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스토리콜렉터 4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황소연 옮김 / 북로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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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책장파먹기9-8]


남자는 경찰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그는 누군가에 의해 가족을 살해당하고 탐정의 신분으로 범인을 찾아나서게 되는데.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의 이름은 데커였다.

신의 축복일까. 아니면 외면일까. 모든 기억을 끌어안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적어도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미식축구 선수였던 그는 충돌사고로 인해 후천적 과잉기억증후군에 걸리게 된다. 그의 뇌세포 어딘가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설정이다. 그로 인해 소설 속 주인공 이 사람은 좋은 기억은 물론이거니와 나쁜 기억 하나하나까지 빠짐없이 스캔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소설은 의심 가는 사람을 먼저 공개한다. 이런 설정을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미스터리가 아닌 뭐라고 하던데...

범인을 먼저 공개하고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과 범인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나중에 공개하는 방식이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어쨌든, 애매하게도 이번 소설은 범인인 듯, 아닌 듯한 한 인물을 초반에 공개하며 이야기를 끌고간다.

아내와 딸 그리고 처남의 죽음을 알고 있던, 범인이라고 자백한 세바스찬 레오폴드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범인으로 주목되는 레오폴드와 데커와의 두뇌싸움이라고 할까.


 

데커 가족의 살해사건과 그가 졸업한 고등학교에서의 총기난사사건의 연관성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소설의 재미가 돋보인다는 생각을 했었다. 소설은 전개속도가 빠르고 짧은 진행의 반복으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고 본다.

반면 개인적으로는 깊이 파고드는 성향을 좋아하는데, 이번 소설은 뭐랄까 주변으로 자주 확장되어만 간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성의 없이 등장했다가 빠지는 인물들이 너무 많다) 빠른 속도감과 확장력은 주위를 환기하는데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때로는 산만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는 건 개인적인 생각이다.

영화로 치자면 뭐랄까. 깊이감이나 작품성보다는 흥미 위주의 헐리우드 식의 스릴러나 미스터리 영화 한편을 본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하면 정리가 될 듯싶다.

 


또 한가지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은 바로 번역이었다. 원문 자체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원작의 느낌과 번역의 느낌이 어떻게 다가올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맛깔스러운 번역이 좋았다는 점이다. 같은 대화체를 번역할 때도 역자마다 분위기가 다를법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소설은 뭐랄까, 번역만으로도 쉼없이 가열차게 달려가는 에너지가 넘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적고 싶다. 물론 개인의 취향이다.


 

과잉기억증후군이라. 차라리 선택적 기억상실증을 앓고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시험에 나올 것들을 외워야 할 시기도 지나갔다. 아이들 핸드폰 번호라든지 현관문 자동화 장치의 숫자들이라든지, 주민번호 같은 번호만. 아니다. 그 외 몇가지 더..를 가져오자니 여전히 기억해야 할 것들이 많아보이기는하다. 그래도 우리의 뇌는 비워낸 만큼 다시 채울 수 있다는 그 말을 나는 여전히 믿는다. 완전한 리셋까지야 필요없겠지만 말이다.

 


미세먼지가 극성이지만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한다. 나름 신선한 척?하는 공기가 들어온다. 언제부터인지 순간순간 의미를 부여하며 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바람이 참 고마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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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고요한 노을이..

[책장파먹기9-7]   


슬프다. 전쟁은 이렇게나 잔인한 것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대만 침공설? 남북과의 긴장 정도, 러시아와 미국의 대립,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 내전까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전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혹자는 그랬다. 인간의 역사에서 전쟁사는 따로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 없는 관계이다, 라고 말이다. 안으로 에너지가 차고 넘치면 밖으로 분출하는 그 어떤 것을 전쟁이라고 말하는 것도 본 적이 있다.

 


쓰고 보니 내가 가진 걸쇠에 맞지 않게 표현만 드세게 거창하다. 갑자기 맥이 빠지는군. 책 이야기로 돌아가자. ‘보리스 바실리예프여기에 고요한 노을이...’ 라는 소설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다. 책을 받았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누군가 개인적으로 홍보차 보내준 책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발행일이 2012년이다. 꼭 십 년이 됐다. 그 누군가가 보내주었을 때 바로 읽어보았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십 년 전에는 어떤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갔을까.

아마 어쩌면 지금보다는 많이 다른 감상에 젖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세월의 흐름은 많은 것을 변화시키니까.

 


작가 보리스 바실리예프는 17살이라는 나이에 직접 전쟁에 참전했다. 그 때 보고, 느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그의 작품 안에서 생생한 모습으로 재현되었음을 해설에서 접하게 된다.

전쟁의 참상, 잔인함, 슬픔과 불안감, 분노 그러나 그 속에서 피어나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들. 불안한 시대에도 새 생명은 태어나고, 역사의 시계는 돌아가고, 인간은 또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 잔인할 수도 아름다울 수도 있는 순간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소설에 등장하는 병사들은 전쟁의 경험이 전혀 없는 순진한 20대 전후의 젊은 아가씨들이었다. 출신성분도 다르고 자라온 환경도 다 달랐던 이들은, 자신들의 나라 러시아를 위해 독일군과 대적하려고 함께 모였다. 때론 어린아이 같이 칭얼거리다가도 때론 요염한 아가씨처럼 행동하기도 했으나 모두 하나의 뜻을 위해 서로의 동지가 되어준다.

 


사건의 발단은 언제부터인가 부대 근처에 어린 아들을 보기 위해 부대를 빠져나갔다가 돌아오던 리따 오샤니나가 독일군 2명을 발견하게 되면서부터가 아니었을까. 그녀를 포함해서 5명을 먼저 선발해 수색대를 만들고 독일군과 대치하기 위해 길을 나서면서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된다. 유일한 남자였으며 생존자였던 특무상사 바스꼬프의 불안은 현실로 이어져갈 수밖에 없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바스꼬프와 5명의 어린 여군들은 계급과 성별을 떠나 인간과 인간으로 서로 의지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안타깝고 슬픈 것은 이들의 작은 죽음이다. 다시 보면 늪지대에 빠져서, 적의 칼과 총에 의해, 생존의 희망이 없어 자결하는 것으로 그렇게 빛바랜 잊혀진 죽음들이다. 깊은 곳으로 제대로 묻히지도 못하고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역사에서 지워져야 했던 존재들의 죽음이기도 하다.

그나마 작가가 남겨준 희망은 리따 오샤니나의 어린 아들이 아닐까 싶다. 작가가 소설 말미에 보여주려는 잔잔한 감동이, 소설을 전체적으로 끌어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적과 적의 대치, 살육의 남발. 그로 인해 죽음이 끝없이 이어지는 순간이지만 작가는 그 암울함 속에서도 인간애를 찾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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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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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의 야수들

 


아무도 믿지 말고, 불필요하게 고통받지도 마. 사람들이 하는 말 뒤에 숨겨진 진실을 깨닫고, 언제나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 그게 널 위한 내 조언이야.” p 512

 


하필이면 왜 나는 이 사람 이토의 말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을까. 일본인이었으며 인간으로서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두기보다는, 개인의 이익과 개인의 욕망을 쫒으려는 이 사람의 말이 왜 내게 긴 여운으로 남았던 것일까.

 


숨겨진 진실을 찾고 언제나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라, 라는 문구 때문일까. 인생이란, 삶이란 시간이 흘러가는 그대로 그냥 그렇게 사는 게 아니었던가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살아남을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일지도 모를 일이다.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은 일제 강점기, 중일전쟁, 해방기, 한국전쟁, 그리고 60년대 박정희 정권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충돌과 함께 한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소용돌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더라. 역사적 충돌이나 역사적 소용돌이나 어쨌든 가슴 아프고 쓰라리고 애잔한 순간임에는 분명하다. 지나간 우리의 역사가 그러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감당해야만 하는 무게는 막중하다. 한편으로 그 무게가 여전히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수선한 오늘의 시대를 두고 미래에 어느 시점에서 기록으로 남겨야 할 이들은 어떤 시선으로 비판하게 될까. 생각이 샛길로 빠지기 시작한다. 쓰고보니 어쩐지 어색하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자. 작가 김주혜는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미국으로 옮겨갔다고 했다. 어른들께 전해들은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들이 이번 소설의 모티브 역할을 했다는 소개글을 읽는다. 그런가하면 역자 박소현에 대해서도 한번은 생각해봐도 좋겠다. 이번 소설이 한글이 아닌 영어권 언어로 창작되었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책을 읽다보면 소설이 원래 한글로 창작되었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상을 받을 정도로, 역자 박소현의 번역이 안정적이고 유려하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을 기억한다.

언어는 언어가 속한 그 문화를 대변하기도 한다. 다양한 문화의 차이를 언어가 얼마나 극복하고, 아니 재창조할 수 있을까. 영어가 아닌 한국어가 담아내고 있는 많은 색채들. 많은 의미와 상징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의 말미에 역자의 이야기 중에 인물들의 한국어 이름에 대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원래는 영어 이름이었는데 이를 역자 박소현이 옥희, 연화, 월향, 은실 등.. 옛스런 친근함이 담긴 이름으로 재창조했다는 이야기들이다. 어찌보면 잘 들어맞은 궁합이 아닌가. 저자 김주혜의 원작과 역자 박소현의 번역이 일궈낸 하나의 작품은 이토록 좋은 궁합의 결실이 아닌가싶다.

 


소설을 읽는 동안 자연스레 여러 가지 것들을 소급했었다. 이건 일종의 고백이다. 뭐랄까. 내가 살아오면서 봤던 것들, 들었던 것들, 생각했던 것들, 기억하는 것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곤 했었다. 아니 어쩌면 나도 모르게 그것들을 자주 불러 모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 처음에 등장하는 호랑이와 포수에 대한 대목에서는 일제 강점기 사라져갔다던 한국호랑이를 생각했었다. 그와 동시에 영화 한 편을 생각하고,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때로는 한 시절 뜨겁게 열을 올려 찾아보던 드라마를 떠올리기도 했었던 것 같다.

어쩐지 모르게 염상섭의 소설이 떠오르기도 했고, 채만식의 소설 분위기가 연상되다가 소설가 이상이나 나혜석, 조선 말기 명월관의 기생들과 김두한, 모기업 회장까지 여러 인물이 생각나게 했던 것 같다.

딴은 말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딴은 자연스러운 이치 같기도 하다. 그만큼 소설이 끌어안는 스토리의 전개가 역사의 흐름을 따라 이어지다보니, 그 안에서 접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낯설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서는 까닭이 아닐까.

 


인물들의 연관성이라고 해야할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질긴 인연이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남녀의 사랑. 아버지와 아들. 여인들. 어머니와 딸. 세대와 세대로 이어지는 인연의 긴 끈들을 작가 김주혜는 참 노련하게도 직조해내고 있지 않은가.


 

조심스레 결론을 내려볼 수 있을까. 이번 작품은 우리가 뼈아프게 겪어내야만 했던 시대의 아픔이, 한편으로는 인물들의 지난한 삶 속에 깊이 녹아들어 있는 소설이다. 역사가 어떻게 한 사람의 삶 속에 엉키어 들어오는지를 강한 인상으로 펼쳐 보여주는 듯하다.

 

 


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 p603

 


기억하고 싶은 글을 마지막에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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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일기

[책장파먹기9-6] 


조선이라는 역사에 대한 기록물이다. 역사는 기록과 함께 살아 숨 쉰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던 것 같다. 기록의 중요성이라고 할까. 위대함이라고 할까. 아니면 참 별스러운 고집이라고 할까. 마지막 문장은 그냥 혼자서 해본 허접한 중얼거림이라고 해두자.

사담이지만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최무성을 스승님으로 처음 마주한 애기씨가 했던 말처럼 말이다. ‘혼잣말이었습니다와 같은 어떤 것?

실은 말이다. 한가지 목표를 꾸준히 이어가는 과정에 거대한 주춧돌이 되어주는 고집스러움은 매우 긍정적이기도 하지 않은가말이다.

 


이번 책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승정원일기는 말 그대로 승정원이라는 기관(관청)에서 작성한 기록물이다.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배웠던 것을 소급해보면 이곳 승정원은 꽤나 중요한 기관이 아니었던가. 찾아보니 왕의 비서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라고 한다. 그런 곳에서 작성한 기록이니 쉽게 다가서기에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이기도 한 것도 사실일 듯하다.

그러나 책은 생각 이외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딱딱하고 무겁게 느껴질 것 같은 분위기와는 달리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어 읽기에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소견이다. 승정원일기는 편년체의 기록이다. (연월에 맞게 기술하는 역사편찬의 한 체계(네이버 지식)

 


따라서 승정원일기는 그날그날의 날씨를 비롯, 왕의 기록과 왕과 신하의 정무를 비롯 사사로운 일들까지 많은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그리고 책에는 그중 몇 편의 기록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주로 영조와 관련한 기록물들이 자주 눈에 띄는데 아마도 영조의 재임 기간이 가장 길었던 까닭일 수도 있겠고, 책 편집자들의 시선에서 영조시대의 승정원 일기가 흥미를 더 끌었던 까닭일 수도 있겠지만 잘은 모르겠다. 각설하고 중요한 것은 몇몇 이들의 수고로움 덕분에 우리가 조금 더 편하게 앉아 지나간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책은 모두 8부로 나누어져있다. 각각의 장마다 부제를 달았고 또 그 부제에 맞는 내용과 승정원일기 일부를 소개하는 형식을 갖췄다. 눈에 띄는 것은 많은 분량의 사진이다. 승정원일기와 맞게 상황을 그림으로 그려낸 오래된 사료를 다양하게 싣고 있어 천천히 또 꼼꼼하게 살펴보는 재미를 더해주는 듯하다.

 


대부분 왕과 신하의 이야기가 실려있으나 그 중에는 일반 백성과 관련한 일화도 소개되어 있으며, 중국과 관련된 조선의 역사 이야기도 엿볼 수 있다. 왕이라는 자리에 있으나 사사롭게는 어린 아들의 아비라는 자리에서 어리고 병든 자식을 먼저 보내야했던, 인간의 모질고 슬픈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바로 승정원일기이다.

더불어 사도세자와 관련해 영조 때 승정원일기 일부분이 지워졌다는 기록 앞에서는 또 많은 생각들이 줄지어 늘어서는 것을 느낀다. 인간이었기에 숨기고 싶었던 것들이 존재했었던 것일까. 버리고 싶었던 치욕의 순간들이 있었던 것이었을까. 영조가 사도세자의 기록을 지우려 했던 것과 정조가 그 아비인 사도세자의 기록을 지우려했던 것에는 차이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곁에 있던 아이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차이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했었다. 보통은 승정원일기보다 실록이 더 잘 알려져왔던 까닭이겠다.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간단히 요약을 하자면, 실록은 사관의 개입이 엄연히 존재했으나 승정원일기는 사관의 개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우선 차이점으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사관은 말한다’. 라는 표현이 승정원일기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내용면에서 보자면 실록보다 더욱 세부적었기에 더 상세한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이 차이점의 두 번째로 들 수 있을 것도 같다. 그 외에도 더 많겠지만 전문가가 아니니 이쯤에서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얌전히 물러나야 할 듯싶다.


 

승정원일기라는 기록물을 접하면서 오백 여 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상상을 해본다. 참 오묘한 일이다. 역사 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늘 오묘한 생각이 따라다닌다. 백년 전이든 천년 전이든 어느 시대에 살았든지,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은 지금도 그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시대가 변하고 문명이 발달하고 기술이 크게 변모했다고해도 인간이 인간으로서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일이란, 예나 지금이나 가슴 한쪽이 아려오는 일인가보다. 그렇게 신산스러운 삶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일까.

임금도 아니요. 고관대작의 누구도 아니요. 고결한 선비도 아니요. 옛날로 치면 그저 그런 여염집 아낙이었을 내가 살아가는 순간순간조차도 꼭 그만큼 수선스럽기만 하다는 생각이 들고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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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집 1번지

(책장파먹기9-5)

 


책은 사람과 함께 나이를 먹는다. 그렇게 함께 늙어간다. 이번 책은 펴낸 날이 19829월이다. 꼬박 40년이 흘렀다. 지금으로 치자면 초등학교 저학년 고만고만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두 딸들에게, 어느해인가 어머니는 어린이날 선물이라고 묵직한 책 무더기를? 사주셨다. 에이브 전집이었다. 책은 책장이 아닌 서랍장 비슷한 곳에 귀한 보물처럼 꽁꽁 숨겨져 보관해야만 했었다. 그렇게 귀한 전집이었다.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조심스럽게 한 권씩 빼서 보라하셨던 기억이 난다.

사실 전집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책은 이번 책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 책이 내 집 책꽂이에 꽂혀있는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다. 아주 오래전 결혼할 무렵 다른 책들과 같이 한꺼번에 휩쓸려서 왔는지.

오랜 시간의 흔적처럼 책은 낡았다. 누렇게 변질된 종이에서는 매캐한 먼지 냄새와 눅눅한 곰팡내가 혼합되어 자꾸만 공기 속에 번져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청소년 대상의 책이었던지라 활자 크기가 비교적 작지 않아 읽기에 수월했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책은 추억처럼 시간을 되돌리며 다가온다. 하기사 어떤 면에서는 좀 과하기는 했다. 아이들이 7명이씩이나 됐으니 말이다. 쓰레기 청소부 일을 하는 아버지와 빨래를 대신 해주는 일을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인 셈이다. 참 많이도 낳았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 아이들은 많고. 먹고 살아갈 일도 그렇지만 양육과 교육까지 넘어야 할 고개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속에 등장하는 이 가족이 보여주는 인상은 매우 선량하고 긍정적이기까지 하다.

 


가난과 빈곤으로 주인공들의 삶이 비참하고 처량하게 보이는 일이 많은데, 이브 가네트의 막다른집 1번지는 조금 달랐다. 책은 삶의 풍파에 허우적거리는 주인공과는 달리 순간순간 감사하며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인물들과 그들이 뿜어내는 내적인 힘을 보여준다. 세상살이가 그렇게 비참하게 힘들지만은 않다는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듯하다.

 


사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과 비교를 할 필요는 딱히 없겠지만 굳이 비교를 한다하더라도, 이 아이들은 가치를 판단하고 들여다볼 줄 아는 눈을 가진 듯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아이들은 어른의 모습을 보고 성장한다고 했던가. 어느 학자들은 그것을 모델화, 라고 말하기도 하더라.

요즘 아이들은 지나치게 어른의 모습을 닮아간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린이다운 모습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을 느끼게되더란 말이다.

 


무엇보다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책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아닌, 이들의 부모, 이웃한 아주머니, 아저씨, 주변 어른들의 모습들이다. 아이들이 긍정의 힘을 기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은 어른들의 좋은 모습이 아이들과 늘 함께 해주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다양한 에피소드 중에서 나는 유난히 내 유년시절 모습과 동일시했던 첫째 딸 릴리 로즈 이야기와 둘째 영리하고 순수한 케이트의 에피소드에 애착이 간다는 고백을 해야한다. 그건 어쩌면 내가 그녀들과 같은 딸이라는 입장에서 시작된 신실한 동일시였는지도 모르겠다. 바쁜 엄마를 도와주려다 실수를 해서 낭패감과 자괴감에 빠져야 했던 릴리 로즈는, 늘 엄마를 도와주려했던 내 어린 모습을 자주 떠올리게 한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실수도 많았고, 진심이 전달되지 않아 많이 속상해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 순간순간 나는 꼭 그만큼 내적으로 성장했노라는 말을 여전히 중얼거리며 살고 있다. 다행히 릴리 로즈나 케이트에게는 좋은 이웃들의 선함이 함께 해주어 이야기는 늘 해피엔딩으로 이어진다. 얼마나 기분 좋은 이야기 전개인가.

 


딸은 딸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는 개념이 아직 팽배할 무렵이었겠지. 그래서 어찌보면 요즘 아이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과 다른 소재로 그렇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람 사는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더라.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 가족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누구나 조용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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