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 듯 저물지 않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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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 듯 저물지 않는』은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에쿠니 가오리가 선보이는 2018년 신작으로 소설 속의 소설 형식이라는 작가 자신도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형식으로 화제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등장인물이 아닌 인물들의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그러다 갑자기 마침표나 말줄임표도 없이 문장이 생뚱맞게 끊어져버려서 순간 출판이 잘못된 도서인가 싶어 당황했는데 알고보니 진짜 등장인물인 미노루가 읽고 있던 작품을 서술해놓은 것이였다.

 

이처럼 미노루는 쉰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남들이 보기엔 덜자란, 요즘 사용되는 말처럼 몸만 어른인 채 마치 생활하는 모습이나 생각은 어린아이 같이 살아가는데 이런 모습보다 더 특징적인 것은 대단한 탐독가라는 사실이다.

 

책에 빠져들면 주변의 계절감마저 잊어버릴 정도로 상당히 몰입하는데 여기까지만 보면 한량 중의 한량으로 생계는 어떻게 유지할려고 하는 다소 오지랖 넓은 생각도 들지만 사실 그는 부모로부터 받은 많은 유산으로 생활하는데는 딱히 지장이 없다.

 

게다가 이 유산 역시도 세부적인 상황까지 모두 친구이자 세무사이기도 한 오타케가 관리해주고 있어서 그야말로 미노루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일기에만 몰두해도 괜찮은 상황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책에 빠져서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재산에 대해서도 모르고 관련된 서류 관리 등도 오타케가 다해주니 이러다 오타케가 안좋은 마음이라도 먹으면 어쩌려고 저리도 무심하나 싶어진다.

 

주변의 시선을 딱히 신경 쓰지 않기에 전 연인은 어린아이 같다고 말했던 옷차림도 서슴없이 입고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좋아해 가게를 열 정도이다. 여전히 유치한 면이 존재하는 미노루는 나기사와의 사이에서 딸을 두었는데 나기사는 미노루의 평범하지 않은 삶에 도저히 적응하지 못한 채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보통의 삶을 위해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 상태이다. 이후로 나기사는 현재의 남편과 그럭저럭 자신이 원했다고 생각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마치 몸은 현실 속에 있으나 의식은 여전히 자신이 읽고 있는(그러나 번번이 주변의 방해 아닌 방해로 흐름이 끊긴다) 소설 속에 머물러 있는것 같은 흥미로운 인물임에 틀림없고 이런 의식의 흐름은 소설 속의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역시나 작품 전체에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런 미노루의 둘러싼 주변인물들-오타케를 비롯해, 전연인이기도 한 나기사, 동성의 커플인 치카와 사야카 등-은 그와 비교할 때 지극히 현실적인 삶을 사는것 같다. 그러나 사실 이들이 꿈꾸는 미래의 삶 역시도 어찌보면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미노루가 소설 속의 이야기에서 현실감을 느끼는 것처럼 결코 무의미하다고는 할 수 없을테고 어찌보면 소설만큼이나 불투명한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노루와 그 주변인들의 대조적인 삶은 오히려 묘한 동질감을 불러일으켜서 작가 조차도 처음 시도하는 형식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저물 듯 저물지 않는』은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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