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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증인 - The Last Witness
유즈키 유코 지음, 이혁재 옮김 / 더이은 / 2022년 5월
평점 :
절판
최후의 증인
일본 작가 유즈키 유코의 작품이다. 이 작품이 발표가 된 시기는 2010년으로 소개되고 있다. 해설 부분에서 작가는 여성작가의 시선으로 보는 남자, 특히 중년 남자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전성기가 시작됐다는 소개가 실리기도 했다. 하필이면 이 대목에 시선이 갔던 까닭을 아직도 찾지 못해 고민 중이다.
딱히 저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는 생각하지 않고 작품을 읽었다. 다만 생각했던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섬세함과 깊이감 그리고 면밀함이 스며든 심리묘사가 눈에 띈다는 점이다. 작가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글에 녹아들고 있는 섬세함은, 작품의 스토리와는 별도로 묘한 안정감과 동시에 완성도를 올려 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책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번 ‘최후의 증인’은 초반에 실린 프롤로그 덕분에 시작부터 트릭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7년전 교통사고로 억울하게 누명을 쓴 열 살 아들을 잃은 부부 다카세와 미쓰코는 아들의 복수를 결심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살해됐다. 사건은 법정에 서게 되고, 각각 실력 있는 젊은 검사 쇼지와 전직 검사출신 변호사 사가타가 검사와 변호사의 자리에서 서로 마주하게 된다.
음주운전으로 보행자 신호를 무시하고 사고를 일으켰던 가해자 시마즈 구니아키. 지위와 권력으로 경찰에 압력을 넣고 불기소 처분으로 사건을 종결시켰던 7년 전 사건이 어떤 방식으로 현재로 이어져 복수의 장으로 펼쳐지는게 되는 걸까.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며 스토리를 엮어간다.
개인적으로는 반전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작품 안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증인 ‘마루야마’라는 인물로 인해 사건은 상식의 방향성을 틀어간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말이다. 그 상식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증거가 확실하고 정황도 뚜렷하고 모든 화살표들이 가해 자가 범인이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변호사 사가타로 하여금 다른 확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그려낸다.
뜬금없는 사가타의 확신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일까. 작가는 사가타의 미묘한 행동에 해답을 빨리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범행의 결과만 가지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이 발생하기까지의 동기를 먼저 생각하는 것의 가치?를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를 각인시키는 듯 했다.
소설에서는 ‘법보다 사람을 보라’는 말이 자주 언급된다. 어쩌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른다. 사람 위에 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법 위에 다시 사람이 존재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법을 범하는 것은 인간이다. 책상에 앉아 경찰이 가져오는 서류와 증거를 들여다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인간으로 피고인을 봐라.’ -p136
갑자기 떠오른 생각은 이런 것들이다. 언젠가 보았던 국민참여재판을 소재로 한 영화 ‘배심원’에 등장하는 대사가 문득 기억이 난다. “법은 사람을 처벌하지 않기 위해 있다” 처벌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 법이 존재한다는 의미의 이 표현이, 이번 유즈키 유코의 작품에서도 어떤지 비슷한 의미로 담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세상에는 여전히 지위와 권력으로 부조리를 행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설정 아닌 현실적인 비판과 함께,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고 추종하는 무리와 이와는 달리 보이지 않는 것까지 들여다보기를 원하고 행동하는 또다른 이들도 존재하고 있다는 희망적 암시를 엿보는 듯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품 초반과 후반부의 속도감 있는 진행과는 달리 중간 부분에서 느껴지는 살짝 늘어지는 듯한 느낌은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번 작품처럼 일찌감치 범인을 밝히고 진행하는 소설의 또다른 힘은 탄탄한 구성과 짜임이라고 볼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이번 작품의 의미와 무게감을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의 문장을 기록으로 남긴다.
-그 어떤 이유로건 죄를 졌으면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정당하게 재단한다는 것은 사건의 뒷면에 있는 슬픔 괴로움 갈등 등 모든 것을 파악한 뒤에나 가능한 것이다. 행동 뒤에 이유가 있듯이 사건 뒤에는 동기가 있다. 거기에 있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진정한 의미에서 죄는 재단하지 못한다.-p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