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은 박완서 작가가 1996년부터 1998년 말까지 천주교 『서울주보』에다 그 주일의
복음을 묵상하고 쓴 '말씀의 이삭'을 모아 출간한 책으로 『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와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의 개정증보판이며 여기에 총
다섯 편의 미수록 원고를 추가한 책이기도 하다.
무교나 다름없는 한 사람으로서 어느 특정 종교에 대해 옳다 그르다고 평할 수는 없을 것이며
주보에 실린 글이니만큼 종교적인 색채를 많이 띄고 있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한국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박완서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궁금해서 읽고 싶었다.
아무래도 이 책에 담긴 글들은 소설이나 산문 등의 문학 작품이 아니라 주보에 실릴 그이라는
점에서 대작가에게도 떨리고 송구스러운 마음을 갖게 했던것 같다. 주보의 지면이 두렵고 그 지면을 책임진다는 것에 대한 버거움을 연재가 끝난 후
몸과 마음이 붕 뜨는것 같았다고 말했을 정도니 말이다.
박완서 작가는 처음 자신이 가진 약간의 글재주로 봉사한다는 마음에서 '말씀의 이삭'을
수락했지만 이것이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일임을 글을 쓰면 쓸수록 실감했던것 같다. 그렇기때문에 글을 쓰는 과정이 작가에게는 그 자체로 스스로
그 주일의 복음을 가슴에 새기고 묵상하는 등의 성찰이지 않았을까 싶다.
쉽게 예를 들어서 우리가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그 부분을 제대로 알고 이해해야
설명도 해줄 수 있는 것인데 작가님은 이 글들을 쓰기 위해서 성서를 더 곰곰이 마음에 새기면서 읽고 또 읽어야 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시간들이
쌓여서 이 책에 담긴 글들을 탄생할 수 있었고 또 이런 시간들이 크리스천으서의 작가님을 채워준 시간이 되었기에 아마도 이 책은 같은 종교를 가진
독자들에게 더 큰 울림이 다가올 것이며 한 자 한 자에 담긴 작가님의 고뇌와 성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어렸을때는 교회에 나갔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독실한 신자로서라기 보다는 친구와 우정을 쌓는
또 하나의 방법이였기에 또래의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비록 지금은 더이상은 그렇지 않지만 책에 담긴 성서의 한 구절과 그 말씀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감이 느껴져서 오래만에 괜시리 마음 차분해지는 글을 읽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