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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ㅣ 사이언스 클래식 38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 사이언스북스 / 2022년 2월
평점 :
악몽이 출몰하는 세상
-헛소리 탐지기의 전원을 올려라
칼 세이건의 책이다. 그의 책은 엄밀히 말해서 처음이다. 일전에 다른 책을 아주 조금 읽어보긴했어도 이렇게 길게 오래도록 읽어보는 순간은 처음인가 싶다. 뇌세포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누군가라면 이번 칼의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지 궁금해진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때때로 적절한 순간에 반박하며 논리적으로 파고들어가는 행위를 즐기는 누군가들이라면, 이 책이 그들에게 어떤 방향을 일으키게 될지 아니 이미 어떤 반응을 일으켰을지 그것마저도 궁금해진다.
우주를 관찰하고 우주를 연구하는 과학자. 내 머릿속에 각인된 칼 세이건의 이미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정해진 선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젠가 잠시 접했던 그의 이야기에서, 나는 그가 다양한 주제를 풀어가는 성실한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을 언뜻 알아차렸던 것을 기억한다.
그는 과학자이기 이전에 이야기꾼이다. 악몽이 출몰하는 세상 역시 그가 펼쳐놓는 이야기들의 한 마당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책에는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실렸다. 주를 이루는 내용은 과학과 비과학에 관련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과학이 아니 과학적 원리가, 또는 과학적 요소와 접근법 그리고 그 활용법과 과학적 이해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과학적인 것들이 공존하고 있는가말이다. 삼십여 년 전 내게 화학을 가르쳐주셨던 과학 주임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해보면, 우리가 생활하는 데 있어 10할에서 9할 이상이 과학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보폭의 크기로 생각을 정리하다보면, 칼이 지적한 것처럼 과학적이지 않은 비과학 요소 역시 도처에 이미 널리 퍼져 있음을 미루어 짐작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다.
칼은 자신의 저서에서 이 비과학적 요소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비판한다.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모든 과학이 일괄적으로 주장하는 것처럼 바로 증거주의다. 과학은 증거에서 시작되고, 증거에서 확장되며, 증거 안에서 다시 또다시 반증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서론은 그렇다는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족들과 두세 번 짧은 논쟁이 있었다. 지극히 이과적 성향을 타고난 남편과는 달리 나는 뼛속까지 문과생의 면모를 타고났다. 어쩌란 말인가. 나는 칼의 책에서 거론되는 것들을 중립적인 입장에서 보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드는 의구심과, 때때로 고개를 드는 반발심으로 몸이 근질거리곤 했던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남편과 또 한 사람 아빠를 닮아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선호하는 아들을 상대고 말문을 열곤 했었다.
-----과학은 인간의 호기심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 있다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이 과학자가 누구인지도 기억하지 못했을 게 아닌가. 따라서 과학은 인간의 지적 호기심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상상력에 의해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칼의 이미지는, 인간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 말에 남편과 아들은 즉각 반론을 제기했다. 과학은 실험과 결과 그리고 명백한 사실 증거 안에서 움직인다고 말이다.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정확하고 믿을 수 있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칼 세이건의 입장이 그러한 것일 뿐이라고 두 사람이 지적한다.
소심한 내가 보기에 칼은 우주를 연구하고 분석하며 우주를 향해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학자이며 과학자임에는 분명한데 말이다. 그러한 그가 왜 지구를 담고 있는 우리 은하계가 아닌 다른 은하에 살고 있을 법한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것은 과학의 열린 사상과는 거리가 있는게 아닌가. 그것만 보면 모순이지 않은가. 라고 말했다.
그는 지구에 찾아온 외계인, 혹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 생체실험 비슷한 것을 하는 외계인의 존재만을 부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외계 생명체 전체를 부정하는 것일까.
과학을 천문학을 연구한다면 외계 생명체에 대한 지적 호기심은 기본으로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질문을 했었다.----
여기까지가 우리의 어설픈 토론 내용이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대한 칼의 의견에 대한 토론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하자.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하는가. 실은 책을 읽다보면 어느정도 칼의 이야기에 설득?당하게 된다고 말하려던 참이다. 칼은 논리적이고 비판적이며 또 분석적인 자세로 문제에 접근한다. 그는 보통 사람들의 생각들 이를테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 그럴 수 없다’. 라는 답변을 내놓기 위해 여러 자료와 전문적인 지식을 가져오곤 한다. 여기에서 한가지 또 주목해보고 싶은 것은 서로 다른 것들을 두고 연관관계를 새로 이어가는 데에 있는 칼의 응용력이라고 해야할지. 독특한 개성이라고 해야할지. 어쨌든 그만의 새로운 관점으로 들여다보기는 신선했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바로 이 대목이다. 중세의 마녀사냥과 현재 외계인 납치 사건에 대한 공통된 관점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대목 말이다. 그의 접근은 신선했고 나름 설득력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역시 칼 개인의 주장이고 이론일 뿐이라는 사실이 나를 상기시킨다. 증거로 이야기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는 결국 어떤 부분에서 확신하지 않는다. 일정부분 반증을 위한 문을 열어놓은 것이었을까. (P 270; 결정적인 증거 없음 확인) 그것이 열린 결말을 품는 과학의 정신인가.
그에 주장에 따르면 어쩌면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회의주의자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의 말처럼 의심이 많은 자인지로 모를 일이다.
외계인과 관련 집단 최면 혹은 집단 환상에 대한 칼의 의견에 차라리 나는 ‘감응성 정신병’(밀접한 관계의 두 사람이 같은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현상) 쪽으로 접근해보는게 더 낫겠다 싶었다.
과학과 사회, 인간 행동과 지성 그리고 정치. 물론 그는 정치에 대한 언급은 그다지 하고 싶지 않는 눈치였다. 그에게 있어서도 과학은 역시 정치가 아니었던가 보다. 그러나 그는 지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로 관심을 확장시켰다. 그렇게 생각하고 분석하며 들여다보기를 꾸준히 이어갔던 것 같다.
“과학을 할 때 우리는 실험 결과나 데이터, 관측 결과나 측정값 같은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사실에 대한 설명을 가능한 한 풍부하게 고안해 내고 각 설명을 사실과 체계적으로 대조해 본다. 과학자들은 과학자로서의 훈련 과정에서 ‘헛소리 탐지기’라고 할 만한 것을 갖추게 된다.”- P 311
좋아하는 학자 칼 포퍼의 이론은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모든 학문을 바라보는 시선에 기준을 만들어준 이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이제 와 만났던 칼 세이건의 이야기는 칼 포퍼의 이야기 위해 올려진 새로운 성이라고 생각한다. 내게는 많은 이야기가 끊임없이 밀려와 이해하기에 시간이 걸렸던 것이 사실이었다. 다소 생각의 방향성이 다른 이야기였을 법도 하고, 접근법에 차이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그는 멋진 사람이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가 언급한 ‘헛소리 탐지기’ 장치를 가져와야겠다. 남은 생을 살아가는 동안 나는 늘 그렇듯 회의주의자의 옷을 걸치고서라도 칼이 알려준 ‘헛소리 탐지기’의 전원을 올려볼 요량이다.
PS
책은 칼이 부인과 함께 공저한 내용도 함께 실렸다.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몇 가지의 화제는 학생들이 토론한 주제에서 나온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공존하는 곳에서 이어지는 토론은 얼마나 매력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