 법정에 서게 되고, 각각 실력 있는 젊은 검사 쇼지와 전직 검사출신 변호사 사가타가 검사와 변호사의 자리에서 서로 마주하게 된다.

음주운전으로 보행자 신호를 무시하고 사고를 일으켰던 가해자 시마즈 구니아키. 지위와 권력으로 경찰에 압력을 넣고 불기소 처분으로 사건을 종결시켰던 7년 전 사건이 어떤 방식으로 현재로 이어져 복수의 장으로 펼쳐지는게 되는 걸까.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며 스토리를 엮어간다.

 


개인적으로는 반전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작품 안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증인 마루야마라는 인물로 인해 사건은 상식의 방향성을 틀어간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말이다. 그 상식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증거가 확실하고 정황도 뚜렷하고 모든 화살표들이 가해 자가 범인이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변호사 사가타로 하여금 다른 확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그려낸다.

뜬금없는 사가타의 확신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일까. 작가는 사가타의 미묘한 행동에 해답을 빨리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범행의 결과만 가지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이 발생하기까지의 동기를 먼저 생각하는 것의 가치?를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를 각인시키는 듯 했다.

 


소설에서는 법보다 사람을 보라는 말이 자주 언급된다. 어쩌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른다. 사람 위에 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법 위에 다시 사람이 존재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법을 범하는 것은 인간이다. 책상에 앉아 경찰이 가져오는 서류와 증거를 들여다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인간으로 피고인을 봐라.’ -p136

 


갑자기 떠오른 생각은 이런 것들이다. 언젠가 보았던 국민참여재판을 소재로 한 영화 배심원에 등장하는 대사가 문득 기억이 난다. “법은 사람을 처벌하지 않기 위해 있다처벌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 법이 존재한다는 의미의 이 표현이, 이번 유즈키 유코의 작품에서도 어떤지 비슷한 의미로 담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세상에는 여전히 지위와 권력으로 부조리를 행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설정 아닌 현실적인 비판과 함께,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고 추종하는 무리와 이와는 달리 보이지 않는 것까지 들여다보기를 원하고 행동하는 또다른 이들도 존재하고 있다는 희망적 암시를 엿보는 듯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품 초반과 후반부의 속도감 있는 진행과는 달리 중간 부분에서 느껴지는 살짝 늘어지는 듯한 느낌은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번 작품처럼 일찌감치 범인을 밝히고 진행하는 소설의 또다른 힘은 탄탄한 구성과 짜임이라고 볼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이번 작품의 의미와 무게감을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의 문장을 기록으로 남긴다.

 

-그 어떤 이유로건 죄를 졌으면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정당하게 재단한다는 것은 사건의 뒷면에 있는 슬픔 괴로움 갈등 등 모든 것을 파악한 뒤에나 가능한 것이다. 행동 뒤에 이유가 있듯이 사건 뒤에는 동기가 있다. 거기에 있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진정한 의미에서 죄는 재단하지 못한다.-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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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과의 전쟁 - 미래산업을 바꿀 친환경기술 100
박영숙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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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과의 전쟁

 


저자는 박영숙이다. 여러 직책에서 한국대표를 해왔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장르의 대표들과 교류를 이어간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녀가 어떤 일을 해왔으며 현재 진행하고 있는 분야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미래예측 전문가로 한국의 해수면 상승이 20년 안에 심각해진다는 미래예측을 접한 뒤 세계기후변화상황실, 솔라메이커스 태양광발전소를 세워 온실가스를 줄이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책날개 부분 인용-

 


책은 기후변화에 따른 재난의 실태와 상황을 먼저 알리고 있다. 이 문제가 각각의 나라 혹은 각각의 정치와 경제 분야의 미치는 영향력을 파악하고 문제점을 일일이 지적하고 있는 동시에 개선책으로 다양한 기술을 소개하고 있는 구성을 갖췄다.

 


우선 책에서 볼 수 있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는 인류의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좀 살펴보자.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은 지구의 평균기온의 상승에 대한 부분이다. 이에 대한 우려와 염려 그리고 실질적으로 지구의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경험하고 있는 다양한 환경변화의 문제들을 주목해야 할 듯하다. 책에 따르면 현재 지구의 평균온도가 산업혁명 이전과 비교했을 때 1.09도 상승한 상태라고 한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410ppm)2백만 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온실가스를 언급하는데, 무엇보다 암울한 이야기는 지구의 온도가 조금씩 오를수록(0.5) 기상이변 현상의 빈도와 강도가 심해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저자는 RethinkX이론을 가장 먼저 소개한다. 기존의 이론에 대한 평가와 시나리오를 재평가해야하는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시작되는데, 각각의 변화가 가져오는 결과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예측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책을 통해 우리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가 만들어지고, 각국이 서로 협력해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문제들을 교류하며 이를 저지하고 극복해가기 위해 새로운 활동들을 구축해가고 있는 실정을 확인할 수 있다. 기후변화협약(UNFCCC), 교토의정서, 파리기후협약등이 이에 속한다.

 


책에는 독일 영국 프랑스 미국. 아시아권에서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까지 기후변화에 따른 재난을 대비해가는 각국의 구체적인 계획과 일정들이 알기 쉽게 소개되어 있기도 하다. 테슬라, 구글, 애플 그리고 한국에 속한 굴지의 대기업들의 노력과 나아갈 방향성들도 알아보기 쉽게 설명한다. 여기서 한 시절 갑자기 시끄럽게 언론에 등장했었던 ‘RE100’의 개념이나 또는 넷제로(net- zewo)’와 같은 이론들도 접할 수 있다. 쓰고 버려지는 것이 아닌 재생에너지로 다시 활용하자는 것과 온실가스 순배출을 완전히 없는 것으로 하자는 이론들이다.

문제가 될만한 것들은 아예 시작도 하지 말자는 의미로 다가온다. 그래야지만 지구의 기온이 내려가고 지구가 더 오래 버틸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현실은 상당히 어려워보인다.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해법은 존재하는 걸까? 저자는 책의 후반부에 다양한 기술들을 소개했다. 이해가 되고 실현 가능성이 큰 기술들도 있고, 또 일부분 지금도 활용하고 있는 것 같은 이론들도 있었으며, 때로는 그저 말 그대로 신기술 이론에 머물러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 기술들도 소개되는 듯했다. 어쨌든 다방면에서 인간은 지구를 살리기 위해 애쓰고 있음은 분명해보인다.



플라스틱 폐기물을 다공성 탄소로 변환하는 기술은 무엇보다 우리 과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기도 하다. 현재도 전기자동차가 많이 이용되고 있지만, 현재까지의 기술이 보이는 한계점(배터리 교체, 주행거리 혹은 충전의 문제)을 해결하기 위한 연구와 노력도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버섯과 미생물로 스티로폼을 대체하는 기술에 대한 소개도 신선했으며, ‘환경오염 방지 신기술이라는21’ 파트에서 소개되고 있는 왕겨로 만드는 친환경 보일러 기술역시 시선을 끌기도 했었다. 읽다보면 신선한 아이디어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해마다 하지를 즈음해 우리 가족은 동해로 일출을 보러 간다. 지지난해 그리고 지난해 갈 때마다 느끼는 당혹스러움과 두려움이란, 모래사장이 깎이고 패이고 쓸려가고 있는 현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환경오염의 문제를 인식하게 된 계기가 동해의 모래사장이 가져오는 변화인 셈이다. 책에서도 잠깐 언급되어 있지만 해가 갈수록 그 변화가 직접적으로 크게 다가오는 걸 느낀다.

대자연의 숨겨진 힘이란 나약한 인간의 접근을 결코 허하지 않는 듯해보인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고 시간을 벌 수 있다면. 그래서 지켜낼 수 있다면 이제 행동해야 할 시기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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