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일기

[책장파먹기9-6] 


조선이라는 역사에 대한 기록물이다. 역사는 기록과 함께 살아 숨 쉰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던 것 같다. 기록의 중요성이라고 할까. 위대함이라고 할까. 아니면 참 별스러운 고집이라고 할까. 마지막 문장은 그냥 혼자서 해본 허접한 중얼거림이라고 해두자.

사담이지만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최무성을 스승님으로 처음 마주한 애기씨가 했던 말처럼 말이다. ‘혼잣말이었습니다와 같은 어떤 것?

실은 말이다. 한가지 목표를 꾸준히 이어가는 과정에 거대한 주춧돌이 되어주는 고집스러움은 매우 긍정적이기도 하지 않은가말이다.

 


이번 책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승정원일기는 말 그대로 승정원이라는 기관(관청)에서 작성한 기록물이다.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배웠던 것을 소급해보면 이곳 승정원은 꽤나 중요한 기관이 아니었던가. 찾아보니 왕의 비서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라고 한다. 그런 곳에서 작성한 기록이니 쉽게 다가서기에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이기도 한 것도 사실일 듯하다.

그러나 책은 생각 이외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딱딱하고 무겁게 느껴질 것 같은 분위기와는 달리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어 읽기에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소견이다. 승정원일기는 편년체의 기록이다. (연월에 맞게 기술하는 역사편찬의 한 체계(네이버 지식)

 


따라서 승정원일기는 그날그날의 날씨를 비롯, 왕의 기록과 왕과 신하의 정무를 비롯 사사로운 일들까지 많은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그리고 책에는 그중 몇 편의 기록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주로 영조와 관련한 기록물들이 자주 눈에 띄는데 아마도 영조의 재임 기간이 가장 길었던 까닭일 수도 있겠고, 책 편집자들의 시선에서 영조시대의 승정원 일기가 흥미를 더 끌었던 까닭일 수도 있겠지만 잘은 모르겠다. 각설하고 중요한 것은 몇몇 이들의 수고로움 덕분에 우리가 조금 더 편하게 앉아 지나간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책은 모두 8부로 나누어져있다. 각각의 장마다 부제를 달았고 또 그 부제에 맞는 내용과 승정원일기 일부를 소개하는 형식을 갖췄다. 눈에 띄는 것은 많은 분량의 사진이다. 승정원일기와 맞게 상황을 그림으로 그려낸 오래된 사료를 다양하게 싣고 있어 천천히 또 꼼꼼하게 살펴보는 재미를 더해주는 듯하다.

 


대부분 왕과 신하의 이야기가 실려있으나 그 중에는 일반 백성과 관련한 일화도 소개되어 있으며, 중국과 관련된 조선의 역사 이야기도 엿볼 수 있다. 왕이라는 자리에 있으나 사사롭게는 어린 아들의 아비라는 자리에서 어리고 병든 자식을 먼저 보내야했던, 인간의 모질고 슬픈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바로 승정원일기이다.

더불어 사도세자와 관련해 영조 때 승정원일기 일부분이 지워졌다는 기록 앞에서는 또 많은 생각들이 줄지어 늘어서는 것을 느낀다. 인간이었기에 숨기고 싶었던 것들이 존재했었던 것일까. 버리고 싶었던 치욕의 순간들이 있었던 것이었을까. 영조가 사도세자의 기록을 지우려 했던 것과 정조가 그 아비인 사도세자의 기록을 지우려했던 것에는 차이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곁에 있던 아이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차이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했었다. 보통은 승정원일기보다 실록이 더 잘 알려져왔던 까닭이겠다.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간단히 요약을 하자면, 실록은 사관의 개입이 엄연히 존재했으나 승정원일기는 사관의 개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우선 차이점으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사관은 말한다’. 라는 표현이 승정원일기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내용면에서 보자면 실록보다 더욱 세부적었기에 더 상세한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이 차이점의 두 번째로 들 수 있을 것도 같다. 그 외에도 더 많겠지만 전문가가 아니니 이쯤에서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얌전히 물러나야 할 듯싶다.


 

승정원일기라는 기록물을 접하면서 오백 여 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상상을 해본다. 참 오묘한 일이다. 역사 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늘 오묘한 생각이 따라다닌다. 백년 전이든 천년 전이든 어느 시대에 살았든지,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은 지금도 그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시대가 변하고 문명이 발달하고 기술이 크게 변모했다고해도 인간이 인간으로서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일이란, 예나 지금이나 가슴 한쪽이 아려오는 일인가보다. 그렇게 신산스러운 삶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일까.

임금도 아니요. 고관대작의 누구도 아니요. 고결한 선비도 아니요. 옛날로 치면 그저 그런 여염집 아낙이었을 내가 살아가는 순간순간조차도 꼭 그만큼 수선스럽기만 하다는 생각이 들고나는 순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