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집 1번지

(책장파먹기9-5)

 


책은 사람과 함께 나이를 먹는다. 그렇게 함께 늙어간다. 이번 책은 펴낸 날이 19829월이다. 꼬박 40년이 흘렀다. 지금으로 치자면 초등학교 저학년 고만고만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두 딸들에게, 어느해인가 어머니는 어린이날 선물이라고 묵직한 책 무더기를? 사주셨다. 에이브 전집이었다. 책은 책장이 아닌 서랍장 비슷한 곳에 귀한 보물처럼 꽁꽁 숨겨져 보관해야만 했었다. 그렇게 귀한 전집이었다.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조심스럽게 한 권씩 빼서 보라하셨던 기억이 난다.

사실 전집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책은 이번 책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 책이 내 집 책꽂이에 꽂혀있는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다. 아주 오래전 결혼할 무렵 다른 책들과 같이 한꺼번에 휩쓸려서 왔는지.

오랜 시간의 흔적처럼 책은 낡았다. 누렇게 변질된 종이에서는 매캐한 먼지 냄새와 눅눅한 곰팡내가 혼합되어 자꾸만 공기 속에 번져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청소년 대상의 책이었던지라 활자 크기가 비교적 작지 않아 읽기에 수월했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책은 추억처럼 시간을 되돌리며 다가온다. 하기사 어떤 면에서는 좀 과하기는 했다. 아이들이 7명이씩이나 됐으니 말이다. 쓰레기 청소부 일을 하는 아버지와 빨래를 대신 해주는 일을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인 셈이다. 참 많이도 낳았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 아이들은 많고. 먹고 살아갈 일도 그렇지만 양육과 교육까지 넘어야 할 고개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속에 등장하는 이 가족이 보여주는 인상은 매우 선량하고 긍정적이기까지 하다.

 


가난과 빈곤으로 주인공들의 삶이 비참하고 처량하게 보이는 일이 많은데, 이브 가네트의 막다른집 1번지는 조금 달랐다. 책은 삶의 풍파에 허우적거리는 주인공과는 달리 순간순간 감사하며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인물들과 그들이 뿜어내는 내적인 힘을 보여준다. 세상살이가 그렇게 비참하게 힘들지만은 않다는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듯하다.

 


사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과 비교를 할 필요는 딱히 없겠지만 굳이 비교를 한다하더라도, 이 아이들은 가치를 판단하고 들여다볼 줄 아는 눈을 가진 듯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아이들은 어른의 모습을 보고 성장한다고 했던가. 어느 학자들은 그것을 모델화, 라고 말하기도 하더라.

요즘 아이들은 지나치게 어른의 모습을 닮아간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린이다운 모습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을 느끼게되더란 말이다.

 


무엇보다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책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아닌, 이들의 부모, 이웃한 아주머니, 아저씨, 주변 어른들의 모습들이다. 아이들이 긍정의 힘을 기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은 어른들의 좋은 모습이 아이들과 늘 함께 해주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다양한 에피소드 중에서 나는 유난히 내 유년시절 모습과 동일시했던 첫째 딸 릴리 로즈 이야기와 둘째 영리하고 순수한 케이트의 에피소드에 애착이 간다는 고백을 해야한다. 그건 어쩌면 내가 그녀들과 같은 딸이라는 입장에서 시작된 신실한 동일시였는지도 모르겠다. 바쁜 엄마를 도와주려다 실수를 해서 낭패감과 자괴감에 빠져야 했던 릴리 로즈는, 늘 엄마를 도와주려했던 내 어린 모습을 자주 떠올리게 한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실수도 많았고, 진심이 전달되지 않아 많이 속상해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 순간순간 나는 꼭 그만큼 내적으로 성장했노라는 말을 여전히 중얼거리며 살고 있다. 다행히 릴리 로즈나 케이트에게는 좋은 이웃들의 선함이 함께 해주어 이야기는 늘 해피엔딩으로 이어진다. 얼마나 기분 좋은 이야기 전개인가.

 


딸은 딸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는 개념이 아직 팽배할 무렵이었겠지. 그래서 어찌보면 요즘 아이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과 다른 소재로 그렇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람 사는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더라.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 가족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누구나 조용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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