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고요한 노을이..

[책장파먹기9-7]   


슬프다. 전쟁은 이렇게나 잔인한 것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대만 침공설? 남북과의 긴장 정도, 러시아와 미국의 대립,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 내전까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전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혹자는 그랬다. 인간의 역사에서 전쟁사는 따로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 없는 관계이다, 라고 말이다. 안으로 에너지가 차고 넘치면 밖으로 분출하는 그 어떤 것을 전쟁이라고 말하는 것도 본 적이 있다.

 


쓰고 보니 내가 가진 걸쇠에 맞지 않게 표현만 드세게 거창하다. 갑자기 맥이 빠지는군. 책 이야기로 돌아가자. ‘보리스 바실리예프여기에 고요한 노을이...’ 라는 소설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다. 책을 받았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누군가 개인적으로 홍보차 보내준 책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발행일이 2012년이다. 꼭 십 년이 됐다. 그 누군가가 보내주었을 때 바로 읽어보았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십 년 전에는 어떤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갔을까.

아마 어쩌면 지금보다는 많이 다른 감상에 젖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세월의 흐름은 많은 것을 변화시키니까.

 


작가 보리스 바실리예프는 17살이라는 나이에 직접 전쟁에 참전했다. 그 때 보고, 느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그의 작품 안에서 생생한 모습으로 재현되었음을 해설에서 접하게 된다.

전쟁의 참상, 잔인함, 슬픔과 불안감, 분노 그러나 그 속에서 피어나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들. 불안한 시대에도 새 생명은 태어나고, 역사의 시계는 돌아가고, 인간은 또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 잔인할 수도 아름다울 수도 있는 순간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소설에 등장하는 병사들은 전쟁의 경험이 전혀 없는 순진한 20대 전후의 젊은 아가씨들이었다. 출신성분도 다르고 자라온 환경도 다 달랐던 이들은, 자신들의 나라 러시아를 위해 독일군과 대적하려고 함께 모였다. 때론 어린아이 같이 칭얼거리다가도 때론 요염한 아가씨처럼 행동하기도 했으나 모두 하나의 뜻을 위해 서로의 동지가 되어준다.

 


사건의 발단은 언제부터인가 부대 근처에 어린 아들을 보기 위해 부대를 빠져나갔다가 돌아오던 리따 오샤니나가 독일군 2명을 발견하게 되면서부터가 아니었을까. 그녀를 포함해서 5명을 먼저 선발해 수색대를 만들고 독일군과 대치하기 위해 길을 나서면서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된다. 유일한 남자였으며 생존자였던 특무상사 바스꼬프의 불안은 현실로 이어져갈 수밖에 없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바스꼬프와 5명의 어린 여군들은 계급과 성별을 떠나 인간과 인간으로 서로 의지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안타깝고 슬픈 것은 이들의 작은 죽음이다. 다시 보면 늪지대에 빠져서, 적의 칼과 총에 의해, 생존의 희망이 없어 자결하는 것으로 그렇게 빛바랜 잊혀진 죽음들이다. 깊은 곳으로 제대로 묻히지도 못하고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역사에서 지워져야 했던 존재들의 죽음이기도 하다.

그나마 작가가 남겨준 희망은 리따 오샤니나의 어린 아들이 아닐까 싶다. 작가가 소설 말미에 보여주려는 잔잔한 감동이, 소설을 전체적으로 끌어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적과 적의 대치, 살육의 남발. 그로 인해 죽음이 끝없이 이어지는 순간이지만 작가는 그 암울함 속에서도 인간애를 찾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