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적하기 전 법정 스님은 자신이 남긴 『무소유』라는 책마저도 세상에 남겨있지 않길 바라셨다.
오히려 그런 스님의 마음 때문인지 세상에 남겨진 많은 독자들은 그렇게라도 스님을 기억하고 또 스님의 말씀을 되새기고 싶은 마음에 스님은 무소유를
말씀하셨지만 더 소유하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미진한 중생의 마음에서는 이후로도 스님의 이야기, 스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여러 책으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다 싶어지는데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그중에서도 스님의 말씀을 한 권으로 엮어낸 책이라고 보면 좋을것
같다.
생전 여러 권의 책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면
이 책은 스님이 쓰셨던 여러 책들 속에서도 핵심이라고 하면 그렇겠지만 좋은 글들만을 간추려 자연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펴낸 것이다.

이 책의 사진을 찍은 이는 최순희 할머니. 그녀는지난 2015년 향년 91세의 나이로
타계하셨다. 그녀는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 남부군 문화지도원으로 활동 중 국군에 생포되었던 인물로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평양으로 이주했다
이화여대 입학으로 서울로 와서 다시 일본 유학을 떠났고 귀국한 뒤에는 김영랑, 최승희, 박종화 등과 같은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교류한 피아노와
성악을 했던 인텔리 여성이였다.
실제로 그녀는 김영랑의 동생과 결혼했으나 이후의 삶은 순탄치 않아 남편과의 월북 후 전쟁이
발발하자 어린 아들을 두고 남을 선택했다고 한다. 여러모로 굴곡진 삶을 살았던 그녀는 법정 스님의 책을 읽고 인연을 맺은 후 스스로 평안을
되찾았다고 하는데 교통이 불편하던 그 시절 불일암을 올라도 스님을 보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그곳을 찾고 주위를 청소한 뒤 그저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었던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은 그녀가 불일암을 오르내리며 여러가지 일들을 하면서 그곳의 봄여름가을겨울의 풍경을
담았던 사진에 스님의 글을 엮었는데 사진 어디에서도 스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면 흥미로울 것이다.
아마도 스님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 했던게 아닐까 싶은 마음도 드는데 불일암과 주변 풍경은 담되
스님의 모습은 없는, 그러나 스님이 살아생전 그토록 말씀하셨던 글들이 대신 자리하고 있는 책으로 마치 한 권의 명상집 같은 분위기라 개인적으로는
참 좋았던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