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기특한 불행 - 카피라이터 오지윤 산문집
오지윤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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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기특한 불행

 


불행이란 행복하지 아니한 것이다. 그럼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은 거꾸로 말해서 불행하지 않은거란다. 가만보면 행복과 불행의 행이라는 글자는 앞뒤 글자 순서만 다를 뿐, 가져다 쓰는 글자들은 다 같지 않은가.

지독한 행복도 또 지독한 불행도 때때론 가슴에 오롯하게 담아내기 힘이 들 때가 있더라. 그런 까닭에 분에 넘치는 행복 또한 경계하기를. 허우적거리며 몸살을 떠는 불행이라는 순간순간까지 온전히 나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라며 살기를. 그런 생각을 하며 사는가도 싶다.

 


제목이 작고 기특한 불행이다. 누가 불행을 일컬어 이토록 긍정의 소박함을 모아 명명할 수 있을까. 누가 감히 깊은 쓰라림마저 기특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말이다. 생각하기 나름인가.


 

글을 쓴 이는 카피라이터라고 했다. 그래서그런지 이 사람 오지윤의 글은 생생하다. 시처럼 감각이 살아있는 산문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무엇보다 자신이 쓴 글에 녹아 흩어지지 않으면서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한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대부분의 에세이가 자신의 글 속에 깊이 갇혀 가는 인상을 받는 반면에 이번 책은 좀 달랐던 것 같다는 말이다. 글쎄다. 차이가 무엇인가 묻는다면 그다지 할 말은 없을 것도 같다. 그냥 내 느낌이 그랬던 것 같다는 말이다.

그녀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담백하고 솔직하다. 그리고 질척이지 않는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어떤 면에서는 명쾌하다기보다는 조금 더 사색적이다.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무겁게 다가오는 글이건만 친근하다. 그렇게 생각의 깊이가 깊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 또한 소심한 개인적인 인상이지만 어쨌든 내겐 그녀의 이야기가 참 정겹게 다가온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걱정을 하는 딸에게, 퇴직 이후의 또다른 삶을 살아가던 아버지는 시간이 너무 안 가서 힘든 사람도 있단다.” 와 같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에피소드가 기억난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에 따라 혹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그 해석이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구나. 라는 생각들? 사실 이런 건 표면적인 생각들이다. 그리고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책 속에는 뭐랄까 눈에 보이는 것과 함께, 우리가 채 인지하지 못했던 그 너머의 것들이 가만히 살아나곤 한다.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무엇에까지 저자의 시선은 확장되어 있었으며, 그 시선이 멈추는 곳마다 무척이나 따스하다.



-외부의 것이 나를 기쁘게 하거나 슬프게 하도록 내버려 두기 싫은 밤이다. 매일 밤 나의 기분은 사실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 타인이 만들어 왔다.-p113

 


-또 봄이 왔다. 어제는 가족들과 함께 부추전을 먹었다.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고되게 이별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삶을 시작한다. 우리의 식탁에는 이제 할머니 대신 형부가 앉아 있다. 부추가 또 말을 걸어온다. “별일 없지? 맛있게 먹어라.” -p120


 

-그리고 이곳에서 낯선 이들과 무용한 것에 대해 끝까지, 끝까지 파고든다. 그러다 보면 위로를 받고 만다. 무용함의 쓸모 글쓰기의 쓸모.-p208

 


 

-“좋아했던 사람을, 사랑했던 순간을, 화가 났던 날들을, 소중했던 햇빛을 힘주어 눌러 쓰며 오늘의 나에게 보냅니다. 기억하지 않으면 영영 휘발될 것 같아요. 어떤 것들은 익숙해져서 닳아 버린 낱말들처럼, 날이 밝으면 사라질 것 같아요.”-p210 (글 쓰기 모임을 함께 하는 태훈의 글을 인용한 부분이다)

 

 


사족이다.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 걸까. 세상은 거칠고 험하고 축축하고 날카롭기가 그지없지만 이렇게 쓰고보니 내가 꼭 염세주의에 빠져 사는 것 같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이 세상이란 것이 참 많은 이미지들로 가득차 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많은 시인과 소설가들은 그 속에서도 보석을 꿈꾸는 원석을 찾아내곤 한다. 찾다보면 그렇게 들추어 들여다보기를 노력하다보면 새롭게 보이는 무언가가 있겠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쓰다보면 생각의 깊이는 더 깊어질 일이다. 넋두리가 길어졌다. 이 글을 쓰면서 내내 듣고 있던 음악도 이젠 바꿔야겠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음악도 글도 다들 제각각 품고 있는 이야기들이 많더라. 잊어야 하지만 잊지 못하는 것. 마음을 비워내야겠지만 어렵다는 것. 쉽지 않은 일들. 그럼에 불구하고 그 사이에서 인간은 천천히 성장해간다. 조금씩 느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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