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솔지 작가의 작품은『휘』를 통해서 처음 만나게 된 작품이다. 책은 흥미롭게도 ‘휘, 종,
홈, 개, 못, 톡, 잠, 초’ 라는 단 한 글자의 소제목들로 이뤄진 여덟 편의 단편소설 모음집라고 볼 수 있는데 각 이야기는 독자성을 띄고
있다.
명확한 결말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기 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몽환적인 분위기도 많이 느껴지는
작품으로서 특히나 포문을 여는 「휘」의 경우 이름에서 휘파람 소리가 난다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의 정확한 인물 묘사는 나오지 않는다.
한 소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과정이 그려지는데 이는 그가 소녀를 만나게 된 경위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가 자신을 떠나가고 이후 주변에서 어머니가 있다는 곳의 주소를 건내줘 찾아간 이야기. 그곳에서
만난 여자와 남자, 그리고 다시 남자의 손에 이끌려서 가게 된 그 남자의 집에서 보게 된 마치 살아 있는 시체 같은 한 노파의 이야기.
묘하게도 자신을 데려온 남자와 노파는 마치 자신과 어머니가 계속 살았다면 이렇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여러 면에서 닮아 있다.
「종」은 아버지와 누이, 그리고 누이가 오빠라 부르는 주인공의 시점에서 바라 본 이야기로
누이는 어머니의 부재 이후 아버지, 그리고 주변 어른들, 그리고 이제는 주인공이 다니는 학교의 학생들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고 있다.
마치 더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처우가 당연하다는듯이 생각하는 주인공이지만 누이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말하는 순간,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누이의 편에 서서 그녀를 옥죄고 있는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홈」은 사실 한편으로는 섬뜩한 분위기가 감도는 이야기로 고3 수능을 150일 이상 남긴 어느
날 일호네 반의 4등이자 전교 십일등이 추락사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뒤이어 전교 십등까지 학교 내에서 죽은 채 발견되자 일호는 이 일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 일로 인해 학교 내외적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는 가운데 일호는 십일등이 앉았던 책상 위에서
이상한 홈을 발견하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가운데 혼자 발견한 그 홈은 일호가 물건을 그 홈에 끼우면 끼울수록 점점 더 커지고 그 물건은
존재조차 없어지는데...
「개」는 한 어미에게는 6마리 중 6번째로 태어난 개의 시점에서 그려지는 이야기로 주인
할아버지와 며느리로 불리는 나이어린 외국인 아내, 그 사이에서 태어난 진구에 이르기까지 개는 그들의 삶 속에 있는 동시에 외부인으로서 이들의
삶을 바라보며 점차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이들이 각자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되는지를 지극히 주관적이되 담백하게 그려낸다.
이후 며느리에 의해서 자신이 살던 개집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고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치게 되고 위험에 처하기도 하는데 종국에 개가 만나게 되는 사람이 바로 어린 시절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냈던 진구였던
것이다.
마지막 이야기인 「초」는 소설인지 아니면 작가 개인의 이야기에서 발로한 것인지 궁금해지는
내용으로 세월호 사건, 침몰 과정을 지켜보면서 마음 졸이고 안타까워했던 많은 시민들의 심정, 이후 유가족에게 어떤 말들이 행해졌는지 그리고 점차
밝혀지는 이야기와 진실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주말마다 광화문에 모여 촛불 시위를 했던 이야기로 마무리 된다.
8편의 이야기는 분명 몰입도가 충분하다. 자칫 이어지지 않은 이야기에 그 몰입이 깨어질수도
있으나 독자의 입장에서는 분명 각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고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에 만족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