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가 창조한 탐정과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갈릴레오 시리즈’의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일명
‘탐정 갈릴레오’)와 그가 무려 20년이 넘게 애정을 쏟으며 성장시켰다는 ‘가가 형사 시리즈’의 ‘가가 형사’가 있을 것이다. 둘 다 자신의
추리와 직관력, 철저한 조사 등을 토대로 난관에 봉착한 사건을 명확하게 해결한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지만 작가의 애정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가 형사가 좀더 인간적으로 그려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내가 그를 죽였다』는 ‘가가 형사 시리즈’ 중 네 번째 작품으로 사실 시리즈를 처음으로
접해보는 경우라 그에 대해서 적어 놓은 소개글은 작가가 이 캐릭터에 상당한 애정을 갖고 있음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형사 가가 교이치로는 청춘 미스터리 소설인 『졸업』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인물로 교사가 되고
싶은 평범한 대학생이였던 그는 친구들의 죽음과 사건 해결을 통해서 자신을 재능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형사였던 아버지로 인해 가정이
와해(어머니는 집을 떠났다)되었다고 생각했기에 결국에 교사가 되지만 『악의』에서 벌어진 일을 통해서 마치 자신의 운명과도 같은 형사직을 택하게
된 인물이라고 한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각본가 겸 소설가로 한 때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지만 현재는 호다카
기획으로 영화로 재기를 꿈꾸는 재정난 상태의 인물인 호다카 마코토가 유명 시인인 간바야시 미와코와의 결혼식날 돌연 독살되면서 이 사건에 의문을
갖게 된 가가가 이 사건에 개입하게 되는 경우이다.
마코토는 이번이 재혼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미와코의 시를 영화화해서 자신의 재기를 꿈꾸는
야심가인데 여자관계가 상당히 복잡해서 미와코의 담당 편집자인 유키자사 가오리와도 남몰래 염문을 뿌려 임신을 시켰고 자신의 매니저인 스루가
나오유키와 같은 맨션에 사는 동물병원 조수인 나미오카 준코에게도 똑같은 일을 저질렀다. 마코토에게 준코는 진지한 관계라기 보다는 즐기기 위함
같은 관계였지만 준코는 그와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약속과는 달리 미와코와 결혼하려고 하자 죽음을 택하는데...
이 책에서 '그'는 단연코 마코토이다. 미와코는 호색한에 비열하고 자신을 이용하려는 마코토와의
결혼을 추진하는데 이면에는 오빠 다카히로와의 비정상적인 관계가 크게 작용했다. 그들은 부모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오래 세월 떨어져 살아가 성장 후
함께 살게 된 경우였던 것이다.
마코토의 매니저인 나오유키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마코토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고 함께
일하게 되었는데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그였지만 결국 영화의 기획과 제작에 참여하면서 상황은 점점 어려워지고 그가 저지른 일들을 뒷치닥거리해주는
상황으로 점점 나빠진다. 결국 안하무인의 비열한 마코토의 행동에 준코는 약을 먹고 그녀의 시체를 감추려다 가오리에게 들키고 준코가 먹은 독약이
살해된 마코토에게서도 발견된 것이다.
평소 비염을 앓던 마코토가 비염약에 독약이 섞였음을 알게 되고 가가 형사는 그에게
원한을 가진 인물들을 추적하던 중 다카히로, 나오유키, 가오리가 주요 용의자로 밝혀지지만 이들은 서로의 혐의를 들춰내면서 이야기는 극에
달한다.
결국 마코토가 지니고 있는 약을 넣은 필케이스와 여기에서 발견된 제삼자의 지문이 주요 단서가
되고 세 명의 이야기를 통해서 가가 형사는 범인을 지목하는데...
세 명 모두가 마코토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존재했던 셈인데 특이하게도 범인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는다. 게다가 범인에 대한 결정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봉인되어 있다는 점도 이 책의 특징인데 '추리 안내서'라는 제목으로 범인의
실체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가 등장하기 때문에 책을 다 읽고 마지막에 읽으라는 주의가 적혀 있을 정도이다.
추리소설임에도 범인은 '00'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고 해설을 통해서 독자가 깨닫도록 하다니
다카히로, 나오유키, 가오리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과 함께 이 책의 특이할 만한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해설을 읽다보면
책에서 중요한 단서로 제시된 필케이스와 이야기 속에서 묘사되었던 어떤 상황으로 인해서 범인을 추리할 수는 있기에 또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
같다.